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3. 주일예배<계22:7~13.) 내가 속히 오리라.>
계시록은 1:1절에서 밝히듯이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계시로 보여주심으로 환난 중에 있는 아시아의 일곱교회와 요한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3장까지는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사데,빌라델피아,라오디게아교회 등 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에게 각각 합당한 책망과 칭찬을 전합니다. 그리고 4장엔 24 보좌와 장로, 일곱 등불과 일곱 영, 24 장로의 경배와 네 생물의 찬송이 울려 퍼지며 하늘에서 드리는 예배의 현장이 보입니다. 5장에선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는데 봉인되어 볼 수 없자 요한이 크게 웁니다. 이때 봉인을 뗄 어린 양이 나타나서 일곱 인을 차례로 떼기 시작합니다. 일곱 인의 마지막 인은 일곱 나팔의 시작입니다. 일곱 나팔의 마지막에 여자와 붉은 용의 싸움이 시작되는데 이게 12장입니다. 이어서 두 짐승과 구원받은 자 14만 4천이 나타나고 16장에 가면 일곱 천사가 일곱 개 진노의 대접을 쏟는 두려운 장면이 소개됩니다. 17-18장은 큰 음녀, 바벨론의 멸망을 보여줍니다. 19장에서 어린 양 혼인잔치에 백마를 탄 이가 나타나면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이 유황불 못에 던져집니다. 그리고 20절에 천년왕국과 사단의 패망, 21절에 새하늘과 새땅이 나타납니다. 끝으로 새예루살렘과 함께 생명수 강가가 하나님 보좌로부터 흘러나와 온 땅과 주위에 생명나무를 번성하게 하는 게 22장의 서막입니다.
오늘 본문 22장은 계시록의 마지막 부분으로 주님이 보낸 천사가 요한에게 전하는 예수님의 음성입니다. 주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에게 전하는 메시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음성입니다. 본문 계22:7절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1. 지키라.
이 구절에서 강조하는 말씀은 “지키는 자”입니다. 1:3절에서도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합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도 지켜야 할 자가 지키지 않는다면 허망한 일이고 지켜지지 않는 법이라면 그 법은 이미 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을 창조하신 능력의 말씀입니다. 힘에 겨워도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왜?
말씀은 영혼을 살리기 때문입니다.
영혼을 살리는 이 말씀이 고난 중에 있는 이스라엘 교회들을 찾아와 피골이 상접한 요한에게 속히 반드시 될 일을 생생하게 보여줬습니다. 어린양 예수의 궁극적 승리를 노래하는 계시록 말씀을 잘 믿고 기억해 여러분의 영혼이 새롭게 살아나기 축복합니다.
-지키라. 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아멘. 복이 있으리라.
어떤 복인가?
1) 하나님 살아계신 게 믿어지는 복입니다.
2) 예수를 믿어 죄와 사망에서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하는 구체적인 믿음입니다.
3) 그 주님이 내가 죽어야 할 죄를 대신 맡아 죽어주심으로 나는 이제 죽을 죄인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영원히 기쁨으로 노래하며 천국 삶을 약속받았다는 사실이 믿어지는 믿음의 복입니다.
예수 안에서 구원받아 새 생명이 시작된 하나님의 권속들, 그들은 이제 예수 안에서 부족함이 없습니다. 성경에서 모든 답을 구해 가장 확실한 길을 가는 사람들이 성도인 줄 믿기 바랍니다. -지키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도다. 아멘. 다음은 무엇입니까? 12절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2. 주리라.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그리스도십니다. (12절)
남몰래 수고하고 봉사할 때 성숙한 사람은 누가 봐주지 않아도 섭섭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칭찬받는 걸 조심하세요. 여기서 까먹지 않아 하늘에 쌓인 게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행한 대로 갚아주리라.” 사역에 게으르다고 받은 구원이 취소되진 않습니다. 그러나 상급의 문제는 사역의 충성도와 연계돼 있음을 본문은 말합니다. 행한 대로 갚아주리라. 심은 대로 거두리라. 던진 자에게 던진 만큼 돌아오는 부메랑 보상입니다. 썩을 몸으로 영원한 상급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상업광고에도 있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결정한다.” 어찌 10년뿐이겠습니까?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 안 보이지만 영혼은 하나님 앞에 가서 그때까지 살아온 날들을 평가받습니다. 살아온 길을 묻는다는 건 “네가 여기까지 올 때 얼마나 사랑하며 왔냐고 묻는 걸 말합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했고 이웃을 얼마나 사랑으로 섬겼냐는 겁니다. 일을 맡은 자를 사역자라고 합니다. 예수를 믿는 게 하나님의 일입니다. 일은 삶이고 삶은 사랑입니다. 사역은 주님 사랑을 기쁨과 겸손으로 전하는 삶이라는 결론입니다. 저와 여러분. 상급이 기다리는 사역자들입니다.
17절입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목마른 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주시는 예수십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해 죄와 사망에서 영원한 음부에 갇힌 자들이 빛 가운데 인도받고 하나님의 생명에 연합되고 보니 놀랍게도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 영생은 우리가 값을 치르지도 않았고 치를 수도 없습니다. 다만 주께서 원하시는 건 이런 놀라운 은혜의 사건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구원의 은총을 베푸신 하나님과 성자 예수그리스도께서 살아 존재하는 것을 믿고 그를 신뢰하며 따르라는 것입니다. 믿기만 하면 거저 받는 영원한 천국의 생명과 능력의 복된 길을 예수그리스도께서 완성하셨습니다. 골고다의 십자가 피는 그러므로 온갖 저주를 끊어내는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입니다. 이게 복음입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사람은 누굽니까? 복음이 복음으로 들리는 사람입니다. 복된 소식이 기쁘고 반갑고 놀랍고 전하고 싶은 그렇게 복된 소식으로 들려 믿는 사람입니다. 우린 복음의 세계로 초청받았습니다. 어떤 이는 친근하고 어떤 이는 낯선 복음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복음을 듣고 받아들이며 믿고 따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가 그 자격을 말합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죄인이라고 생각하면 복음은 열립니다. 죄인을 위한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우리들의 신분 인정이 복음을 반갑게 맞을 자격입니다.
TV에서 질병과 치료과정을 보여줄 때 누가 열심히 봅니까? 자신 또는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한 마디도 빼지 않고 경청해 우등생이 됩니다. 영적인 감각이 살아 있어 죄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 겸손하면 말씀에 집중하게 된다는 겁니다.
딤전 1:15절입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바울 사도는 살아계신 예수님의 영을 직접 만나 뵌 후로 자신이 죄인 중에 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유대교를 성실히 믿고 최고학문을 마친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 장래가 촉망되는 훌륭한 청년이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도 큰 죄였다는 걸까? 그래요.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를 방해했습니다. 믿는 자와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자신은 나름대로 정직하고 충성된 유대교 청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멀리하며 등졌던 모든 게 죄와 불행의 씨앗이 되는 걸 이제 우린 압니다. 인생은 그 인생을 지으시고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님을 떠나는 순간 어김없이 죄와 사망의 길로 들어선 겁니다. 주의 영이 오늘 이 말씀가운데 찾아주셔서 여러분 안에서 그 놀라운 감각이 살아나고 있습니다.
다시 일러드리지만 특별한 노력 없이 들리는 말씀마다 아멘으로 화답하며 믿어지는 사람, 큰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복중 복은 무슨 복입니까? 그렇지요. 깨닫는 복입니다. 내가 하나님과 멀리 있던 죄인임을 깨닫는 순간 복음은 복음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안에서 복음이 복음 되면 즉시 복음인 척하던 것들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등불을 켜면 어둠이 사라지듯 귀한 진리가 세워지면 속되고 가치 없는 것들이 실체를 드러내고 달아납니다. 그런 것들이 떠나면 우린 그간 영적인 무지로 인해 자신과 주변을 얼마나 학대했는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내가 죄인 중에 괴수였다. 아직도 두 법이 내 안에서 싸우는데 주여 나를 도우소서. 내가 무능 가운데 있습니다.” 바울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 고백인 겁니다.
본문 7, 12, 20절은 같은 내용입니다. “내가 속히 오리니(7절), 내가 속히 오리니(12절).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20절)” 끝으로 전할 주님의 말씀은 “속히” 오신다는 겁니다.
3. 속히 오리라.
진실로-반드시-속히 오실, 예수그리스도십니다. 오신다는 본문 앞에 나타나는 세 개의 수식어 “진실로, 반드시, 속히”는 오신다는 사실을 그 이상 확정할 수 없는 데까지 거듭 확인했다는 걸 말합니다.
잠시 세 가지 수식어를 봅니다.
1) “진실로”라 함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2) “반드시”는 결코 일어나고야 말 확정된 사실을 말합니다.
3) “속히”라는 건 결코 머잖은 우주의 종말이 주의 손에 있어 우리의 옛 자아가 무너지고 내면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도성, 에덴의 회복이 속히 일어날 걸 말합니다. 세상에도 “제대로 하는 게 가장 빨리하는” 것이란 말이 있습니다. 내가 변하면 가정이 변하고 직장이 변합니다. 그리고 나라와 민족이 변합니다. 어떻게 변합니까? 하나님의 지배 아래 운행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겁니다.
벧후 3:8절을 기억합니까?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하루에서 천년이 주님 앞에서 자유롭게 재단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겁니다. 즉 세월의 길고 짧음과 느리고 빠른 모든 게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 속에 있으니 세월을 헤아리지 말고 오직 생명과 세월의 주재, 하나님을 의뢰하고 따르는 복이 넘치길 바랍니다.
요한에게 장차 속히 반드시 일어날 일을 말씀하시며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하시자 요한이 뭐라고 합니까? 본문 20절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초대교회시절 교인들의 인사말은 아람어로 ‘예수, 우리 주께서 오십니다’라는 “마라나타(Maran atha)였고 로마시절 승전문을 들어오는 장군 뒤에서 외치는 하인의 고함소리는 ”메멘토 모리“였습니다.
예배하는 여러분. 내일이라도 주님이 재림하신다면 누가 가장 기뻐할까 생각해 봅니다. 중국으로 도망친 부도난 사람일까? 하는 일마다 실패하여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사람일까? 전신마비로 음식을 씹어 호스에 씹어 넘기고 대소변은 평생 남이 받아줘야 하는 환자일까? 아닙니다. 충직하게 예수만 믿으며 그날을 소망하고 힘차게 전도하며 살아가는 모든 신실한 성도입니다.
외로워도 끝내 외로울 수 없는 나그네.
서러워도 끝내 서러울 수 없는 나그네.
억울해도 끝내 억울하지 않은 나그네.
지쳐도 천국의 소망으로 기쁨이 넘치는 나그네,
천국을 예비하는 거룩한 길을 가는 우리 앞에 죽음을 이긴 주님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완전한 희생입니다. 완전한 섬김입니다. 완전한 사랑입니다. 완전한 승리입니다. 영원한 생명입니다.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여러분의 모든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흐르기 축복합니다. 아멘.
기도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시19: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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