주일강단536 2022.04.10. 주일설교 (행7:55~56. 스테반집사가 본 하늘보좌.) 2022.04.10. 주일설교 (행7:55~56. 스테반집사가 본 하늘보좌.) 무엇보다 닫힌 문을 통과한 주님은 부활 후의 주님이셨다는 사실입니다. 부활 전에 주님은 여러 기적을 보이셨지만 닫힌 문을 통과해 오시진 않았습니다. 부활, 그것은 죽어야만 시작되는 위대한 사건이다. 사랑하는 어린 딸의 죽음을 슬퍼하며 힘껏 부활에 집념하던 말러의 악보에 적혀있던 글입니다. “사람은 죽기 위해 태어난다. 그러나 영원히 살기 위해” 죽는다는 유대격언은 언제나 마사다를 떠올립니다.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시기 전, “이제 떠납시다. 난 죽기 위해, 여러분은 살기 위해”라고 했습니다. 죽음과 관련된 어떤 말보다 스데반의 마지막 말은 매우 직설적인 증언이라 주목할 만합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2022. 4. 11. 2022.02.13~04.10. 요20:1~10. 부활의 현장. 시리즈설교 1~5. 빈 무덤. 2022.02.13~04.10. 요20:1~10. 부활의 현장. 시리즈설교 1~5. 빈 무덤.(찬154장) 평생 부활의 현장에서 살기를 축복합니다. 몸은 비록 진흙판에서 상처투성이로 살아도 영혼은 구원받은 증표로 늘 맑고 신선하여 마귀가 감히 넘보지 않는 성도의 삶은 언제나 부활의 현장에 있습니다. 마귀가 왜 예수 피에 진저리를 치며 달아납니까? 그렇게 피흘려 죽기까지 우릴 사랑하신다는 증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피는 분명 죽음의 증표요, 죽은 증거는 다시 사신 부활의 역력한 과정이라 누구라도 부활의 권세와 능력 앞에 어떤 핑계나 고발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마귀에게 당하는 건 마귀의 모함과 참소 앞에 뚜렷한 구원의 증거를 들이대지 못하면서입니다. “예수가 너와 무슨 상관이 있어?” “넌 .. 2022. 4. 10. 2022.02.06. 주일예배<출23:1-13. 의로운 율례-시리즈4/4> 2012.12.16. 주일예배 하나님께서 자신을 소개하실 때 “스스로 있는 자” 또는 “히브리인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등 여러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전쟁터에서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우상숭배하는 범죄의 현장에서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하나님은 선으로 악을 갚고 가난한 자를 돕는 하나님이십니다. 가난한 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자칫 공정하지 못한 판결을 종종 받습니다. 인간이 하는 모든 행사에 부패하지 않은 곳이라곤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언제나 무고한 자 곧 억울한 자를 살피시며 약한 자를 도우라고 합니다. 그간 살펴본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 약자를 보호하시는 하나님, 생명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공평하신 하나님, 율법을 완성하신 .. 2022. 2. 6. 2022.01.23. 주일예배<출21:15-27. 의로운 율례.시리즈2/4.> 2022.01.23. 주일예배 이제 의로운 율례 넷 중 두 번째 하나님의 율법을 살피며 그 율법 안에 스며있는 하나님의 의로운 인간통치사상과 사랑을 배우고 마음에 새기게 됩니다. 세월이 수천년 가고 시대가 달라 문화와 정서, 가치관이 변해도 하나님의 말씀가운데 있는 근본진리는 변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성경에서 중요한 삶의 원리를 찾을 수 있는 근거는 말씀하신 분이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원 이전부터 영원히 계셔서 우릴 사랑하시고 살피시기 때문에 세월에 상관없이 말씀의 생활원리는 어디서도 신음하는 인생들에게 분명한 답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믿는 게 복입니다. 우리에게 오늘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건 말씀가운데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복음의 맥입니다... 2022. 1. 30. 이전 1 2 3 4 5 6 7 ··· 13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