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25. 주일예배<히13:20-21. 평강의 하나님>
히브리서의 마지막은 평강의 하나님을 주제로 피차 문안하며 서신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모든 것을 창조하신 목적은 사랑이었고 그것은 서로 왕래를 조건으로 하고 있으며 그 왕래는 평강 중에 이뤄져야 합니다. 사랑이 오고 갈 대상을 찾지 못하면 그것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랑을 위하여 한 아들을 땅에 보내시고 그 예수님의 생명인 피를 담보로 약속하셨습니다. 무슨 약속입니까? 전 구약시대에 거쳐서 지속적으로 하신 언약입니다. 내 말을 잘 듣고 지키면 너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네 하나님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최고최대의 사건은 누가 뭐라고 말해도 자신의 정체를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으며 왜 태어났으며 또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자력으로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자기가 누군지를 모르고 그냥 숨을 쉬니까 살다가 숨이 떠나면 그만인 사람이 거의 다입니다.
과거 불행했던 시대 어른들은 왜 사냐고 물어보면 죽지 못해 산다고 말했습니다. 정직한 대답입니다. 죽으려니 걸리는 사람이 많아 죽지도 못하고 살자니 너무 힘들고 의미도 없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인생을 대부분 끌려가듯 하루하루 지납니다. 밥때가 되면 “또 한끼” 우겨넣자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죽지 못해 산다.” 너무 힘들면 그런 소리 많이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신을 잘 모르겠으면 더는 자신을 알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자기의 정체가 확실히 드러납니다. 모든 존재의 근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찾지 않으면 모두 안개 속을 헤매 도는 것과 같습니다. 안개 속에서 아무리 열심히 찾아보았자 거기가 거기 뱅뱅 돌며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여러분, 왜 사냐고 누가 묻거든 사랑하기 위해서 산다고 말하세요. 그런데 그 사랑이 부족해서 늘 이렇게 헤매고 있다고 말하면 정확한 답변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 사랑을 공급받아야 비로소 인간은 사람답게 바뀌기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바울사도의 고백을 들어보기 바랍니다. 우리의 진정한 평강이 어디서부터 오기를 바울사도는 기대합니까?
1. 언약의 피로 세운 평강입니다.
평화와는 조금 다른 평강(平康)이란 말은 골고루 편안한 것 즉 모두가 편한 것을 말합니다.
평강, 즉 샬롬인데 무엇으로 세웠다고 했나요? 예, 언약의 피로 세운 평화입니다. 보통 약속을 할 때 무엇을 가운데 두고 하게 됩니다. 약속의 보증이 되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약속의 격이 달라집니다. 자신의 명예나 아버지의 이름을 걸기도 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걸기도 합니다. 국가 간에 국가의 이름을 걸고 약속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장 힘 있고 무거운 것은 생명을 걸고 하는 약속입니다. 만약 약속이 잘못되면 피차 생명을 내놓자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걸고 하신 약속이 바로 성도의 길입니다. 성도의 길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그리스도곧 복음의 생명 즉 복음은 피를 걸고 하신 약속입니다. 복음 안에 천국이 보장되어 있고 복음 안에 부활과 영생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복음 안에 약속된 것은 모두 창조의 하나님, 평강의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을 걸고 하신 약속이라 모두 눈에 보이게 드러나게 됩니다.
2. 모든 선한 일에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억울하지 않고 손해 보지 않고 유익하며 보람되고 기쁘려면 자기의 뜻에 맞춰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뜻에 따라 사는 것이 가장 확실한 길이요, 행복한 길인 것 이제 많이 들었습니다. 왜냐? 지각과 분별력과 판단과 시각에 있어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그것을 우리 인생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모든 선한 일에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이유가 하나님이 땅에서 행하실 일들을 우리가 이루어야기에 그렇다는 겁니다. 그 하나님이 우릴 통해 이 땅에서 행하실 일들이란 뭡니까? 예, 하나님 나라의 확장입니다. 그것은 교회운동을 통해 나타납니다. 교회운동은 예배라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이뤄지고 따라서 모든 선한 일에 온전해진다는 건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 우릴 앞에 세운다는 것이며 이는 예배를 기초로 시작된다는 것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모든 선한 일은 예배를 떠나서 일어나지 않는 줄 믿고 아멘입니다. 하나님 앞에 드려지고 고백한 것은 하나님의 선으로 다스림을 받고 결국 하나님을 증명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영광을 노래하는 일에 사용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이 기름지고 정직한 가운데 복된 것은 예배라는 하나님과의 교제로부터 확증되고 그 확증이 다시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하는 선한 순환 곧, 예배로 이어지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예수를 믿음으로 이루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본문 하단에는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 앞에 즐거운 것이란 예배를 통해 얻는 영적 육신적 유익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런 영적인 각성으로 얻은 특별한 기쁨과 즐거움의 결국은 천국의 증거로 마무리됩니다.
우리 믿는 자들에게 천국은 마지막 기쁨입니다. 사탄이 우리에게 죽음이란 마지막 카드를 보이며 위협할 때 우리가 사탄에게 대응할 수 있는 하나님의 생명 카드는 천국의 영원한 삶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을 이긴 증표가 되었고 그것은 영원한 나라에 죽지 않는 몸과 영으로 부름받은 백성들의 유일한 즐거움이니 천국영생이란 말은 마귀가 매우 싫어하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의 소원과 교회를 향한 축도처럼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 안에 이루실 하나님의 나라는 핍절하고 곤고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안과 힘이 되는지요.
육신을 벗은 후 임할 주의 나라는 물론이요, 예수를 믿음으로 이미 이 땅, 육신의 인생이 계속되는 날 동안 저와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풍요와 감동이 오직 예수로 언제나 넘치시기 축복합니다.
작년 10월에 여기 이사오고 예배당 자리는 평지가 되었습니다. 이젠 사진과 추억의 잔상에서만 기억되는 예배당입니다. 우리 몸이 여기 잠시 힘겹게 살아도 누구나 빠짐없이 이사를 갑니다. 이사짐 대신 어떤 믿음으로 어찌 살았는가에 대한 성적표가 새겨진 영혼, 입고 있던 육신의 옷,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던 육신의 옷을 훌훌 벗고 시원하게 날아가듯 옮겨 갈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운 이들을 뒤로하고 가는 게 힘들어도 우린 가야 합니다. 눈물도 아픔도 억울함도 수치도 없는 거기 하나님의 나라로 우리 모두 이사하는 날이 멈춤 없이 다가옵니다. 한주가 너무 빠르게 다가옵니다. 이사가는 날, 영화제목도 있고 책제목도 있습니다. 이사가는 날, 듣기만 해도 가슴이 뜁니다. 이사가는 날, 여러분 힘들 때마다 외우세요. 이사가는 날, 평화로운 나라 아름다운 나라로 이사가는 날이 다가온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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