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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22.09.11.주일예배<출33:1-6. 장신구를 버리는 이스라엘>

by 설렘심목 2025. 8. 1.

2022.09.11.주일예배<33:1-6. 장신구를 버리는 이스라엘>

뭐든지 잘 단장하면 보기 좋고 기쁩니다. 문제는 겉만 보기 좋은 겉치레입니다. 모세가 금송아지 일로 아론과 백성들에게 분노하여 십계명 돌판을 던져 부수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탄원했더니 하나님께서는 일단 용서하시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노여움이 다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본문 1절에서 여전히 하나님께선 배은망덕한 백성과는 함께 가지는 않으시겠다는 건 아직 분이 삭지 않아 언제 백성들을 돌격하여 모두 죽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하나님을 자세히 봐야 합니다. 용서는 하셨어도 아직도 개운치 않은 하나님을 보며 뭘 느낍니까? 그렇죠. 우상숭배의 후유증입니다. 우상숭배는 영적간음입니다. 사랑하는 이의 행음장면을 목격한 자의 분노, 바로 그겁니다. 죽여도 분이 풀리지 않는 분노, 사랑은 그래서 고통입니다. 지금 모세 때문에 용서는 했지만 다 가라앉지 않은 하나님, 이 백성들과 함께 가다가는 자칫 다 죽여버릴 것 같은 하나님의 크고 무한하신 사랑 앞에 할 말이 없습니다. 백성들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걸음도 무겁게 걷습니다. 회개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1. (일상의 삶)에서 장신구를 떼어내라고 하십니다.

 

3000명을 처형하고 회개했으나 아직도 몸에 걸친 가정수호신 등 갖가지 우상과 아로새긴 동물의 형상들이 남아있습니다. 그것조차 싫은 하나님이십니다. 마치 바람피워 법원까지 가려던 남편의 해묵은 수첩에서 발견되는 김마담의 전화번호 같은 겁니다. 비록 끝났지만 울화가 다시 끓어오릅니다.

당시 장신구나 오늘의 단장품에서 변함없는 하나는 그게 하나님과 무관한 채 하나님을 등진 채 꾸며져 있다는 걸 잊지 않아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 몸에 걸친 장신구를 살펴보세요. 몸은 삶을 말합니다. 여러분 몸과 삶에 걸쳐있는 장식품을 살펴보면 거긴 글이나 어떤 형상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에겐 그게 우상이 되질 않으나 당시 이스라엘은 믿음이 무너져서 장신구를 애지중지했습니다. 하나님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뭔가 더 의지하려는 것 그건 조심해야 할 삶의 장식품, 곧 단장품입니다. 단장품은 꾸미는 악세사리를 말합니다. 뭔가를 꾸민다는 것 자체가 실체의 모습보다는 아름답게 하려는 의도가 있고 물론 선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위장입니다. 뭔가 그럴싸하게 보이려는 마음. 인정받고 싶어서 튀고자 하는 행위들 몸, 곧 삶의 장신구입니다. 27:6절에서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을 쌓으라고 하십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원하시는 주님은 부풀려 꾸미는 걸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겉치레보단 부족해도 일편단심, 부족한 대로 진실하게 주 앞에 엎드리는 자세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힘들어도 주변이웃에게 진실해야 한다고 일러주기 바랍니다. 끝까지 진실해야 합니다. 우리를 사실보다 멋지게 보이려는 어떠한 의도도 단연코 거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장신구라는 게 대부분 아로새긴 형상들이 꾸며져 있어서 사람의 눈을 현혹합니다. 그렇게 외모를 꾸미는 것보다 더 두려운 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을 꾸미고 위장하려는 겁니다. 이는 대부분 기도에서 나타납니다.

 

2. 기도에서 장신구를 제거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사람은 은혜를 받아도 하나님이 외면하는 기도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특히 대표기도나 공중기도에서 우린 어떻게든 은혜로운 기도로 은혜를 끼치고자 합니다. 이는 하나님 앞이라는 생각보다 사람 앞이라는 생각인데 생각해봐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거지 사람이 은혜받으라는 데 목적을 두면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진실로 올려드리는 기도는 듣는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게 돼 있습니다. 믿음이 약할수록 하나님보단 사람을 의식합니다. 안 보이는 하나님의 영보단 보이는 사람들이 우선인 기도는 아직 미성숙한 기도입니다. 비록 어눌한 말로 버벅대도 순결과 거룩함이 배어있는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사람이 감동합니다. 기도에서 장신구를 떼어내는 저와 여러분 되셔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기도의 사람들이 되시기 축복합니다. 6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호렙산에서부터 장신구를 떼어 내니라.”

 

3. 헌신에서 장신구를 버려야 합니다.

 

헌신(獻身)이란 말은 몸을 드린다는 뜻입니다. 몸은 삶을 말합니다. 전 삶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건데 이는 한마디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위해 한다는 겁니다. 삶의 목적과 과정과 결론이 하나님이면 그걸 몸을 바쳤다, 헌신(獻身)이라고 합니다. 우린 헌신자들입니다. 다만 그 농도와 순도에서 어느 정도의 격차는 있어도 분명히 우린 모두 그리스도께 바쳐진 헌신자입니다. 성도라는 말이 이미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구별되었다는 뜻입니다. 장신구는 하나님을 위하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한 겁니다. 내 눈과 마음과 주변을 만족하게 하는 것들입니다. 몸을 드려 하나님을 향해 새 생명을 살기로 결단한 그 대견한 회개가운데 내 일신상의 안락이나 편의를 위한 게 있다면 그게 장신구입니다. 모세를 한번 살펴봅니다.

모세는 여러 가지 단장을 멋지게 한 귀족적 이스라엘 청년이었습니다. 궁중의 고급 엘리트교육과 훌륭한 외모, 애국애족의 열정 등으로 단장된 멋진 청년, 핸섬보이 모세는 그 단장품이 다 사라지기까지 40년을 하나님은 기다리셨습니다. 40년 키우시고 다시 40년 단장품을 제해진 뒤 순수한 영혼이 되었을 때 헌신토록 하셨습니다. 그렇게 장신구가 사라지고 순결해지자 모세를 하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12:3>

이렇게 장신구가 사라진 모세와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대면하십니까?

 

4. 친구하고 대면하여 이야기하듯 말씀하십니다.

 

믿을 건 모세 하나였습니다. 그런 모세가 13절에서 다시 백성들을 위해서 간절히 구하고 있습니다. 13절입니다.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백성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1절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네 백성이라고 한 데 대한 간절한 기도입니다. 그러자 드디어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14절입니다.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편하게 하리라.” 아멘.

동행으로 편하게 해주신다는 약속입니다. 동행은 보호와 안식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집은 다 지은 뒤에 인테리어로 들어갑니다. 모든 꾸밈과 허영과 자기중심의 장신구를 제한 그 자리 신부 단장이 이뤄진다면 우리도 모세처럼 하나님과 친구처럼 마주 서서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깊은 대화는 깊은 기도입니다. 깊은 기도는 영적으로 깊이가 있는 신앙인격을 세워 갑니다. 그 결과 여러분의 삶에서 예수의 능력을 드러내며 주신 삶을 기뻐하며 즐거워하게 됩니다. 삶과 기도와 헌신에서 자신을 위한 단장품을 떨어내고 다시 신부단장으로 갑시다. 추석축복 메시지로 보낸 거 읽으며 기도로 들어갑니다.

 

가진 자는 설레어서 설. 없는 자는 서러워서 설이라는 명절과 추석의 추억도 아스라이 벌써 해질 녘 서편을 보니 노을이 아름답습니다. 거기 늙어가는 누가 홀로 서서 멀끄러미 석양을 바라보고 있군요. 저와 여러분입니다. 오늘도 67번째 성경을 써 내려가는 동역자 여러분. 가진 게 없고 친구 없어도 외로워 마시고 서러워 마시기 바랍니다. 모든 단장품을 내려놓고 신부단장의 때입니다. 곧 다가올 그 나라, 그 영광이 보이는 듯합니다. 명절로 설레던 가슴, 이제 그 나라로 설렙니다. "다윗왕이 나이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듯하지 않은 날들을 복음으로 인해 가슴이 더워지는 날들이 되길 주 이름을 영상 예배 팀원 여러분과 그 가정과 생업의 현장을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