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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20.08.09.주일예배설교<요삼1:1~4. 네 영혼이 잘됨같이>

by 설렘심목 2020. 8. 10.

2020.08.09.주일예배설교<요삼1:1~4. 네 영혼이 잘됨같이>

[의x 형과 호x 형과 황x, 그리고 나xx 집사는 술로 인해 병원에서, 길에서, 그리고 기도원에서 각각 외롭고 한(恨)많은 삶을 마감했다. 그 외에도 여럿이 젊어서 갔는데 모두 술이 그들을 삼켰다. 독하지 못한 심성이 술을 내치지 못한 것이다. 인생낙오자라로 사라진 그들은 모두 무난하고 착한 성품을 가겼다. 내가 그들보다 나은 게 무엇인가? 없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복되고 건강하게 갖은 복을 다 누리며 살고 있다. 그들과 다른 게 있다면 하나,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다. 그것도 내가 깨달아 이뤄진 신앙이 아니라 세상을 창조하고 나를 지으신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먼저 찾아주셔서 일어난 놀라운 일이다. 그러면 그들은 왜 외면하셨나? 난 모른다. 굳이 말한다면 모두들 그렇게 복음 없이 죽어 가는데 내가 구원받았다는 격한 감동이 그것이다. 아들과 아빠가 놀이는 하는 데에도 일정한 규칙이 있고 그 규칙은 아빠도 지켜야 한다. 인간이 스스로의 몸과 마음으로 삶을 주장할 때 상당부분을 스스로 하도록 하셨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다만 인간에게 “존재에 대한 물음이 간절하고 자신의 한계를 겸손히 인정하며 절대자를 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은 자신을 열어 공개하시고 그를 그 나라에 초청해 주신다. 내가 존재하는 것도 지금 예까지 온 것도 또 앞으로 이를 곳도 하나님의 품이다. 참 못나서 하나님 외에는 답이 없는 자로 나를 키우시고 이렇게 복된 인생이 되게 하신 예수님만 찬미아멘.]

 

바울사도의 서신서 중 본서는 특별히 그가 매우 사랑하는 제자 가이오에게 보낸 짧은 글입니다. 한절씩 보며 바울사도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영혼사랑을 바울사도처럼 받기 원합니다.

 

1절입니다. “장로인 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가이오는 바울사도가 참으로 사랑한다는 말로 편지할 정도로 주안에서 신실한 자였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 앞에 그리고 주변에서 이러한 애칭을 받기 원합니다. 누군가 자신의 이름 앞에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 그렇게 불러준다면 이런 기쁨과 감동은 흔하지 않은 행복입니다. 가이오는 충실한 자였고 칭찬과 사랑을 받기에 합당한 이였습니다. 어려서 들은 “사랑은 받기 나름”이란 말이 기억납니다. 사랑은 받을만한 사람에게 간다는 무거운 질책이었습니다. 참으로 주변의 많은 사랑을 받은 가이오는 성실하고 아름다운 신앙과 충성이 바울사도와 교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봐야 합니다.

 

2절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본 절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가이오의 영혼이 하나님과 친밀한 가운데 교회에서 칭찬받고 있었습니다.

 

내면에서 양심은 항상 인격을 향하여 도전하고 인격은 영혼에 의해 통제받습니다. 예수를 모르고 지내는 동안 우리의 영혼은 죽은 듯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범사의 형통을 위해선 인격을 잘 다듬어야 한다고 믿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내면을 가꾸며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형통의 근거가 되는 영혼의 형통에는 무지했고 그래서 자신의 내면에서만 형통을 찾으려 했던 것입니다. 영혼이 깨어나야 완성되는 말, “자기성숙을 꾀하는 자, 끊임없이 고뇌한다.” 영혼이 깨어나기 전에는 이런 말도 모두 자신을 우상화하는 헛된 것임을 세상에선 끝까지 알 길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구원으로 인한 영혼의 형통은 자신의 내면과 무관하게 밖에서부터 시작되는 일인 것을 우린 압니다.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외부, 즉 하나님으로부터 계시의 문이 열려 일어나는 신비의 사건이 구원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구원은 끊임없이 이어지며, 온 생애를 지배하는데 이를 성화를 통한 성숙이라고 합니다. 첫 번 구원은 주님이 하시지만 계속되는 성화의 과정은 주님이 사람의 손을 잡고 하십니다. 사람은 아픈 만큼 성숙하며 지불한 통증의 깊이만큼 변하지만 한편 고통으로 인해 생긴 상처가 전인격을 왜곡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때 생긴 상처로 왜곡된 심령의 프리즘은 모든 일에 일그러진 반응으로 자신을 방어하려다가 너무나 많은 것을 잃게 되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어떤 특정된 사람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누구에게나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는 사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사도는 사랑하는 가이오에게 그의 영혼이 잘 되듯이 범사가 형통하며 강건하길 축복하고 있습니다. 영혼의 상태가 인생 전반에 거쳐 기초그림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다가오는 힘겨운 일들과 싸워가야 합니다. 보통, 문제라고 하는 것들은 정확히 분석해서 잘만 다루면 분명히 성장과 유익의 아주 좋은 기회요, 밑거름이라는 것도 우린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본문에서 영혼이 잘됨같이 잘되는 “범사의 형통”가운데 포함되지 않은 일은 세상에 없습니다. 어떤 형통입니까?

첫째, 관계의 형통입니다. 하나님과 형통한 것이 영혼의 잘됨이라면 그 일로 인해 다른 모든 수평적 관계에서 화목을 경험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화목은 인생전반에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최상의 복락입니다. 주님과 화목하면 그래서 땅에서 이뤄지는 화목한 최고의 삶으로 주를 증거할 수 있게 됩니다.

둘째, 영육의 강건한 복입니다. 영혼이 잘되지 못하면 심각합니다. 정신적 질환과 장애에 의해서 말로 다 못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영혼을 주님이 붙잡아주셔서 우리 모두 지금 멀쩡하게 살아가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각종 정신적인 장애는 육체적 장애처럼 그 앞에 물질의 풍요도, 육신의 건강도 과거의 명예와 공로도 다 부질없는 일이 되고 맙니다. 공부머리가 좋아 대단한 자리에 올라가도 그 영혼이 병들어 신의 세계를 모르면 불행한 이론이 그를 사로잡아 마귀의 도구가 되는 것을 우리는 늘 눈으로 봅니다. 그러므로 영육의 강건은 인간이 평생 살아가는 동안 주님께 받을 형통가운데 기초 중 기초를 이룹니다. 영혼이 잘됨으로 가능한 인생범사에, 주님의 간섭을 간절히 구하는 지혜와 갈급함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가이오는 영혼의 잘됨을 통해 은혜 받은 자의 삶을 살고 있었고 그 점이 바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서 사랑하되, 참으로 사랑하는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3~4절입니다.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약2:26절에서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규정합니다. 성도여러분. 우리 안에 진리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 안에 우리주님 복음이 함께 계십니다. 그러나 본문의 가이오처럼 그 복음진리가 활동을 어찌하고 있느냐에 따라 인격과 인생이 천차만별의 차이를 드러내는데 그 차이는 심히 기뻐함과 그렇지 않은 것임을 본문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진실로 주님을 따라 살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능력이요, 평화요, 찬송이고 최고의 가치이며 기쁨입니다. 그러나 진리대로 살지 못합니다. 누가 방해합니까. 누가 거룩함과 능력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습니까? 남이 아닌 바로 자신이라는 데 어쩔 수 없는 우리들의 게으름과 부족한 신앙과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부족의 대안은 정직이니 삶 전체가 부족임을 안다면 답은 하나뿐입니다.

 

바울의 진정한 기쁨은 형제들이 전해서 들은 “가이오의 행하는 진리였습니다. 4절입니다.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가르침을 받은 자가 자신이 가르친 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가르친 사람은 더없는 기쁨을 느낍니다. 부모의 기쁨이 뭡니까? 자녀들이 가르친 그대로 예쁘게 자라서 행복하게 사는 게 아닙니까? 영적부모의 기쁨은 섬기는 영혼들이 교회에서 배운 진리대로 행하여 세상으로부터 존경받고 주의 이름이 영광중 널리 전파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세상의 삶은 하늘의 영원한 삶과 상당한 연관이 있습니다. 영혼이 강건하면 땅의 삶이 강건해집니다. 우리가 진리가운데 행하여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드리면 필경(畢竟) 우리들의 자녀와 후손과 주변이 우리들의 마음에 기쁨을 더할 것입니다. 어디서 무엇을 통해서든 주님은 쉬지 않고 말씀하십니다. 주님 앞에 교회 앞에 그리고 사람들 앞에 사랑받되 참으로 사랑받는 가이오처럼, 진리를 행하고자 부단히 노력하면서 주님의 기쁨으로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기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