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09.주일설교<계 3:20. 노크하는 그리스도>
에베소교회, 서머나교회, 버가모교회, 두아디라교회, 사데교회, 빌라델피아교회, 라오디게아교회, 요한계시록 2장 3장은 소아시아 일곱교회를 위치순서로 열거하며 칭찬과 위로와 책망을 주시는 말씀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일곱교회는 오늘 날 세계 각처에 세워진 교회를 향한 현재형 주님의 말씀으로 들어 지켜 행할 일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각 교회가 주님께 칭찬과 책망을 듣는 교회가운데 유일하게 책망만 듣는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14절에서 19절까지 질책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책망의 음성을 들려주신 후 오늘 우리가 들을 권면의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라오디게아교회지역은 동편으로 에게海와 서편으로 유프라테스강을 잇는 큰 교역의 요지가 돼 풍요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양털의 직물제조 판매로 유명했고 부자들이 많았던 라오디게아교회는 넉넉해서 미지근해진 믿음과 편해서 무디어진 영적무감각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작 두려운 일은 그 영적무지가 하나님이 주실 복을 물질의 복만으로 한정시키는 우를 범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잘 사귀면 배불리 먹고 잘산다는 지극히 세속적인 등식을 갖고 있었고 진정한 하나님의 깊은 교제에서 비롯되는 하나님의 마음과 그 나라에 직결되는 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인격적이십니다. 인격적으로 깊게 느끼시고 진실을 원하십니다. 주님과의 관계는 그래서 알고보면 간단할 수 있습니다. 모든 조건을 뒤로하고 다만 사랑가운데 들어가면 됩니다. 조건적인 사랑은 그 조건이 있는 동안만은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지니고 있는 조건들은 모두 절대적이지 못합니다. 시간이 가면 다 사라지는 것들로 조건부이며 상대적입니다.
얼굴은 늙고 병 들거나 건강이 나빠지면 그냥 무너집니다. 재산도, 가정환경도, 학력도, 건강도, 인격도, 관계를 북돋을 수는 있지만 사랑의 절대적인 요소는 되지못합니다. 사랑은 그저 네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넉넉한 내 삶의 충분한 이유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네가 존재한다는 것 외에 다른 것들은 언제나 그 사람 곁을 떠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존재는 사라질 육신이 아닌 보이지 않는 사랑에 맞춰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지선이의 이야기가 아닐지라도 우리의 정든 누군가 화상으로 얼굴을 잃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래도 그를 여전히 사랑할 것입니다. 그의 재산이 사기를 맞아서 송두리째 날라 갔습니다. 우리는 그래도 그를 여전히 사랑할 것입니다. 공장에서 사고가 나서 두 팔이 모두 사라져 불구가 되어도 우리는 여전히 그를 사랑할 것입니다. 아마 거기까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배신과 이간질로 상처를 주고 내 목에 칼을 들이댄 자를 사랑하기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해치거나 불구로 만든 자를 사랑할 순 없을 겁니다. 남편을 빼앗아간 그 여자, 아내를 유린한 그 제비족 파렴치한과 엄마를 찾는 어린 자녀를 보며 그들을 사랑하기엔 우리가 너무 약합니다.
우리의 사랑과 용서는 거기까지입니다. 먼저 거기까지인 우리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기 바랍니다. 주님은 이런 우릴 찾아오셔서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일곱교회로 지칭되는 오늘 날의 성도와 교회를 향한 말씀, 오늘 본문에서 우린 각자와 가정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 하나님의 조건이 없는 사랑은 오늘도 교회문밖에 서서 문 열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주님음성을 듣고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기를 바라십니다.
문을 열면 주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신 후 주님은 우리로 인하여 먹고 우리는 주님으로 인하여 먹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에서 여러분을 노크하는 중요한 주님의 메시지, 그 첫째는, . .
1. 문밖에 서서 노크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라오디게아교회같이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미적지근한 우리들의 마음문 밖에서 오늘도 두드려 노크하는 주님의 음성을 들리십니까?
“문을 열어 보렴”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전지전능한 주님께서 문을 열고 들어오시지 않고 우리 스스로 열고 음성듣기를 바라신다는 겁니다. 두드리긴 하여도 문을 부수면서까지 들어오시지 않으시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봅니다. 물론 때로 바울의 경우처럼 문을 부수어서라도 주님의 구원을 작정대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대부분 우리의 동참을 원하시고 인격적인 교류를 통해 함께 하시기 기다리십니다. 강요된 선택이 아니라 스스로 열어 드리는 문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은 더욱 드러납니다. 여러분의 마음 문을 이제 활짝 여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기대합니다.
여러분을 노크하는 중요한 메시지 두 번째는
2. 열어드린 문으로 주님께서 들어오십니다. 사람은 하나님 손에 감춰진 많은 복에 관심이 있지만 주님은 우리들 안에서 이뤄지는 당신의 나라에 큰 관심이 멈추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눈에 뵈는 행, 불행과도 직결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영원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열어드린 문을 통해 주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이미 작정된 주님의 구원계획 속에서 우리는 그 나라의 놀라운 소식에 감동하고 남은 생애를 아낌없이 드릴 것입니다.
그것은 주께서 내 안에 계시는 동행의 기쁨인데 말과 글로는 전하기 어려운 영적 환희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우리의 행사가 예수님의 주장대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주님의 계획과 주장은 우리 인생들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완전하시고 흠이 없습니다. 실망이 없습니다.
인생 백년 짧은 한 평생 나그네길이 끝나면 바라볼 아무 것도 없는 인생이 아니라 그야말로 기쁨의 나라, 노래가 넘치며 찬양과 감사가 그치지 않는 그 나라가 기다린다는 사실은 너무나 놀라운 일 아닙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오시면 이런 일들의 비전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 심장에 박혀서 주님을 청빙하며 마음의 문을 스스로 여는 영적 새 기원의 역사가 시작되기 축복합니다.
오늘 세 번째 여러분을 노크하는 주님의 음성은
3. 우리 안에 들어오신 주님과 함께 먹는다는 사실입니다.
더불어 먹는다함은 생명을 “나누고 함께 하는” 생명공동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생명은 한시적인 육신에 꼼짝 못하고 갇혀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이 없었다면 그 한시적 생명 끝에 무서운 심판이 기다릴 것입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이 사실은 아무리 싫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요, 불변하는 진실입니다.
지금도 여러분의 마음문밖에서 주님이 노크하십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속히 열라는 것입니다. 열면 더불어 먹으리라고 하십니다. 먹는다는 것은 산다는 것과 언제나 붙어 다니는 말입니다. 먹고 사는 것입니다. 먹지 않고 사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더불어 먹는 것은 그래서 더불어 살아가리라는 것입니다. 영원하신 생명의 주님이 한시적 생명에 오셨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한시적 생명이 영원한 생명에 연합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저와 여러분 생애에 최고최대의 사건입니다. 이보다 더 크고 고귀한 사건은 없습니다. 짧은 인생 살다가 죽을 인생이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에 연합된 것만큼 큰 사건이 또 있겠습니까?
이 엄청난 복음의 활동은 여러분의 마음 문 앞에서 노크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여러분 스스로 문을 여는 것으로 드디어 시작되는 일입니다.
요5:24절을 제가 읽겠습니다.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사랑하는 비전인 여러분.
여러분의 눈을 들어 멀-리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가야 할 먼 길을 계획하기 바랍니다. 눈앞에 닥친 많은 염려와 근심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여러분의 영혼이 평강을 찾고 힘을 얻으면 모두 그림자처럼 뒤따라 해결되는 문제들입니다. 잠시 살다가 영원한 심판에 이르지 않고 하나님의 끝이 없는 생명에 연합하는 길을 우리가 배웠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음을 열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듣고 순종하며 그 앞에서 살기로 작정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제 말씀 듣는 가운데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영원한 하나님의 새 생명을 부어주신 줄 믿습니다.
여러분이 혹 깨닫지 못해도 하나님의 계획은 어김없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 말씀을 믿으시는 분들 모두 큰 소리로 아멘하시기 축복합니다. 이제 아멘하신 여러분 안에 하나님이 동행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큰 소리로 따라하십니다.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내안에 영원히 계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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