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2주일예배<히11:13-16. 나그네의 고향집>
<13~14절>
* 노아, 아브라함, 사라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따라 살다가 믿음 붙잡고 죽었는데 그 언약이 성취되는 결과는 아직 못 봤으나 그걸 늘 믿고 기뻐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는 언제나 나그네라는 심정으로 자신들의 믿음을 고백했는데 이건 자신들이 반드시 갈 곳이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15-16절>
* 노아, 아브라함, 사라가 자신들이 떠나온 고향을 생각하고 돌아가려 했다면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제 진정한 본향, 곧 영원한 하늘의 집을 믿음으로 사모하니 육신의 조상이 묻힌 고향, 갈대아 우르나 아라랏산 아래로 돌아갈 아무 이유가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영원하신 나라를 본향으로 사모하는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저들이 저들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걸 인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하늘에 한 성을 준비하셨습니다.
믿음의 선조들을 소개하는 히브리서는 지금 우릴 향해 나그네와 본향에 대한 신령한 질문을 던집니다. 믿음으로 승리한 믿음의 선지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건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의 가장 큰 기쁨과 힘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세상 험한 모든 걸 이기게 합니다. 이 세상 슬픔과 눈물이 압박해 와도 하나님의 약속은 여전히 불변함을 굳게 믿기에 고난은 지나는 것이요,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한 거라 순간에 흔들리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과의 약속에 집중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어려서 헤어져 얼굴도 모르는 자신의 부친이 일본에 가서 현지처를 잘 만나 거부가 된 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술을 파는 자신의 어머니가 부끄러워서 소년시절부터 빗나갔습니다. 뭐든 훔쳐다 팔아먹는 도벽으로부터 음주, 대마초흡연 등 방탕하게 살았습니다. 어머닌 어떤 암자에 들어갔고 그는 혼자 팽개쳐졌습니다. 어느 날 거액의 돈다발을 들고 일본인 부인과 함께 자신과 얼굴이 너무 닮은 부친이 나타나 놀랐고 그의 환경은 급격히 변했습니다. 그런데 풍족한 물질로 그는 더 많은 술을 먹었습니다. 물질의 풍요가 그의 방종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부친은 그를 정신병원에 넣었고 그는 얼마 후 길거리에서 죽었습니다. 그가 생전에 술에 취해 제게 하던 말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아버지가 나 어렸을 적 한번만이라도 내가 일본에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면 곧 널 찾겠다고 약속했다면 난 뭐라도 배우며 성실히 살았을 거야. 아버지 없는 설음, 엄마가 술집 작부라는 열등감에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텐데 이젠 틀렸어.” “형, 늦지 않았어요. 힘냅시다.” “아냐, 틀렸어. 넌 나처럼 살지마. 넌 잘살 거야.” 내 믿음이 부족해 예수 믿자고 하지 못한 게 평생 한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약속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비록 현실은 나를 힘들게 할지라도 약속이 분명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잠시 지나는 고통에 크게 집착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선조들이 붙들었던 약속, 그리고 우리가 여전히 붙잡고 있는 이 약속이 과연 우리에게 얼마나 그 위력을 지니고 있습니까? 약속은 믿는 만큼 능력으로 기쁨으로 자리 잡습니다. 그리스도의 언약 가운데 살면서 늘 불행의 쓴 뿌리를 손에 꼭 쥐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언약신앙의 깊이와 부활 신앙이 없어서입니다. 기억하세요. 건강한 믿음 가운데 분명한 약속이 있는 사람은 그가 지닌 기쁨의 약속 때문에 늘 가슴이 뿌듯한 포만감을 누릴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다가도 “아, 참 내가 천국 갈 사람인데,”하면 어떤 일 앞에서도 담담해지곤 합니다. 천국에 영원히 살 집을 분양받아놨는데 여기야 잠깐이면 지나간다는 거지요.
2. 나그네의 삶으로 바라보는 더 나은 본향, 천국의 처소입니다.
노아 아브라함 사라, 저들은 이 땅 고향에 미련이 없습니다. 그들에게 죽음은 또 다른 시작이었습니다. 저들이 진정 사모하고 기뻐하며 설레는 고향은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라는 겁니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선 진기하고 놀라운 일들이 얼마나 많이 벌어지고 있을까? 어디선 새생명이 태어날 것이고 어디선 죽어갈 겁니다. 다투며 흘리는 피가 있고 높이 치켜든 축배가 있습니다. 우리가 있는 한반도, 세상에 비해 너무 작습니다. 하물며 우리가 눈으로 못 본 하늘나라는 얼마나 장대하고 찬란한 곳일까 생각해 봅니다. 상상 속에 들어올 수 없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상상 속에 그려내기 어려운 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고 불행한 사람은 눈에 뵈는 게 다라는 사람들입니다. 우린 믿음으로 우리가 갈 곳, 영원히 살게 될 본향 집에 모든 기대와 소망을 걸고 있는 성도들입니다. 그건 그러나 소망뿐 아니라 현실이며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겁니다.
성도 여러분. 구원받지 못한 영혼, 곧 죽은 영혼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깨닫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습니다. 저들은 여기 이 땅이 모두입니다. 여기서 모든 결론을 봐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안 보여 성경과 예배나 하나님과의 관계보다는 늙기 전에 남보다 더 많이 더 짜릿하게 더 안전하게 인생을 즐기고 자신의 이름을 남기며 영향력을 확보하는 게 목적입니다. 보이는 게 다입니다.
우린 저들과 전혀 다른 길을 갑니다. 먼저 여기가 우리의 목적지가 아닙니다. 우리의 집은 하늘에 있고 거기가 우리의 종착역입니다. 잠시 지나는 우린 나그네들입니다. 갈 곳이 있고 기다리는 분이 있는 길손입니다. 나그네는 몇 가지 특성이 있는데
첫째, 외롭습니다. 인간은 늘 귀소본능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멀리 나갔다가는 돌아오고 싶습니다. 이 땅에서 나그네인 성도의 삶은 그래서 늘 외롭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주님의 사랑이 부어지면 외롭지 않은 길을 갑니다. 함께 기뻐 노래하며 갑니다.
둘째, 나그네는 고단합니다. 늘 지쳐있습니다. 내일을 몰라 불안하고 충분히 안식할 여유가 없습니다. 주님 품에 안기면 그때가 안식입니다.
셋째, 머무르지 않고 진행합니다. 정붙일만하면 떠나야 하는 게 나그넵니다. 잠시 걸터앉은 툇마루에 미련이나 정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곧 도착할 영원한 안식의 둥지를 향해 지속적 기대와 소망을 품어야 합니다. 출발할 때 아까운 게 없어야 합니다. 너무 많은 소유로 자꾸 뒤를 돌아보니 소금기둥 됩니다. 독수리 사냥 미끼는 소금에 잔뜩 절인 고기입니다. 배부르게 먹은 뒤 목이 말라 또 냇가에 가서 물을 잔뜩 먹게 되는데 그게 끝입니다. 배불러 날지 못하면 그냥 가서 데려와 길들이면 된다고 합니다.
넷째, 찾아가는 곳에 대한 그리움입니다. 가는 길이 고달프고 외롭고 서러운 건 곧 도착하게 될 따듯한 본향에 대해 긴절하게 하는 유익이 있습니다. 하늘에 정원과 넓은 저택이 예약된 자가 여기 영원히 있을 거처럼 살면 세상 떠날 때 얼마나 발길이 무겁겠습니까? 하나님보다 세상이 너무 좋아 여기저기 얽힌 것들로 얼마나 풍성한지 그냥 두고 떠나기엔 너무 아까워 눈을 감지 못하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린 오늘 본문의 교훈을 통해 세상 잠시 나그네로 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자로서 마땅히 품을 것과 버려야 할 걸 배웁니다. 품어야 할 건 천국 소망이요, 버려야 할 건 세상에 못 박은 세속입니다. 세상의 소용물이나 관계는 하나님을 섬기기에 필요한 것들로 우리가 잠시 빌려 사용하는 거지 영원한 우리 소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자녀도, 소유도, 내 몸도 분명히 나를 떠난다는 사실 앞에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 거기 그 본향 집만이 내가 바라봐야 할 곳인 줄 믿습니다. 더 늦기 전에 주변을 살피고 복음이신 그리스도를 전하기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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