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23.. 주일예배<사45:11-13. 페르샤왕 고레스>
줄기세포연구가 황우석교수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돼지와 인간의 내부 세포조직이 가장 가까워 계속 살피고 연구하다 보면 생명의 경이로움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과학하는 사람은 깊이 연구하는 가운데 조물주의 존재에 진지하게 접근하게 됩니다. 결국 과학자는 신을 인정하게 됩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하고 철학이 아무리 깊어져도 결국 알 수 없는 비밀 앞에 다다르면 모두 감탄하고 머리 숙일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줄기세포는 망신해도 황우석의 조물주 고백은 영원한 진실로 남아있습니다.
오늘은 구약에서 그리스도의 예시적 인물 페르샤 초대왕 고레스입니다. 고레스의 사명 안에 우리의 사명과 소명이 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 안에 인생의 분명한 목적과 높은 가치가 밝혀지기 기대합니다.
기원전 8세기, 앗수르가 강대국이 되어 북이스라엘을 초토화한 후 다시 남 유다를 쳤으나 실패했습니다. 한 세기쯤 지나자 점차 세력이 약해진 앗수르가 신흥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에게 당합니다. 패전한 앗수르의 손에서 간신히 벗어난 남유다는 결국 바벨론에게 패망해 그들의 노예가 됩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이렇게 이웃 강국에게 끊임없이 당해 비참하게 되는 이유는 언제나 영적음난, 곧 우상숭배의 결과였습니다.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어떡하던 살아남으려는 유다와 북이스라엘은 결국 구원은 여호와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깨닫기까지 많은 값을 내고 비참해진 뒤에야 비로소 돌이켜 울부짖기 시작합니다.
북쪽 앗수르와 남쪽 애급 사이에서 지정학적 요충지 유다는 급변하는 국제정세의 회오리 속에서 여러 전략과 방법을 다했으나 결국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선지자의 음성을 따르지 않아 패망합니다. 이런 불순종과 우상숭배의 범죄 중에도 인자하신 우리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꾸준히 설득하고 달랩니다.
하나님은 늘 택한 주의 백성들이 하나님만을 의지하길 바라십니다. 그러나 이웃 강국을 의지하고 인간의 전략을 따랐던 불신앙, 하나님은 바로 그들이 의지하던 그 열강을 들어서 징계의 채찍으로 사용하십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이 압박과 고통에 눌려 울부짖자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하신 말씀입니다. 그건 바사제국의 강력한 초대왕 고레스를 세워서 그를 통해 이스라엘을 해방하고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실수가 우리에게서 떠나는 시간이길 축복합니다.
12절입니다.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 그렇습니다. 언제나 모든 주권과 구원은 창조주 하나님께 있습니다.
1. 만유를 창조하신 하나님.
우리의 구원이 선포될 때 언제나 그 주재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이 맨 앞에 나타나는 건 상식입니다. 즉 우리의 구원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냐가 가장 큰 주제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해 풀어준 분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조각품, 우상이 아니요, 공자나 맹자처럼 훌륭한 인간도 아닙니다. 본문의 선포처럼 만유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이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또 하나의 구원에 필요한 당부 말씀 11절입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 또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
오늘 고레스를 통해 보는 두 번째 구원의 주제는,
하나님께 장래 일을 묻고 아들들(씨-파종, 시작, 계획, 포부)의 일을 부탁했다는 겁니다.
2. 하나님께 장래 일을 묻고 부탁하라.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시고 그 인간이 타락하자 죄에서 구하기로 결정하십니다. 그리고 그 백성이 적극적으로 반응하기를 바라십니다. 위로하실 때나 책망하실 때나 칭찬하실 우린 즉시 반응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안에 범죄가 숨어있지 않나 즉시 엎드려 여쭤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 장래 일을 물었다.”고 합니다. 에덴에서 죄를 범한 후 인간에게는 미래를 보는 영안이 닫혔습니다. 장래 일을 모릅니다. 그래서 혼미한 인생들은 점쟁이를 찾아 하나님 앞에 크게 범죄하고도 그게 얼마나 큰 죄인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믿어 하나님과 동행하는 건강한 성도라면 반드시 장래를 예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요엘서 2:28절입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요16:13절 하나 더 봅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경말씀은 분명히 믿음의 자녀가 장래 일을 말할 거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미래를 몰라 답답합니다. 여기서 우린 인간의 생각이 얼마나 작은가를 알게 됩니다.
인간이 생각하는 미래란 고작해야 일신상의 문제나 가정과 민족의 문제, 그리고 인류의 역사일 겁니다.
지금 본문이 말하는 장래는 그런 잠시 보였다가 사라지는 주변과 역사의 문제를 뛰어넘고 있습니다. 그건 하나님의 나라가 품고 있는 크고 놀라운 세계에 대한 것이며 거기에 따른 인류의 구원과 영생에 따른 참으로 원대한 계획과 실행을 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기를 바라시는 장래는 당신의 나라에 관한 정보입니다. 그리고 이 천국에 대한 지식은 장차 일어날 일을 선포하는 것인데 이를 예언, 곧 장래를 한 손에 쥐고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선언하는 대언(代言)이라고 합니다. 즉 성경에서 예언은 대언이고 세상 예언은 점쟁이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복음을 전해야 하는 대언자(代言者)들입니다.
대언자는 장래 일어날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는 것이니 미래를 예언하는 겁니다. 이 예언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멀리 느껴져서 실감이 덜할 뿐 하나님의 예언은 지금도 이뤄지고 있고 또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계시록의 마지막 장 7절/12절/20절에선 ‘내가 속히 오리니 진실로 속히’ 온다고 하십니다.
11절 뒤엔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 또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고 나무랍니다. 그렇게 엎드리고도 어찌 감히 명령조로 나오냐는 겁니다. 이게 우리네 인생들입니다.
다시 본문 13절입니다. “내가 공의로 그를 일으킨지라. 그의 모든 길을 곧게 하리니 그가 내 성읍을 건축할” 거라는 말로 한 의인의 등장을 예언합니다. 그가 바로 페르시아 초대 왕, 고레스입니다.
본문 45:1b절입니다.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잡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44:28절에서도 “고레스에 대해서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이리라’ 하는 자니라.” 고레스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하시려고 택한 덕분에 주변의 모든 강대국을 쳐 평정함으로 대제국의 황제로 승격합니다. 아들 캄비세스를 바벨론의 왕으로 올려놓고 수리아. 페니키아. 루디아. 앗수르. 팔레스틴 등 많은 주변국이 그의 수중에 들어왔습니다. 쓰임 받는다는 게 이런 겁니다.
고레스는 패전 국민에 대해선 동정심이 많아 자비로운 왕이지만 전쟁터에선 아무도 그 앞에 나설 수 없는 탁월한 전략가며 용장이었습니다. 고레스는 하나님이 사용하시기로 작정한 자의 전형적인 모습, 승승장구, 형통한 길을 갔습니다. 바벨론을 함락 즉시 유대인을 본토로 귀향시켰고 성전수축을 허락하며 도왔습니다. 이스라엘의 고통과 그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페르샤라는 한 나라를 일으키시고 그 왕을 택하셔서 이스라엘을 구해내신다고 예고하며 하는 말씀이 “내게 묻고” 부탁하라는 오늘 우리가 듣는 복음입니다.
사랑하는 비전인 여러분. 하나님께서 장래 일을 우리에게 이미 알게 하셨습니다. 인류구원의 계획을 선포하시고 골고다에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고레스는 바벨론에서 신음하는 이스라엘민족을 구해 무너진 성전을 수축하고 예배를 회복하게 했습니다. 고레스를 통한 이스라엘 구원은 당시로선 장차 이루어질 영원한 구원자 예수그리스도의 예시로 모든 나라에게 소원의 메시지를 담는 예시적 사건입니다. 고레스 구원의 예시적 의미는 이제 그리스도를 통해 밝히 세상에 증명됐습니다.
끝으로 13절입니다. “내가 공의로 그를 일으킨지라. 그의 모든 길을 곧게 하리니 그가 나의 성읍을 건축할 것이며 사로잡힌 내 백성을 값이나 갚음 없이 놓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3. 구원에는 믿는 일 외 치러야 할 값이 없습니다.
“사로잡힌 내 백성을 값이나 갚음 없이 놓으리라.” 고레스왕을 부르신 하나님의 구체적 목적입니다.
사로잡힘에서의 해방과 무너진 성읍의 건축, 성도의 몸을 통한 성전건축, 즉 구원은 무료무상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은 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죄의 휘장을 한 번의 제사로 열어놓은 사건입니다. 고레스를 통해 해방과 구원의 길을 곧게 하신 하나님께서 예수를 모든 인류를 구원하는 영생의 길이 되게 하셨습니다. 변하지 않는 진리와 영원한 생명이 되신 예수는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구하고 죄에서 풀어주는 해방자 고레스가 되게 하실 겁니다. 시대 따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을 택하여 구원의 역사를 이어가시는 우리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사용하시고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메시아로 보내셨습니다. 오늘 이제 저와 여러분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으셔서 우리에게 고레스의 사명이 넘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눅4:18-19절을 읽어 올리고 기도합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희년)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함이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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