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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20.07.19. 주일예배 <창22:7-8. 친히 준비하신 어린 양>

by 설렘심목 2020. 8. 3.

2020.07.19. 주일예배 <창22:7-8. 친히 준비하신 어린 양>

[2010. 06. 06. 문제는 계산이 맞지 않을 때 시작된다. 계산할 일이 없으면 문제도 없다. 계산은 문제이다. 선악과는 근본적으로 계산을 바탕에 두고 태어난다. 우리 안에 무시로 파고드는 선악과는 문제가정과 문제아를 만들고 그 해결의 실마리는 선악과 맞은편에서 인류의 문제와 죄악을 해결한 골고다 십자가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아는 이가 교회 안에서조차 흔하지 않다.]

어떤 부모든 자녀의 생명은 부모자신의 생명보다도 더 소중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아브라함의 독자 이삭을 향한 애정이 대단했습니다. 늙어 전혀 불가능한 나이에 포기했던 자녀문제가 하나님의 언약과 은총으로 해결되어 아브라함부부는 노년에 상상할 수 없는 행복한 날들을 맞이하게 됩니다. 모든 부모에게 자녀가 다 그렇겠지만 특별히 본문의 이삭은 아브라함 나이 백세에 얻은 귀한 아들입니다. 그 아들을 통해 아브라함이 무서운 시험을 받게 됩니다. 큰 복은 큰 시험 끝에 오는 줄 믿기 바랍니다. 오늘 설교제목은 “친히 준비하신 어린 양”입니다. 번제물은 제사장과 무리들이 함께 준비하는 것입니다. 허나 오늘 본문에는 번제 받으실 하나님이 직접 준비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7절 뒤에서 8절 앞입니다.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참으로 기가 막히는 장면입니다. 아브라함은 99세에 할례를 행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1년 후 할례를 따라 난 약속의 자녀 이삭을 91세 노파 사라가 출산합니다. 할례없이 15년 전에 낳은 육신의 아들 이스마엘과는 다른 이삭입니다. 그 아들을 하나님이 번제로 드리라고 하실 때 아브라함은 말없이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채우는 모습을 성경은 담담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오늘 핵심주제 성구입니다.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준비합니까?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번제할 어린 양을 준비하신다고 합니다. 십자가에서 누가 누구를 위하여 돌아가셨습니까? 죄로 죽은 인생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죽었습니다. 본문은 분명히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번제할 어린 양을 준비하신다고 했습니다. 죄로 죽은 우리를 위한 것은 곧 하나님이 자기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가 죽는 사건이었고 그것은 하나님자신이 육체를 입은 아들의 모습 곧 어린 양으로 오셔서 대신 죽으신 사건이었습니다. 우리 죄를 위해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하나님의 성육신이었습니다. 거룩한 육신으로 오신 것이 하나님의 준비였고 하나님이 죽음조차 대신 짊어지시고 부활승천으로 분명한 승리를 증거, 선포하신 게 아닙니까? 우리는 여기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준비하셨다는 대목에서 자신을 위하여 하신 일의 근본이 결국 사랑이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존재목적이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하여 모든 것을 통치하고 다루어 가십니다. 본문에서 친히 준비하신 어린 양이 결국 하나님의 사랑에 기인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성도와 교회가 하나님의 몸된 성전으로서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한다면 하나님은 성도와 교회를 위하여 존재하십니다. 그 성도와 교회가 결국 하나님의 실존적 증거, 곧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활동이라는 데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친히 자기를 위해 준비하신 어린 양 역시 교회와 성도를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와 성도는 하나님의 몸이기에 본문은 하나님이 자신의 몸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보다 성숙한 믿음의 삶을 통해 참으로 복된 삶을 살면서 이웃에게 나눠주며 화목함으로 주님의 나라를 실현하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그것은 하나님과 화목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요일4:10절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이에 앞서 2:2절에서는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죄인의 신분으로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는 인생들이 주님의 희생으로 죄값을 십자가에서 청산받음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몸인 교회와 성도들을 위하여 직접 몸으로 이 땅에 오셨고 결국 본문말씀대로 자기를 위하여 준비하신 어린 양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예수님을 계획하신 분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예배를 위하여 무엇이든 아끼지 않고 베푸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예배와 제사를 잠시 살핍니다. 제사는 제물된 우리 몸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몸을 번제단에서 태울 수 없기 때문에 제물인 몸 대신 주신 것 중 가장 좋은 것으로 골라 희생제물을 드립니다. 예배는 그러나 제물대신 예물을 드리게 됩니다. 그것은 이미 제물로 바쳐진 어린 양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의 죄가 용서받았으니 거기에 따른 구원의 감격으로 기쁨의 예물을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의 제물은 죽기 위함이요, 신약의 예물은 다시 살아난 기쁨으로 극도의 예를 갖추는 정성어린 헌물입니다. 그러므로 제물에서는 희생의 피비린내가 나지만 예물에서는 다시 살게 된 생명의 향기가 노래와 함께 울려납니다. 죄로 인해 마땅히 죽어야 할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이젠 우리가 사망의 절망대신 부활의 기쁨으로 예물의 향기인 것을 잊지마시고 그 향내가 주님 앞에 올라가는 것이 예배입니다. 이 예배에 필요한 예물을 누가 준비합니까?

다시 본문입니다. “내 아들아. 번제에 쓸 어린 양을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우리가 예배를 드리기 위해 필요로 하는 모든 것, 즉 예물이 되는 것들을 친히 준비하시는 것을 믿기 축복합니다.

 

복음아래 기쁨으로 예배하는 여러분, 여호와이레가 어찌 번제물 어린양뿐이겠습니까? 범사에 여호와이레인줄 믿습니다. 만사,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면을 둘러보아 주님의 손길 아닌 것이 없는 것을 알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사람의 믿음과 영을 말할 때 그것은 겸손의 도와 깊이를 살피게 됩니다. 자신의 삶에서 자신이 이루어 놓은 것은 없으며 모두가 주님의 선물인 것을 예민하게 깨닫고 있다면 그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친히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함께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만유 중 하나님보다 진실하고 아름답고 선한,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진,선,미의 하나님 안으로 가능한 한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얼크러졌던 인생이 바로 세워지고 제자리에 돌아오게 됩니다. 인자하신 하나님. 자비로운신 하나님은 자신의 위대하신 이름을 위하여 예배라는 교제와 회목을 마련하고 예배를 통하여 저와 여러분을 품어 주십니다. 즉 예배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시고 인도하시는 살리는 예식, 생명의 예식입니다. 그러기에 예배는 하나님과의 가장 구체적인 만남과 연합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예배란 무엇이며 왜 그렇게 하나님은 예배충성을 명령하시는가?

 

1. 예배는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에 있어서 최고의 수단입니다.

*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모든 관계가 회복되어 용서와 자비하심 안에 들게 됩니다.

 

2. 예배는 인간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수단입니다. 즉 에덴의 회복입니다.

* 모든 것이 제자리에 돌아오면 비로소 본래의 모습이 회복됩니다. 오염됐던 내면에 밝은 진리의 빛이 능력으로 나타나기 시작해 인격과 삶이 달라집니다. 온전한 인간의 완성입니다.

 

3. 예배는 타락한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배려요, 최선입니다.

* 예배를 통해 죄인의 구원이 구체화되어 신음과 절규와 심판대신 영생과 구원의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4. 예배는 생명의 행위입니다. 영이 살아나고 육체가 회복됩니다.

* 예배는 생명을 위한 모든 것이 채워지고 회복되는 순간입니다. 모진 세상과 부족한 자신으로부터 지칠대로 지친 영혼과 육체가 치유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에게 중요한 한 가지를 당부하고 말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먼저 모이기에 힘쓰는 여러분이 되시기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배는 회복이니 말씀 먹고 살아나기 원하면 들것에 실려서라도 참석하겠다는 결단을 하세요. 예배에 필요한 번제물 어린 양은 주님이 친히 자기를 위하여 준비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어린 양을 준비하실 때 아브라함은 무엇을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불과 칼과 나무를 갖고 사흘 길을 가서 모리아산 현장에 이르렀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할 일은 예배의 현장에 모이는 것입니다. 성경과 찬송을 갖고 예물은 항상 주님이 준비하신다는 믿음을 갖고 예배당에 가는 겁니다. 내집에 빈손으로 오지 말라는 말씀에 순종하면 결국 교회에 오는 손이 풍성하게 하시는 주님을 찬미합니다. 아브라함이 갔던 모리아산 제사길이 고통의 사흘 길이었다면 우리들의 예배길은 기쁨과 노래와 설렘으로 인한 평강의 세 박자 스텝, 샬롬 왈츠입니다.

 

예배가운데 생명이 열리고 문제가 풀리는 정답을 풍성히 받기 바랍니다.

그러려면 정답을 일러주는 그 복된 장소에 죽음을 각오한 내 몸이 있어야 합니다.

그 현장에 생명을 구하는 마음으로 달려 나오시기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이 선포되는 생명잔치에 우리는 몸과 시간과 정성으로 참여하면 주님이 예배를 준비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여러분이 하실 일은 예배현장에 몸을 드리는 것, 그게 우선입니다. 모이기에 힘을 다하는 예배자에게 주님은 아름다운 예물로 그리고 삶의 풍성으로 채우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