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7. 주일설교(렘9:23~24. 자랑할 일)
인류의 문명과 문화창달은 밀양아리랑을 부르면서 여기까지 왔다고 설교한 게 기억납니다. 동지섣달에 꽃본 듯 제발 날 한번 좀 봐달라며 인간은 온몸을 던져 인정받기 원합니다. 남보다는 더 뛰어나 돋보이고 싶은 간절함에 밤새워 연구하고 노력하여 지금의 편리한 생활이 이뤄졌고 원시인의 야만성이 갈고 닦여 제법 그럴싸한 신사숙녀의 외양을 갖추고 문명사회를 누리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 말은 과거 자유당 독재시절 힘없는 민초들의 입에서 나오던 푸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은 그리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아래 사람 있는 게 분명하기 때문이지요. 격이 다른 게 보이는데 어쩝니까?
벧후 2:12절에는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해 태어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고 그들의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한다고 합니다.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니고 짐승만도 못한 이들을 지적합니다. 여러분, 사람과 짐승이 다른 게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게 뭡니까?
짐승은 짝을 찾아 자손 번식하고 밤낮 헤매며 먹이 구해 다투고 살아남기 위해 내편인가? 아닌가? 그것만 봅니다. 인간과 뭐가 다릅니까? 영입니다. 사람은 영이 있어서 창조주를 의식하고 엎드릴 줄 압니다.
사람을 생물학에서는 고등동물이라고 합니다. 동물인데 우수한 품종이라는 거지요. 그런데 인간에게는 그 품종의 우열이 있고 급과 격이 다릅니다. 유럽인들과 아시아계열은 등급이 다릅니다. 건강, 지능 분명히 다릅니다. 그래서 우수민족과 하위민족이 눈에 보입니다. 인정해야 합니다. 한 배에서 나온 형제도 다른데 어쩔 수 없습니다. 건강, 인물, 재주, 지능과 성품 등, 어쩔 수 없는 태생적 차등입니다. 참 불평등합니다.
우릴 창조하신 자비하신 하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잠언서를 많이 읽기 권합니다. 무릇 구할 것 중 지혜를 구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참 지혜는 무어라고 했습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거룩한 분을 아는 것이 명철이라고(잠9:10) 합니다.
우리 하나 묻고 가야 합니다. 수백억 빌딩과 지혜 중 하나만 택하라면 어떤 걸 택해야 합니까? 저는 지혜를 택하겠습니다. 지혜가 없어 빌딩도 천문학적 재산도, 건강도 관계도 모두 잃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억대를 웃도는 고급승용차가 헐값에 나와 그걸 소개해 먹고 사는 이에게 들은 이야기는 별천지 이야기였습니다. 강원도 슬롯머신 파친코 호텔에는 가막힌 사연이 많습니다. 그 외에도 처음부터 흙수저였으면 살았을 사람이 금수저였다가 지혜가 없어 곤두박질하니 자신의 생명도 저주하다가 끝내는 마지막 선택을 하고 원망과 비난 속에 떠난 여러 명을 저는 보았습니다. 다음에 신명기 4:6절, 외우면 좋습니다.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며”
지켜 행하면 그게 만민 앞에 지혜와 지식이니 곧 하나님 경외함을 행함으로 증명하면 반드시 많은 이들에게 존경 받는 자가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린 그간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손에는 없는게 없고 없는 사람도 없다고 들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면 내게 절실한 무엇을 주님 손에서 받고 싶은가? 수도 없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 모든 것을 더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마6:33) 그 모든 것 안에 들지 않는 어떤 것도 없다는 것 인정하고 아멘입니다. 여기서 오늘 말씀의 주제를 봅니다. 주님 나라를 원하는 순서에 지혜가 밑바탕이 되어야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십시다.
주님 나라를 구할 때 자기 욕심에 가려 잘못 구하면 마귀들이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신천지 집단, 통일교 등 많은 이단들이 가정을 파괴하고 인생을 무너뜨려 사회적으로 물의를 꾸준하게 일으킵니다. 이들이 꾸란이나 불경으로 그렇게 하지 않고 성경을 붙잡고 타락한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갈1:8절에서 바울사도는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우리가 전한 이 복음 외 다른 것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거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바로 깨닫고 순종하게 해달라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할 이유가 너무 분명합니다.
지혜를 사모하고 간절히 구하기 바랍니다. 명철을 간절히 구하기 바랍니다.
지혜는 지식정보를 응용하는 힘이고 명철은 그것을 밝히 살펴 분명하게 하는 의지까지 말합니다.
다음은 오늘 설교제목처럼 지혜의 왕이며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오늘 읽어 올린 성구 중 23절입니다.
렘9:23 여호와께서 이와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축약한다면, 자신에게 있는 알량한 지혜, 그리고 재산과 용맹함도 자랑해선 안 되는 이유로 그건 참 지혜도, 참 용맹도 아니고 날아갈 재산과 재물도 결코 자랑거리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기억납니다.
자기 안에 참으로 선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 비로소 선은 시작되는 것이다.
자기 안에 참으로 지혜가 없다고 느끼는 순간 비로소 지혜는 시작되는 것이다.
자기 안에 참으로 믿음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 비로소 믿음은 시작되는 것이다.
델포스의 신탁 이후 소크라테스는 여타의 소피스트들에게 참된 지혜는 “자신이 모르는 게 많음을 아는 것”이라고 지적함으로 미움을 받기 시작해 결국 사약을 받고 의연하게 떠납니다.
그대들은 모르는 걸 안다고 착각하나 나는 모르는 걸 모른다고 했는데 델포스의 신탁이 그걸 내게 말했다.
24절,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자랑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사람이 살며 뭐든 자랑하지 않으면 정신적인 포만감이 없습니다.
뭐든 자랑해야 에너지 충전이 되는데 영특해진 현대인들은 아주 교묘하게 자랑합니다. 그러나 더 영악한 상대방이 다 꿰고 있어 분위기가 망가집니다. 그래도 의젓한 척하며 모두 자랑거리를 찾습니다.
얼굴은 우아하게 연출하지만 속은 끓고 있고 머리는 고속으로 회전합니다.
성경말씀은 자랑하려면 자기자랑의 함정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을 자랑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일들을 자랑하면 사실 자랑할 거 다 자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빙자해서 은근히 상대방 기를 죽이면 그건 약아빠진 자기 자랑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 지혜가 필요하지요.
무엇을 어떻게 자랑해야 할지, 그리고 여기가 그런 자랑의 간증을 해도 되는 자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2년 재수했는데 또 낙방한 집에 심방가서 내놓은 기도제목이 합격한 아들이 장학생이 되게 해 달라고 자못 서글픈 표정을 짓는 그런 엄마를 봤습니다. 분위기가 대번에 싸해졌습니다.
어떻게 자랑해야 합니까?
1) 상대방을 배려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지금 자신이 하는 하나님 자랑이 상처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차이는 있어도 사람은 누구나 배앓이 체질입니다. 남이 잘되는 거,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것, 반갑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과 직접 관계된 일을 통해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 가능하면 삼가야 합니다.
꼭 해야할 경우에는 바울사도의 화법을 참고하면 좋습니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이”
그래서 자신이 매우 부럽게 여기고 그런 기도와 행함을 따라하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마무리 합니다.
신선한 도전을 주는 겁니다. 그것입니다. 신선한 도전과 용기를 주는 하나님의 자랑거리,
2) 하나님 자랑은 듣는 이들이 함께 감동하도록 해야 합니다.
누구는 그랬다더라, 그런데 넌 거기서 꼭 넘어져요가 아니라, 나도 해봤는데 너무 힘들었어, 건강한 나도 그런데 너야 오죽했겠어. 나라면 일어나지도 못했을 거야. 대단해 그래도, 우리 한번 다시 해보는 게 어떨까? 함께 그 자리로 가야 합니다. 실패한 그 사람의 자리에 가서 함께 주저앉아 함께 울며 하나님을 자랑하면 좋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일에서도 하나님은 여러분이 당신을 세상에 자랑으로 알리기 원하십니다.
중요한 일은, 모든 일에서 자신을 자랑하고 싶으면 먼저 그런 자랑거리를 주신 주님을 떠올리셔야 합니다.
우리가 한 일은 사실 없습니다. 건강과 지혜와 환경을 거기까지 인도하신 주님만 자랑하는 게 맞습니다. 우리가 먼저 주님 자랑하면 주님은 우리를 세상에서 높이십니다.
우리가 어리석게 자신을 자랑하면 주님은 하실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시기 질투로 돌아 오지만 주님이 하시면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영광으로 돌아오는데 듣는 이들이 함께 행복해집니다. 그것뿐만 아닙니다.
우리의 자랑은 감정으로 연결되고 주님이 우릴 높이시면 그건 감동입니다. 잊지 않기 바랍니다.
또 시작된 한 주간입니다. 주님을 어찌 자랑할까 기도로 여쭈며 복된 출발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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