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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21.10.03. 주일예배<히10:32-39. 인내의 충분한 이유>

by 설렘심목 2021. 10. 3.

2021.10.03. 주일예배<10:32-39. 인내의 충분한 이유>

일명 사랑의 장이라고 하는 고전 13장은 사랑을 말할 때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와 시기하지 않음, 자랑치 않음, 교만치 않음, 무례하지 않음, 이기적이지 않음, 성내지 않음,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음,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는 것으로 정리합니다. 그런데 사랑은 그 시작을 오래 참는 것으로 시작해서 사랑은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견디는 것으로 세 번을 겹쳐 강조함므로 사랑의 3겹을 인내의 줄로 묶고 있습니다. 오늘은 인내의 믿음으로 이루는 하늘의 큰 상과 받을 약속이 그 주제입니다. 본문 전에 26절에서 31절은 예수그리스도의 흘린 언약의 거룩한 피를 무시(29)하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는 큰 벌을 받는다고 분명히 경고합니다. 한편 본문 35-36절은 우리가 인내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 받게 될 큰 상과 약속을 선언합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큰 상과 약속은 어떻게 이뤄져 갑니까?

 

1. 믿음으로 이루는 인내입니다.

본문 32절에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고 합니다. 당시의 상황은 매우 긴박했습니다. 자신의 생명은 물론이요, 온 가족의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심각하고 두려운 환경이었습니다. 잡혀가면 최소한 조롱당하고 매 맞고 채찍과 돌에 쓰러집니다. 지금처럼 이렇게 편안하고 풍요로운 환경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참혹한 일들이 일상처럼 일어나고 있던 때였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평화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특별히 신앙으로 고난 없이 거저 받은 구원을 감격하는 일은 어찌 보면 초대교회 시절보다 어려운 일일 겁니다. 핍박 없는 이 시대에 우리는 우리가 받은 구원이 실감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위협을 당해 본 사람은 죽음과 죄악에서 구원받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크고 감사한 일인지 절감하게 됩니다.

 

종교개혁 때의 일입니다. 독일에서 20세의 한 청년이 잡혀서 모진 고문을 당하는데 양팔을 벌려 십자가에 묶은 채 앞에 굶은 사자를 풀어놓았습니다. 청년은 태연하게 기도합니다. 사자는 으르렁거리면서도 막상 덤비지 않았습니다. 다시 형집행자가 성난 황소를 그 앞에 풀어놓고 황소머리에 뜨거운 물을 끼얹었습니다. 흥분한 소가 이리저리 뛰고 곧 덤빌 것 같이 앞발로 흙을 연신 파 제쳤으나 기도하고 있는 청년에게 이상하게도 가지 않았습니다. 형집행자는 결국 그에게 칼을 내려 피부를 베끼고 목을 베어 강물에 던졌습니다. 그는 그러나 죽기 직전까지 찬송을 웅얼거렸습니다. 34, 35절을 읽습니다.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험한 고통을 이길 힘이 어디서 옵니까? 믿음입니다. 무슨 믿음입니까? 더 낫고 영원한 산업이 있는 줄 아는 믿음입니다.

 

예전에 근로자재형저축이라는 게 있었지요. 급료에서 많이 떼면 뗄수록 기뻐합니다. 이율이 높고 정부에서 지원이 나와 몇 년 뒤 목돈으로 받을 때는 소홀치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후에 보장이 확실하고 후한 것은 더 내지 못해서 안타까워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 말씀은 복음입니다. 약속 있는 복음입니다. 복음의 총결산은 천국입니다. 은행이 무너지고 나라가 망해도 주님 나라 천국은 망하거나 사라지지 않고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 놓이고 기쁜 삶을 끝도 없이 사는 겁니다. 그리고 그 중간결산은 이 세상에서 현실로 늘 증거되고 예표되는 행하는 믿음의 삶입니다. 믿음은, 다시 한번 선포하건대 진정한 의미의 능력입니다. 기쁨입니다. 환경을 이기고 하나님을 노래하는 삶입니다. 그런데 그 복음을 위해서 우리가 희생하고 인내해야 하는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 곧 영생하시는 하나님과의 연합, 천국의 영생을 우리가 믿고 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이 출중한 사람은 잘 인내합니다. 인내가 헛되지 않음을 알고 도리어 기뻐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인내할 능력이 생깁니다. 36절입니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2. 인내함으로 주의 뜻을 행한 후 받는 약속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이뤄야 하는데 반드시 인내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렇게 인내로 이룬 순종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비결이 됩니다. 우리주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무서운 고통을 끝까지 인내하여 영광의 면류관과 모든 권세를 받으셨습니다. 그를 믿는 자마다 죄에서 살려내시는 구원의 언약을 이루신 겁니다. 세상을 이기고 세상을 구원하신 이 예수를 바라보시기 축원합니다. 3:2절에도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권면합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인내, 그 능력이 십자가에서 공급되어야 합니다. 온전한 인내를 이루려면 먼저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분을 끊임없이 묵상하며 닮아가야 합니다. 그분 안에 인내가 있습니다. 인내 끝에 승리와 약속이 있습니다. 주님은 성취된 약속의 표상입니다. 십자가의 도를 깊이 묵상하시고 여러분의 것으로 삼기 바랍니다. 거기 모든 해답이 있습니다.

 

3. 담대함으로 얻는 큰 상입니다.

예로부터 믿음의 거장들은 한결같이 세상 앞에서 담대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028절을 함께 읽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분을 두려워하라.” 정녕 주님을 높이고 두려워하면 세상이 작아 보입니다. 세상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세상이 두려워지고 사람이 두려워집니다. 환경 앞에 떱니다. 죽음 앞에 떨게 됩니다.

영생이 없는 자들에겐 육신의 끝이 모든 것의 끝이기 때문에 앞이 깜깜한 겁니다. 보이는 세상이 모두인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이 세상에서 결론을 찾아야 기에 백 평생이 짧아 허덕이고 초조하고 급하기 짝이 없습니다. 남을 해치고서라도 자기 손아귀에 모든 것을 쥐어야 합니다. 천국과 지옥심판이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무서운 불감증입니다. 영적인 눈이 감겨 안보이니 낭떠러지도 모르고 갑니다. 감각이 죽어서 막가는 겁니다. 이것은 죽은 자의 비참한 몸부림에 불과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담대함을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인한 담대함은 천국을 소유한 자만이 가능합니다. 하나님과 그의 나라에 대한 감각이 예민해지기 소원하시면 주께서 영적 감각을 주셔서 말씀이 꿀처럼 다가옵니다. 말씀 안에 들어가면 세상을 잘 참을만한 이유를 알게 되고 그러면 참을만한 힘이 생깁니다. 이 부분은 설교 때마다 강조해도 부족합니다. 아무 소망도 없이 그냥 참으라고 하면 그건 답이 아닙니다. 지난 설교가 생각납니다. 달리기에서 넘어져 무릎에 피가 나도 웃는 아이는 집에 가면 기다리는 생일선물이 있어서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짜증나는 일에도 싱글벙글하는 청년은 며칠 전 뜻하지 않은 유산을 받아 상속세 통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동생뻘 되는 부장이 갑질을 해도 , ~” 너그럽습니다.

요즘 자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겼나? , 우리는 말로도 다하지 못할 기가 막힐 좋은 데로 갑니다.

 

믿음으로 인내를 이루라는 본문을 마음에 새기기 전에 선제되는 팁을 하나 드립니다. 참을 만한 것을 인내하세요. 참아서는 안 될 때 참고 참아야 할 일에 담대하면 안 됩니다. 지혜와 분별의 능력이 먼저입니다. 지혜부터 구하시고 이어 인내할 믿음을 구하시면 참기 어려운 것을 참을 이유와 참는 능력이 옵니다.

인내함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시면 넉넉히 받게 되는 약속 안에 없는 게 없습니다.

 

그 약속은 큰 상급이 있는 약속입니다. 약속의 주님을 깊이 생각하시고 그분과 깊은 교제가운데 기뻐하는 믿음의 삶을 나누시고 누리시기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