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주일예배 <출34:28-35. 광채 나는 모세의 얼굴>
모세는 자신의 얼굴에서 그렇게 눈이 부시도록 광채가 나는 줄은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과 대면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노출된 얼굴이 마치 안에 등이라도 켠 듯 환하게 빛이 났다는 겁니다. 수건으로 가릴 정도라면 보통 화색이 좋다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환한 얼굴꺼풀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한가지도 의미없는 일을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모세얼굴을 통해 하나님은 당시의 이스라엘백성과 지금 우리에게 무얼 말씀하시려는 걸까? 29절입니다.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씀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아멘.
1. 모세도 미처 깨닫지 못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지금 읽은 29절에 의하면 모세의 얼굴이 빛난 건 하나님과 말씀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 한모금 안 마신 모세와 하나님이 40 주야를 함께 있었습니다. 율법을 받기 위해 모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있었을 것이고 하나님은 십계명을 비롯하여 많은 율법을 구체적으로 명령했을 겁니다. 그리고 모세는 아멘으로 답하며 정성껏 받아 적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두려운 마음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본인도 모르게 얼굴 꺼풀이 눈부시게 빛이 나고 있었다는 겁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가 40일 동안 함께 있던 모세의 얼굴로 증거된 겁니다. 사형수나 흉악범을 독방에 가두는 건 그가 다른 죄인들을 오염시키지 못하도록 하고 외롭게 하려는 목적이 가장 큽니다. 죄인과 함께 있으면 죄가 전염되고 하나님과 함께 있다면 필경 하나님의 영광과 그 빛을 받아 밝은 인생이 되는 것 자연스런 일입니다.
모세의 얼굴이 빛난 것은,
1) 하나님이 밝은 빛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더 많은 시간, 더 깊은 중심을 함께 할 때 하나님의 빛을 자연스럽게 주변에 전달될 줄 믿습니다.
2) 하나님과 사귀어 살면 우리도 모르게 빛된 밝은 삶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진리는 자주 듣는 것만으로도 능력이 되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저 말씀에 순종하여 여기저기 아무도 만나지 않고 단순히 교회만 출입하고 말씀만 들었는데 6개월 후, 1년 후에 친구들과 만나니 대화 중에 큰 간격을 느끼고 놀라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빛이 되어 우리 가운데 활동하심으로 미천한 인생을 서서히 격조있는 고매한 신앙인격으로 빛나게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40주야를 물도 떡도 입에 안대고 오직 하나님 앞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건 우리에게 무엇을 일러주고 있는가?
2. 빛나는 삶은 일편단심 오직 하나님만 바라봄으로 가능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린 일주일에 몇 번 하나님 말씀 앞에 서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중심을 세상 속된 것에 빼앗깁니다. 어떤 땐 빼앗기는 게 아니라 스스로 죄 속에 뛰어듭니다. 물도 떡도 입에 대지 않았다는 건 하나님 외에 일체 어떠한 육신의 일을 접촉하지 않은 순전함으로 계명을 받았다는 걸 말합니다. 우리가 예배자로 하나님 앞에 서서 말씀을 받을 때 모세의 모습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40주야는 아니더라도 짧은 예배시간만큼은 어떠한 사념도 잡생각도 틈타지 못하게 영혼의 금식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래서 어차피 받는 말씀, 알곡으로 먹어 속히 믿음의 성숙을 이룬다면 빛이신 예수 영광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웃에게 전해질 것입니다. 35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봄으로 모세가 여호와께 말하러 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아멘.
3. 주의 영광을 입은 자는 끝내 얼굴을 가립니다.
그 환한 얼굴을 모세는 수건으로 가렸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자신을 통해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을 깨닫자 그는 조용히 얼굴을 가려서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사람 앞에 조심함으로 받은 은총의 빛을 삼가 함부로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수건 한 장으로 가려지지 않습니다. 행여 드러날까 염려한 자신의 교만 앞에 수건은 모세의 겸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스스로 빛이 납니다. 누가 어찌할 수 없는 게 하나님의 영광이요, 빛이요, 결과입니다. 다만 비천한 나를 들어서 사용하셨다는 감격 앞에 겸손해야 하는 게 우리의 바람직한 자세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 은총이 우리에게 임하면 영광의 빛이 감출 수 없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드러납니다. 사람들은 말할 것입니다. “집사님. 너무 좋아졌어요. 참 환해지셨어요.” 그럴 때 여러분. 여러분의 얼굴을 겸손이라는 수건으로 가리는 신앙고백이 있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의 영광 앞에 우리의 얼굴을 내보이고 이름을 드러내려는 건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로채는 범죄입니다.
“수고는 내가, 영광은 하나님께” 당연한 말인데 어렵습니다. 모세의 수건과 맞은 편에 있는 말이 밀양아리랑입니다. 세상이 밀양아리랑을 부를 때 우린 모세처럼 얼굴을 가려 우리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소리 없는 기부 천사들의 소식이 감동인 이유는 얼굴을 가리고 선행을 하기 때문입니다.
칼뱅은 묘비명을 거부했습니다. 자신이 이룬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실 때 못난 자신을 사용하셨다는 게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혹 묘비명에 뭐라고 적으면 그거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영광 횡령죄에 해당한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에 아름답고 귀하게 쓰임받을 저와 여러분. 우리들의 얼굴이 가려지고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나기 소원합니다. 얼굴을 수건으로 가릴 때 기뻐하시는 우리 주님은 우리와 우리 자손을 향한 더 크고 놀라운 일들을 계획하십니다. 그 가정과 가문을 그리스도로 더 밝게 빛나게 하셔서 악한 세상을 비추게 할 등불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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