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28. 주일설교<살전5:16~18. 범사에 감사.>
[수도원과 감옥의 환경을 비교하면 감방이 훨씬 낫습니다. 먹고 자는 것, 입는 것과 자유 등 모든 환경과 조건은 실제로 형무소가 더 낫다고 합니다. 수도원은 신문도 TV도 없고 화장실도 감방보다 못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는 불평과 탈출하고 싶은 마음에 불행하고 하나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깊은 감동으로 스스로 택한 일에 높은 자존감으로 가득합니다.]
좋은 일에는 누구나 고마워합니다. 그러나 범사, 모든 일에 감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범사는 인간이 살면서 겪는 모든 정황과 환경을 말합니다. 이어서 감사의 원어 는 ‘좋은 매력’이란 뜻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26이나 감사의 찬송이 나오는 시136편에 이어 116:12에는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갚을꼬?” 라고 노래합니다.
등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별을 주실 것이고 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태양을 주실 것이고 태양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의로운 태양, 예수그리스도를 주십니다. 생각해보니 사글세를 감사할 때 전세를 주셨고 전세를 감사할 때 집을 주셨습니다. 거듭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 손에 없는 것 없다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세상에 나가보면 없는 게 없는데 없는 건 지갑에 돈인 것처럼 하나님 손에 무엇이 없나보니 우리가 올려드리지 않아 없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여러분, 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 겁니까?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해야 할 이유를 생각하기 전 먼저 새겨야 할 중요한 게 있습니다.
그것은 1. 하나님의 말씀,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듣고 행할 때 최고최상의 복인 줄 믿습니까? 왜 기뻐해야 하는지, 왜 기도해야 하는지, 왜 감사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기 전 먼저 습관처럼 체질화된 순종이기를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순종하면 어떻게 된다고 해서 순종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말씀이기 때문에 순종한다는 것이 최고의 복입니다. 순종은 무조건순종이 최상품인데 굳이 조건을 들자면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기에 순종한다는 겁니다. 이 순종은 하나님이 살아 활동하신다는 절대적인 믿음과 그 분이 얼마나 큰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시는가를 감동하며 깨닫는 것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합니다. 주님말씀은 생명이며 복된 소식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복된 소식은 따질 필요도 이유도 없습니다. 듣는 즉시 따르면 복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생명들이 복된 길로 가는 나침반입니다. 즉 축복의 대전제, 이정표기에 생각할 필요도 없이 즉시 순종함이 가장 현명하다는 것인데 그 작은 이유들을 함께 나누며 새 힘 받기 원합니다.
첫째, 어떻게 해서 범사, 즉 힘든 일, 외로움, 억울함, 수치가 다 유익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때문입니다. 반갑지 않은 이런저런 일들이 모여서 놀랍게도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 하는 일은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습니다.
이는 마치 모자이크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한 조각만 보면 의미도 없고 가치도 없어 버리고 싶은 것들을 모두 모아 제자리에 놓으면 훌륭한 작품이 됩니다. 우리는 한 사건에 매달리지만 주님은 우리 일생은 물론 저 영원한 주님의 나라에서 당신과 함께 할 큰 그림을 한 눈에 보시고 계획하십니다. 그리고 작은 파편에 맞아 우리가 크게 신음하는 것을 보십니다. 그리고 그 신음이 장차 엄청난 상속자의 자격을 갖추는 과정이라는 것도 알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이름이 얼마나 대단한지 경험하기 바랍니다. 원망, 불평, 시기질투, 좌절, 낙심, 우울증, 이제 다 나사렛예수이름으로 꾸짖어 물리쳐야합니다. 악한 귀신과 정체 모를 작고 큰 영물들을 모두 결박해야 합니다. 나사렛예수의 이름이 얼마나 큰 위력인지 꼭 경험하시고 힘차게 일어서길 축복합니다.
특별히 예수 안에서는 오직 감사할 일 외엔 아무 것도 없다는 걸 믿기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불평하고 시기하고 외롭고 슬퍼합니다. 왜 그럴까? 항상 기뻐해야하는데..범사에 감사하라고 했는데... 왜 잘 안 될까?
2. 쉬지 말고 기도할 때 감사와 기쁨이 가능합니다.
쉬지 않고 기도한다는 것은 삶이 기도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면서 일상의 삶이 기도응답이 되도록 주님과 밀착된 채 생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당힌 영의 수준이 요구되는 깊은 기도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 예수님이 나와 어떤 관계인가? 그분이 베푸신 구원은 대체 내게 어떤 것인가를 바로 볼 수만 있다면 가능한 일입니다. 마음의 눈이 열려야 합니다. 그런데 마음의 눈이 왜 안 열립니까? 이미 받아 내 손에 있는 건 안 보이고 없는 거, 남에게 있는 거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욕심이라는 죄가 눈을 가리면 받은 구원이 보이질 않습니다. 심하면 아무나 받는 구원이 뭐 그리 소중하냐고 불평하게 됩니다. 이래서 마음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잠16:32절에선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성을 빼앗는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기도에 전념하시기 바랍니다. 항상 쉬지 말고 일상 속에서 주님과 대화하며 살기 바랍니다. 주님은 영이시라 눈에 보이진 않아도 어떤 좋은 친구보다, 가족보다, 연인보다 더 우리를 사랑하시고 도우십니다. 그분과 쉬임없이 대화하듯 마음을 주고받으시면서 살수만 있다면 그게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입니다. 그렇게 하면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할 수 있게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뭐든지 많이 하면 익숙하고 깊어집니다.
영국의 유명한 시인 밀턴은 44세때 사고로 시력을 잃어 맹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시력대신 마음의 눈을 열어주셔서 하나님과 그 나라를 더욱 선명하게 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했습니다. 그는 잃은 시력에 비할 바가 아닌 시력이 필요 없는 세상, 영혼의 나라, 아니 시력이 도리어 방해가 되는 묵상의 세계, 거기서 만나는 놀라운 하나님의 세계는 세상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신비요, 영혼의 평강이요, 만난 자만 알 수 있는 감동과 안식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17세기 인류문학사에 빛나는 대서사시 실낙원은 타락한 주인공 루시퍼를 내세워 인간의 죄악된 본질을 파헤치는 대작으로 성경의 모든 우상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시력을 잃은 뒤 죤 밀턴이 쓴 대서사시 실낙원이나 존번연의 천로역정은 모두 심각한 상황에서 나온 대작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불안정하고 답답한 것은 잃은 것이 얻은 것보다 많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반면 편안하고 행복한 때는 언제입니까?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훨씬 더 많을 때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허상에 속지 말고 실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허상은 착각 속에 헛것을 실제라고 여기는 겁니다. 우리는 모태에서 빈손으로 나와서 생명으로부터 온통 거저 얻은 것으로 지금 존재합니다. 더욱이 우리가 받은 영생의 구원은 우리가 지불한 아무 값도 없이 100%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가정이 그렇고 먹고 눕는 육체가 그렇고 또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이 그것입니다.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걸 은혜로 받아 누리며 살다가, 죽으면 천국까지 주님의 이름으로 가도록 약속된 천국의 계약백성들입니다. 많은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한 그에게 평강과 기쁨과 감사는 불가능합니다. 본래 내것이 없었는데 무엇을 잃었습니까? 잠시 내 손에 왔다가 좀 일찍 떠난 것입니다. 알고보면 그것은 잠시 순간의 실제로서 영원에서 보면 모두 허상입니다. 눈에 뵈는 모든 것은 모두 사라집니다. 그러나 아무도 우리에게서 빼앗아갈 수 없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는 보이지 않아도 분명 우리가 차지할 약속의 영원한 최상의 처소입니다. 마음이 가난하면 천국을 본다고 한 것은 청지기된 마음이요, 복음에 목이 마른 영혼을 일컫고 있습니다. 더욱 낮아지는 마음, 겸손으로 아직도 우리곁에 머무르고 남아있는 많은 선물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상실감이 있습니까? 다른 이의 손에 든 게 커 뵙니까? 마음이 가난하고 청결하면 그 눈이 열려 천국을 볼 것입니다. 잠시 지나는 길에서 곧 내 곁에서 사라질 것에 마음 뺏기지 않고 영원한 주님나라에 우리들이 누릴 놀라운 세계, 풍요로운 하나님의 통치를 사모하면서 허상에 눌린 마음을 쉬지말고 기도함으로 이기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순종하면 복을 받는다기에 순종하는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말씀이기에, 주님의 명령이기에 순종해서 받는 복이 항상 기뻐함이요, 범사에 감사인 줄 믿기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일강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04.18.주일설교<왕상 19:1-8. 광야에서 만난 로뎀나무> (0) | 2021.04.18 |
---|---|
2021.04.11.주일설교<몬1;10-12. 저는 내 심복이라.> (0) | 2021.04.15 |
2021년03월28일 주일설교<신1:21(민13:21~14장.) 올라가서 차지하라.> (0) | 2021.03.28 |
2011.12.18.주일예배(히11:32~40. 믿음으로 세상 이긴 이런 사람들) (0) | 2021.03.21 |
2021.03.14. 주일예배<삼상22:2. 浮浪人의 두목, 다윗> (0) | 2021.0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