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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21.11.21. 주일설교<눅5:31-32. 죄인과 병든 자를 찾으시는 예수>

by 설렘심목 2021. 11. 21.

2021.11.21. 주일설교<5:31-32. 죄인과 병든 자를 찾으시는 예수>

15:7절을 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처럼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우리 주님이 아름다운 찬송보다 더 귀를 기울여 기뻐하시는 소리가 있습니다. 그건 방금 읽은 거처럼 죄인이 회개하는 기도 소리입니다. 돌이켜 애통하는 회개의 기도입니다. 통회하는 그 중심입니다.

오늘 설교제목은 <죄인과 환자를 찾으시는 그리스도>입니다. 죄인으로는 잘 아시는 돌아온 탕자가 등장하고 병든 자로는 앞을 못 보는 거지 바디매오입니다.

주님은 많은 병자를 고치셨는데 모든 병든 자와 죄인은 구원 사역에 중요한 대상자들이었습니다. 주님은 비단을 휘감고 사는 궁중 관리나 잘먹고 잘사는 사람을 찾아오시지 않았다는 게 본문 내용입니다.

오늘 말씀가운데 우리의 실존과 사는 목적을 돌아보며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본문 31,32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게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세리, 환자 등 가난한 천민들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던 유대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천박한 그들의 잔치에 참여하는 걸 보고 비난합니다. 그러자 방금 읽은 대로 주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과 병든 자를 부르러 오셨다고 하십니다.

 

1. 주님은 병든 자와 죄인을 구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1) 병든 자를 찾아오신 주님께 바디매오는 소리쳐 주님을 불렀습니다.

18:35-43절과 막10:46-52절까진 각각 여리고의 소경을 소개하는데 마가복음에서는 그의 이름을 바디매오로 밝히고 있습니다. 바디매오는 나면서부터 앞을 못보는 사람입니다. 당시 장애인이나 가난은 조상의 죄나 본인의 죄로 여겨서 저주받은 삶을 비참하게 연명해야 했습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대단하단 소문을 들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그분께 자신을 호소해야겠다는 마음을 굳혔습니다. 드디어 귀에 군중들의 소리가 들립니다. 가슴이 뛰기 시작합니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알고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갑작스런 바디매오의 비명같은 외마디는 주님을 호위하며 따르던 제자들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조용히 하시오그러나 바디매오는 더욱 소리를 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시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아무도 말릴 수 없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시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아파하는 자를 찾으시는 주님 앞에 소리치세요. 누가 뭐래도 상관치 말고 소리쳐 주님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바디매오는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합니다. 옛말에 몸이 1,000냥이면 눈이 900냥이라고 했습니다. 눈을 잠시 감습니다. 감은 채 손으로 가려보세요. 깜깜한 이대로 평생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우리 그대로 잠시 기도하기 원합니다.

 

좋으신 하나님. 살아계신 주여. 우리에게 눈을 주셔서 사물을 구별하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볼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꽃과 구름과 하늘과 모든 걸 다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있는 그대로 더러운 것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가 지금 눈을 감은 것처럼 이대로 평생 보지 못하는 이웃이 얼마나 많은지요. 아버지여. 주변에 아직도 고침받지 못하여 암흑 속에 답답하게 사는 이들을 보면서 영혼이 아직도 눈을 뜨지 못한 우리에게 영혼의 갈급과 답답함을 느끼는 영적감각이 오늘 말씀을 통하여 살아나게 하소서. 세상이 너무 잘 보여 영안이 어두운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앞 못 보는 분들 가운데 눈은 떴으나 보이지 않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청맹과니라고 부릅니다.

성도여러분. 혹시 자신이 영혼의 청맹과니는 아닌지 바디매오의 아픔을 살피면서 돌아보기 원합니다. 우리가 눈을 떴으나 우리의 영혼이 바디매오처럼 아무것도 뵈지 않아서 천국도, 주님도, 역사도 안 보인다면 믿음과 생활이 얼마나 힘겨운지 모릅니다. 앞을 못 보면 남들은 아기자기한 시장길 잠시 가는 것도 보통 힘든 게 아닙니다. 길잡이가 없으면 그는 필경 넘어지고 다칠 겁니다. 밝지 않은 우리 영혼의 눈이 오늘 주님이 말씀을 통해 열릴 줄 믿습니다. 119:2절에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10:48절입니다.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더욱 간절하게 주님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1치의 오차도 없이 이뤄지는 줄 우리가 믿고 이미 경험해 알고 있습니다.

간곡하게 찾는 자, 반드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주님 만나면 인생 바뀌는 줄 믿고 아멘입니다.

누가 양 100마리 중에 하나를 잃으면 99마리를 놔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다니지 않겠느냐?”

 

2) 잃은 양, 병든 자를 찾고 계신 주님이십니다.

율법은 죄를 규정하고 나무랍니다. 지켜야 할 걸 선포하고 못 지키면 징벌을, 지키면 구원을 제시합니다. 그런데 율법을 다 지킬 인생이 이 땅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무릎 꿇어야 할 이유입니다.

주님은 세상을 정죄하는 게 아니라 죄에서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방금 말씀처럼 주님은 건강한 양, 제자리를 잘 지키고 있는 양보다 허약해서 날마다 넘어지고 갈팡질팡 헤매며 울고 있는 양에게 눈이 갑니다. 사람도 제 앞가림 잘하는 자녀보다 늘 꼴찌하고 지혜가 부족해서 도움 없인 뭐 하나 제대로 못 하는 자녀가 마음에 걸립니다. 어디 나가서 전화라도 오면 가슴이 털컥합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어도 하나님은 우릴 지켜보고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딜 가 있어도 거기 주님 함께 하시는 줄 믿기 바랍니다. 이 믿음 제대로 붙잡으면 두지 않습니다. 그렇게 함께하시는 주님이 우리를 어떻게 찾고 계십니까?

99마리의 양을 놔둔 채 잃어버린 한 마리를 찾듯이 찾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 인간의 귀한 가치는 다른 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존재라는 겁니다. 그런 가치로 인해 주님은 타락한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을 위해 대신 죽기까지 사랑하시고 죽음과 지옥에서 구해 내셨습니다. 18:41-43절입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2. 오직 믿음으로 받는 구원입니다.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죄로 망가진 모든 것들을 고칠 능력과 권세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시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의 외침은 결사적입니다. 결사 : 죽기를 각오함.

죽기를 각오하고 시작하는 일은 그 일이 성공하든지 아니면 죽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바디매오의 마음속에는 이미 결단한 게 있습니다. 이렇게 평생 사느니 그리스도께 자신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죽든 살든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디매오의 마음속엔 이미 주님을 만나기만 한다면 눈을 뜬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바디매오의 불행은 그 믿음대로 예수님 만나면서 끝이 났습니다.

 

14:8-10절 내용을 요약합니다.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바울의 설교를 듣는데 바울이 가만히 보니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성도 여러분. 우리가 받은 구원이 이들처럼 몸으로도 증거되기 축복합니다. 치유와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오직 주님을 신뢰하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고 그의 말씀에 순종할 때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받은 자는 세상의 죄에서 자유롭게 되고 비록 넘어져도 다시 일으키시는 주님의 손을 만나게 됩니다.

 

구원은 하늘뿐 아니라 남은 평생에도 권세와 능력입니다. 불신자들은 자신들의 능력에 의지해 살아가지만 우리는 우리의 능력을 주장하시는 하나님께 의존하며 살아갑니다. 불신자들이 가야 할 곳을 모르고 가는 방랑자들이라면 믿는 성도들은 가야 할 곳이 있고 기다리는 분이 계셔서 이 세상 잠시 지나는 나그네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여기가 모두라고 생각하나 우리는 여기가 잠시 스치는 곳이요, 진정 영원히 머물 곳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임을 믿음으로 확신하며 소망을 천국에 둔 사람들입니다. 믿음은 능력인데 그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반드시 성취하는 능력입니다. 또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로서 이미 우리 삶 가운데 행하신 안 보이는 하나님의 증거를 붙드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앞 못 보는 바디매오는 그리스도를 믿고 소리쳐 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시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의 눈이 열렸습니다. 모든 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도 안뵈는 하나님의 세계에 이제는 눈을 떠서 신묘한 많은 것들을 영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내가 못 봤다고, 우리가 못 봤다고 천국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 한가운데 우리가 전도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눈에 안 보여도 바람이 불고, 눈에 안 보여도 밤새 심장은 뛰어서 아침에 거뜬히 일어납니다. 하나님 우리 눈에는 안 보여도 너무 크신 분, 사랑으로 가득한 분, 완전하셔서 그 분 앞엔 믿어드리는 것 외에 우리가 할 게 없다는 것, 그분은 너무나 광대하시고 선하셔서 우리의 알량한 지식이나 과학 안에 들어오시지 못한다는 것, 우리 좁은 식견이나 심령 안에 분석되지 않을 만큼 대단하신 최고의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우리가 믿습니다. 매사 모든 인생사에서 구원받아 날마다 그분을 증거하고 자랑하는 풍성한 삶, 능력의 삶, 평강의 삶이 다 되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