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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22.12.18. 주일예배(딤후4:1-8. 사도바울의 마지막 당부)

by 설렘심목 2025. 8. 1.

2022.12.18. 주일예배(딤후4:1-8. 사도바울의 마지막 당부)

사도바울은 유대교의 충성된 청년 사울의 신분으로 신흥종교 그리스도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어서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에 동의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다메섹에서 살아계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면서 그의 인생은 일대 혁명이 일어납니다. 온전히 그리스도를 위하여 생명을 바치는 그리스도의 사도가 됩니다. 본문은 그가 늙어 마지막 생을 그리스도께 바치기 전 사랑하는 제자에게 쓴 편지로서 디모데 뿐 아니라 모든 교회와 성도가 받아야 할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듣는 하나님의 말씀 딤후4:1~8절은 전도의 사명과 성도의 끝날에 준비된, 의의 면류관에 대한 증거입니다. 인생의 끝자락을 잡은 늙은 종의 충고와 고백 앞에 우리는 숙연해집니다. 사라지는 그 뒷모습에서 진정한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 영적거장의 당당한 모습은 온갖 풍요로움이 넘쳐 나태해진 이 시대, 저와 여러분에게 감동과 도전을 던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진정한 불행은 무엇일까?

빈곤과 외로움이 아닙니다. 풍요에 찌든 안일함에 따른 이기심과 나약함과 비굴함입니다.

고전4:15절의 지적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않아그렇습니다. 가르치는 자는 많으나 앞서서 몸으로 먼저 행하는 자가 보기 어렵다는 이게 이 시대 또 다른 빈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은 우리 주께서 친히 부르시고 세워주신 우리의 사도입니다. 그는 성령의 감동으로 복음을 전달한 선각자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디모데를 향한 바울의 서신에서 우리에게 명령하시고 간곡히 당부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2절입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1.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복음전파의 사명을 일깨우며 단순한 교훈이 아니라 살아계신 그리스도와 관련된 엄한 명령임을 증명합니다. 1절과 2절 앞입니다. “하나님 앞과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전파하라는 겁니다. 즉 그 명령은 자신의 의지나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그리스도 앞에서 발령되는 엄숙한 명령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먼저, 복음전파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국을 두고 하는 명령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을 전하는 게 성도의 마땅한 사명인데 이게 결코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았고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의 명령임을 확고히 하고 있습니다.

 

저도 떨리는 심정으로 모두에게 전합니다. 생사화복을 쥐고 계신 하나님과 우리 주님의 재림과 그 나라를 두고 맹세하듯 엄하게 명령하는 이 말씀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두렵고 떨리는 명령입니다.

왜 두렵고 떨립니까? 생사화복과 만유를 주관하고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하면 좋고 안 해도 어쩔 수 없는 그런 명령이 아니라 생사화복을 걸고, 즉 생명을 담보하고 해야만 하는 명령입니다. 그래서 저도 떨리는 심정으로 전한다고 밝힙니다.

 

다음, 복음전파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써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사도바울은 하늘에 속한 사람입니다. 바울은 인간의 죄성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러므로 그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말씀 전하기에 힘을 쓰라고 합니다. 일을 애초에 하려는 사람은 이유가 있어도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을 피하려는 자는 모든 게 다 핑계거리입니다. 이는 어떠한 환경이나 조건도 복음전파에 이유가 되지 못한다는 걸 성령께서 밝히 알고 하는 말씀입니다.

 

끝으로, 복음전도는 전도 후 양육까지입니다.

2절 후반부를 제가 읽습니다.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복음을 전해 믿음을 갖기 시작하면 이후로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갖고 양육에 힘을 써야 합니다.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는 건 전도 후 잘 바뀌지 않는 성화의 부분에 나무랄 때 나무라는 동시 기다려줄 줄 아는 인내도 요구되는 걸 말합니다.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기까지는 아무리 열심히 먹어도 시간이 필요하듯 영적성장에도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그 양육은 기다려주되 경책과 경계와 권면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이유는 3~4절에 밝힙니다. 함께 읽습니다. “(영리해져 악한)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성경)을 받지 않으며 귀가 가려워서(귀를 기울여)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그럴싸한 철학, 이념 사상)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신화와 민속)를 따르리라.” 인간은 끝내 타락하게 돼 있는 진노 받을 악한 육체들이요, 그래서 책망이 필요한 비참한 존재입니다. 5절입니다.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2. 전도에 고난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의 삶이 주 앞에서 풍성해지는 순서 중에 반드시 치러야 할 영적인 중노동이 있습니다.

하나는 전도요, 하나는 기도입니다.

기도없는 전도는 무임승차입니다. 능력도 없고 열매도 없습니다. 또 전도 없는 기도는 입에 발린 부끄러운 헌신입니다. 우리 모두 기도하는 전도자이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전도자는 기도할 때 주어지는 영의 능력으로 고난을 고난으로 여기지 않고 십자가로 받아 기꺼이 짊어질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는 고통뿐 아니라 영광과 기쁨도 있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감히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7~8절입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됐음으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3. 최선을 다하고 믿음을 지킨 자에게 주는 의()의 면류관입니다.

 

로마당국이 처형 일자와 장소를 논의하고 있다는 말이 들립니다. 바울사도는 자신의 생명이 멀지 않음을 직감했습니다. 머지않아 곧 순교의 제물로 드려질 걸 알고는 6절에서 전제와 같이 내가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가까웠다고 결연한 고백을 합니다. 전제란 제사 마지막 순서에서 제물에 붓는 제사용 술입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의 복음사역에 제물로 바쳐지리라는 걸 알고 자신의 마지막 가는 길에 부어질 고통의 잔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단번의 제사로 이후 제사대신 예배가 출발한 걸 바울이 염두에 두고 자신도 미련없이 제물로 바쳐질 일을 받아들입니다.

 

5절에서 뭐라고 합니까? “전도의 사명을 감당할 때고난을 받으라고 합니다. 이미 밝혔지만 가르치는 스승이 몸소 실천하지 않으면 그 교훈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비는 진정한 스승입니다. 아비는 몸으로 먼저 아들 앞에 본을 보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생애가 번제물로 희생될 걸 예감한 뒤 디모데에게도 고난을 피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장차 받을 면류관에 대한 확증, 곧 천국의 분명한 믿음이 없이는 결코 할 수 없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예배자 여러분.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있어서 사도를 넘어선 아버지였습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바른 믿음과 거기에 따른 모든 희생을 먼저 자신이 몸소 보여 따르도록 가르치는 일입니다.

그는 디모데와 성도들에게 말씀을 전파하라고 가르칩니다. 교사가 머리로 가르친다면 아비는 몸으로 가르칩니다. 오늘 바울이 그 몸으로 우리에게 가르친 말씀전파의 명령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국을 두고 하는 당부입니다. 그렇게 성경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라는 말로 전도 앞에 이유나 조건을 물리치라고 합니다. 거듭 전하지만 천국에 대한 핑계할 수 없는 확신으로만 가능한 메시지입니다. 이는 몸으로 하나님을 경험하지 않고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진리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무능하고 무력한 거 주께서 잘 아십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주님이 우릴 불쌍히 여겨주시고 찾아주셔서 우리를 주님의 거룩한 도구로 사용하기만을 간절히 구하는 겁니다. 정직한 기도는 역사를 바꾸게 된다는 걸 잊지 않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대며 하나님의 뜻은 끝이 없는 진실과 선과 아름다움, 진선미입니다. 우리도 사도바울처럼 하나님께 온전히 사로잡혀 거룩하고 복된 삶으로 날마다 승리의 노래를 부르기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