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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20.02.09. 주일설교 <계 11:10-12. 이리로 올라오라>

by 설렘심목 2020. 2. 9.

2020.02.09. 주일설교 <11:10-12. 이리로 올라오라>

[유추프라카치아는 아프리카 밀림 응달에서 사는 아주 민감하고 여린 꽃인데 사랑 없인 살 수 없다는 의미를 전할 때 종종 사용되는 단어가 됐습니다. 이 꽃은 누가 건들면 공격받은 줄 알고 며칠 안에 죽어버립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계속 만져주면 되살아납니다. 사랑을 받는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소량의 수분과 햇빛으로도 살지만 누가 눈총을 주거나 사랑하면 그게 죽고 사는 근거가 되는 꽃, 유추프라카치아, 우리 인생 모두 알고보면 다 유추프라카치아와 다를 게 없습니다. 부모형제도 대신 죽어 줄 수 없는 세상입니다. 말씀으로 자신의 영혼을 꾸준하게 어루만져(스킨쉽) 자신은 죽고 우리는 살게 하시는 주님의 생명 안으로 깊이 빠지길 축복합니다.]

 

66권 성경가운데 주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에게 친히 찾아오셔서 보여주시고 들려주신 계시록만큼이나 선명하게 속히 이루어질 일을 말씀하심으로 믿는 자들의 가슴을 부풀게 하는 책은 없습니다. 계시록을 대할 때 저는 어떠한 성경보다 그날 거기에 대한 강렬한 희망으로 인해 감동적이며 신이 나고 기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11절 첫 시작부터 특별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요한에게 말씀하신 이는 반드시 속히 이루어질 일이라는 데에 주목하기 바랍니다. 반드시 속히 이루어질 일들.

 

본문은 일곱 인, 나팔, 대접 재앙 중 두 번째 나팔재앙이 끝나는 여섯 번째 천사가 분 나팔소리 후에 나타나는 마지막 장면입니다. 이 장면을 끝으로 세 번째 재앙 대접재앙이 시작됩니다.

 

본문이 말하는 두 선지자는 말씀을 증거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두 선지자는 마지막 때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복음증거를 위해 헌신된 믿음의 사람과 교회입니다. 요한이 밧모 섬에서 본 놀라운 광경가운데에는 말씀을 맡은 교회가 큰 권세를 하나님께 받아 말씀을 선포하지만 잠시 무저갱에서 올라온 악한 것들에 의해 탄압받고 잠시 죽임을 당하게 되며 그 사흘 반 만에 하나님의 생기가 두 선지자에게 들어가게 두 발로 일어서자 구경하는 자들이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그 때에 하늘로부터 이리로 올라오라는 큰 음성을 듣습니다.

 

오늘 설교제목은 이리로 올라오라입니다. 이는 영광스런 <하나님의 초청>입니다. 특별히 선택된 소수의 사람들에게 내려주시는 크고 큰 은총입니다.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천국으로의 초청입니다. 오늘 말씀으로 이리 올라오라는 주님음성을 듣는 저와 여러분이시기 축복합니다.

 

그렇게 주님의 음성을 들은 믿음의 사람들이 그 초청을 받기 위하여 반드시 기억해야 할 세 가지를 상고하는 시간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초청을 받는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1. 첫째, 증인으로서 해야 할 일입니다.

 

본문의 두 선지자는 두 증인입니다. 두 증인은 하나님을 잘 믿는 자들을 말합니다. 여기 증인의 수가 둘인 것은 증인의 증거를 분명히 하는 증인의 숫자로서 증인들이라는 복수의 의미를 지닙니다. 증인은 먼저 말할 것도 없이 어떤 상황을 보거나 듣거나 만진 경험을 함으로 증거를 확보한 사람을 말합니다. 하늘에서 큰 음성이 나서 하늘의 초청을 받는 첫 단계가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사랑이신지를 분명히 경험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피흘려죽게 하실 정도로 우리 죄인들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눈물과 감동으로 늘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경험하셨다면 날마다 그 감동이 뜨겁게 자신을 사로잡도록 그분께 가까이 나아가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소를 지나 지성소에서 만나 뵙기 바랍니다.

성소와는 다른 지성소의 믿음이란 피의 냄새로 그 잔혹한 희생이 무엇인지를 절감하는 믿음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감당하고 죽은 어린 양의 피비린내에 울렁거림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그 믿음은 아직 피상적 성소의 믿음일 수 있습니다. 머리에 맴도는 지식적 신앙은 늘 한계가 있는데 마귀가 환경을 흔들어 비바람치고 지진이 나면 생명조차 원망하고 불신자와 다를 게 없는 말을 하게 됩니다.

성경 읽고 기도하며 찬송하는 일은 그분을 만나는 일입니다. 오늘 말씀 받는 이 시간 주님이 저와 여러분 안에 차고 넘쳐서 성령의 증거들이 풍요로워지기 축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리 올라오라는 주님의 초청을 받으려면 증인으로서 해야 할 일, 곧 듣고 보고 경험하고 느낀 것을 정직하게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증거한 일의 교훈과 기쁨을 자신이 먼저 누리고 지키고 행함으로 드러내는 고백적 삶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예배활동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할지어다. 그 일을 기뻐하며 증거 할지어다. 그 증거된 말씀을 따라 시간을 사용하는 복된 삶이 될지어다.

 

이것은 증거하게 하신 이를 그 분답게 높여드리는 귀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머지않아 이리 올라오라고 하실 때 주저 없이 일어나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가 가야 할 길입니다.

하나님의 초청을 받는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두 번째 일은

 

2. 증인으로서 메어야 할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증거하기 전 우리가 새롭게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그리스도와 그로 인해 주어진 영생을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았다는 분명한 사실을 기뻐해야 합니다. 계시록 116절과 요1:12절에서 밝히는 영접하는 자 곧 그의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는데 본문에서도 두 증인에게 큰 권세를 주셨다고 합니다. 그 권세로 예수그리스도를 선포하는데 무저갱에서 악한 짐승이 올라와 두 증인을 전쟁으로 죽입니다.

 

복음 선포에는 언제나 이렇게 넘어야 할 험한 산과 바다가 있습니다. 사흘 반의 죽음, 이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자들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를 믿고 따르고 전하며 그분을 찬송하고 기뻐하는 일은 그분이 가셨던 것처럼 우리도 자기否認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따르는(9:23) 길이어야 합니다. 자기중심적인 모든 思考, 가치관, 편견, 자랑, 슬픈 기억, 상처, 열등감, 하나님보다 우선되어 있는 모든 것들은 자기否認의 십자가에 매어 달아 죽여야 할 부질없는 것들이요, 죄악의 씨앗들입니다.

 

그것들은 언제나 조그마한 틈만 생기면 나를 파고들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방해합니다. 하나님의 장엄한 초청의 음성을 듣는 사람은 이렇듯 자신을 부인하고 먼저 행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붙들고 그의 능력을 힘입어 스스로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주의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리 올라오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마지막 일은,

 

3. 십자가를 기꺼이 지도록 능력주시고 그 증인을 초청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찬송이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분이신(12:2) 예수님은 죽으신 분이 아니라 죽으신 후 다시 살아나셔서 죽은 자의 첫 열매(고전15:20)가 되신 분이십니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사흘반의 죽음을 경험한 두 증인이 하나님의 크신 음성을 듣고 올라가는 거긴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가 머물러 있는 곳, 천국입니다.

 

멸망하는 심판의 현장에서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집으로 우리를 불러올리시는 우리의 이름은 어떤 이름입니까? 그리고 우리를 그렇게 불러주시는 주님의 위대한 이름은 어떤 이름입니까?

그 이름은 우리가 이 땅에 있는 동안 끝 날까지 불러야 할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며 가장 선한 이름입니다. 가장 복된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이름을 이미 오래전에 불러주셨습니다.

이젠 우리가 그분의 이름을 노래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들 입술이 여호와 하나님의 노래와 찬미예수로 넘칠 때 주님은 이리 올라오라고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죽을 수 없어도 그분께서 죽을힘을 주십니다. 우리는 갈 수 없는 하나님의 하늘보좌 앞, 그분이 불러주시면 넉넉히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이 없는 사랑으로 한번 살리시고 당신의 증인으로 살게 하시는 사람들은 그분이 모든 길을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주권 앞에 모든 삶을 내어 드리고 맡기는 삶으로 이리 올라오라는 그분의 음성을 듣는 저와 여러분이시기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