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강단

2020.11.01. 롬14:8(사나 죽으나). 창32:31.(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 해가 돋았고)

by 설렘심목 2020. 11. 6.

2020.11.01일 고별설교. 롬14:8(사나 죽으나). 창32:31.(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 해가 돋았고)

 

세상에 보이는 모든 복은 몸이 살았을 때만 누리는 복인데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는 본문의 복은 생사무관의 복.

더 이상 내 인생 나에 관한 것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신 예수에 관한 것이라고 선언했다면 지금 나는 최소한 내 몸과 내 생각의 행로가 과연 그리스도와 연계돼 있는가 자문해 봐야 할 것이고 그게 습벽이 돼야.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상존하시는 심령들, 그러므로 내가 가는 곳에 교회가 세워진다는 믿음이 절실한 시대도래. 아마 미래교회는 이번 중공폐렴사태 장기화로 인해 상당수의 교회가 영상예배를 경험하며 일부 정착할 것이라는 전망이 세계적 추세. 여기엔 특단의 보완책이 요구되는데 예배의 질과 성도의 교제 그리고 이를 효과적으로 실행할 시스템으로 셀조직 운영일 것임. 이는 오히려 재정이 열악한 작은 교회나 여건이 힘든 능력있는 개인의 목회사역에 도움을 줄 획기적인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전망. 깊어질 영혼과 태만해질 영혼과 방황하는 영혼의 세 갈래 길의 신앙이 열릴 것.

 

태어나 지금까지 받은 복 가운데 가장 크고 깊고 위대한 복은? 예수님 만난 것. 십자가의 도는 섬김 받던 자리에서 섬기는 자리로 옮겨가는 것. 다음 복은? 기도해 줄 사람이 있다는 복.

 

섬김(대접)받는 자리에서 섬기(대접하)는 자리로 옮겨가는 과정을 십자가의 도라고 합니다.

반면 내가 기쁜 인생은 짐승들도 본능적으로 가는 종족번식의 과정일 뿐입니다,

상대방을 기쁘게 하려는 것은 부모 등 양육자가 갖는 성숙한 사랑인데 성숙한 신앙은 자신의 인생을 더 이상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지 않으며 자신을 구원하신 예수에 관한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이를 먼저 실현한 분은 예수님이시고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은 영혼사랑과 세상구원을 통한 하나님의 기쁨을 이루기에 합당한 것이었습니다. 건강, 부요, 화목, 평강 원하는 모든 것이 말씀 안에 다 있다는 것을 알면서 성도는 철이 들기 시작합니다.

 

사나 죽으나 (生死無關) 우리는 주의 것.(롬 14:8)

생사에 무관한 성도의 소속과 기쁨. 하나님과 무관한 것에 흥분하거나 기뻐하지 않는가?

생사에 무관한 성도의 목적. 하나님과 무관한 것을 향해 가지 않는가?

 

18년의 목회, 평택에서 마지막 당부말씀입니다.

 

1. 비 성경 또는 반 성경적인 것에 생명 걸고 싸워야 하는 사명과 특권.

 

성도는 드러난 일보다 그 일의 안 보이는 뿌리를 찾아 반대하거나 환영해야하는데, 이도저도 아닌 회색지대란 결국 언제든지 변절될 수 있는 예비적인 범죄현장. 찬586장. 어느 민족 누구에게나

예나 지금이나 세계와 나라는 항상 둘로 갈라져 편싸움을 합니다. 좌파지도자를 고사시키는 것은 태생적 우파인 성도의 몫, 만나는 지도자가 혹 좌파라면 미련 없이 떠나서 우파지도자를 섬기는 게 주님과 나라에 충성하는 길, 상당수의 보수국민은 정치에 무관심한 이유가 좌파에 우호적이어서가 아니라 생업에 쫓겨 정보와 견해가 부족하고 성향 상 치열한 싸움을 피하고 싶어 그렇게 소극적 우파에 머물러있음. 이런 부류의 성도는 결과적으로 사악한 정치꾼의 음모를 방치함으로 적군의 침입을 허용하는 범죄가 된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함.

 

차별금지라는 좋은 단어 속에 숨어있는 동성애와 성문란. 환경이란 단어 속에 숨은 집단이기와 정치술수. 젠더와 섹스라는 단어구별조차 모르는 대다수의 국민을 미사여구와 위장된 이론으로 법과 시행령 등 규정을 만들어 선진국의 부패와 타락을 그대로 모방해 뒤따르고 있음.(성sex:생물학적용어. gender:사회학적 용어, 남자다움과 여성스러움의 기준과 변화에 도전한 훼미니즘에 기반) 교회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돼야 한다는 주의 말씀은 부패를 방지하고 어둠을 몰아내는 일에 온전한 헌신을 이루라는 것인데 그러지 못합니다. 썩어가는 세상에 복음에 기초된 나팔수로 부단하게 외쳐야 하는 데 이를 정치라고 몰아붙이는 무지가 교회에 만연한 안타까운 현실을 바로 보아야 함.

광주리 안에 콩, 보리, 팥, 옥수수, 찹쌀 멥쌀 섞여 있습니다. 광주리가 터지면 콩이며 보리며 쌀이 모두 흙바닥에 버려지고 짐승 발에 밟혀 제구실 못합니다. 나라 기울면 교회는 숙청대상 제 1호입니다. 목사님들 후방에서 설교할 때 저는 큰 울타리에 터진 데를 꿰매는 일에 부역할 것입니다.

 

2. 브니엘을 지날 때 해가 돋았습니다.

 

브니엘, 하나님의 얼굴 앞을 지나야 합니다. 그 분의 얼굴 앞이라야 그 광명과 영광으로 내가 변합니다. 야곱이 얍복나루의 씨름을 한 후 드디어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브니엘 땅을 지나는데 해가 돋습니다. 밤새 씨름하고 새벽에 일어나 길을 떠나는 야곱은 지금 다리를 저는 장애자가 됐습니다.

나는 지금 저와 여러분이 자신의 모든 것을 주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 여호와께 온전히 맡기기를 축복합니다. 주어진 길에서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분노하거나 너무 흥분하지 않기 기대합니다. 세상에 내 것은 하나도 없다고 주님 앞에 늘 고백하기 바랍니다. 내 소유를 내 것이라고 하지 않고 주님이 잠시 맡기신 거라고 철저히 고백하면 거기가 브니엘이 되고 우리에게는 해가 돋습니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내 것이 아니잖습니까?

한번 더 살피며 마칩니다.

 

사나 죽으나 (生死無關) 우리는 주의 것.(롬 14:8)

생사에 무관한 성도의 소속과 기쁨. 하나님과 무관한 것에 흥분하거나 기뻐하지 않는가?

생사에 무관한 성도의 목적. 하나님과 무관한 것을 향해 가지 않는가?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라. - 롬 14:8

 

잠시면 저나 여러분이나 앞서거니 뒷서거니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질 육체이고 이름입니다. 영원한 것은 주님의 나라이고 우린 모두 그 곳으로 갑니다. 거기서 만날 것입니다. 거긴 브니엘, 하나님의 얼굴 앞입니다. 잘 닦은 유리 안처럼 모두 환하게 드러난 영원한 삶입니다. 거기서 내가 어떤 품격이고 어떤 영혼인가에 올인 집념하여 그것을 결정해 가는 남은 인생 최선과 성실을 다하시기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찬232장. 유월절 때가 이르러. (떡) 요6:47-51. / (잔) 마26:2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