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9.주일예배<삿5:23-26. 메로스의 저주와 야엘의 복>
오늘 소개된 본문은 여선지자 드보라와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부르는 승전가 중 한 부분입니다. 배경을 잠시 살펴봅니다. 왼손잡이 에훗이 모압왕 에글론을 살해하고 모압을 굴복시켜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후 여호와를 잘 섬겨 80년간 태평했습니다. 그러나 에훗이 죽자 다시 이스라엘이 타락하고 악행 하는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선 가나안 야빈왕의 손에 붙입니다. 가나안왕 야빈은 철병거가 900이나 있는 막강군대로 무자비하게 이스라엘을 압제합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이 회개하며 울부짖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로 합니다. 이때 하나님이 세우신 사사가 여선지 드보라입니다. 이 드보라가 가나안 야빈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부르는 노래에서 오늘 본문에 중요한 인물이요, 복의 여인으로 높이 세운 여인이 있는데 그가 바로 오늘 설교제목에 나오는 야엘이라는 헤벨의 아내입니다.
헤벨은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먼 친척 중 한 사람인데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가나안 하솔 왕 야빈과 친한 켄족 지도자입니다. 그런데 이 헤벨의 아내 “야엘”이 이스라엘의 승리에 공을 세운 겁니다.
본문 23절엔 메로스에 대한 저주, 24절엔 야엘을 축복하는 매우 대조적인 장면이 눈을 끕니다.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모든 인간의 역사가 하나님의 계획 아래 있다는 겁니다.
1. 우리들의 역사, 하나님의 계획가운데 있습니다.
가나안 정복 후 미처 다 정리되지 못한 대적 가운데 시스라가 이끄는 막강위력의 기갑부대 철병거 9백을 가진 야빈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군대 1만명이 소집돼 아직 덜 접수한 야빈왕의 나라를 쳐들어갑니다. 이때 시내산에서 천둥번개가 무섭게 치고 비가 오자 이스라엘인은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 힘을 내는데 시스라군대는 폭우에는 힘을 못쓰는 철병거로 전세가 악화돼 시스라총지위관은 평소 친절히 지내며 극진히 대하던 헤벨의 집으로 철병거를 버리고 걸어서 도피합니다. 얼마나 힘드시겠냐며 엉긴 우유를 주자 마시고 깜빡 잠이 듭니다. 야엘은 시스라의 머리에 쇠말뚝을 박아 죽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일이 하나님께서 이미 작정하시고 드보라를 통해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4:9절을 함께 읽습니다. “이르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번에 가는 일에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 야엘은 남편과 함께 민족의 압제자들과 가깝게 지내던 중 그 적장을 자기 손으로 죽인 겁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방법으로라도 반드시 이뤄집니다.
그렇습니다. 민족이나 가정이나 개인의 역사가 알고보면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 안에서 이루시는 일들을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예고하신다는 것도 우린 잊지 않아야 합니다. 구약에는 주로 선지자나 사사, 그리고 제사장들을 통하여 예언하셨습니다. 오늘날 은혜의 시대엔 예배와 성경을 통해 그 외 여러 경로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교통사고로 칭칭 감고 누워서도 감사할 수 있는 건 뭡니까? 한 사람은 죽었고 또 하난 식물인간으로 벌써 몇 달째라는 그것 때문입니까? 이런 건 내려다보며 살라는 세상의 교훈입니다.
그렇면 성도의 기쁨과 행복은 어디 있습니까? 아무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택함 받았다는 기쁨입니다.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내 이름이 있어 천국에 예약이 돼 있다는 이 사실 하나가 소망입니다. 저렇게도 예쁜데, 저렇게도 똑똑한데, 저렇게도 잘나가는데, 저렇게도 많이 배우고 건강한데. 그런데 넌 지옥이고 난 천국이라는 사실, 놀라운 영적인 각성으로 기죽지 않고 감격하는 저와 여러분이기 축복합니다.
5장23절을 함께 읽습니다. “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에 메로스를 저주하라. 너희가 거듭거듭 그 거민을 저주할 것은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치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니라.”
2. 메로스를 저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메로스는 이스르엘평지에 있는 한 고을의 이름인데 여기 살고 있던 야벳 길르앗거민들이 하나님 앞에 불충한 일이 있었습니다. 야벳길르앗거민들은 시스라가 이끄는 야빈왕의 철병거군대가 승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스라엘 연합군에 가담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을 돕지 않은 범죄를 합니다.
메로스를 저주하시는 하나님. 메로스는 오늘 날 어떤 모습으로 우리곁에 감쪽같이 숨어있습니까? 메로스는 일신상의 영달을 위하여 몸을 사렸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나서야 할 때 자신의 불이익을 염려하며 몸을 숨긴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대적을 더 의식하고 두려워했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 12제자 모두 메로스가 되었습니다. 베드로마져 그렇게 되었습니다. 극도의 예민한 환경에서 대부분 무너지고 맙니다. 순교란 무너져야 마땅하다고 보이는 거기서 끝내 무너지지 않고 몸을 바치는 것입니다.
몸을 드리는 동시 영이 영화를 입는 것입니다. 몸은 잠시지만 영혼은 영원한 안식과 영광을 얻게 되는 것이 순교입니다.
메로스를 거듭거듭 저주하라고 하신 하나님은 당신을 도와 대적과 싸운 공적을 결코 무시하지 않습니다. 거듭 은혜를 내리시고 각종 선물을 끊임없이 내리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손에 뭐가 없겠습니까? 부요하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십니다. 그 하나님 여호와께서 악한 것들과 이미 이기기로 작정된 싸움을 싸우실 때 이스라엘 편에 서지 않고 비겁하게 숨어있던 자들을 거듭거듭 저주하라고 오늘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시면 지체없이 일어나 도우시기 바랍니다. 명령을 받는 자는 반문하지 않습니다. 명령에 복종하기로 결단한 자는 왜 접니까? 라고 묻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질문하는 자는 늘 명령을 피해 보고 싶은 자들입니다. 명령 앞에서 계산하는 자들입니다. 명령권자와의 관계보다는 눈에 뵈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어디 있다고 했습니까? 소유가 아니라 관계라고 했습니다.
야엘은 시스라장군이 패주하여 헐떡이며 찾아들었을 때 순간적으로 관계의 커다란 틀을 생각했지만 메로스처럼 이스라엘을 등지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을 등지지 않은 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등지지 않았다는 걸 뜻합니다. 아마도 그동안 이스라엘을 등지고 대적들과 친교했던 날들을 기억해냈을 겁니다. 그녀가 어떤 생각을 했든 드보라를 통한 예언대로 가나안은 패했고 가나안의 장군 시스라는 여인의 손에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운동은 땅에서 벌어지는 하늘의 전투입니다. 인류가 있는 한, 이 안 뵈는 전투는 계속됩니다. 아직도 우리에겐 충성할 기회가 많습니다. 야엘의 복과 메로스의 저주는 하나님이 인간 앞에 두신 두개의 길입니다. 어떤 쪽이든 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끊임없는 전투 중 세상이 두려워 메로스가 될 것인가, 아니면 야엘이 되어 누구든지 부를만한 노래의 주인공이 될 것인가? 살아계신 하나님 편에 서서 생명이라도 드릴 결단으로 충성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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