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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21.05.02.주일 영상설교<행22:10. 주여 내가 무엇을 하리까.>

by 설렘심목 2021. 5. 2.

2021.05.02.주일 영상설교<22:10. 주여 내가 무엇을 하리까.>

[지난 주 : 선택권과 의지가 없는 비인격적 관계의 사랑은 일방의 강제에 의함으로 진정한 사랑이 아님. 전지전능의 하나님은 선악과범죄를 아셨을까? 인간의 자유의지는 전적으로 인간에게 맡긴 것. 하나님은 인간의 선택에 따라 구원활동을 하시지만 우리에겐 착각으로 인해 불행을 택할 권리도 있으나 하나님은 모든 사실을 다 알고 계시지만 인간의 자유의지를 방해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어느 쪽으로 가든 거기서 기다리시다 그 길에 맞는 구원의 계획을 갖고 계신 것입니다. 왼편을 택하면 힘든 구원의 여정이, 우편을 택하면 편한 구원의 여정이 준비된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됩니다.]

 

우리 몸이 있는 여기는 어딥니까? 죄를 먹고 토하고 다시 먹으면서 살다가 그것에 무감각해져서 세상이 다 그런데 어쩔 거냐며 그게 일상이 된 곳입니다. 그렇게 살던 우리의 잠든 영혼을 예수보혈로 깨웠습니다.[예수가 내 대신 죽음으로 잠든 내 영혼이 깨어난 사실]

 

저와 여러분이 구원받았다는 감동의 크기는 우리가 얼마나 큰 죄인이었던가를 깨닫는 만큼의 크기와 같습니다. 이는 착하게 살아온 사람도 포함되는 원죄로부터의 구원이며 지금까지 살아온 날의 모든 죄의 회개입니다. 욕심과 혈기가 구원 받으면 소망과 열정이 되어 하늘의 자산이 됩니다. 즉 욕심과 혈기는 땅의 것이고 소망과 열정은 하늘의 것인데 이 사이에 구원이라는 할례가 있습니다. 할례는 잘라내는 예식인데 무엇을 잘라냅니까? 구약에서는 사내아이 난지 팔일 만에 고추 끝 포피를 잘랐습니다. 그리고 이제 신약시대 교회와 신앙인에게는 분깃을 넘은 모든 것들을 말합니다. 분깃은 내게 허락된 분량인데 그것은 성령께서 양심 안에서 깨닫게 하신 것이어야 합니다.

 

바울이 신생 기독교인들을 이단으로 규정해 그들을 잡아들이려 다메섹을 향해 달려가다가 그 길에서 극적으로 구원받은 사실을 우린 압니다. 초자연적 현상에 청년 사울은 그 자리에 엎어져 처음 한 말이 오늘 본문입니다. “주여. 내가 무엇을 하리까?” 이 말은 “주여. 말씀하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했던 아브라함이나 노아의 말과 같습니다.

교회는 택자들의 모임인 동시 그 택자들이 모여서 귀를 기울이는 곳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입을 열어 찬송하고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어느 측면에서 교회는 귀 기울이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귀 기울이는 자들의 모임..

예배당에서 가만히 앉아있다 가는 행복한 8세기 프랑스의 아루스사제는 실질적인 큐티의 대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묵상의 대전제를 뭐라고 기억하고 있습니까? 묵상하기 전에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24시간 항상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씀하시고 귀를 열어 듣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면 지극히 작고 무능한 자신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평소 못 듣던 각양의 소리를 귀로뿐 아니라 눈으로 마음으로 몸 전체로 듣게 됩니다.

1)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면 1)고통 받는 자의 음성이 들립니다. 이웃의 고통을 듣는 귀가 열리면 다음에 2)천사들 즉 각양 피조물들의 찬양을 듣게 됩니다. 귀에 들리는 소리로만이 다는 아닙니다. 가슴으로 각종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시공을 넘나들며 당신의 간곡한 권면과 명령과 책망의 음성을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으십니다. 우리들의 귀가 세상의 헛된 소리에 크게 열려 소득도 없이 허덕이며 바빠서 고요한 하늘의 음성을 듣지 못할 뿐입니다. “크고 강한 바람가운데도, 바람 후에 지진가운데도,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더니 불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왕상19:11-12) 엘리야가 하나님 여호와를 만나는 장면입니다. 바람을 일으키시고 지진으로 흔들고 불을 일으키셨는데 그 안에 안 계신 하나님은 그런 것들을 보내신 후 아주 고요한 음성으로 엘리야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외에 요란한 세상에 눈과 귀가 팔려 있는 동안에는 주님음성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귀와 눈을 닫고 하나님께 집중할 때 아주 작은 음성으로 임하십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열리는 구원의 세계는 결코 요란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이 늘 힘겹게 느끼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과 선명도에 있어서 서툴고 분명치 않다는 것이 그 이유일 것입니다. 늘 들었듯 우리들은 모두 문제이고 하나님은 항상 답이십니다. 인간이란 문제가 제시되면 하나님은 답을 말씀으로 내놓으십니다. 다만 말씀은 완성된 식품이 아니라 식자재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가져다가 나름대로 열을 가하고 가미하여 자신의 입맛, 정황에 알맞게 답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정답을 잘 찍을 수 있도록 정확한 공식들과 원리들을 담고 있습니다. 응용하고 적용하기에 따라 바르고 쉬운 답이 될 수도 있고 전혀 다른 해석으로 엉뚱한 실패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이단은 모두 성경을 왜곡함으로 출발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무엇보다 우선할 것은 하나님께 귀를 기울여 말씀을 듣겠다는 결단입니다. 설교를 열심히 빼놓지 않고 들어야 합니다. 고요한 시간을 정하여 깊은 묵상가운데 하나님의 음성 듣는 훈련에 헌신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바로 듣는다면 이후로 여러분의 인생은 몰라보게 달라질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과 동행하는 삶은 먼저 그 음성을 들을 줄 아는 것으로 출발합니다. 양은 목동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안전합니다. 그러려면 매일 일정한 시간을 정하고 성경을 읽는 것이 우선돼야 합니다. 성경을 읽은 뒤 하나님께서는 그 구절을 통해 지금 내게 무엇을 어찌하기 원하고 계신가를 알아내야 합니다. 특별히 여러분이 현재 당하고 있는 환경에 대해서도 선명하게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빈틈없이 말씀하시는 주님음성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날 교회들이 하는 일반적 큐티보다 더 절실한 것을 우리는 오늘 취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음성은 태고부터 지금까지도 사방각처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환경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건강으로 말씀하시고 관계의 아픔이나 즐거움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여러 정황으로 끊임없이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주님음성에 귀를 기울인다면 작은 일에서도 하나님음성은 들리기 시작합니다. 영의 귀가 민감해 지는 것입니다. 풍부한 상상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기도로 영혼이 깨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과 늘 친밀한 영의 감각이 그래서 귀한 것입니다. 그것은 어쩌다 찾는 여호와의 낯선 이름이 아니라 늘 불러 아뢰어서 입술과 귀에 익은 이름이어야 하는데 간단한 지침을 일러드리니 기억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으려면

 

1. 어떤 일에도 하나님과 연계(連繫)하여 해석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이 한순간도 떠나계신 적은 없다는 것을 믿으시면 아멘입니다. 하나님과 친하고 하나님의 음성에 예민하고 귀를 기울이는 첫 요령은 바로 무슨 일에서든지 하나님과 연결하여 해석하고 그 일 가운데 하나님이 자신을 보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즉 하나님이 내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시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어디서든 언제나 하나님을 먼저 떠올리는 습관입니다. 이야말로 신전사상(Coram deo)의 현실화입니다.

2. 어떤 일에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소망을 하늘에 두는 습관입니다.

메시지 하나 듣습니다. “사방을 둘러보아 허탄한 것뿐인 세상 한가운데서 영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온갖 소망을 거기 하늘나라에 둔다. 빈손으로 와서 모든 것을 거저 얻은 공짜배기 인생이 남은 삶에 할 것이라곤 그 모든 것 거저주신 하나님을 선포하고 전하며 경외함뿐이리. 하나님을 몰라서 멸망해가는 가여운 생명들은 내게 주신 기업들이라.”

어떤 일에도 감사하기 바랍니다. 서럽고 외롭고 아픈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선하고 사랑이신 주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현재 드러난 일 외에 더 큰 일로 우리를 구원해 가시는 주님이심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에나 관심을 갖고 돕는 주님께서 결국은 놀라운 것들로 채우시고 온전케 하십니다.

무슨 일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깃발처럼 높이 들고 나아가는 자,

어떤 일에도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소망을 그분께만 두는 자,

어떤 일에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뻐하는 자에게는 결단코,

하나님은 무심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일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육체가 아니시니 피곤치도 않고 졸지도 않습니다.

날마다 때마다 일마다 순간마다 생명의 주님음성에 귀를 기울여 어떤 일에도 주의 이름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