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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22.10.30. 주일예배<행16:22-32. 한밤중에 올리는 찬미>

by 설렘심목 2025. 8. 1.

2022.10.30. 주일예배<16:22-32. 한밤중에 올리는 찬미>

그물에 잡힌 고기의 수를 헤아려 157마리를 확인한 게 누굽니까? 의사 출신 루카오(누가)는 누가복음에 이어 사도행전을 기록했는데 의학도답게 뛰어난 관찰력으로 예수님의 행적을 살폈습니다. 본문은 점쟁이를 고용해 잘 살던 부자들이 생업이 흔들리자 바울과 실라를 고발해 옥에 갇히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밤중에 지진이 나 옥터와 문이 흔들려 매인 사슬이 풀어져 밖에 나옵니다. 자결하려던 놀란 간수가 뺐던 칼을 내려놓고 바울과 실라 앞에 무릎 꿇습니다.

지금도 보면 삶에 실패하고 좌절해서 칼을 빼는 허다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본문의 간수처럼 실수를 못 이겨 죽어가는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칼이 아니라 복음입니다.

 

바울과 실라로 하여금 밤중에 찬미하게 한 평강의 능력, 지진으로 옥터를 흔들고 매였던 결박을 푼 권능의 근원은 무엇인가?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11:37~38a)

 

1. 세상이 받지도 못하고 이기지도 못하는 복음입니다.

 

점쟁이집 주인들이 고발한 바울과 실라, 그리고 그들이 전한 복음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20~21,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로마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전한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죄악된 세상을 깨우는 능력이고 흔들되 심하게 흔들어 깨우는 빛입니다. 잠을 깨우는 자는 환영받지 못합니다.

반면, 죄에 물들어 죄가 죄인 줄 모르며 죄 가운데 죄를 토하며 토한 죄를 다시 먹으며 살아가는 세상은 그 죄를 죄라고 밝히는 등불을 싫어해 피하고 공격합니다. 1:9-11,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으나죄는 자신의 더러운 정체를 감춰주는 어둠을 좋아하고 자신의 수치를 드러내는 빛을 미워합니다. 복음은 세상을 비추는 예수그리스도의 소식이며 예수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어느 동네든 교회가 건축을 하려면 먼저 민원을 넣고 반대할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냥 교회는 싫다는 겁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절이 들어오면 조용합니다. 왜 그런지도 모른 채 어두움은 어두움에 저항하지 않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전하는 복음을 로마인인 점쟁이 주인들이 알 리가 없을뿐더러 주변의 모든 무리와 함께 일어나 고소하고 매를 쳐서 옥에 가두게 되는 이유입니다.

 

22~23절입니다.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자신들을 깨워 죄를 알게 하고 빛으로 돌아오게 할 복음을 어찌하든지 가로막아서 죄의 상태를 유지하려 합니다. 죄의 활동, 악한 영의 활동, 복음을 훼방하는 사단의 역사입니다. 본문 증거처럼 악한 영들의 활동은 매우 적극적입니다. 빛을 피해 숨는 것을 넘어서 빛의 소식을 전하는 자들을 가두고 복음을 방해합니다. 예수를 모르고 예수께 저항하는 영적인 무지는 그게 얼마나 무서운 범죄인지도 모르면서 많은 영혼을 병들어 아프게 하며 질식하게 합니다.

 

2. 매였던 종들을 자유하게 하는 복음입니다.

 

24절에 바울과 실라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着錮)로 든든히채웠습니다. 25절입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하나님의 신이 함께하는 사람들, 예수의 영이 충만한 자들은 고통의 깊은 가운데서도 여전히 그리스도를 찬송함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고백해 그 이름을 높여드리는 일에 주저함이 없습니다. 현재의 고난이 결코 그들의 믿음을 누를 수가 없습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바울과 실라는 착고(着錮)에 묶여 밤중에 주님을 찬미합니다. 시편 119:62에 다윗은 내가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밤중에 일어나주께 감사하리라고 노래합니다. 바울과 실라의 찬미는 환경을 이기는 신앙고백입니다. 발은 결박돼 있고 내일을 보장할 수 없는 풍전등화의 생명이지만 그들은 주님을 노래했습니다.

 

1985년 미국 테네스 주의 메이슨이란 마을에 탈옥수가 새벽 2시가 넘어 실탄이 장전된 총을 들고 한 가정에 침입했습니다. 움직이면 쏜다.” 남편은 떨고 있는데 아내 루이즈는 탈옥수를 친정 식구 만난 듯 상냥하게 웃으며 말을 합니다. “무거운 총은 내려놓으시고 거기 좀 앉으시죠. 시장하실 텐데 아침을 차릴 테니 식사부터 합시다. 조금만 기다려요. 내가 맛진 요리를 준비할 테니” “내가 무섭지 않아? 이 총은 장난감이 아니다.” 버럭 소리를 지르자 루이즈 부인은 다시 태연하게 말을 받았습니다. “난 예수를 믿어요. 언제 죽어도 천국에 갑니다. 그래서 죽으면 영원히 살기 때문에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탈옥수는 부인이 들려주는 예수 소식을 7시간이나 들은 뒤 아침 10시에 그는 제 발로 걸어 다시 교도소로 돌아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과 실라가 밤중에 노래할 수 있었던 건 살아계신 예수의 영, 성령이 한 일입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해가 저물고 밤이 찾아오지요.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인생의 밤, 역경과 고난과 슬픔이 찾아옵니다. 25~26,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본문에서 우리는 바울과 실라의 자유를 통해 스스로 드러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위로부터 주시는 평강의 마음이 바울과 실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미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실라를 위로하시며 거기 함께 계시는 하나님의 영이 영광중에 옥터를 흔들고 문을 열어 모든 사람의 묶인 걸 풀어주셨습니다.

58:6절입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롭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알량한 자존심의 결박, 체면의 멍에, 열등감과 명예심의 결박, 시기심과 분노와 상실감과 무서운 욕구의 멍에, 비교되는 행복지수의 압제, 뜻대로 되지 않는 경제의 압박, 생업현장에서 피할 수 없는 눌림, 계속 떠오르는 기억의 눌림,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의 통증, 생노병사와 오욕칠정으로부터의 결박, 끝없는 육신의 멍에와 결박들,

우리의 몸을 이런저런 사슬로 묶어 꼼짝달싹 못 하게 묶는 세상으로부터 예수의 이름으로 먼저 영혼의 자유자가 되시기 축복합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실존을 믿는 믿음은 그 모든 압제와 결박과 멍에로부터 온전한 자유자가 되는 줄 믿으시면 아멘입니다.

 

3.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복음입니다.

 

죄수를 지키던 간수가 자다 깨어 옥문이 열리고 죄수들이 풀려있자 그만 놀라서 자결하려 했습니다. 눈앞에서 벌어진 하나님의 사건입니다. 뭔가 알 수 없는 큰 힘에 눌린 간수는 바울과 실라에게 선생들,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겠소?” 겸손하게 묻습니다.

이르되 주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바울과 실라에게 임한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시공을 뛰어넘어 언제나 스스로를 충분히 증명하기에 우리가 전하는 복음으로 많은 이들이 복을 받고 생명을 구할 겁니다. 우리를 만나 죽어 나가는 건 악한 옛 자아요, 사단의 꾀요, 마귀의 도구들입니다.

 

복음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며 복음은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도의 실존입니다. 역사 가운데 많은 민족이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많은 이념과 사상과 종교가 일어났다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굶주린 사자 앞에 던져졌어도, 예배당에 가두고 불태워도 하나님의 거룩한 집회와 백성들은 영원합니다. 주께서 약속하신 재림의 그날까지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각각 맡겨진 대로 구원과 전도와 선교의 사명을 잘 감당할 겁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가정은 또 하나의 영원한 작은 교회입니다. 거기 찬송이 그치지 않고 말씀이 생명이며 감사와 기쁨과 간절한 기도가 늘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명할 겁니다.

예수로 인해 살아났고. 예수로 인해 살고 있으며 예수가 삶의 목적인 성도는 예수께 돌아갑니다.

 

주께서 생명을 던져 사랑하신 저와 여러분.

세상은 알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는 복음, 각종 죄악의 흉악한 결박과 압제와 멍에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복음,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구원의 복음이 이제는 우리 앞에 평생의 소망과 사명입니다.

이 기쁜 소식 복음을 붙잡고 예수그리스도의 소식을 감동으로 전하는 모두가 되시기 축복합니다.

기도합니다.

(1) 예수는 창조주의 나타나심이었습니다.

(2) 예수는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3)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인류에게 유일한 구세주입니다.

(4) 예수는 우리의 모든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우리가 고난 속에서도 주를 향한 노래가 그침이 없도록 깊은 믿음을 더하여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