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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21.11.28. 추수감사주일설교 <레2:11-16. 소금언약과 소제와 화제>

by 설렘심목 2021. 11. 30.

2021.11.28. 추수감사주일설교 <2:11-16. 소금언약과 소제와 화제>

오늘은 1년간의 추수, 곧 가을걷이를 감사하는 추수감사주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입니다. 민족의 추수감사절은 추석이고 교회의 추석은 추수감사절입니다.

수확된 곡물들을 단에 올려놓은 건 곡물을 올리는 성도들의 몸과 영이 올려지는 걸 의미합니다. 언제나 예배에서 최고의 예물은 예배자 자신이라는 건 잘 아는 사실입니다. 오늘은 소제와 화제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들의 예배에 대한 올바른 자세를 알아보기로 합니다.

 

1600년대 초 영국에선 성경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올곧은 청교도들이 이미 형식만 경건한 채 타락한 영국 국교와 갈등을 빚어 새로운 곳을 향하여 떠난 곳이 네덜란드였습니다. 그러나 그곳 생활에 익숙지 않고 마땅치 않아 다시 열심히 11년간 저축해 180톤의 작은 배를 구입하여 1620년 찾아간 곳이 신천지 아메리카대륙이었습니다. 65일의 항해 끝에 한 겨울 미대륙에 도착한 그들은 심한 굶주림과 질병으로 102명 가운데 44명이나 목숨을 잃게 됩니다. 혹독한 환경에서 그들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다행히 원주민 인디언들이 친절하게 농사를 도와주고 씨앗을 주어 이듬해 1621년엔 풍성한 수확을 합니다. 청교도들은 고마운 이웃들을 초대해 거둔 곡식과 칠면조고기 등을 준비하여 첫 추수 감사예배와 잔치를 벌였던 게 그 유래가 되었습니다.

 

본문 11절에는 소제물에 넣지 말아야 할 것과 꼭 넣어야 할 것을 구별하여 명령하고 있습니다. 소제란 곡식의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14)을 단에 올리는 제사형태인데 소제물이 유향과 함께 불살라지면 화제라고 합니다. 여기서 누룩과 꿀은 넣지 말고 소금은 반드시 넣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소금은 언약의 소금이라고 밝힙니다. 소금언약은(대하13:5/18:19) 영원히 불변하는 약속을 말할 때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오늘 설교제목은 소금언약과 소제와 화제 입니다. 약속은 지켜지기 위해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십자가구원에서 이미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구원의 역사는 인류사를 통해 꾸준히 진행 중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등진 죄에서 십자가로 구원받았고 그 구원은 지금도 진행되는 이른바 진행형 완성즉 활동 중인 완성이라는 특수한 속성이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시인하고 고백함으로 완성된 구원은 꾸준한 성화의 단계를 거쳐 하나님의 동역자요, 왕같은 제사장으로 계속 변화시켜가는 이것이 진행 중인 완성된 구원입니다.

 

단 위에서 불사르는 화제에선 언약의 소금을 넣되 누룩과 꿀은 집어넣지 않습니다. 누룩은 부풀게 하고 꿀은 단맛을 냅니다. 첫 이삭의 볶은 걸 부풀게 하거나 단맛을 첨가하지 말라는 겁니다. 단순히 첫 이삭을 잘게 부수고 빻은 것에 언약의 소금을 치는 것으로 소제는 족했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다만 언약을 기억함으로 날마다 주님 찬미가 그대로 복이 되길 축복합니다.

 

오늘은 이 소제물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언약의 소금이란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가운데 하나님 기뻐하시는 약속의 자녀가 사는 길을 살피기로 합니다. 소금언약이란 무엇인가?

 

1. 영원히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왜 생깁니까?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생깁니ᄃᆞ. 약속만 제대로 지켜진다면 문제는 사라질 것입니다. 약속만 지켜진다면 모두 제자리에 조용히 돌아가 자기 역할을 기뻐하며 평화로울 겁니다. 법원도 경찰서도 전쟁도 사라질 겁니다.

이처럼 인간사회의 약속은 매우 중요합니다. 약속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약속이 그를 보장하여 반드시 성공적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 보이다가 내일 사라질 수도 있는 사람과의 약속도 이러할진대 하물며 하나님의 약속이야 오죽하겠습니까?

 

하나님의 특별한 부분에 우린 얼마든지 기뻐할 수 있고 또 기뻐해야 합니다. 그건 다름아닌 하나님이 영원하시며 변함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소금언약이란 그 하나님과의 약속을 말합니다. 소금은 모든 식품이나 물질에 변질을 막고 음식에 맛을 냅니다.

그리스에도 소금을 어기지 말라는 말이 있고 아랍에는 우리 사이에 소금이 있다는 말로 언약을 상기시키며 우리 민속에 소금은 부정한 일이나 악귀를 쫓고 불행을 멀리한다고 믿어 소금을 뿌립니다. 소금은 인간의 생명과 환경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필수품입니다.

 

6:17절과 13절엔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않음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은 그대로 법이며 생명이 됩니다. 변질되는 건 인간입니다.

왜 인간이 먼저 약속을 배신할까? 하나님이 영원하신 분이라는 것과 우리는 풀잎처럼 사라질 존재라는 것에 대한 확고한 지각이 없어서입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40:7~8)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의탁하는 자세로 그 약속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기억납니까?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계시록을 여는 1:1,

 

2. 반드시 속히 이루어질 약속입니다.

반드시 속히 이뤄질 약속인 하나님의 언약은 우리가 동의하건 안 하건 반드시 속히 이루어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짧고 어리석은 인간의 시간표에 하나님의 약속을 적어놓지 않기 바랍니다.

 

3. 모든 인생이 붙잡아야 할 마지막 진리, 생명입니다. 뭐가요? 반드시 속히 이뤄질 하나님의 언약이,

가루로 드리는 소제와 그 소제 위 기름을 붓고 유향을 더하여 단 위에서 태워 올리는 화제는 하나님의 언약으로 소금을 친 거라야 합니다. 그렇게 올린 뒤 우리가 평생 지녀야 할 약속으로 우리 가슴 깊은 한가운데서 날마다 헌신과 열정으로 봉화불처럼 타올라야 합니다.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규례니라.” 그 불은 우리 심령 성막, 증거궤 안에서 꺼지지 않아야 할(27:21) 진리와 성령의 불입니다.

 

소금언약의 말씀을 그래서 구원받은 성도라면 예수 이름으로 붙잡고 놓지 말아야 합니다. 거기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 있고 평화가 있습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은 세상의 마지막 희망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삶이 살아있는 산제물이라면 우리의 형질, 곧 우리의 내용이 산산이 으깨지고 문질러져서 가루가 되기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서져야 합니다. 소제의 가루가 돼야 합니다. 그 가루에 하나님의 소금언약으로 맛을 내고 성령의 기름을 붓고 기도의 유향을 더하여 번제단에서 태워져야 합니다. 이걸 화제라고 하는데 이때 타는 냄새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향기라고 했습니다.

 

이제 마무리합니다. 하나님이 그토록 사랑하시는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를 바로 믿으려고 고생하시는 것, 소제가 불태워져 화제가 되는 거룩한 여정입니다. 소금언약으로 붙잡는 생명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너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네 하나님이 되리라는 겁니다. 또 복음의 씨로 보아 아들이라고 하십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에 모두 마음에 가득 한 해를 감사하며 하나님 앞에 정성드려 영상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 마음과 정성이 늘 예배입니다. 가인과 그 예물, 아벨과 그 예물입니다. 우리와 우리의 예물을 하나님께서 받으셨습니다. 이 시간 주신 말씀 저와 여러분의 새로운 결단과 함께 버무려 소제요, 화제로 올려드리는 추수감사예배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영원히 변함없는 말씀, 반드시 속히 이루어질 언약, 모든 인생이 붙잡아야 할 마지막 진리인 하나님의 소금언약을 확신하므로 힘을 얻어 새날을 여시기 주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