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31. 주일설교 <행28:1-10. 멈춤과 실패가 없는 복음운동>
바울의 생명은 복음전파의 사명 때문에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는 생명이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가 지금 영생, 영원한 생명의 나라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는 것, 일생 중 최고의 소식인줄 믿습니다. 누구나 한번 육신을 벗고 잠들 겁니다. 그 후엔 나팔소리와 함께 주님오실 그 때 우리는 모두 일어나 주 앞에 섭니다. 어떤 엄마와 어린 아들과의 대화를 소개합니다.
엄마, 죽음이 뭐야? 얘야, 어느 날 네가 축구를 하고 너무 피곤하여 그냥 옷을 입은 채로 소파에서 잠들었던 적이 있지. 그런데 다음날 어디서 눈을 떴지? / 2층 내 방에서 잠옷을 입은 채였지. / 그래 아들아, 어떻게 된 거지? 누가 그랬을까? / 아마 힘센 아빠가 안아서 옮겨 줬을 거야. 옷은 엄마가 갈아입혀줬을 거고. / 그래 바로 그거야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세상에서 눈을 감으면 아빠보다 더 힘센 하늘 아버지께서 천국으로 안아 올리신 다음 거기서 새 옷으로 갈아입히시고 눈을 뜨게 하는 거란다. 거긴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날짜와 시간이 없고 아픈 것과 눈물도 없고 죽음이 없어서 헤어지지 않아도 되는 곳이야. 거긴 영원히 행복한 나라여서 우리가 잠시 헤어지는 것으로 슬퍼하지도 않는 곳이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위험이나 칼이야.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ㅣ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끊을 수 없느리라.”-롬8:35~39.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리스도는 복음이시고 복음은 사랑의 실현입니다. 하나님에겐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무관하게 영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천국으로 이어집니다.
바울의 손을 문 뱀의 맹독은 하나님의 복음운동을 방해하지 못했습니다. 바울의 어떠한 험악한 여정도 그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계획에 따라 어김없이 진행되는 복음전파와 함께 안전하게 보장되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고전11:23-28
이렇듯 심각한 위험한 고비가 많았지만 복음을 가로막지 못했습니다. 죽을 고비를 몇 번씩이나 만났지만 살아났습니다. 도리어 든든한 로마특별경호대의 호위를 받으며 로마의 중심부를 향하여 복음은 바울과 함께 전진하게 됩니다. 이 하나님의 엄위한 계획이 진행되는데 뱀이 무슨 힘을 쓰겠습니까? 도리어 바울을 매우 신령한 사람으로 돋보이게 하는 역할만 하고 불구덩이로 들어간 겁니다.
1절입니다. “무사히 해안에 도착하고서야 우리는 그곳이 몰타 섬이라는 것을 알았다.” 바울일행은 그 섬이 어딘지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간신히 살아나고 보니 거기가 멜레데섬이었다고 말합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이 있는 각각 거기는 어딥니까? 세월따라 사람따라 흘러 흘러 왔는데 이제 보니 놀라운 하나님의 손, 가는 곳마다 구원의 방주가 아닙니까? 여러분의 신앙고백이 있는 그곳이 어디든지 거기가 하나님의 처소인 것을 잊지않기 바랍니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3:5).” 신도 벗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깊은 것만 구하는 자는 위험에 빠집니다. 죽음을 통과한 후에 도착한 하나님의 땅에 바울사도와 그 일행 사형수들과 또 그와 같은 저와 여러분이 섰습니다.
2절입니다.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同情)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원주민들이 특별하게 친절히 대함으로 27:24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의 약속이 이뤄진 것입니다. 망망대해 헤매다가 식인종 안 만나고 친절한 원주민을 만난 것 흔하지 않고 쉽지도 않은 일입니다.
3~4절입니다. “바울이 마른 나뭇가지 한 묶음을 모아다가 불 속에 넣었더니 뜨거운 열기 때문에 독사가 기어 나와 바울의 손에 달라붙었다. 원주민들은 독사가 바울의 손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서로 수군거렸다. “이 사람은 살인자가 분명하다. 그가 바다에서는 살아났지만 ‘정의의 여신’이 그를 살려 두지 않나 보다.”불을 피웠는데 나무덤불속에 있던 독사가 바울의 손을 물었습니다. 모두 놀랐습니다. 친절히 대하던 원주민들이 시선이 달라집니다. 당시 사람들은 모든 불행의 이유를 인간의 죄에서 찾으려고 했습니다. 원주민들은 물론 함께 목숨을 건진 동행들도 주시하고 있습니다. 간신히 바다에서 목숨을 건졌는데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저 사람의 죄가 드디어 뱀으로 심판을 자초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곧 쓰러질 것을 기다립니다.
얼마 전 필름에서 사자에게 잡혀먹는 작은 노루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옆에 있는 다른 노루들입니다. 도망도 안가고 멀뚱멀뚱 그냥 무관심하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한 것은 사자들이 그 먹고 있는 노루 외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사자들은 집중하여 그 노루 한 마리를 먹어 치우고 있었고 다른 노루들은 전혀 아랑곳 하지 않았습니다. 금방 죽을 듯이 뛰던 일도 까맣게 잊은 듯이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남의 불행에 매우 큰 관심을 갖는 듯합니다. 물론 가족이나 정든 이웃은 아픔을 느끼지만 먼 데 사람들은 그 노루만도 못한 경우가 흔합니다. 노루는 아예 개념이 없지만 인간은 남의 불행을 은근히 즐긴다는 겁니다. 얼마나 악한 인생들입니까?
바울의 손에 독사가 물어 달리니까 모든 사람들은 구하려하는 것이 아니라 쓰러지나 안 쓰러지나 주시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저 사람에겐 독사에게 물릴 엄청난 죄가 있다고 단정합니다.
5~6절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뱀을 불 속에 떨어 버렸고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가 몸이 부풀어 오르거나 갑자기 쓰러져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오래 기다려 봐도 아무 일 없는 것을 보고는 생각이 바뀌어 바울을 신이라고 말했다.”
뱀의 이빨은 안으로 휘어져 있어서 한번 물면 이가 부러지든지 목안으로 넘기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일단 물리면 그냥 넘어가지 못합니다. 이빨자국이라도 남습니다. 원하기는 그것이 상처가 아니라 그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가는 영광의 흔적이 되기 소원합니다. 큰 아픔은 큰 성숙을 가져옵니다. 큰 상처는 큰 영광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위대한 승리마다 살펴보면 피와 땀의 과정이 있습니다. 진정한 능력이란 삶의 고통 속에서 쥐어짜낸 쓰디쓴 엑기스입니다. 그 고통이 훗날 한 영혼을 양질의 신앙인격체로 만들어 많은 이들을 구원하고 고치며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일에 귀하게 쓰일 것입니다.
그렇게 독사사건은 멜리데 섬의 주민들로 하여금 바울일행을 극진히 대접하게 했습니다. 강화도보다 좀 더 큰 섬이니 작은 섬은 아닙니다. 인구도 제법 됐을 겁니다. 멜리데섬의 최고지도자 보블리오가 바울일행을 극진히 예우한 뒤 열병과 이질로 고생하는 자기 부친에게 안내합니다. 거기서 보블리오의 부친도 바울의 기도와 안수로 병 고침을 받고 다른 병든 주민들도 치료받게 됩니다. 바울과 그 일행들은 후한 대접을 받고 거기서 석 달간 추운 겨울을 편안하게 보냅니다. 모든 병 고침이 성령의 역사로 일어나게 되는데 그래서 275명이라는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몸만 갖고 들어간 멜리데 섬에서 석 달간 좋은 대접받고 떠날 때도 풍족하게 되어 나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언제나 완전합니다. 이렇게 복음을 따라 가는 길은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 구할 자를 구함으로 멸시가운데 존귀함을 얻고 절망가운데 생명의 소망과 영광이 멈추질 않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16:17-18>
1. 복음운동은 어떤 재난과 방해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복음운동으로 온전히 헌신된 바울은 여러 가지 방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안전하게 보호를 받으며 로마를 향하하게 됩니다. 무서운 풍랑과 표류와 부서지는 배에서도 구원을 받습니다. 독사가 손을 물고 매달려도 툭툭 털어냅니다.
2. 복음운동은 새 생명의 증거와 함께 전진합니다.
멜리데 섬의 추장 보블리오와 그 주민들은 바울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치유의 역사를 보고 275명을 겨우내 잘 대접합니다. 죽음가운데 있는 사람을 새 생명으로 살리는 것이 복음의 본질입니다. 영적으로 살아나는 복음의 역사는 육신까지 살리는 기쁨의 증거를 현실적으로 선포하게 됩니다.
3. 복음운동은 지켜지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복음은 지켜지는 약속이며 이는 인류역사의 끝 날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바울이 다하지 못한 일들은 우리들의 몫입니다. 우리가 다하지 못한 부분은 우리의 다음 세대를 사용하셔서 이뤄 가실 겁니다. 우리 몸과 평생이 어디에 쓰임 받는가는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주께서 여러분 자신을 사용하시도록 소원하세요.
그 간구는 당신의 생애에 가장 빛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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