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7. 주일예배(약4:13~17. 안개꿈)
본 야고보서가 기록된 2천 년 전의 환경은 지금과 크게 다릅니다. 십자가의 소식과 부활하는 장면을 두 눈으로 본 이들이 장년 노년으로 늙고 대부분 세상을 떠난 때입니다. 어려서 이 일을 경험한 세대들과 그들에게 직접 전해 들은 이들이 장년이 돼 아직은 뜨거운 신앙이 잘 전수되고 있었는데 체계적인 교리나 예식 등 업무에 대한 정리된 지침이 없어 사도들은 사역에 애로가 많았습니다.
모든 게 지금과는 차이가 커도 어수룩하고 무능한 서민이 당하는 괴로움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부패한 정부관리와 종교지도자들로 인해 억울한 백성의 끊이지 않는 절규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대물림된 가난과 서름을 안고 사는 성도들에게 믿음으로 인한 소망은 대단했는데 대부분 천형과 같은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 정신이 온전해지는 일에 집중해 모여들었습니다.
바울사도의 로마서가 여전히 율법주의에 빠져있는 성도를 향해 ‘행함으로 받는 구원’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받는 구원’에 대한 교훈이라면 야고보서는 ‘믿음으로 주어진 이신칭의와 ‘행함이 따르는 믿음’을 주장함으로 교리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야고보서는 실생활에 적용할 만한 내용이 많습니다.
오늘 본문은 먹고 살기 바쁜 일상에서 자칫 무심할 수 있는 인생의 허망함과 동시 참된 가치를 깨우는 구절입니다. 육신으로 예수님의 친동생인 야곱이 참 힘들게 메시아로 오신 형을 바로 깨닫고 전하는 말씀,
안개와도 같은 인생, 지뢰밭을 간다.
여기서 우린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제(時制)를 보게 됩니다. 안개는 분명 실존하는 현재의 시제를 갖습니다. 즉 지금은 분명 눈에 보이는 실체입니다. 그러나 곧 사라져 안 뵈는 과거며 기억 속에나 있는 허상이 됩니다. 마음에선 살아있으나 눈에는 허상인 과거, 그러면 미래는 뭔가? 미래도 눈에는 안 뵈는 허상인데 마음엔 분명 큰 영향을 끼치는 실제의 힘입니다. 이를 히브리서 기자가 한마디로 정리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다가올 현실)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곧 보일 현실)이니 선진들(앞서 간 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이렇게 많은 믿음의 선조가 이 보이지 않는 실체를 언약가운데 믿음으로 증거를 삼았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증거가 분명하면 비록 안개같은 우리가 지뢰밭을 가고 있지만 결코 안개가 아니고 지뢰밭도 아닌 곳에 우리가 가고 있는 겁니다. 15절.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고 말해야 할 것인데”
2. 주님 뜻 안에서 모든 일을 계획하라.
필요해서 꿈을 꾸고 또 계획합니다. 계획할 때 꼼꼼한 이는 ‘만일 계획대로 안되면’ 어찌할 건지 비상대책도 함께 세워둡니다. 본문은 계획하는 이들에게 먼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과 너희 생명이 잠시면 사라지는 안개라고 깨워줍니다. 이 말은 계획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계획하기 전에 먼저 인생이 뭔지를 깊이 생각했냐고 묻는 겁니다. 인생을 깊이 생각해 깨달은 이는 무리하지 않을뿐더러 그 계획 자체를 주님 뜻 안에서 시작하고 후에 이런저런 준비를 하라는 게 15~16절입니다.
15절입니다.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표준어 번역으로 정리합니다. [여러분은 잠깐 있다 없어지는 안개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라고 말하십시오.]
잠시면 사라질 존재, 즉 안개같은 존재가 안개같은 일을 생각할 때 먼저 영원하신 창조주를 모시고 그분의 뜻이면 살거나 죽거나 또 무슨 일을 하거나 주를 위해 계획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해” 바울사도의 고백이 연상되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세상 살 때 가장 큰 낭비는 하나님을 깜빡 잊고 사는 일입니다.
아무리 좋은 결과가 있어도 그 시작에서 하나님을 잊었다면 즉시 돌이켜 그런 어리석음이 재발되지 않게 야무진 마음을 다짐해야 합니다. 작은 구멍이 댐을 무너뜨리듯 하나님을 잊고 하는 일들이 모이면 어느새 하나님과는 무관한 일상이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됩니다. 하나님을 잊은 일상의 특징이 뭘까? 16절입니다.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15절과 연결하면 “무슨 일에나 주님 뜻으로 해야”하는데 너희들은 도리어 “허탄한 걸 자랑하니 그런 자랑은” 다 악한 거라고 지적합니다.
3. 자랑은 선하지 못하니 자랑하지 말라.
자랑은 항상 듣는 이를 힘들게 합니다. 동창회분위기 깨려면 에쿠스타고가서 자식자랑, 남편자랑, 돈자랑하면 끝이라고 합니다. 집에선 웬수지만 상대방 기죽이는데는 최고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으며 사랑은 자랑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으며”-고전13: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이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9:23.
괜찮은 건 다 주께 받은 선물이고 부끄러운 게 있습니까? 그게 인간의 작품입니다. 칭찬받을 일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다는 건데 자랑은 하고 싶어요. 그러면 그렇게 하신 하나님 만난 사실을 자랑하라는 겁니다.
새벽부터 잠들기까지 들어도 하나님 만난 사건을 들으면 기분이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나 되니까 만나주셨지” 하며 이야기의 꼭지가 돌아가면 듣는 모두의 꼭지도 돌아버립니다. 자랑은 악한 겁니다.
16~17절입니다.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런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아직도 하늘을 모르고 땅을 자랑하니 그건 다 악한 일이라는 걸 일러줍니다. 그리고 악한 짓을 해서 죄가 아니라 선을 행할 수 있는데 행하지 않으면 그게 죄라고 죄를 다른 측면에서 보게 합니다.
4. 선을 행할 수 있는데 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 일이다.
죄를 세상에선 양심과 도리에 어긋나거나 법을 어기는 행위로 규정하는데 성경에선 하나님을 떠난 모든 걸 말합니다. 성경은 근본 뿌리를 말하고 세상 학문은 결과를 정리합니다.
제가 하는 일상의 언어로 본문 내용을 정리해 봅니다.
“들어보세요. 지금 여러분은 여러분의 계획을 말하기 전에 먼저 ‘주님 뜻이라면 우리가 승리하고 또 이런저런 걸’ 할 수 있다고 말하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세상처럼 허탄한 인생을 자랑하는데 이건 교만이며 악입니다. 그러므로 인생과 땅을 자랑하는 악에 기울지 말고 선한 일, 곧 하나님과 영생을 자랑하세요. 그 선한 사명을 미루면 바로 그게 악입니다.”
요약합니다. 1. 계획 전에 하나님을 떠올리고 의뢰할 것.
2. 허탄한 세상 자랑은 다 악이니 하나님 외엔 자랑하지 말 것.
3. 예수그리스도와 복음을 전하는 일은 선한 일인데 이 일에 게으른 게 악이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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