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하는 분들을 위한 장이므로 구원이라는 의미를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죽은 후에 천당가는 것'이라는 제한적 의미로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인간은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제가 깨어지고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구원이라는 말이 생기고 그 구원을 이루어 줄 사람 즉, 메시아라는 사상이 생긴 것입니다.
사후에 영생을 얻기 위한 방법 즉,
구원은 하나님과 원수되게 한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과 화해하였느냐가 핵심 관건입니다. 이 말에는 당연히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는 전제가 따릅니다. 구원은 궁극적으로 전우주적 사건이 될 것이며 우주의 주인되시고 재판장이 되시는 하나님의 주권으로 그 기준이 정해지며 그 기준에 따라 하나님께서 직접 주관하셔서 집행되고 마무리되는 종말론적 사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상대적 기준으로 생각할 문제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구원에 대한 오해는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고 봅니다.
(1) 인간의 선행(善行)에 의한 방법
"나는 세상 살면서 나쁜 짓 한 적 없고, 남을 해코지 한 적도 없으며 또한 나 나름대로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가며 양심 껏, 정직하게 살고 있으니 이러면 됐지, 뭐 골치 아프게 꼭 예수를 믿어야 하나? 기독교인들은 너무 독선적이 아닌가?" 일반인들이 가장 평범하게 오해하는 구원의 관한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마치 다음과 같은 경우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인간의 선행으로 구원을 받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세계 최대의 부자인 빌 게이츠에게 우리돈 천원을 기부하고 그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기를 기대하는 것 보다 더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어느 대학을 지망하는 수험생이 있습니다. 그는 학원에도 가고, 과외 수업도 받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면서 고등학교 3년간 좋은 성적을 받으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자신의 모교에선 틀림없이 합격된다는 확신에 가까운 격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가지고 지망하는 대학에 응시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낙방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그 대학에 왜 나를 낙방 시켰느냐고 항의를 했습 니다. 그러나 그는 그 대학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낙방이 된 것입니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했더라도 그 대학이 설정한 기준에 미달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은 개개인이 세계적으로 두뇌가 명석하기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미국의 명문 하바드 대학 입학시험에서 최우수 학과성적을 취득한 한국인 학생이 면접에서 낙방하고 말았습니다. 헌혈을 한적이 없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의 정서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만, 사회를 위하여 봉사하는 정신을 중요시한 것은 그 대학의 방침입니다.
인간 세상에도 이러한 기준이 있거늘 하물며 세상을 심판하실 분이 어찌 분명하고 확실한 기준이 없겠습니까?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으로 제시되어 있는 구원의 방법은 인간이 왈가왈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예수를 믿어야 구원 받게 된다고 하면 예수가 이 땅 위에 오기 전 사람들은 어떻게 되나? 구약시대에 하나님께 특별히 인정 받은 사람들 이외에는 한 사람도 구원받지 못한 것 아닌가? 이런 불공평한 하나님이라면 그런 하나님은 믿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린다면 의로우시고 천지보다 크신 창조주 하나님을 유한한 사람의 잣대로 생각하는 결과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 사이트의 "기독교란 무엇인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 믿음 없이 행하는 교회 봉사에 의한 방법
가장 많이 오해되고 있는 방법입니다. 흔히 매 주일 교회에 출석하고 열심히 봉사하면 구원을 받은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입니다. 불신자들을 전도할 때 교회에 나가라고 말하는 것(이 말보다 '예수 믿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함)은 교회에 나가면 바로 구원을 받는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교회에 나가면 구원의 진리에 관한 복음을 들을 기회가 주어지니 깊이 생각해서 구원의 주체이신 예수를 마음으로 받아들여 믿으라는 말이지 교회라는 단체에 소속이 되거나 물리적 장소에 가있는다고 구원이 저절로 주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잔치집에 가는 것 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인생에 대하여 배우는 것이 많다'라는 말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안타까운 사례 하나를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룟 유다는 예수님과 3년간이나 함께 생활하면서 이적과 기적을 체험하고 하늘 나라의 놀라운 진리의 말씀들을 직접 보고 듣고 하였으나 그는 구원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스승 예수를 자신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구주(救主 : Personal Savior) 즉, 그리스도로 믿고 영접한 것이 아니라, 예수를 초인적인 능력과 군중들의 인기에 영합하여 조국을 로마제국의 식민지에서 해방시켜 줄 혁명의 지도자로 믿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일에 끝내 관심을 보이지않는 스승을 배반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지금으로 말한다면 두뇌가 명석하고 혈기가 왕성한 운동권 출신의 애국청년결사대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민족주체사상이 뚜렷하고 제국주의자들의 압제밑에 신음하는 백성들을 생각하는 우국지사였던 것입니다. 인간적인 안목으로 본다면 장래가 촉망되는 더할나위없이 훌륭한 청년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을 얻지 못했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요.
이처럼 믿음 없이 사람의 생각으로 행하는 자선봉사, 교회등록, 십일조 생활, 율법준수, 교회직분에 참가하는 방법 등으로는 결코 구 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불필요하다는 말씀이 아니라 믿는 자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이지만 이런 것 자체가 구원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것은 “이미 받은 구원이 감사하여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즉, 구원의 뿌리가 아니라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의 신앙의 열매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구약시대에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율법을 모두 준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버림받은 것이 아니고 그 율법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애굽에서 이미 구원받은 자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약시대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모든 것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고 그 말씀을 하시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관점입니다. 그런데 참된 믿음은 반드시 행함을 수반하는 신적 능력이 내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미국교계에서는 부활을 믿지 않는 목사들이 의외로 많다고 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않는 것입니다. 일평생 교회를 위해 봉사하며, 세계적인 신학자가 되어 성경을 완벽하게 해석하고 논리 정연하게 설명을 하더라도 믿지 않는 다면 결코 구원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유명한 내과 의사가 수술을 완벽하게 했는데 환자가 숨을 쉬지 않는다면 그 수술은 실패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래 성경구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하신 말씀입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깊이 되새겨 보아야 할 것입니다.
자기는 당연히 구원받은 줄 알고 죽은 후에 틀림없이 천국갈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막상 천국입구에 도착하여 들어가려고 했더니,
"당신 이름 여기 없는데... 저 아랫 동네로 내려가봐!"
"아니 없다뇨...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내가 교회에 얼마나 열심히 다녔는데... 아마 잘못 보셨겠지요.
다시 한번 찾아 보시지요!"
"허허 참! 없대두 그러내. 빨리 딴 동네로 가보라니깐..."
이런 기막힌 일이 분명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도 교회에서 큰 능력을 행하고, 교인들로부터 칭찬도 받고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믿었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 순간 그 사람의 심정이 어떠할런지는 독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마태복음 7장 후반부에 그 이유가 잘 나와 있습니다. 요점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 신앙생활을 하지않고 사람의 생각대로 믿었기 때문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간에 '내 마음대로 믿는 것은 내가복음이요, 지 마음대로 믿는 것은 지가복음이다'라고 하는 웃지못할 농담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
-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 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 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7:21-23)
(3) 진리 추구의 보편성에 의한 방법
“모든 진리는 끝에서 하나로 통한다. 마찬가지로 산 정상에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으니 어디로 가던 정상에만 올라가면 되는 것 이지 꼭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주장은 예수 믿는 사람들의 독선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예수를 믿지 않고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은 많이 있다. 그 어떤 종교를 믿던 끊임없는 수행을 통하여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현대에 주목을 받는 자유주의신학의 주장입니다. 이는 사단의 궤계로서, 인간들의 보편적인 상식으로 볼 때 다윈의 진화론처럼 가장 그럴싸한 주장이기도 하며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NO”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14:6)
우리는 지금 세상 종교나 철학을 토론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철학은 끝없는 질문의 연속일 뿐입니다. 스스로 오류에 빠진 철학은 인간의 역사란 정반합의 논리적 바탕위에서 나선형처럼 발전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변증법을 제시하고 있지만, 창세기 3장에서는 이러한 사상을 인간의 수치스러운 곳을 임시로 가리울 '무화과 나무잎으로 만든 치마'라고 하였으며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예수 그 리스도를 아는 것 이외의 일체(一切)를 배설물(排泄物)로 여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찾는 것을 세상에서는 도를 닦는다고 말합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에서는 신을 만나기 위 해 그리고 스스로 신이 되기 위해 인간의 끊임없는 수행을 통해 찾아 들어갑니다. 인간의 끝임없는 노력으로 진리를 구하는 이러한 종교를 구도적(求道的) 종교라고 말합니다.
기독교는 구도적 종교가 아니라 계시적(啓示的) 종교 또는 전도적(傳道的) 종교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해 찾아 나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신이 스스로 자기를 비하시켜 사람의 모습으로 인간 세상을 찾아 오신 것입니다. 인간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오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이와같이 이미 참 도(道)가 하나님에 의하여 계시되어 있기 때문에 그 도를 누리며 전하려는 것입니다. 이미 자동차가 수없이 굴러 다니는데 굳이 자동차를 새로 발명하기 위해 연구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