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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22.10.16.주일예배<창17:1~15. 할례>

by 설렘심목 2025. 8. 1.

2022.10.16.주일예배<17:1~15. 할례>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고향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 당신이 가라는 데로 가라고 명령하실 때 아브람을 통해 이루실 큰 민족을 약속하셨고 어딘가 지목하지도 않아 목적지 없이 떠납니다. 이때 아브람은 부부는 늙었고 자녀가 없었습니다. 두 번째 나타납니다. “나는 네 방패요, 지극히 큰상급이라고 하시며 복을 주는데 주께서 내게 씨를 주시지 않았으니 내 상속자는 내 집에서 기른 종, 엘리에셀뿐이라고 말하는 아브람에게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된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시며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하십니다. 이때 15:6절에선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이 땅을 네게주시겠다고 약속합니다.

여기까지 하나님의 2번째 약속확인이고 오늘은 3번째 약속을 확인하는 현장으로 갑니다. 첫 번째 약속은 가난하고 자녀가 없는 상태에서 이뤄졌고 두 번째는 종을 둘 정도로 형편이 좋아진 때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이스마엘을 낳아 키울 때인데 오늘 우리가 듣는 세 번째 언약에 할례의 명령이 나옵니다.

 

3번의 언약 공통점은 모두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주신 겁니다. 그리고 일방적 복을 약속하신 뒤 복에 합당한 몇 가지를 요구하시는데 택한 자에게 당연한 순종과 성결의 삶입니다. 오늘 세 번째에 특별히 할례를 요구하신 말씀과 뜻을 살피며 우리 믿음의 백성이 하나님 앞에 마땅히 알고 갖춰야 할 게 뭔가 살피기로 합니다. 우선, 우릴 먼저 찾아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말씀을 듣습니다.

 

1. 이름을 주시고 이름에 합당한 길을 열어주십니다.

 

본문 1절 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누구 앞? 전능하신 여호와 앞입니다. 그 앞에서 행하되 완전하라? 창조주께만 해당된 완전이란 단어, 인간에게 완전은 없습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을 명령하지 않는 하나님, 여기서 잠시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은혜 사이에 십자가를 봅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그러나 에덴에서 범죄한 후 인간은 죄로 인해 율법 앞에 절대무능의 상태에 놓였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힘으로는 율법을 지킬 수 없기에 죄에 관한 한 속수무책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킬 수 없는 율법과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명령 사이에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고민, 그 갈등은 이미 태초에 하나님의 결론과 함께 있었습니다. 결론이신 예수그리스도, 1:2절엔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함께 계셨습니다.

율법의 구약시대에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수없이 메시아의 등장을 예언하며 위로하십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7:14 하나만 더 봅니다.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족속 중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주전 약 7백 수십 년 전입니다. 이 외 많은 예언이 있습니다. 그리고 멜기세덱을 비롯한 모세, 지금 듣는 아브라함, 사무엘, 다윗 등 수많은 이스라엘의 제사장과 지도자를 통해 예수그리스도의 모형을 보여주시고 그때마다 이스라엘을 환난에서 구해 주셨습니다.

 

반드시 들어야 할 명령, 끝내 지키지 못할 명령, 무엇으로 이 모순이 사라지고 여호와의 만족을 이룰까? 십자가입니다. 지켜내지 못할 걸 명령하고 지키도록 해서 사랑하는 자녀가 순종하고 믿기만 하면 내치지 않고 품는 아버지의 만족, 십자가에 친히 오르셔서 당신은 스스로 인간 창조의 만족을 이루셨습니다.

 

2~5절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람과 맺은 언약은 열국의 아비가 되는 것이며 그에 대한 증거로 이름을 바꿔주신 겁니다. 아브람은 크신 아버지, 위대한 아버지라는 말이고 아브라함은 본문에서 밝히듯 열국의 아비, 곧 펼쳐놓으신 많은 나라의 조상, 아비라는 겁니다. 이 열국 중엔 장자서열을 따라 택한 민족을 이어가는 나라도 있고 불순종으로 선민의 가시가 되는 나라도 태어납니다.

 

중요한 건 이름을 바꾸신 하나님의 언약과 그 뜻입니다. 한 가문의 크고 존경받는 아비가 되는 것도 영광인데 하물며 열국의 아비가 된다는 건 더 바랄 수 없는 영광이며 기쁨입니다.

12절입니다. “너희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구원의 보편과 평등함은 세상 만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결정입니다. 본문은 바울사도가 오기 전 이미 하나님께선 선민 이스라엘뿐 아니라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부르시는 모든 민족과 열방과 만인에게 그 택하심이 유효함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자신의 피로 산 예수의 노예들입니다. 그런데 노예가 자녀가 됐습니다.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여러분. 그런데 문제는 여전히 사람에게 있습니다. 이름은 멋진데 이름처럼 살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이름을 정할 때 그렇게 살라는 축복이 담깁니다. 이름은 축복의 호칭인데 악당들 이름을 보세요. 대한민국 위대한 이름은 거기 다 있습니다. 사람이 만든 이름을 누가 보장합니까? 하나님이 부르는 이름이어야 합니다. 집사, 장로, 권사, 하나님이 불러주시면 불러주신 이름 그대로 권세와 능력과 복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8절입니다.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여기서 가장 핵심이 되는 말씀은 가나안 땅이 아니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우리 다음 세대의 하나님이 되신다면 사실 더 이상의 소원이 없어야 하는 게 맞습니다.

더 이상의 소원과 기도는 우리가 부족해서 지키지 못하는 언약에서 시작되는 안타까움, 곧 거룩한 몸부림입니다. 본문의 어순을 잘 살펴보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심과 동시 거기서 아브람 후손들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겁니다. 영육 간 돕는 주님이십니다. 지금 아브람의 형편은 셋방살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이 집과 집터와 전답 토지를 모두 주신다고 합니다. 그뿐 아니라 이 집에서 네 후손이 예배하며 찬송하며 하나님 앞에서 살게 된다는 겁니다. 뭘 더 원합니까? 이 놀라운 비전은 첫째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것이요, 다음은 이를 믿어드린 아브람의 의를 기뻐하신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신실하심에 근거한 겁니다.

 

3. 할례를 받아 영원한 언약을 증거로 삼아야 합니다.

 

할례는 난지 8일 만에 해야 합니다. 13,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할례를 받지 않으면 어찌 된다고 합니까?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고 돼 있습니다.

 

1) 할례는 모든 아브람 가문에 내린 명령입니다. 복음의 대상은 온 유대와 예루살렘과 사마리아뿐 아니라 땅끝까지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입니다.

 

2) 교회와 성도의 살()에 있는 영원한 언약입니다. 입술의 고백, 믿음으로 받은 구원과 언약의 놀라운 영광은 입술에서 온몸으로 그 실천과 열매의 증거로 번져가게 됩니다.

 

아직 천지를 분간 못하는 난 지 8일 만에 사내아이 고추 꺼풀을 잘라내 하나님과의 언약을 몸에 평생 지니게 하신 주님을 찬송합니다. 우리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영적 유아 때 그리스도로 찾아주신 복음입니다. 그래서 할례와 세례는 같은 의미입니다. 이른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인증예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엔 교회의 3대표지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교회가 교회임을 만방에 드러내는 세가지 표시가 있는데 첫째 하나님의 말씀선포요, 둘째 성례, 곧 세례와 성찬이요, 셋째 권징실행, 좋은 일에 칭찬하고 죄지으면 징계로 다스리는 일입니다. 할례의 의미를 조금만 더 살피기로 합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언약을 유한한 우리 인간의 몸에 새기기엔 무리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영원한 하나님의 조인문서를 유한한 인간육체에 새기는 방법으로 하나님은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방법을 택하셨습니다. 그건 바로 씨에 새겨 넣는 것입니다. 씨에 새겨 넣으면 그것은 씨가 번식하는 한 계속될 것입니다. 그래서 씨를 뿌리는 생식기 앞에 서명을 했습니다. 이 표시는 가장 소중한 생명의 번성이 말씀과 계약을 앞세운 일이라는 거룩한 의미를 담았습니다. 다음 그걸 매일 여러 번 확인해야 합니다. 그런데 할례는 잘라냄으로 언약의 하나님 앞에 예를 갖추는 의식입니다. 왜 서명만 하시지 잘라 내버리고 피를 흘려 예를 갖추라고 하셨는가? 죄중에 태어난 인생은 사실 끊어내야 할 악하고 더러운 것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할례라는 예식은 많은 걸 자신 안에서 끊어내야 할 때 거룩하신 하나님을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여기 피 흘리는 희생과 포기가 있습니다. 오직 주의 영광을 위해 냉정하게 끊어내야 합니다. 난지 8일 만에 갓난 아기의 고통을 보는 부모의 심경으로 끊어내는 겁니다. 아이가 가여워서 끊어내지 못하면 아이가 백성 중에 끊어져 평생 불행합니다. 진정 자신의 영혼과 삶을 사랑하는 자라면 매섭게 옛 근성들을 끊어내는 결단을 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내용을 정리합니다. 12장에선 아비집을 떠나라고 하시며 큰 민족을 약속하십니다.

15장에선 하나님이 친히 아브람의 상급이 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의 몸에서 자녀가 나와 후사를 잇는다고 하십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이를 아브람의 의로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17장에선 드디어 이름을 바꿔주십니다. 이는 이름에 합당한 길을 보장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린 그 확연한 역사의 증거 앞에 말씀을 따라 우리의 믿음을 다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처음과 끝이 동일해 변질되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주실 복을 더욱 자세히 언급하시고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진리는 언제나 그 위치에서 흔들리지 않고 그 자체로 늘 진리인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불러주시는 여러분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 이름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집사, 권사, 장로, 부장, 전도사, 간사, 남전도회장, 목사, 이름에 합당한 열매 맺는 삶이 될 줄 믿습니다. 꼭 기억할 건 이름대로 노력하면 땅을 기업으로 주십니다.

끝으로 이 언약의 실현을 위해서 언약을 훼방하는 것들 곧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나의 탐욕을 가차없이 끊어내시기 축복합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기도합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