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14. 주일영샹예배<민1:47-54. 총수에서 제외된 레위>
만사가 다 하나님 손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특히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삼상17:47)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병적조사가 사람이 하는 인구조사와 달리 효율적인 전투준비를 하나님이 주장하셔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혹 승전의 영광을 사람이 가로채는 것을 예방하신 하나님의 배려임을 알게 됩니다. 오늘은 그 인구조사에서 칼을 들 만한 병력을 파악하는 중에 레위인은 제외시키라고 하시는 말씀을 통해 과연 레위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를 살피며 오늘 말씀으로 교회제직이 된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되기 바랍니다. 창49장의 야곱의 마지막 예언기도에서 혹독한 내용으로 나무람을(창49:5~7) 받은 혈기충천의 레위족속, 그들은 누구인가?
(창49:5~7)34장 세겜 땅에서 추장 하몰과 그 아들들에게 행한 무참하고 비겁한 칼을 회상하며-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1. (온전한 충성과 순종이 예언을 넘어선다는 실증)절대적 헌신으로 성무를 담당한 자들입니다.
본문 50절에서 53절까지는 레위인이 전쟁대신 해야 할 성막봉사에 대하여 자세히 언급합니다. 레위인이 맡은 성막의 관리업무는 증거막과 모든 성물, 부속품을 관리하며, 운반하며, 운반 후 설치하는 일입니다. 특별히 레위인의 숙소는 증거막 사면에 설치해서 혹 접근하는 범죄로 인해 백성들에게 미칠 수 있는 하나님의 진노를 중재하며 감당하는 것입니다. 레위인이 전투병력에서 제외된 것은 이미 오래 전에 결정된 일입니다. 일찍이 아론의 금송아지 범죄사건 때 진노하신 하나님의 명령인데 모세의 심판에서 레위인들이 자원하여 헌신했기 때문입니다. 한번 결단의 칼을 휘둘러 평생 전쟁의 칼을 잡지 않게 된 레위인들, 오늘날 모든 교회제직을 말하고 있습니다.
출32:26-27절입니다.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가로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 하셨느니라.” 레위에게 당시에 떨어진 명령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특단의 충성심이 없이는 결코 해 낼 수 없는 어려운 임무였습니다. 삼천 명 가량의 희생자들은 엊그제만 해도 웃으며 이야기하고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레위인들에게 그 형제를, 그 친구와 그 이웃을 칼로 베어 죽이라는 명령은, 자신이 죽는 만큼의 결단이 없으면 감히 행할 수 없는 힘든 임무입니다. 29절입니다.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27절에서 하나님은 아들, 형제, 친구, 이웃을 막론하고 금송아지의 우상범죄 가담자는 모두 칼로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단호한 우상숭배척결의지와 레위인들의 무서운 헌신입니다. 아들과 친족까지도 우상숭배를 했다면 여지없이 하나님이 명하신 심판의 칼을 내리치는 절대순종이 레위들에게 있었습니다.
1950년부터 17년간 일본일간지에 연재된 원제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장편대하드라마는 일본의 삼국지라는 유명세에 맞게 연속극으로도 세계를 석권했습니다. 거기 등장하는 주인공 도쿠가와는 극한인내로 일본을 제패한 인물인데 이 장편소설이 한국에는 대망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며 20권의 전집이 불티나듯 팔렸던 게 기억납니다. 주인공은 두견새가 울지 않을 때 즉시 죽여 버리는 오다 노부나가, 그리고 기어코 울게 만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는 달리 울 때까지 무던히 기다리는 인내의 달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입니다. 그가 오다 노부나가를 주군으로 모시며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허리를 굽히며 살았지만 반드시 무너진 자신의 가문이 일본을 제패한다는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에게 인생 최대의 시련이 왔는데 섬기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그의 충성도를 시험하려고 말도 안 되는 누명을 그의 아내와 장남에게 덮어씌워 처형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죽음보다 힘든 결단을 해야 했고 실행했습니다. 그 후 74세에 이른 도쿠가와는 일본을 손에 넣었습니다. 성경에는 그렇게도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에 아들의 손발을 묶고 칼을 높이 치켜든 아브람이 있고 백제말기에는 황산벌 마지막 전투에 가기 전 가족의 목을 친 계백장군이 있습니다. 아브람의 무서운 결단은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는 믿음에서 왔고 계백장군은 죽음을 각오한 장군의 충성심에서 비롯된 결단이었습니다. 그러면 레위인들의 결단은 어디에 근거합니까?
하나님의 분노입니다. 하나님이 노하실 때 함께 분노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레위들은 금송아지 앞에 뛰노는 경거망동의 범죄 앞에 하나님과 함께 분노했습니다. 분노는 뭘까? 분노는 분노한 만큼 그 맞은편에 대한 애착을 강하게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불순종과 우상숭배에 대한 강한 불만이 결국 하나님을 향한 곧은 절개의 믿음이고 고백인 것입니다.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 우리는 “한번 결단의 칼을 휘둘러 평생 전쟁의 칼을 잡지 않게 된 레위인들”이라는 오늘 설교말씀의 황금률을 잊지 않으시기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제사장의 성직을 보조하는 자들입니다.
“레위지파는 나아가 제사장 아론 앞에 서서 그에게 시종하게 하라.”-민3:6절. 제사장 앞에서 시중드는 성스러운 레위의 업무입니다. 아시다시피 인도에는 지금도 네 종류의 계급이 있습니다.
브라만이라고 하는 최상위층은 그렇게 빈곤한 나라에서도 국책IT산업, 항공산업 등을 쥐고 있어 막강한 부를 누리고 있는데 이들은 사제계급에 속하는 이른바, 제사장계급입니다. 고금을 막론하고 제사를 담당하는 일은 가문 최고최대의 영광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면 오늘 날 교회에서 제사장은 누구며 레위인은 누구입니까? 그렇습니다. 목회자가 제사장이라면 레위인은 제직들입니다. 제직은 교회내의 모든 제반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로서 보통 집사로부터 시작합니다. 민3:9절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너는 레위인을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맡기라.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아론에게 온전히 맡겨진 자들이니라.” 신앙의 순결을 위하여 가족이라도 처단하는 순교의 정신자세로 레위인들은 영광스럽게도 성무를 보좌하는 직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 어떤 충성을 했다고 여기까지 복된 길로 인도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그 십자가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되어 이 영광된 구원과 영생의 길로 불러주신 하나님이십니다.
51절 하단부터 52절입니다. “외인이 가까이 오면 죽일지며 이스라엘 자손은 막사를 치되 그 진영별로 각각 그 진영과 군기 곁에 칠 것이나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 사면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할 것이라.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에 대한 책임을 지킬지니라.” 외인은 일체 증거의 성막 안에 있는 증거궤에 접근 못하도록 명령합니다. 행여 일반인의 증거궤 접근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미칠 일을 미연에 방지하는 책임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은혜시대에 사는 우리 제직들이 법궤에 접근하는 일반인을 막는 일이 있는 것인가 살펴야 합니다. 당시 증거궤는 오늘 교회의 중추와 핵을 이루는 선한 권세 혹은 핵심이 되는 일군들과 지도층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레위인들이 해야 할 일은 이들이 지도자답게 일하고 평강을 유지하도록 기도와 물질과 순종으로 지켜줘야 합니다. 여기서 증거궤를 증거자로 보면 간단한데 증거하는 대언의 종에게 속세의 문화문물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일은 우선 기도의 능력과 관심입니다.
3. 성소의 성결은 레위인에 의해 지켜집니다.
이어지는 내용으로 어떠한 경우에도 증거의 성막에는 명령 없이 접근하지 못합니다. 혹 모르고 접근해도 그는 무사하지 못합니다. 레위인은 증거막 사면에 진을 쳐서 이러한 불상사를 막아야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침투하는 악한 영의 계교를 제직들은 기도하며 위로부터 주시는 지혜와 희생과 충성으로 교회를 잘 보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처럼 교회 사방에 집을 짓고 불손한 접근을 막는 것이 아니라 기도로서 교회를 지키는 영적사명을 잘 감당해야합니다. 그래서 순교의 정신으로 받은, 성도와 제직이라는 이름을 잘 간수하기 바랍니다. 교회가 교회다운 것은 목회자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제직들이 그 주신 이름다운 값을 다 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
직분을 받을 때의 초심을 기억해 봅니다. 열정이 불처럼 타올라 생명이라도 드릴 것 같았던 목사 안수식, 집사, 권사임명선포순간, 그때 품었던 신앙의 결단이 시간이 가며 서서히 무디어져 게으름과 핑계거리에 파묻히는 초심과 신선함, 저는 앞으로 모든 교회 저와 여러분이 함께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한 요즘의 예배환경이 다른 이들처럼 나태해지는 해악이 아니라 도리어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는 자율적 신앙이 더욱 깊어지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되길 간절히 기대해봅니다.
안수집사와 권사자격기준의 기억을 되돌아봅니다.
1. 성수주일 / 2. 온전한 십일조 / 3. 각종 예배 참석 / 4. 새벽기도 / 5. 금요 저녁기도회 / 6. 1가지 이상 봉사경력여부 / 7. 본 교회 등록 후 1년경과는 외형으로 드러나는 신앙고백입니다.
다음엔 성숙도를 살핀 잣대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인가? / 전도하는 사람인가? / 성경 읽는 사람인가?
자신의 영적성장에 대해 늘 고민하는 사람인가? / 늘 교회와 목회자편에서 생각하는 사람인가?
청교도적 개혁주의 사상이 투철한 사람인가? / 하나님과 교회 앞에 무흠한 자인가?
이제 위의 조건보다 더 중차대한 레위의 조건이 있다고 오늘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분노에 함께 분노하고 그 분노로 감히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에 따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지 않으면 기쁜 일에서 기뻐하지 못하게 된다는 세간의 말도 유념해야 할 부분입니다.
오늘 말씀의 키워드, 한번 결단의 칼을 휘둘러 평생 전쟁의 칼을 잡지 않게 된 레위인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주님의 말씀입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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