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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계 22:1-5. 그날, 거기서는

by 설렘심목 2025. 8. 1.

2022.07.24. 주일예배<22:1-5. 그날, 거기서는>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갖는 마지막 절정은 하나님의 나라가 눈에 보이는 장면입니다. 오늘 우리가 받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런 의미에서 그간 모두가 마음에 그려보는 성경의 어떤 장면보다 화려한 것이며 전율할만한 최고의 결론을 아름답게 드러낼 것입니다. 그것은 66권의 결산이 이뤄지는 장면이기에 글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광경에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4절 앞처럼 주의 얼굴을 마주해 본다는 겁니다. 실제 얼굴인지 눈부신 빛인지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가운데 주의 영이 함께하시니 우리 모두에게 신령한 영의 눈을 주님께서 친히 열어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보고 기록한 최상의 장면을 믿음으로 보며 그 주체할 수 없는 기쁨에 사로잡히기 축원합니다.

언젠가 그날 거기서 다시 만나게 될 저와 여러분, 생각만 해도 너무나 기쁜 그 날. 주의 날.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합니까? “그의 사랑하시는 제자늙은 요한에게 예수님이 직접 보여주신 그 장면, 본분 1~2절 서두입니다. “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니

 

1. 어린 양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는 생명수 강입니다.

 

본문을 보면 우린 에스겔서가 떠오릅니다. 47장에서 에스겔이 본 환상 중에 성전에서 동편을 향해 문지방으로부터 흘러가는 생명수 강물이 기억납니다. 한편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동산의 네 줄기 아름다운 강줄기도 연상이 됩니다. 인류 모든 문명발상지가 한결같이 강가를 중심으로 시작된 건 생명은 물로부터 시작되고 물이 흘러야 삶이 이어지고 무리들이 모여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이 되시는 생명수입니다. 길 가운데 흐르는 생명수, 본문 1절 서두에 그것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라고 밝힙니다. 이어서 성경은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내리는 생명수 강이라고 요한은 본대로 적고 있습니다.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물이 하늘보좌로부터 흘러내려 길 가운데로 흐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이십니다. 생명이시되 영원한 영생이십니다.

 

4:14절에서 물 길러 한낮에 사람 눈을 피해 우물가에 나온 사마리아여인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으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그렇습니다. 주께로부터 나오는 생명의 말씀, 그 생명수는 영생하도록 영원히 솟아나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이 물을 마시면 음부 권세로부터 자유로우며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3:30)을 받아 살리심(2:4)을 받습니다.

 

3: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급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로마의 핍박으로부터 교회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 중에 있었습니다. 교회보다 더 고통을 느끼신 것은 주님의 마음이었습니다. 당신의 교회들이 부르짖는 신음과 간구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늙어 몸조차 가누기 어려운 제자 요한에게 찾아오셔서 분명히 속히 될 일을 보이시고 위로하십니다. 오늘 본문 계시록 22장에는 7, 12, 20절에 각각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는 동일한 말씀을 세 번이나 적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 있어도 로마의 학정만큼 심하지는 않을 겁니다. 물론 고통은 주관적이라 나름대로 다 내놓지 못한 아픔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주께서 극진히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가 머잖아 갈 곳, 마지막으로 찾아갈 곳은 어디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 강이 길 가운데로 흘러가는데 그 출발점이 어린양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십니다. 길 한가운데 흐르는 생명수 강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14:6)십니다. 어린 양 예수로부터 흘러나온 생명수가 길 되신 예수님 한가운데서 흘러갑니다. 이런 아름답고 감격적인 장면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2절 첫 줄입니다. 강 좌우에 무슨 나무가 있습니까?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2. 생명수 강 좌우에 있는 생명나무입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내리는 생명수 강물(22:1)은 길이 되신 예수님 가운데로 흐르는데 본문 2절에서는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고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승리는 재림의 날 거기서 만국을 말씀과 생명으로 치료해 일으키는 결말에 이르게 될 겁니다. 그동안 죄악이 범람하는 지상에서 전투한 교회마다, 그 믿음의 분량에 따라 아름다운 천국의 실과를 보게 됩니다.

본문 2절의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는” 12가지 잎사귀들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11:25)와 온 이스라엘이 구원(11:26)을 얻기에 합당한 일을 위해 귀하게 사용됩니다. 저와 여러분. 이 험한 광야에서 오직 우리 주 예수께만 접목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15:5절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있으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께 붙어있는 열두 가지가 되어 많은 과실을 맺는 이 장면 얼마나 놀랍습니까? “다시 저주가 없으며” “다시 밤이 없겠고” 3절과 5절 앞입니다.

 

3. 다시는 저주와 밤이 없습니다.

 

어린 양의 보좌 앞, 거긴 다시 저주가 없으며 어린양의 얼굴을 마주보며 영원히 왕노릇하는 곳입니다. 5절에는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쓸 데가 없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그건 하나님이 저들을 비추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하나님의 얼굴로 항상 환한 곳 거기가 우리의 본향입니다. 마지막 우리가 영원히 살 곳입니다. 잠시 지나는 여기서도 집 하나 장만하면 기쁜데 거기선 옮겨가지 않고 영원히 삽니다.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지 않겠습니까? 더욱이 5절 말미는 저들이 세세토록왕 노릇을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날 거기서 받을 영광의 최고점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세세토록 왕 노릇을 하는 거기가 주님 마련하신 우리들의 영원한 처소입니다.

끝으로 요14:3절을 찾아 함께 읽겠습니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2절에선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많다고 하심으로 우리가 영원히 거할 거기,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아름다운 본향은 주께서 약속하신 대로 생명수가 흐르고 거할 곳이 넉넉한 그야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곳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 거룩하신 이름과 말씀으로 여러분을 위로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새 영을 받았고 새 힘이 공급된 줄 압니다. 오늘 변화가 안 일어나도 낙심치 마시기 바랍니다. 말씀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믿음으로 말씀을 먹는 자마다 새 영은 채워지고 채워진 영 가운데 새 생명이 호흡을 시작하는 줄 믿기 축복합니다.

말씀을 우리함께 깊이 묵상하며 봉독하는 가운데 주의 영이 마무리해주실 겁니다. 함께 기도합니다.

 

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믿어들이기 어렵고 받아들이기도 힘든 벅찬 그 날의 광경을 가슴 후득이며 들었습니다. 영생의 주여, 이 놀랍고도 분명한 언약의 미래가 어김없이 하루하루 다가와 번개처럼 지나갑니다. 악한 세월에 촌음같은 시간을 아껴서 후회가 없는 날들이 되게 하소서. 훗날 돌아보는 일마다 주를 찬미하며 감사하게 하옵시고 주님의 기뻐하심 그 가운데 주를 만나뵈옵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