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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20.07.26.주일예배설교<딤전1:18~20. 믿음의 경주.>

by 설렘심목 2020. 8. 3.

2020.07.26.주일예배설교<딤전1:18~20. 믿음의 경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신 예수그리스도. 우리 주님이 지적한 인생의 짐 중 가장 무거운 짐은 육신이다. 값진 보화를 가득 넣은 보따리를 어깨에 짊어지면 아무리 무거워도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값을 매길 수 없는 놀라운 선물, 육신을 지고 가면서 매순간 불평한다. 관리에도 서투르지만 진정한 가치를 모르기 때문이다. 죽지 못해 산다는 말과 내 몸이 거룩한 하나님의 집이라는 말은 정반대의 고백이다. 하나는 땅이요, 하나는 하늘에 속한 자의 고백이다. 그렇다. 짐 중 가장 무거운 짐 육체, 선물 중 가장 복된 선물 육체가 내 손으로 운영된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가? 적절히 먹으면 약이요, 맘 놓고 먹으면 독이 되는 육체, 우리는 조절기가 고장 나버린 문제인생들이다. 예수의 보혈로 이제 모든 것을 고쳤으니 오직 주만 바랄지어다.]

 

세계적 인기를 누리는 자동차대회 다카르랠리는 자동차마니아들의 로망입니다. 15일간 9천6백km 비포장 길과 사막, 산악지대와 평야를 통과하는데 매년 많은 이들이 참가해서 사망자도 여전히 속출하고 있습니다. 일명 “죽음의 랠리”라고 하는 이 혹독한 경주는 생명을 건 것이라 반대여론이 끊이질 않고 있지만 세계 각 자동차회사들은 이만한 홍보가 없고 선수들은 한방에 출세가 열리니 모든 걸 겁니다. 출전차량은 우수한 성능과 내구성에 운전자도 보통이어선 안 됩니다. 승부욕에 따른 체력, 지구력과 실력, 그리고 겁 없는 자신감. 인터뷰에서 이미 출전자들은 생명을 걸었다고 말합니다. 여자선수들도 5백여 명중 20여명이나 됩니다.

손에 땀을 쥐는 장면을 보면서 자동차경주가 마치 인생여정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차도 좋아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노련한 운전자란 생각을 하면서 우리의 몸과 활동이 어떤 생각에 끌려가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자동차경주에서 자동차의 구동력인 엔진, 조향장치인 핸들, 제동장치인 브레이크가 중요한 3대기능인 것처럼 우리 인생에도 힘, 그리고 그것을 쓰는 지혜, 그리고 마지막 승부로 영광이 되는 바른 목적, 넘치거나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하는 통제력인 인성이 있습니다.

 

먼저, 성도의 성공적인 인생에 있어 중요한 힘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본문 19절입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삶과 사역에 있어서 힘의 근원을 봅니다.

 

1. 삶의 원동력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이를 담는 착한 양심에서 나옵니다.

 

히브리서에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한 가정의 가장에게 복되고 즐거운 일이 생겼다면 온 가족이 기뻐할 것입니다.

회사에서 경영주에게 큰 복이 열렸다면 수위실까지 좋아할 일입니다. 하나님이 기쁘시면 온천하와 만물이 행복하다는 것이 불변의 이치라면 믿음이란 어떤 것일까?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마음의 변화와 의지를 자기 것으로 삼아 삶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살면서 여러 가지 상처를 받고 그 상처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울타리를 치게 되는데 이걸 방어기제라고 하며 방어기제는 또 다른 상처를 막기보다는 그로인해 많은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또 다른 담이 되어 자신을 외롭게 가둡니다. 하나님에 관한 한 어떤 담도 치지 않는 것이 믿음이요, 착한 마음입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는 바울사도의 충고는 모든 인간이 주 앞에 어떻게 반듯하게 잘 세워져 가야 할 것인가를 일러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양심을 버리면 믿음이란 배가 파선하고 믿음의 방주에 금이 가면 배에 물이 들어와서 세상이라는 죄악의 바다에 익사하고 맙니다.

새벽녘에 예수님께서 바다위로 걸어서 고기를 잡는 제자들의 배로 오십니다. 놀라운 기적의 현장에서 맨 먼저 반응한 베드로는 바다위로 걸어오는 분이 주님이시라면 자신에게 명령해서 바다위로 걸어 주께 가까이 가도록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오라고 했고 베드로는 물위를 걸어서 주님께 가까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걸어가다가 발아래 출렁이는 바다를 눈으로 보고 그만 두려움이 덮쳐 바다에 빠졌습니다. 베드로의 눈과 마음에 주님은 멀리 있고 파도는 가까이 발아래 두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주님보다 현실을 보니 두려움이 믿음을 덮게 된 겁니다. 그렇게 믿음에 금이 가 파선하면 세상 위로 매끄럽게 가던 성도가 죄악이라는 바다에 베드로처럼 빠진다는 것을 성경은 교훈합니다.

우리가 그래서 항상 주의할 일은 믿음을 잃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믿음은 인격을 보장하지만 인격은 믿음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양심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큰 선물로 잠든 믿음을 깨우는 마지막 감지기입니다. 센서는 매우 작습니다. 그러나 전체를 책임지는 경비초소입니다. 성령이 양심을 통해 아주 미세한 소리로 권고할 적이 많습니다. 양심을 무시하면 무시한 만큼 힘들어지는 게 사실입니다. 양심 앞에 순종하는 것이 주님 앞에 순종하는 것의 시작임을 믿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양심이 무너져 기능을 잃으면 믿음이 약해질 때 경고의 나팔이 없어서 아무런 갈등 없이 세상으로 달려가게 됩니다. 신앙의 안테나, 믿음의 등대, 신앙양심이 말씀과 기도로 날마다 새로워지는 복이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그렇습니다. 신앙과 삶의 힘이 그렇게 믿음과 착한 양심에서 나온다면 방향조절기인 조향장치는 무엇으인가? 18절입니다.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삶의 방향을 일러주는 인생의 조향장치는,

 

2.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과 사역의 이정표입니다.

 

자동차의 성능이 좋아 잘 나가도 이정표를 잘못 본 운전자가 엉뚱한 데로 몰아간다면 낭패입니다. 디모데가 아무리 좋은 믿음과 선한 양심으로 열심히 건강하게 지치지 않고 일해도 무엇을 어떻게 왜 해야 한다는 기본 신앙적 지표가 없다면 칭찬받는 일꾼이 아닙니다.

 

바울사도가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명령하는 교훈의 목적은 5절에 밝히듯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입니다. 즉 청결한 마음은 때가 묻지 않은 깨끗하고 세속에 오염되지 않은 거룩함인데 거기에 선한 양심은 근본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을 믿기에 알맞은 선물이기도 합니다.

믿음이 강력한 생명과 소망의 원동력이라면 청결한 마음과 착한 양심은 믿음을 담는 그릇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착한 양심과 믿음이 새 힘을 받아 인생이라는 큰 터-빈을 돌려 출발하면 이윽고 어디를 향해야 할지 조향장치, 즉 핸들에 의해 방향을 정하면서 목표점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핸들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표준으로 삼아야 하고 또 소망이어야 합니다. 신세대 결혼식에서 어떤 신랑이 친구들과 함께 예식 중 흥겹게 한판 춤을 추면서 신부를 향해 노래를 하는데 제목이 “당신은 내 인생의 내비게이션”입니다. 방향, 속도지시, 급커브길, 낭떠러지에 낙석조심과 방지턱까지 알려주고 각종 유의사항과 주유소위치에 식당까지 알려주니 길눈 어둔 사람에게 내비게이션 음성메시지는 그야말로 차량운전의 복음인 셈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에 있어서 가장 확실한 내비게이션은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두운 인생길을 가는데 필수적인 성경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착한 양심과 성실한 믿음으로 잘 구동시켜가는 인생수레 성공적 삶의 원동력과 제동장치와 방향장치가 오직 하나님의 말씀가운데 있음을 각별히 기억하시는 주일되기 바랍니다. 엔진이 좋아도 엉뚱한 길로 가면 안 됩니다. 이정표도 잘보고 엔진도 양호한데 브레이크가 밀려도 곤란합니다. 브레이크 잘 듣고 방향도 정확하게 알고 가는데 엔진이 꺼지면 끝입니다.

건강한 몸과 건강한 정신으로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삶의 목적을 평생 다짐하며 가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치지 않는 꾸준함으로 달릴 때에도 멈출 땐 반드시 멈출 줄 알아야 합니다. 엔진이 갑자가 푸득대면 멈춰서 지금 잘 가고 있는지 인생이정표를 확인해야 합니다. 빈틈없는 인생수레, 닦고 조이고 기름칠 잘해서 그날 거기서 칭찬받는 저와 여러분이시기를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