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10. 주일설교 (행7:55~56. 스테반집사가 본 하늘보좌.)
무엇보다 닫힌 문을 통과한 주님은 부활 후의 주님이셨다는 사실입니다. 부활 전에 주님은 여러 기적을 보이셨지만 닫힌 문을 통과해 오시진 않았습니다.
부활, 그것은 죽어야만 시작되는 위대한 사건이다. 사랑하는 어린 딸의 죽음을 슬퍼하며 힘껏 부활에 집념하던 말러의 악보에 적혀있던 글입니다.
“사람은 죽기 위해 태어난다. 그러나 영원히 살기 위해” 죽는다는 유대격언은 언제나 마사다를 떠올립니다.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시기 전, “이제 떠납시다. 난 죽기 위해, 여러분은 살기 위해”라고 했습니다. 죽음과 관련된 어떤 말보다 스데반의 마지막 말은 매우 직설적인 증언이라 주목할 만합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부활을 향한 여정에 어려운 일조차 감사하는 모두 되시기 축복합니다.
사도행전 7장은 스테반집사가 성령이 충만하여 여러 큰 기적을 행함을 본 유대인들이 시기하고 모함하여 공회와 사람들을 충동해서 돌로 쳐 죽이는 과정이 나옵니다. 7장 1~50절까지는 창12장에 아브람의 갈대아우르에서 하란으로 가서 다시 굶주림을 면하려고 애급으로 간 후 솔로몬성전 건축까지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전개한 역사의 결론에 “교만한 너희는 너희 조상과 같이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 곧 예수를 또 죽였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전한 율법도 지키지 않는다.”고 직언을 합니다. 여기까지 들은 유대인들은 54절에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며” 덤벼들어 돌로 쳐 스데반집사는 죽습니다.
이때 죽기 전 스데반이 본 예수님 모습이 오늘 설교의 주제입니다.
55~56절을 읽습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주께서 자신을 보이신 시점이 스테반 순교직전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55절에 스데반이 성령에 충만했다고 적혀있습니다. 하나님의 영, 예수의 영이 스데반에게 가득했다는 겁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전혀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스데반이 하늘나라로 가기 직전에 본 주님의 모습을 56절에 “하늘이 열리고 주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합니다.
첫째 스데반의 눈에 분명히 열린 하늘이 보였습니다. 하늘이 열렸다는 것인데 이는 아무에게나 흔히 보이는 장면이 아닙니다. 매우 특별한 경우 특별한 이에게 보이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일을 있는 그대로 죽음조차 두려워 않고 아무 거리낌 없이 전하는 이에게 열렸습니다.
생명을 걸고 하나님을 전하기에 용감한 사람, 하늘문을 열어 남이 못보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게 본문의 교훈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깊이와 정도의 차이는 다소 있어도 간곡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전하려는 성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아는 만큼 믿음의 깊이는 달라집니다. 믿음이 달라지면 세상과 자신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진정 뭘 고민해야 하고 무엇이 사소한지를 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만 믿는 데서 멈추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예수를 전하지 못해 늘 아쉬움이 가득해야 합니다. 기회를 얻든 못 얻든 그건 환경이 말해 줄 것이고 성도는 거룩한 부담을 잊지 않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칭찬이 되어 현실로 돌아옵니다.
실존하는 천국보좌를 본 스데반의 전도설교와 순교,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줍니까? 인간에게는 죽고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보지 못할 뿐 하늘에서 우릴 지켜보고 계신 주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과 그리고 하늘문은 언제나 믿는 이에게 열려있다는 것을 믿기 바랍니다. 스데반에게 보여주신 열린 하늘문이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도 넉넉하게 실제가 되는 은혜가 넘치기 축복합니다. 기도합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열린 문을 찾기가 어려운 험한 인생길, 주님만이 길이신 것을 믿습니다. 주님을 바라봐도 보이지 않고 열리지 않는 하늘문은 우리의 믿음이 부족한 탓인 것도 이제 압니다. 오늘 닫힌 인생의 문과 하늘의 신비한 문은 우리의 옛사람이 죽어 다시 부활함으로 가능하단 것을 알게 하신 주님을 찬미합니다. 인생이 어려운 게 아니라 자신을 이기지 못해 어려운 길을 가는 우리에게 주여, 자비한 손을 더하셔서 주님 살아계셔서 우릴 불쌍히 여기시는 증거를 늘 베풀어 주옵소서. 그리하여 날마다 죽고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 아침을 여셔서 호흡이 찬미가 되게 하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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