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15.주일예배(마태복음 14:22-33. 물 위로 걸어오신 그리스도) 베드로의 연약이 주는 위로.
예수께서는 자신을 바라고 모인 오천 명의 군중을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기적을 베푸셔서 12광주리가 남도록 먹이셨습니다. 여자와 아이를 뺀 숫자가 오천이니 전체는 2만 명 정도는 됐을 겁니다. 그런 후에 그들을 돌려보낸 뒤 제자들과 떨어져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풍랑이 심하며 배를 타고 힘겹게 건너오던 제자들은 예수께서 물 위로 걸어오자 놀라 유령으로 보고 두려워 소리칩니다. 예수께서 자신을 밝히시자 베드로는 만일 주님이 틀림없다면 내게 명령하셔서 물 위로 걸어 주께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오라는 주의 명령에 따라 베드로는 물위를 걸어서 예수님께 가다가 바람에 놀라 두려워하는 순간 물에 빠지게 됩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입니다. 본문을 통해 물 위로 걸을 수 있는 믿음과 물속으로 빠져가는 부족한 믿음은 무엇인가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먼저 한 구절씩 함께 읽으며 은혜를 나눌까 합니다.
22-23 : 오천 명을 먹이신 이적 뒤에 제자들을 서둘러 건너편으로 배 태워 보내신 예수님은 즉시 기도하러 홀로 산에 오르셨습니다. 서둘러 제자들을 왜 먼저 보내신 겁니까? 놀라운 이적과 능력 뒤에 있는 군중들의 환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철없는 제자들이 가로챌 수 있는 위험성 때문이었습니다. 그때까지도 제자들은 예수님께 대해 세상의 왕일 거란 기대가 컸습니다.
중요한 건 예수께서 무리를 보낸 후 혼자 산에 올라 기도하셨다는 부분입니다. 기도없는 사역과 성도의 능력은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시간의 십일조입니다. 선물 열심히 하는 자녀보다 자주 전화하고 찾아와 얼굴 보며 대화하는 자녀가 더 친밀합니다. 바쁠수록 고요한 시간을 따로 떼어 주님과 교제하는 저와 여러분이시기 기대합니다.
24 : 육지에서 이미 제법 떨어져 되돌아갈 수도 없는 험한 풍랑을 안고 고생하는 제자들처럼 되돌아갈 수 없는 인생길입니다. 좋아서 가는 게 아니라 너무 멀리 왔기에 그냥 가는 겁니다. 이게 인생입니다. 바다엔 순풍도 있고 역풍도 있고 폭풍도 있습니다. 인생항로에서 순풍만을 기대할 순 없습니다. 정말 원대로라면 깨달은 이 지각, 겸손한 이 마음을 갖고 옛날로 가고 싶지요.
25 : 깊은 새벽 바다를 걸어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그 주님은 오늘도 깊고 깊은 인생의 흑암 한가운데서 죄중에 헤매는 인간을 찾아오시는 줄 믿기 바랍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예수님은 변함없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히브리인의 하나님이십니다. 절뚝거리며 아픔을 호소조차 하지 못하고 안으로 슬픔을 삭이며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무력한 자들과 병든 자들을 찾아주시는 주님을 찬송합니다. 그렇게 인생을 불쌍히 여기셔서 찾아오셨건만 본토에선 배척받았고 선민 이스라엘은 주님을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그리고 의심하며 피했고 방해했습니다.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생포하려면 동물은 죽이는 줄 알고 생명 걸고 달아납니다. 호송차에 잡혀가면 병원행인지 도살장행인지 모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 곧 구원의 계획과 그 능력과 사랑을 아는 것, 최고의 복입니다.
26 : 바다 위로 걸어오는 주님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고 소리치는 제자들은 금방 5천 명을 먹인 기적의 현장에서 그 능력을 봤습니다. 그런데도 상식을 넘어선 예수님의 출현에 놀라 허둥댑니다. 나사렛의 예수가 메시아로 바뀌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봅니다.
물 위에 우뚝 서심으로 예수께선 만유의 주재임을 스스로 선포하시고 미약한 제자들을 찾아주셨는데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생각이나 상식 안에서만 하나님을 보려고 합니다. 몇 시간 전 기적을 본 그들이 소리친 내용은 무엇입니까? ‘유령이다.’ 제자들 상식으로 물 위를 걸으면 유령입니다. 5병2어의 기적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능력을 자신의 상식과 고정관념 속에 가둬 버립니다. 27절에선 예수의 실존과 그를 믿는 믿음은 그분이 열어주시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는 게 드러납니다. 이를 교리용어로 절대 계시 의존적이라고 합니다. 믿음의 시작은 ‘계시로만 가능’하다는 겁니다.
27 : 두려워 소리친 제자들을 안심시키는 주님은 오늘도 시공을 넘어 늘 그렇게 당신의 양들을 향해 다정한 목자의 음성으로 다가옵니다.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 말라.” 주님 음성은 지금도 여전히 신음하는 죄인들을 향해 조용하게 들려오는 위로의 메시지, 소망의 소식, 생명의 복된 음성, 복음입니다.
28 : 즉시 나서서 응대한 사람은 역시 신속하고 적극적인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물 위를 걸어오고 있는 분이 진정 예수시라면 얼마든지 자신에게 명령해 물 위를 걷게 하신다는 걸 믿는다고 말합니다. 기적은 믿음 위에서 일어납니다. 베드로가 이렇듯 확신하고 간구했을 때 그 믿음의 요구는 즉시 현실이 됐습니다. 믿음대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물 위에서 가장 놀란 건 베드로 자신입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가 구원받아 천국에 간다는 사실, 누가 먼저 놀라야 합니까?
29 : 베드로의 이 요청에 주께선 즉시 베드로를 부르십니다. 죄인들을 찾아 육신의 옷을 입고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어린양, 세상을 딛고 서서 우릴 부르고 계십니다. 성도는 주님이 부를 땐 가면 됩니다. 주저없이 나아가는 베드로는 주님의 초청에 즉각 반응해야 하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30 : 믿음으로 물 위를 걷던 베드로는 휘몰아치는 바람과 출렁이는 파도를 보고 물에 빠지고 맙니다. 파도가 믿음보다 컸습니다. 언제나 ‘믿음이 능력이요. 믿음’이 승리입니다. 믿음이 파도보다 크면 험한 파도라도 작은 물결이지만 믿음이 적으면 작은 물결도 큰 풍랑이 돼 일엽편주 인생을 뒤집어 버립니다. 물에 빠진 베드로는 ‘눈에 뵈는 환경에 놀라 죄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연약한 성도’입니다. 우린 힘든 일을 당하면 바로 앞에서 손을 내밀어 주실 주님을 찾는 일을 대부분 깜빡합니다.
31 : 주님은 베드로에게 손을 내밀었고 베드로는 주님의 손을 잡습니다. 예수그리스도 우리 주의 손은 구원의 손입니다. 그 손을 잡은 건 삶의 새로운 시작이요, 새로운 가치관의 시작이며 새로운 세계, 곧 새 하늘과 새 땅의 출발입니다. 내미는 주님 손이 안 보입니까? 손을 들어 기도하세요. 손을 들어 찬양하세요. 오른손 높이 들어 결단, 결단, 또 결단하고 고백하십시다.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32 : 베드로가 물에 빠진 건 믿음이 약해서라고 말씀합니다. 물에 빠지는 것과 물 위를 걷는 것의 차이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능력이고 그건 생사의 간격입니다. 하나는 부끄러운 타락과 사망이요, 하나는 세상과 환경과 육신을 정복하고 힘있게 주님 향해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는 믿음입니다. 믿음과 의심은 반대말입니다. 주님의 5병2어 기적과 바다 위의 기적을 방금 보고도 믿지 못해 물에 빠졌다는 건 인간이 본질상 믿음 없는 진노의 자녀임을 여실히 증명하는 대목입니다.
33 : 배 위에서 기적을 눈으로 보고 놀라며 감동한 제자들이 예수께 굽혀 말하길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합니다. 보고 믿게 된 제자들, 칭찬받을 믿음은 아닙니다. 못 보고 믿는 우리가 칭찬받을 줄 믿습니다.
주께서 아끼는 여러분. 우린 오늘 베드로의 연약을 보았습니다. 그리스도 곁에서 그를 따르며 그 놀라우신 역사를 눈으로 보며 그의 인격을 경험한 제자 중 가장 두각이 드러나는 베드로의 믿음과 그 고백과 행위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보잘것없는 인생을 끝까지 구하시는 주님의 구원이 뭔가를 확인합니다.
☞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① ‘물 위로 걸어 제자들에게 오신’ 주님의 구원, 찾아주시는 그리스도의 구원이며
② ‘오병이어의 기적을 금방전 경험한 베드로의 연약’ 인간이 갖는 믿음의 분명한 한계와
③ ‘다시 손을 내민 주님의 구원’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궁극적 구원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러한 주의 구원과 인간의 믿음은 날마다 성령의 공급하심과 주님과의 인격적 교감을 통하여 주께서 친히 키워가고 있다는 걸 믿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아직 베드로가 마가의 다락방 성령체험을 하지 않은 상태라는 겁니다. 이렇게 미숙하고 연약한 베드로가 훗날 설교하면 3천 군중이 믿고 구원받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말년에는 머뭇거림 없이 거꾸로 달려 순교를 자청합니다. 그는 살기 위해 도망가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주의 음성을 듣고 다시 로마로 들어가 순교합니다. 성령의 충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는 항상 자신 안에 있는 믿음의 한계를 늘 인정하는 겸손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도우시는 믿음의 주 예수그리스도를 전폭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그러한 절대신뢰의 믿음을 소유함으로 세상에 빠지지 않고 세상 위를 걸어감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는 성령 넘치는 성도, 탁월하고 신실한 신앙인이 되시길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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