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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21.03.14. 주일예배<삼상22:2. 浮浪人의 두목, 다윗>

by 설렘심목 2021. 3. 15.

2021.03.14. 주일예배<삼상22:2. 浮浪人의 두목, 다윗>

 

사울은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며 세운 최초의 왕입니다. 삼상8: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내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이렇게 해서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시고 다스리시는 신정국가체제가 인간을 왕으로 세워 그 다스림을 받는 왕정시대로 들어가게 됩니다. 선민 이스라엘의 불행은 이렇게 하나님의 직접통치를 벗어남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림보다 인간의 다스림을 원했던 백성들은 선지자의 아들들이 타락하는 데서 그 이유를 찾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이 안보이면 부족한 사람이 보이게 됩니다. 그렇게 요청해 세운 첫 왕이 사울입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순수했던 첫 모습과는 달리 차츰 교만해져서 하나님께 범죄합니다. 그리고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을 이유없이 시기하여 죽이려고 합니다. 다윗은 한편, 사울의 아들이며 절친한 친구인 요나단의 도움으로 사울의 악한 계획을 전해 듣고 도망치게 됩니다.

 

다윗은 제사장들이 모여 사는 놉 땅에 갔다가 거기서 골리앗의 칼을 취해 다시 블레셋 땅 가드에 가서 가드왕 아기스에게 이릅니다. 그러나 다윗의 명성을 이미 알고 있던 그곳 사람들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느끼자 미친 척하여 간신히 살아납니다. 그리고 다시 거기를 떠나 아둘람동굴 마을로 피신합니다.

본문은 다윗이 아둘람동굴로 내려가 피해 있을 때에 다윗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을 배경으로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이 조명한 다윗주위에 모여든 자들을 살펴보기로 합니다.

 

1. 환난 당한 모든 자들입니다.

 

억울하게 쫓겨 멀리 아둘람까지 온 다윗주변에는 다윗처럼 억울하고 원통하고 빚지고 환난 당하는 자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다윗을 우두머리로 믿고 모여 결속을 다진 자들에겐 뼈아픈 거절감과 상실감 등 치유되지 않은 상처로 인하여 끓는 분노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노는 같은 환난 당한 자들과 합류해 동지가 되고 힘을 모아 큰 분노의 물결이 됩니다. 다만 이 분노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다면 그 분노는 결국 선한 개혁을 이루는 의로운 분노가 되지만 그 분노가 인간의 생각으로만 움직인다면 이미 불행은 시작된 것입니다. 환난 당한 자들 다음에는,

 

2. 빚진 자들입니다.

 

갚아야 할 빚이 있는 마이너스 인생들, 늘 주눅 들은 인생들입니다. 빚진 자들의 길은 자명합니다. 진 빚을 갚던가, 아니면 빚만큼 자신을 볼모로 잡히고 갚을 때까지 노예로 살거나, 아니면 도망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빚진 자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빚을 갚고 홀가분하게 짐을 벗는 것입니다. 빚은 뭡니까? 값을 지불하기 전에 내 손에 있는 것들입니다. 인생가운데 빚을 지지 않은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것이 빚입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풍족히 살던 궁색하게 살던 우리는 모두 빚을 지고 살고 있습니다. 우선 저와 여러분의 육체가 빚입니다. 값을 지불하지 않았는데 몸은 여전히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갑니다. 한 푼 내지 않았는데 맑은 하늘, 바람이 불어 마음껏 숨을 쉽니다. 인간의 욕심이 공기와 산천을 더럽혀도 비를 뿌려 씻고 바다의 짠물로 정화합니다. 우리는 모르는 가운데 하나님은 인간이 살아가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아무 값없이 천지사방에 베풀어 놓으셨습니다. 이런 은총을 일반은총이라고 하며 일반은총은 육신을 위해 하나님이 누구에게나 거저주신 선물입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진 큰 빚은 특별은총에 속하는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이미 우리가 배웠듯이 특별계시의 제일은 선물은 성경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범죄한 인생이 골고다언덕의 그리스도보혈로 구원받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계시해주고 있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데에는 완전한 계시이지만 하나님을 다 설명하지는 못한 것이 성경입니다. 저와 여러분 인생 일대 가장 큰 선물은 성경이 계시하신 예수그리스도신줄 믿으시면 아멘입니다. 거듭 일러드리지만 최고의 선물 앞에 우리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전하는 자를 핍박하고 피해 다녔습니다. 복음에 빚진 자들입니다.

 

다윗주변에 모여든 온갖 빚진 자들은 그들의 비통함과 상대적 박탈감을 통치자사울에게서 느낀 자들입니다. 그래서 당대의 용사인 다윗에게 모여들어 세력을 이룹니다. 이러한 자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저와 여러분입니다. 다윗은 이때 모여든 400명을 기초로 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빚진 자들이 모여 나라의 기둥들이 되고 복음에 빚진 우리가 모여 하나님의 나라, 교회가 됩니다.

 

3. 마음이 원통한 자들입니다.

 

원통하고 분한 자들이 모였습니다. 하소연할 곳 없고 들어줄 사람 없는 억울한 사연은 마음의 병이 되고 마음의 병은 온몸을 멍들게 하며 특히 관계에 있어서 나쁜 영향을 끼칩니다.

세상을 말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말은 한 많은 세상입니다. 억울하지 않은 인생이 없다는 겁니다. 마음에 한을 품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거지요. 교회와 성도도 이러한 무리 중에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나름대로 분하고 원통한 사연을 품고 영혼이 죽어있던 저와 여러분이었습니다.

참으로 감동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원통해 하는 그 내용이 크게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분노의 대상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가족을 포함해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을 향해 분노하며 억울해하던 것이 이제는 내 안에서 아직도 변화 받지 못한 한심한 자신의 모습을 볼 때 그렇게 분노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기도하고 말씀 듣고 찬송 부를 땐 내 인생 모두 주님 것이라고 고백하곤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 여전히 세상버릇을 버리지 못할 때 찾아드는 말할 수 없는 절망감이 그것입니다. 진정 거룩하고 싶고. 진정 아름답고 싶고. 진정 정직하고 싶고 진정 지혜롭고 싶은데 그렇지 못한 자신, 나도 내가 싫은 이 인생이 싫고 분통이 터지기도 합니다. 성숙을 위한 통분함과 고뇌가 그치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기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4. 의로운 자, 다윗입니다.

 

삼상16:18절입니다. “소년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수금을 탈 줄을 알고 호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1) 여호와께서 함께 하는 사람, 다윗입니다.

삼상 16장은 하나님께서 교만한 사울을 버리고 다윗을 택하여 기름붓는 장면입니다. 16:13절입니다.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다윗에게 여호와의 신을 부어 충만케 하신 하나님은 그를 통해 훗날 사울에게 임한 악신을 쫓아냅니다. 다윗이 수금을 탈 때 사울에게 붙어있던 악신이 떠났습니다. 우리에게도 예수의 영이 충만하면 우리가 찬송할 때 모든 악한 영과 하나님을 훼방하는 어리석은 생각들이 우리에게서 멀리 도망쳐 나갈 것을 믿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는 성도와 교회는 세상 앞에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그의 주장과 능력에 따라 살아가게 됩니다. 인간의 능력은 아무리 훌륭해 보여도 그 끝이 보이지만 하나님의 능력과 은사는 무한하시며 예측조차 불가능합니다. 인간의 능력은 결코 자랑할 게 못됩니다.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인간의 능력, 그것이 특별히 거듭난 자의 것이라면, 그것은 반드시 그 능력을 공급하시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다윗은 어떻게 자비하신 하나님을 증거했습니까? 그래요. 원수에게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2) 원수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 다윗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추격해 엔게디 황무지에 이르렀을 때 피곤해 동굴에서 누워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 다윗은 엄중한 경호병사이를 감쪽같이 지나 잠든 사울의 겉옷자락을 베어 왔습니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사울은 여호와의 기름부은 자니 해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후에 십 황무지 아길라 산에서도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뒤따른 사울 왕을 같은 방법으로 살려줍니다. 군장 아비새는 단번에 죽여 버리자고 했으나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치면 죄가 된다.”며 허락지 않습니다. 이때마다 사울 왕은 내 아들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하고 소리를 높여 울며 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네가 나 선대한 것을 오늘 나타내었나니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붙이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삼상24:16-18) 내가 범죄하였도다. 내 아들 다윗아. 돌아오라. 네가 오늘 내 생명을 귀중히 여겼은즉 내가 다시는 너를 해하려 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였으니 대단히 잘못되었도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신이 떠난 자와 하나님의 신이 함께하는 자의 전형을 보게 됩니다. 한 사람은 악의 포로가 되어 비참한 고백을 하고 한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해치려는 자를 살려줍니다. 22:2절입니다. “환난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400명가량이었더라.”

 

3) 히브리들을 모아 나라를 일으키는 다윗입니다.

고통당하며 소외된 모든 하류계층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수준 낮은 인생과 실패한 사람들이 다 모였습니다. 빚지고 도피하는 자들, 사업이 망해 거리를 방황하는 노숙인들, 억울한 일로 이를 갈며 사회와 격리된 사람들이 다윗에게로 모여든 겁니다. 그리고 훌륭한 다윗의 지도력에 감동하며 충성을 맹세합니다. 새 나라건설에 희망이 보입니다. 새 나라에서는 다시 빚도 지지 않으리라고 마음을 다집니다. 거긴 억울한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마음이 설렙니다. 거긴 공평한 다윗의 통치로 인해서 열심히 일하면 성공하리라는 기대가 마음을 들뜨게 합니다.

바른 지도자를 만난 기쁨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만난 기쁨입니다.

주님통치, 천국을 바라는 우리 성도의 마음이고 좋은 지도자를 기대하는 민초들의 소원입니다.

저는 이 시간 이 말씀을 받은 여러분이 생업의 현장과 학업의 현장과 각종 교제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사람, 귀하고 정직한 지도자를 만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히브리인의 하나님,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께서 지금 누구를 부르고 계십니까? 죄악된 세상에서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아닙니까? 저와 여러분은 누굽니까? 다 말하지 못한 온갖 설음과 아픔이 가슴 절절이 녹아있어 안 아픈 곳이 없는 상처투성이 아닙니까? 우리주님은 또 누구십니까? 손과 발을 대못에 박히신 상처와 배신감, 심장을 쑤시고 들어온 창끝을 사랑으로 받아낸 분 아닙니까? 상처로 말한다면 누가 우리 주님을 흉내라도 낸단 말입니까? 우리에게 생명을 주셔서 사랑을 실현하신 주님이 한없는 자비와 인자로 우릴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십니다. 교회는 하나님나라의 예표적인 기관이요, 그의 몸입니다. 이제 우리들의 분노와 설음과 아픔이 주안에서 변화를 받았습니다.

어찌하면 주님과 더욱 가까이 살 수 있을까?

어찌하면 교회부흥을 위해 몸 바쳐 일할 수 있을까?

어찌하면 나를 낮추고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의 기쁨이 될 수 있을까?

거룩하고 신령한 고뇌와 원한과 통분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저와 여러분과 가정들 되시기 예수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