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18.주일설교<왕상 19:1-8. 광야에서 만난 로뎀나무>
이세벨을 피해 브엘세바로(1-3) / 로뎀나무 아래 통곡(4-7) / 하나님 앞에 죽기를 간구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천사가 와서 깨운 후 숯불에 구운 떡과 물을 먹고 힘을 얻음. / 호렙산으로 (8-18) 40일을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가서 한 굴에 거함. 거기서 "다메섹의 하사엘과 예후와 엘리사에게 각각 기름을 부어 아람왕과 이스라엘의 왕과 자신의 후계자로 세우라는 명을 받음.
사막광야하면 나무와 풀과 물을 보기 힘든 데다 낮엔 불볕더위와 밤에는 살을 파고드는 찬바람으로 인간이 적응하기 힘든 허허벌판입니다.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의 칼을 피해 광야 길을 정신없이 달려 간 엘리야선지자는 한 로뎀나무 그늘을 만나 거기서 하나님께 죽기를 간청합니다. 그랬더니 주께서 누군가를 보내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을 주며 일어나 길을 가라고 합니다. 바알선지자 850명을 갈멜산의 전투에서 모두 죽이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승리를 분명히 경험한 선지자도 생명의 위급함에 지치니 진심으로 죽기를 하나님께 간청하는 장면을 보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아무리 능력 있는 사명자고 해도 하나님이 돕지 않는다면 인생은 늘 지치고 늘어지는 풀과 같은 존재로 보면 됩니다. 우리 인간들에겐 그래서 끊임없는 하나님의 공급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엘리야가 공포와 절망의 광야 길에서, 누워 쉴만한 로뎀나무를 만난 것은 얼마나 큰 선물입니까?
이젠 족하오니 그만 죽기를 원한다던 엘리야, 하나님의 공급으로 마지막 사명을 지시받습니다. 참으로 무미건조한 사막 같은 인생길을 가다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시작된 우리 성도는 무엇으로 삶의 의미를 찾고 무엇을 바라보며 또 주리고 지쳐 외로울 때 무엇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는가?
오늘 본문에서 엘리야가 달려 간 광야 길과 거기서 만난 로뎀나무와 떡과 물은 고달픈 인생길을 가는 나그네와도 같은 우리에게 몇 가지를 교훈하며 위로하고 있습니다.
1. 인생은 광야길입니다.
광야엔 신선한 초목 대신 견디기 힘든 더위와 추위가 있습니다. 의지할 데가 없는 광야 길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광야 길은 끝없는 훈련제목이 있어서 우리를 성숙하게 합니다. 무릇 훈련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고통의 연속이지만 훈련 끝에 주어지는 말할 수 없는 영광과 기쁨이 있습니다. 훈련소에서 한 사람의 청년을 군인으로 만들려면 필요한 소정의 교육과 훈련을 거쳐야 합니다. 훈련은 늘 상벌과 휴식과 위로거리를 마련해 둡니다. 잘하면 표창과 포상휴가가 있고 죄를 지으면 헌병대감방에 갑니다. 인생도 같지 않습니까? 성실하게 잘 훈련된 젊음이 비록 고통 속에 성장해도 후반부에 가면 귀하고 아름다운 결실을 상급으로 갖게 됩니다. “젊음은 선물이지만 노년은 작품”이란 짧은 글귀를 대문글로 오랫동안 걸어놨던 적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인생을 나그네로 보지만 세상에서는 인생을 보통 살얼음판이라고 합니다. 고대중국의 고은도 인생을 고해, 고통의 바다라고 했는데 저는 오래 전 인생을 지뢰밭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은 너무 연약하고 부족하여 누군가를 의지하고 신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의지하는 대상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묻게 됩니다. 인생의 답이 어려울 때 어딜 바라봐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십자가입니다.
우리교회 1층 들어오면서 늘 보았던 현수막 글귀, 기억납니다. “인생은 목마름, 길은 하나.”
다른 것은 두 가지 세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 곧 참된 이치는 하나입니다.
그 진리를 전하는 소식은 복된 소리, 즉 복음입니다. 그리고 복음은 예수그리스도신데 그리스도, 메시야는 골고다 해골의 골짜기에서 십자가로 사랑의 본질을 제시하였습니다. 만민에게 제시된 십자가, 반드시 죽어야만 다시 태어난다는 그 나무십자가,
2. 십자가는 광야에서 만나는 로뎀나무입니다.
로뎀나무 그늘 밑은 우리 삭막한 세파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거긴 경험한 자만이 알 수 있는 진정한 쉼이 있고 맡겨놓는 의뢰, 편안함과 절대 안전이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주님 말씀은 믿고 받아들일 때 복과 생명이 되지만 관심 없이 흘려버리면 묻혀있는 보배입니다.
오늘날 교회마다 건물에 십자가를 올려 표시합니다. 그렇게 광야 같은 세상에서 정녕 쉴만한 로뎀나무 아래 시원한 그늘, 교회로 오라고 하지만 광고가 무색하게 교회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인류역사는 시대로 구분하고 그 시대에 맞는 정치사회 등 총체적 바른 정신을 시대정신이라고 합니다. 시대정신을 정권이 누르면 보시다시피 불행한 나라가 됩니다. 그렇다면 모든 시대를 뛰어넘어 아우르고 이끄는 초월적 시대정신은 가능한가? 어떤 시대에도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는 복음입니다.
우리는 물질만능이 인간을 정복한 문명시대에 자기를 잃어버린 자기상실시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내가 누군지 자기실존의 철학이 없이 생활에 쫓기다보면 어느새 노인이 되어 있습니다. 로뎀나무 십자가를 말해도 당최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툇마루에 앉아 먼 하늘만 봅니다.
먹고 사느라 정신없이 달려와 아이들이 어느새 다 자라 부모와 함께 있기 싫어할 때쯤 거울에 비친 중년의 얼굴, 노인의 모습, 이거 내가 대체 누구지? 늙을 준비하기도 전에 잠시 지나간 청춘, 정말 붙들 것을 붙들지 못해 허망한 세월을 절감합니다. 여러분, 잘 들으셔야 합니다. 다 잃어도 십자가를 붙잡았다면 소망이 있다는 것 믿고 아멘입니다. 그러나 다 가져도 십자가를 아직 잡지 않았다면 지금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은 잠시면 사라지는 허상, 신기루에 불과합니다. 십자가를 잡고 얻은 것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십자가의 선물 그것은,
3. 로뎀나무 아래에 있는 영원한 떡과 물입니다.
숯불에 구운 떡과 물 한 병은 생명을 살리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의미합니다. 이참에 일러드리고 싶은 것은 성찬식의 떡은 그리스도의 삶을 먹어 그대로 닮고자하는 우리의 고백이고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보혈과 희생의 성정인데 죄용서를 위해 흘린 놀라운 증거와 믿음을 먹는 것입니다. “로뎀나무 아래 있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떡과 물”, 교회에는 생명의 떡인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하는 생수가 되어 우리의 영혼을 살려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공경하며 찬양하게 합니다. 그렇게 만복의 근원이신 주님을 잘 믿고 따르면 그 결과 아름답고 성실하고 복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은 다시 험한 광야로 보냅니다. 파송 받은 세상에서 우리는 주님모르고 살아가는 가여운 인생들에게 마지막 위로와 소망이 되어 로뎀의 그늘이 되어 줍니다. 믿음의 연륜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서 그 격을 달리하게 되는데 격이 있는 믿음의 거인들은 주로 베풀고 도와주나 아직 어린 믿음의 사람들은 공급받아 성장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공급자나 받는 자나 모두 세상에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그리스도는 언제나 세상의 유일한 소망이기에 우리도 복음의 전파자로 그렇게 가고 있다는 사실, 오직 감사뿐입니다.
영상예배가족 여러분. 지금도 사람들은 어디를 향하는지도 모르며 허덕허덕 달려가다가 지쳐서 여러분 곁에 덜컥 넘어지듯 몸을 기댑니다. 그때 그들에게 공급할 하나님의 복음과 사랑이 준비되어 있습니까? 절실한 것으로 그들을 위로할 힘이 있냐는 것입니다. 혹 여러분자신이 그렇게 허겁지겁 달려오다가 어딘가 털썩 주저앉아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광야의 나그네는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이렇듯 자신이 엘리야를 어루만지며 일으켜 떡과 물을 먹인 자였던지 아니면 지쳐 누워 자던 엘리야였지 어느 쪽이든 한결같은 우리의 결론은 로뎀나무 그 그늘아래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하면서도 로뎀나무의 그늘 밑을 떠나면 메마른 사막과 황량한 벌판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삶을 서서히 메마르게 해서 통째로 삼길 것입니다. 기도합니다.
아버지, 우리가 겁도 없이 가는 인생길 지뢰밭에서 그 지뢰의 매설도는 주님이 아십니다. 험한 십자가를 놓지 않게 하시고 그 십자가를 떠나면 우리의 삶은 엘리야의 절규처럼 죽음을 간절히 사모하게 된다는 것을 들었으니 뼈에 새기게 하옵소서. 온 세상 마귀가 들끓는 것을 봅니다. 오직 우리의 모든 부족과 연약과 실수를 대신 맡아주시는 주님의 십자가만 붙잡기 원합니다. 험하고 힘든 광야, 힘겨운 세상에서 로뎀나무로 우뚝 서 계신 주님의 십자가아래 우리의 모든 질고와 아픔을 맡겨드립니다. 모두 힘차고 명랑한 믿음으로 지친 이웃을 그리스도께 안내하는 거룩한 길을 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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