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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21.06.13.주일예배<행16:19-34. 한밤중에 올리는 찬미>

by 설렘심목 2021. 6. 14.

2021.06.13.주일예배<16:19-34. 한밤중에 올리는 찬미>

예수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람의 형상으로 보여주신 유일한 당신의 모습이이며 아울러 예수님은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세상 모든 만물 중에 가장 복된 소식입니다. 오늘 설교는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히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바울과 실라는 어떤 점쟁이 귀신이 들린 여종을 고쳤는데 이 일로 그 여종의 주인은 갑자기 돈벌이가 사라지자 바울과 실라를 고발합니다. 그렇게 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에게 한밤중 기적이 나타납니다. 어떤 일입니까? 본문 22~25절까지 함께 읽습니다.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죄수가 탈옥하자 자결하려던 간수가 바울과 실라 앞에 무릎 꿇고 그 가정이 구원받아 세례를 받는 내용으로 전개됩니다.

바울과 실라로 하여금 밤중에 찬미하게 한 평강의 능력, 지진으로 옥터를 흔들어 매었던 결박을 푼 권능의 근원은 무엇인가? (11:37~38a)“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동행으로 드러나는 능력,

 

1. 세상이 받지도 못하고 이기지도 못하는 복음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전한 복음은 어떤 것이기에 복음을 전할 때 이런 기적이 나타났을까? 20~21절입니다.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로마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그렇습니다. 복음은 세상의 죄를 흔들어 깨울 때 요란하고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이라 모두 외면합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는 참 빛이신 창조주가 세상에 오셨는데 세상이 그를 알아보지 못했고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죄는 자신의 더러운 정체를 감춰주는 어두움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수치를 드러내는 빛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복음은 세상을 비추는 예수그리스도의 빛이며 예수그리스도는 복음입니다. 어느 곳이나 교회건축이 시작되면 주변에서 민원부터 넣고 봅니다. 반대할 특별한 이유도 없이 교회는 싫다는 겁니다. 그런데 절이 들어오면 조용합니다. 스스로도 모른 채 어두움은 같은 아류, 어두움에 저항하지 않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전하는 복음을 알지 못할 뿐더러 주변의 모든 무리와 함께 일어나 고소하고 옷을 찢어 벗기고 흠씬 때려 옥에 가두게 되는 이유입니다.

 

22~23절입니다.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자신들을 깨워 죄를 알게 하고 빛으로 돌아오게 할 복음을 어찌하든지 가로막아서 죄의 상태를 유지하려 합니다. 죄의 활동, 악한 영의 활동, 복음을 방해하는 사단의 활동입니다. 본문 증거처럼 악한 영들의 활동은 늘 적극적입니다. 빛을 피해 숨는 것을 넘어서 빛의 소식을 전하는 자들을 가두고 복음을 방해합니다. 예수를 모르고 예수께 저항하는 영적인 무지는 그게 얼마나 무서운 범죄인지도 모르면서 많은 영혼을 병들어 아프게 하며 질식하게 합니다. (종교뿐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분야에 고루 침투한 악한 정체들)

 

2. 묶였던 종들을 자유하게 하는 복음입니다.

 

24절에 보니 바울과 실라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다.”고 했습니다. 25절을 함께 읽습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사람들, 예수의 영이 충만한 자들은 고통이 깊은 가운데서도 여전히 예수그리스도를 찬송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감사하며 그 이름을 높여드리는 일에 주저함이 없습니다. 그분의 약속을 믿어 의심하지 않을 때 현재의 고난이 결코 그들의 믿음을 누르지 못합니다. 결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바울과 실라는 사슬에 묶여서 밤중에 예수님을 찬미합니다. 시편 119:62에서 다윗은 노래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밤중에 일어나 주께 감사하리이다.”바울과 실라의 찬미는 환경을 이기는 신앙고백입니다. 발은 묶여 있고 내일을 보장할 수 없는 풍전등화의 생명이지만 그들은 주님을 노래했습니다.

 

1985년 미국 테네스 주() 메이슨이란 마을에 탈옥수가 새벽 2시가 넘어 실탄이 장전된 총을 들고 한 가정에 침입했습니다. “꼼짝마.” 남편 나단은 덜덜 떨고 있는데 아내 루이즈는 탈옥수에게 친정식구를 만난 듯 상냥하게 웃으며 말합니다. “무거운 총은 내려놓으시고 거기 좀 앉으시죠. 시장하실 텐데 아침식사부터 먼저 하십시다. 상을 차릴 동안 조금만 기다리세요.” “내가 무섭지 않아? 이 총은 장난감이 아니다.” 버럭 소리를 지르자 루이즈부인은 다시 태연하게 말을 받았습니다. “난 예수를 믿어요. 언제 죽어도 천국을 간답니다. 그래서 죽으면 영원히 사는 곳에 가기 때문에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탈옥수는 부인이 들려주는 예수소식을 7시간이나 들었습니다. 모든 복음을 들은 뒤 오전 10시에 그는 제 발로 걸어서 교도소로 돌아가서 자수하였습니다.

 

절망의 한밤중에 노래했던 바울과 실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해가 저물고 밤이 찾아옵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인생의 밤, 역경과 고난과 슬픔이 찾아옵니다. 25~26절을 다시 읽습니다. “한밤중에 (고통가운데)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세상)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근본 마음 문이 열리고)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묶였던 마음의 모든 것이) 다 벗어진지라.”“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8:32)

본문에서 우리는 바울과 실라의 자유를 통해 스스로를 증거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위로부터 주시는 편안한 마음이 바울과 실라로 하여금 환경과 무관히 하나님을 찬미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실라를 위로하시며 거기 함께 계시는 하나님의 영이 영광중에 옥터를 흔들고 문을 열고 모든 사람의 묶인 것을 풀어 주셨습니다.

58:6절입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알량한 자존심의 결박, 체면이라는 멍에, 열등감과 명예심의 결박, 시기심과 분노의 멍에, 상실감과 무서운 욕구의 멍에, 비교되는 행복수치의 압제, 뜻대로 되지 않는 경제의 압박감, 생업현장에서 피할 수 없는 눌림,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부터의 결박,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의 통증, 생노병사와 오욕칠정으로부터의 묶임, 끝없는 육신의 멍에와 결박들. 우리의 몸을 이런저런 사슬로 묶어 꼼짝 못하게 하는 세상으로부터 예수의 이름으로 먼저 영혼의 자유자가 되시기 축복합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실존을 믿으면 그 모든 압제와 결박과 멍에로부터 온전한 자유자가 되는 줄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3.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복음입니다.

 

27~31절까지 함께 읽습니다.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으리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죄수를 지키던 교도관이 자다 깨어 옥문이 열리고 죄수들이 안보이자 그만 놀라 자결하려 했습니다.

복음은 생명을 살리는 힘이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을 만난 자마다 그리고 우리 중 누군가 복음에 점령을 당한 사람이라면 그를 만나는 자마다 생명이 살아나는 것이 마땅합니다. 바울을 만나 자결한다면 바울의 복음은 복음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 안에 있는 복음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복을 받고 생명을 구할 것을 믿습니다. 우리를 만나 죽어나가는 것은 오직 악한 옛 자아요, 사단의 꾀요, 마귀의 졸개들뿐입니다.

칼을 빼서 자결하려던 간수, 눈앞에서 벌어진 엄청난 사건, 뭔가 알 수 없는 큰 위력에 눌린 교도관은 바울과 실라 앞에 무릎을 꿇고 선생들,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겠소?” 겸손하게 묻습니다. 31절입니다.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하고

구원의 대상은 늘 너와 네 가정입니다.

 

본문에서 복음은 옥터를 흔들어 매였던 결박을 풀고 교도관과 그 가정을 향해 확산됩니다. 복음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활동이며 예수그리스도는 복음의 실존입니다. 살아계신 그리스도는 끊임이 없이 바람을 타고 번져가는 산불처럼 땅끝까지 번져가는 복음입니다. 세계인류사 가운데 많은 민족이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많은 이념과 사상과 종교가 일어났다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굶주린 사자 앞에 던져졌어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예배당에 가두고 불태워도 하나님의 거룩한 집회와 백성들은 영원합니다. 주께서 약속하신 재림의 그날까지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각각 맡겨진 대로 구원과 전도와 선교의 사명을 잘 감당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가정은 하나의 작은 세포교회입니다. 거기 찬송이 그치지 않고 생명되신 복음의 선포와 감사와 기쁨과 간절한 기도가 늘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할 것입니다.

 

주께서 생명을 던져 사랑하신 저와 여러분.

죄악된 세상은 알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는 복음, 각종 죄악의 흉악한 결박과 압제와 멍에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복음,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구원의 복음이 이제는 우리 앞에 가슴 설레는 평생의 소망과 사명으로 서있습니다. 이 기쁜 소식 복음을 붙잡고 예수그리스도의 소식을 감동으로 전하는 모두가 되시기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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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4: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1) 예수그리스도 외엔 구원이 없습니다. 혹 자신의 믿음이 변변치 못하다고 여겨지면 절개하나로 나아가기 바랍니다. 열심보다 절개가 더나은 믿음입니다. 24:47절에 또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에 증인이라.”

 

2) 예수를 믿어야 죄문제가 해결되고 죄 문제가 해결되면 예배할 수 있고 인간은 반드시 예수의 이름으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얼굴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모든 답을 손에 쥐고 계시고 천국과 음부의 권세도 갖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면 가장 탁월한 삶이 시작됩니다.

1: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증거합니다.

 

3)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6:23절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라.” 하나님은 영생하시는 창조주이시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육체가 떠나도 죽음과 무관한 영생을 살게 됩니다. 믿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끝으로 예수를 믿어야 하는 이유를 간단히 정리해봅니다.

예수그리스를 믿어야 하는 이유는 지극히 단순합니다.

(1)예수그리스도가 창조주의 나타나심이었습니다.

(2)예수그리스도가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3)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인류의 구세주십니다.

(4)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