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14.주일예배 (호11:8~11. 내 너를 어찌)
아파트분양에도 모델하우스가 있고 매장마다 전시상품이 있습니다. 홍보하기 위해 가장 좋은 모습으로 단장을 하고 고객의 눈길을 잡는 게 보통이지만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을 증거하는 데에는 가장 천하고 가난한 백성들을 택하십니다. 그것은 제품자체를 선전하려는 것이 아니라 천한 백성을 들어 놀라운 일을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의 실현을 통하여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사랑을 증거하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생은 우릴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명령 앞에 얼마나 순종하는가 아니면 불순종하는가에 따라 모든 굵은 선들이 그어진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고생하는 것은 그들을 사랑하셔서 순종할 때 얼마나 귀하고 요긴하게 사용하시는 하나님이신지를 증거해 다른 백성들에게 용기와 교훈을 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성도와 교회는 주님 앞에 성실한 예배와 순종으로 주님의 소원을 이뤄드리고 주께서 주시는 모든 것을 남김없이 받아서 천국을 유업으로 받은 것처럼 이 땅에서도 복된 삶을 살아야 할 이유가 충분히 있습니다. 한절씩 함께 읽으며 주님의 음성을 듣고 더 나은 헌신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본문 8절입니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1. 끝까지 버리지 않고 용서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불변 영원한 사랑이십니다. 진노로 징계할 때도 마음아파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어서 항상 의와 선으로 풍성하게 하시려는데 받을 준비는커녕 엉뚱한 일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에 분노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본문은 “내가 어찌 너를”이란 말을 4번에 거쳐 절규하심으로 속히 돌이키시는 어쩔 수가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신7:9~10절에선 “순종하는 자에게 천대까지 인애를 베푸시되,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에겐 당장 보응”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신5:9~10절에서도 순종하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우상숭배하여 하나님으로 하여금 질투하게 하는 자에겐 3~4대까지 죄를 묻겠다고 하셨습니다. 출34:6~9절까지 함께 찾아봅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 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3~4대까지 보응하리라.” 1000:3~4란 수치는 하나님의 삼백배 사랑을 말하고 그건 하나님의 사랑이 끝이 없음을 말합니다. 당시엔 우상숭배의 범죄에 집중하여 분노하고 질투하셨던 하나님이 오늘 현대인에겐 교묘하게 문화와 문명과 정치와 사상의 옷을 입고 위장한 우상숭배의 범죄를 지적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설교를 통하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는 말씀으로 다시 우릴 부르시고 찾아주셔서 끝내 품으시는 주님이십니다.
8절 뒤를 보면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한다.”라고 하십니다. 들었던 채찍을 내려놓고 회초리자국을 어루만지는 부모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불타듯 타올라 견딜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결국 모든 것 용서하기로 하신 겁니다. 회개하기 전에 우리가 할 일은 그 애절한 하나님의 마음, 사랑을 알아드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눈물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릴 위해 피눈물을 흘리실 때 적어도 우리는 가슴이 아파야 합니다. 그러면 용서하기를 기뻐하시는 주님은 속히 회초리를 내려놓고 끌어안아 주실 것이고 참 놀라운 것들로 우리를 채우실 줄 믿습니다.
9~11절을 함께 읽습니다.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그들은 사자처럼 소리를 내시는 여호와를 따를 것이라. 여호와께서 소리를 내시면 자손들이 서쪽에서부터 떨며 오되, 그들은 애굽에서부터 새같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같이 떨며 오리니 내가 그들을 그들의 집에 머물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2. 돌이켜 돌아와 평강의 집에 머물게 하시는 하나님.
천안함 폭침에 숨진 아들의 보상금 전액을 어느 대학에 장학금으로 쓰라고 바친 어머니는 매일 그 장학재단을 위해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아들의 남은 생애를 장학금에 담아 드렸으니 아들을 향한 애정이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에게 꽂혀 있습니다. 또 교통사고로 떠난 딸의 안구를 앞 못 보는 어느 청년에게 기증했는데 그 어머니도 안구를 받은 청년을 아들처럼 아끼며 위해서 기도한다고 합니다. 내 딸의 두 눈이 그에게서 암흑 중 빛이 된 것에 감사하면서 딸이 생각나면 그 청년을 만나 눈동자를 보는 겁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택한 백성,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받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외아들을 죽이셔서 얻은 우리들, 성도와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눈에 우리가 얼마나 끔찍한 존재인지 우리는 미처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한 순간에도 우리를 떠나보신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 안에 살아있는 당신의 아들이요, 그 숨결이요, 형상입니다.
인생의 생명과 행불행과 모든 소망은 살아계신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의 소원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여기저기 사로잡혔던 곳, 애급과 앗수르와 사방에서 비둘기처럼 새처럼 떨며 돌아오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새처럼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가볍게 날아오되 떨며 온다고 합니다. 해방과 자유로 꿈에도 잊지 못하던 고향집에 돌아가니 설레어 가슴이 뛰고 살아계셔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눈앞이니 두려워 떨고 그렇게 그리운 고향 품으로 돌아옵니다. 본문 11절 끝에는 “그들의 집에 머물게 하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예루살렘 고향집 아랫목의 편안함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머물게 될 그들의 집은 하나님의 품이고 하나님의 품은 성령이 지배하는 평화의 집입니다.
끝으로 하나님이 끝내 버려두지 않으시고 포기치 못하는 당신의 백성을 본래 있어야 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실 그 곳에 대하여 언급하며 설교를 정리할까 합니다. 우리가 마땅히 있어야 할 우리들의 고향집은 육체의 집이 아니라 성령의 집입니다. 한편, 갈5:19~21절에 멀리해야 할 육체의 특성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원수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아울러 롬1:29~32절엔 하나님의 품이 아닌 것에 포로가 된 현상을 이렇게 지적합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약속을 어기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리고 이러한 일은 사형에 해당한다고 했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품에서 실현되는 성령의 권세와 능력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예배하는 여러분. 우리가운데 죄악의 포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자가 드문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반드시 진노를 내려놓고 당신의 백성들을 본가로 돌아와 머물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어떤 과정을 거치더라도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품으로 귀환합니다. 서둘러 돌아가면 포로의 고통은 짧을 것이고 게을러 더디 돌아가면 그만큼 힘겨운 세월이 연장될 것입니다. 스스로는 어찌할 수 없는 노예의 세월들을 하나님이 자유롭게 하실 것입니다. 다만 우리들은 하나님을 바라고 기뻐하며 절실히 신뢰하면서 그의 법을 즐거이 지키는 중에 그 약속의 성취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사랑은 “오래참고”로 시작합니다.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고된 훈련을 잘 이겨내고 믿고 참으면 귀하고 요긴한 곳에서 주님이 복되게 사용하실 날이 속히 이를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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