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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21년03월28일 주일설교<신1:21(민13:21~14장.) 올라가서 차지하라.>

by 설렘심목 2021. 3. 28.

2021년03월28일 주일설교<신1:21(민13:21~14장.) 올라가서 차지하라.>

 

[늙고 가난하고 볼품없는 강여상의 한마디 한마디에 범상치 않은 깊이를 느낀 서백은 그를 간곡히 권하여 아들 서달의 스승으로 모시게 됐는데 그의 뛰어난 지혜와 인격의 전수로 훗날 서백의 아들 서달은 마침내 주나라의 탁월한 지도자, 무왕이 된다. 무왕의 제후와 재상이 된 강여상이 출세했단 소문을 듣고 가출했던 아내 마씨가 와서 말 앞에 엎드렸으나 복수불반, 즉 엎질러진 물은 도로 담을 수가 없단 말로 거절. 이 강여상의 세월을 낚는다는 곧은 낚시는 강태공의 대표적인 이야기다.]
40년 광야 길을 마치고 비로소 눈앞에 약속의 땅, 기름진 가나안땅이 있습니다. 열두 지파에서 열두 대표들이 다녀왔으나 여호수아와 갈렙만 하나님을 믿고 희망찬 보고를 하고 나머지는 하나님을 원망해서 40일 정탐기간을 기억하라는 40년간의 광야생활이 시작됩니다. 그랬던 게(민13) 엊그제 같은 모세가 늙어 후손들에게 마지막 교훈을 합니다. 그 교훈의 내용이 신명기고 본문은 당시 불평하던 구세대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며 다시한번 올곧은 신앙을 촉구하는 모세의 당부내용입니다.
오늘 설교제목은 “올라가서 차지하라.”인데 무엇을 차지하라는 것입니까? 어떻게 차지합니까? 본문 민13:21을 함께 읽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한즉”
1. 언약의 백성 앞에 약속 그대로 차려놓으신 밥상입니다.
민14:9절엔 불평하고 절망하는 자들을 향해 힘을 북돋는 여호수아의 말이 나옵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1) 차려놓은 밥상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은 그 먹잇감이 이미 약속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사람과 한 약속이 아니라 유일하신 神 하나님과의 약속이라는 사실입니다. 눈에 보이는 먹잇감이 너무 크고 강하게 보여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과 권능이 보이질 않는 불신앙의 백성들에게 여호수아와 갈렙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러나 보이는 것으로 인해 생각이 두려움에 사로잡힌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말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2) 보이는 전쟁은 안 보이는 영적전투의 증거라는 사실을 백성들은 잊고 있습니다.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여호수아의 말은 이 전쟁이 인간들의 싸움이 아닌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보호자들의 겨룸, 즉 이방신과 창조주 하나님과의 겨룸이니 그건 너무 뻔한 결론이니 그 약속을 믿고 두려워말라는 것입니다.
3) 두려워하는 것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에게 있어 공포심이라고 하는 본능적인 두려움은, 믿음으로 어찌 극복하느냐에 따라 순종과 믿음이 될 수도 있고 불순종과 거역이 될 수도 있습니다. 거역은 범죄입니다. 즉 두려움이 범죄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이스라엘백성은 어김없이 지켜지는 하나님의 약속을 계속 경험하면서도 조금만 불안하거나 의심스러우면 즉시 불평하고 두려워하는 범죄에 들어갑니다. 보통 인생들의 일상적인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백번을 고마워하다가 한번이라도 좀 더디거나 기대에 어긋나면 즉시 돌아서서 의심하고 딴 생각으로 배신의 빌미를 찾습니다. 인간의 이런 얄팍한 생각은 비단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인생전반에서 발견되는 서글픈 천박함입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에서 우리 모두 힘을 얻어 깊은 제자도가 성숙돼 정녕 주님보시기에 멋진 신앙인격체들로 한발 나가 어디서든 밝은 빛들이 되시기 축복합니다.
2.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을 올라가서 차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인류창조이후 하나님의 말씀은 조건보지 말고 순종하는 것이 복인 줄 믿으시면 아멘하기 바랍니다.
주신다고 했으면 받아야 합니다. 어떤 때는 완성품을 주시기도 하지만 대부분 우리의 인격을 존중하시는 하나님은 완성품보다는 부품을, 결론보다는 과정, 즉 정답보다는 공식을 주시기 즐겨하십니다. 아버지가 창조주시니 우리도 창의력을 발휘해 같은 부품으로도 등급별 생산이 가능한 세계로 우리 모두 초청하신 것입니다. 가나안땅을 주시겠다고 한 것은 거기 가득한 행복의 부품을 말씀하신 겁니다. 쳐 들어가 싸워 차지하고 밭을 일구고 하나님을 잘 섬겨 바른 나라를 만들어 가는 일은 이스라엘에게 전적으로 맡겨주신 일입니다. 그런데 불신으로 가득한 백성들은 들어가기도 전에 믿음 없이 부정적인 보고만 듣고 밤새 통곡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본문 21절에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라.”고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1) 올라가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보는 것과 올라가서 보는 건 다릅니다. 그리고 올라가서 봐도 믿음으로 보는 것과 믿음 없이 두려움으로 보는 것은 천양지차입니다. 하나는 하늘의 소망으로 자신감이 넘치지만 믿음이 흔들리면 보이는 모든 것들이 다 두려움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부활의 영광과 승리가 잉태되는 골고다언덕에는 많은 구경꾼들이 모였습니다. 강도 바라바대신 예수를 죽이라고 고함쳤던 어리석은 백성들이 있었고 예수님을 존경하며 믿고 따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두 주님의 십자가죽음에 함께 숙연해졌고 곧 이어 놀라 말합니다. “오, 이는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병사들의 증언입니다.
골고다언덕을 쓰러질 듯 오르는 예수님, 그 곁을 따라가는 무리들의 생각이 다 달랐습니다. 힘든 인생 언덕길, 저와 여러분은 이제 “올라가서 차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는 본문의 명령을 듣습니다. 골고다 언덕은 고통과 죽음으로 준비된 영광이 기다리는 곳입니다. 올라가서 차지할 영광 뒤에 우리는 그 고난까지도 함께 우리의 남은 인생에서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은 고난이기 전에 반드시 이어 드러날 약속가운데 나타날 놀라운 주님의 영광에 대한 예고편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는 여러분. 오늘 설교제목이 뭡니까? “올라가서 차지하라”는 겁니다. 어떻게 어디로 올라가 무엇을 어찌 차지해야 하는가를 살펴봅니다.
성경에는 올라가 볼만한 몇 군데가 나옵니다. 모세가 올라간 시내 산, 발람이 올라간 비스가산, 엘리야가 두려움 가운데 섰던 호렙산,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모리아 산, 그리고 끝으로 우리가 반드시 올라가 봐야 할 주님의 골고다 언덕입니다. 모리아 산과 골고다를 통과하지 않은 믿음은 주의 영광된 부활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실감하기 쉽지 않습니다. 바닥까지 완전히 내려간 자의 갈기갈기 찢긴 육신과 심령 그리고 거기서 다시 얻은 생명, 저주받은 땅과 하늘영광 사이에 골고다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해골의 웅덩이, 골고다는 인생들이 다 벗겨져 뼈만 앙상한 채 모여 수많은 사연으로 던져진 채 허망한 인생무상을 백골로 말하는 곳, 그 언덕에 올라가 보지 않고 우릴 향한 주님의 사랑을 어찌 다 알겠습니까?
2) 차지하라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분명히 이스라엘백성에게 말씀합니다. “올라가서 차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 어디서 어떻게 무엇부터 차지해야 합니까?
주님은 누가복음에서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다고 하시며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는데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어 하신 눅6:45절입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마음을 차지해야 합니다. 마음을 차지하면 인생 통째로 차지합니다. 남의 마음 차지하기 전에 내 마음을 먼저 정복해야 합니다. 쓰라린 마음으로 올라간 골고다언덕에서 저와 여러분, 우리자신의 마음부터 차지하길 거룩하신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분명한 건 자신의 마음을 자신이 차지할 힘이 누구에게나 없다는 겁니다. 성경은 이런 무능한 인생에게 한 가지, 기도하라고 합니다. 기도는 기도한 대로 자신을 강제해서 삶으로 반영하는 거기까지라고 우리가 많이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주님이 차지하시라고 기도했다면 반드시 마음의 맥을 놓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주님께 바친 속마음을 주님이 온전히 주장하시도록 내드리는 훈련은 한 평생 온 삶을 가장 확실하게 바꾸는 매우 소중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이 날 다스리게 할 수 있을까? 화가 치밀어 쓰러질 것 같고 보이는 게 없는데 어떻게 주님께 이런 악한 상황을 맡겨 드릴 것인가? 난감한 일입니다. 어떤 성경말씀도 안 떠오릅니다. 눈앞에 나쁜 상황만 보입니다. 마음은 상황에 반응하고 그 반응은 신속하게 생각이 되고 생각은 몸으로 말합니다. 입으로 눈으로 손으로 몸짓으로 말하는데 이때 주님의 간섭이 없는 인간의 말은 당시 속은 좀 후련한 거 같아도 거의 후회로 남게 됩니다.
우리가 우리감정의 정체를 바로 못 보면 이 훈련은 물거품이 됩니다. 분이 치밀어오를 때 그게 누구입니까? 금방 일러드린 대로 상황에 반응하는 자신의 감정입니다. 그런데 그 불처럼 올라오는 감정의 틈을 타고 들어와 그걸 가장 잘 사용하는 게 마귀입니다. 그래서 화딱지는 마귀를 부르는 마귀초청장입니다. 흥분할수록 마귀는 속히 달려옵니다. 간혹 악지를 쓰면서 바락바락 대들 듯 기도하는 이가 있는데 이때는 마귀가 예수이름으로 들어오기 딱 좋은 환경이 된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가장 고결하시고 아름다운 분이십니다. 그 분과 대화하는데 그렇게 고함치고 악지를 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주님 앞에는 고요한 게 좋습니다. 그 고요가 깨지면 주님이 내 마음에 들어오지 않고 잠잠할 때가지 기다립니다. 그래서 주님이 내 마음을 차지하도록 하려면 죽으나 사나 감정을 낮춰야 합니다. 치솟은 감정으로는 주님과 교제가 어렵다는 걸 알아 자신이 마귀의 노예가 될 것인가 아니면 주님의 노예가 될 것인가를 즉시 결정 짓는다는 결연한 마음으로 단호히 잘라내고 돌아서야 합니다. 감정이 아니라 냉철한 이성으로 자신을 다뤄가야 합니다. 불에 맡기면 타죽지만 마음에 찬물을 끼얹어 정신을 차리고 누구 편에 설 것인가를 순간 확고히 결판내면 하마터면 또 마귀에게 넘어갈 뻔 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오늘은 지극히 기초적이며 지극히 중차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올라가 차지해야 할 것이 다름 아닌 나 자신의 속사람인 것을 알면서도 번번이 실패하던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을 일러주셨습니다.
이불공장을 경영하는 회장님이 기업을 물려받아야 할 아들에게 실오라기 잘 뽑는 방법을 알려주신 겁니다. 실오라기 한 개를 어찌 만드느냐가 결국 이불회사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세계굴지의 재벌기업도 알고 보면 자금이 아니라 기업정신으로 대를 이어갑니다. 그 정신을 놓치면 여지없이 무너집니다. 자신의 내면을 정복하면 세상을 정복합니다. 자신을 다스려 차지하면 선하게 원하는 모든 것이 어느새 내 곁에 와 있습니다. 전능하신 주님이 우리 편이십니다. 기도합니다.
세상과 죽음을 이기신 주님이 우리에게도 그 힘을 주시려고 오늘 말씀으로 가장 근원적이며 기초인 자기제어의 중요성을 깨우셨습니다. 자기를 제어하면 성을 뺏는 자보다 강하다는 잠언말씀을 알고 있어도 종종 실패하는 영혼들입니다. 오늘 주의 임재와 동행으로 이후 주신 말씀 확고히 붙들고 자신을 차지하는 전적인 믿음의 순간결단과 승리를 내려주소서. 주신 줄 믿나이다. 분노와 혈기로는 주님나라 벽돌하나도 놓지 못한다는 것을 오래 전 말씀하셨나이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함께 하옵소서. 주님만 의지하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