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강단

2022.10.02. 주일예배 (엡 2:13-14. 화평의 십자가)

by 설렘심목 2025. 8. 1.

2022.10.02. 주일예배 (2:13-14. 화평의 십자가) 십자가의 선포 : 사망을 이겼다. 죽기까지 사랑한다.

인간의 행불행은 결코 환경이나 외적 조건이 아닌 걸 알고 인간 내면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지각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인간의 원초적 출발과 종착에 대하여 고뇌하는 이는 깊은 지각이 열린 사람입니다. 우린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존재와 우리의 근본에 대한 통찰력과 확실한 근거 그리고 그에 대한 믿음을 주셔서 이젠 선명하게 인생을 관찰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나님이 알게 하셔서 깨닫게 된 성경은 오늘날 우리가 허물과 죄로 인해 죽었던 사망에서 그리스도의 대속십자가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5-6) 선언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대속보혈, 그리스도의 피는 귀신이 가장 두려워해 도망가는 말입니다. 이 부분은 극히 기초적이나 잘 정리하면 십자가에 더 가까이 가는 은혜가 있습니다.

예수보혈은 먼저 죽었다는 증거요, 죽음조차 마다치 않고 영혼을 사랑한 사랑의 증거요, 다시 살아난 분명한 부활의 출발이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공격 마지막 협박카드는 죽음입니다. 그 죽음을 묵묵히 받은 그리스도의 영혼사랑과 충성에 부활로 이어지는 증거니 마귀에게 더 없는 강력한 무기며 증거가 되는 겁니다.

이걸 들이대면 어떤 악귀도 인생을 유혹하거나 공격하거나 협박할 이유를 찾지 못해 물러서게 됩니다.

죄인은 그 값으로 반드시 죽게 돼 있는데 그 죽음을 예수께서 대신 죽어주시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의 보혈이 우리 죄인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근거가 됐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인해 값없이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어찌 새겨져야 합니까? 그리고 어떻게 전파돼야 합니까? 14절입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신의 육체로 허시고

 

1. 중간에 막힌 담을 헐어버린 십자가.

 

할례당과 무할례당의 담(11), 이스라엘 안과 밖이라는 담(12), 율법의 담(15), 이방인에 대한 구원의 담(12), 성전 안에 있는 이방인의 뜰과 이스라엘인의 뜰 사이의 담, 외인에 대한 언약의 담(12)은 예수께서 오시기 전까지 얼마나 높았는지 모릅니다. 율법에 묶여 종노릇하던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으로 인한 참자유와 구원을 선포하셨고 율법과 복음은 십자가에서 완성됐습니다. 십자가는 주님의 사랑으로 모든 담을 헐었습니다(14). 선민사상에 젖어 영적우월감으로 이방인과 여인과 나그네와 종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던 율법의 담을 허물었습니다. “할례냐 무할례냐를 헤아리던 헛된 논쟁이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무너졌습니다. 특별히 중요한 건 행위에서 난 구원이 아니라, 은혜를 따라 난 믿음으로 받은 구원(8)의 역사가 십자가의 계시로 시작된 겁니다.

모든 막힌 담을 무너뜨린 십자가의 계시는 궁극적으로 가장 큰 담인 하나님과의 막힌 담을 헐어버렸습니다. 5:8-10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어주심으로 우리에게 대한 당신의 사랑을확증하셨으며 이제 우리가 그 피로 말미암아의로워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 그 아들의 죽음으로 죄에 갇힌 우리와 당신이 화목하게됐으니 이젠 그의 부활로 인해 더욱 구원이 견고해진 거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다음, 십자가는 사망 가운데 있던 죄인과 하나님을 화목하게 했습니다.

 

2.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십자가.

 

아담의 범죄로 하나님과 깨어진 관계는 인간을 죽은 영(4:12)으로 살게 했습니다. 죽은 영은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고 제 소견, 곧 죄의 노예가 되어 살아갑니다. 우리가 알듯이 죄를 품은 채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합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죄문제의 해결없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용서함이없다고 히9:22절에서 밝힙니다. 대제사장이 백성과 자신의 죄 때문에 1년에 1번 들어가는 지성소에도 반드시 피를 갖고 들어갔습니다. 피흘림 없이는 하나님은 죄인을 만나주지 않는데 그건 죄를 죽이기까지 미워하시는하나님의 거룩하심의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당신 사이의 화목을 이 피를 통해 죄 용서를 십자가로 완성하셨습니다.

 

본문 2:16절에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십자가로 소멸했고 이방인과 이스라엘을 한 몸으로 만드신 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십자가는 하나가 되게 하는 능력입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보혈이 막힌 담을 허물어 하나되게 하고 모든 깨어지고 부서진 것을 회복하며 무너진 것을 다시 일으켜 온전케 합니다. 십자가에서 어떻게 그런 능력이 나옵니까? 십자가는 지고지순의 사랑이며 최고의 희생과 섬김이고 십자가는 하나님의 끝없는 일방적 사랑을 가장 분명하게 계시,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골1:20절에서는 이렇게 증거합니다. “그의 십자가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3. 지체들이 연결되어 성전을 세울 때 함께 바라보는 십자가.

 

본문 219-22절은 성도가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모퉁이 돌로 하여 서로 성전이 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성도란 불러서 모인 자들의 모임입니다. 십자가의 대속으로 감사하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십자가를 함께 바라보고 함께 주의 이름을 찬송하는 자들, 지체들이 서로 연결되어 건축되는 성전은,

 

1)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신 성전입니다(20).

주님이 모퉁이 돌이 되신 성전은 어떠한 성전보다 탁월하고 우수합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16:16)”라는 고백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먼저 신앙고백하는 개인의 심령가운데 주님의 성전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작은 교회들이 모여 거룩한 무리를 이루면 그 무리 여호와의 총회가 되어 땅끝까지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게 됩니다.

 

2) 성령 안에서 지어져 가는 성전입니다(21~22becoming a holy temple for the lord).

교회의 건축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건축자료는 믿음의 백성과 그 고백입니다. 그러나 아직 다 청산되지 않은 우리들의 죄성이 건축자이신 주님을 얼마나 곤혹스럽게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교회의 완성은 성령의 주장아래 놓여야 하는데 지상의 교회들은 늘 부족해 잡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고전12:27-30절을 봅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다 사도겠냐, 다 선지자겠냐, 다 교사겠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냐, 다 통역하는 자겠냐.” 나름대로 다른 모습으로 모여서 성전이 돼갑니다. 지체는 비교하는 게 아니라 서로 보완하는 관계입니다. 밥을 먹다가 혀를 깨었다고 혀를 잘라낼 수 없듯이 우리는 서로 도와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일에 자기주장에 묶여 교회를 힘들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영이 오셔서 지어가시는 성전 가운데 저와 여러분이 요긴한 주춧돌과 기둥과 서까래, 그리고 아름다운 도구들이 될 줄 믿습니다.

 

3) 화목과 치유와 찬송이 있는 성전입니다.

십자가는 화목입니다. 십자가로 인해 하나님과 죄인인 우리가 화목하게 됐다는 소식, 수없이 선포하는데 세상에 이보다 더 복된 소식은 없습니다. 십자가는 치유입니다. 이사야서 536절에서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받았다고 합니다. 십자가의 대속이 우리를 심판과 죽음에서 구원했을 뿐 아니라 병든 몸과 마음이 치유됐습니다. 몸과 마음이 치유되면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본래 뜻대로 우리가 살게 됩니다. 예배로 찬양하는 삶이 시작됩니다. 성전은 그래서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며 찬송하는 집입니다. 43:21절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의 길뿐 아니라 모든 인생의 길을 갈 때 가장 정확한 답은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먼저 화목하면 지체 간 화목합니다. 지체 간 화목하면 성령 안에서 성전으로 지어져 갈 때 우리 삶의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가며 회복의 기쁨으로 찬송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거기 치유와 영원한 화목이 있습니다. 무너진 성전의 회복이 있습니다. 성전이 회복되면 가장 기뻐할 여러분의 영혼을 위해 저는 평생 기도를 쉬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주님 이름으로 항상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