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19. 주일예배<히2:9-18.십자가로 확정된 구원>
[보약을 먹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몸에 해로운 음식을 삼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에 앞서, 그 사람이 싫어하는 짓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행복을 원한다면 욕망을 채우기보다 욕심을 버리는 것이 우선입니다.
삶이 허전한 것은 무언가 채워지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비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충성을 결단하기 전에 내 안에 어떤 것이 하나님을 힘들게 할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셔서 사랑받기에 합당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를 위하여 사랑의 대상을 지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대상인 사람을 위하여 만물을 배경으로 조성하시기에 아낌없으셨습니다. 인간이 타락하자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제사로 단번에 하나님과 죄인사이의 벽을 허무셨습니다. 죄를 용서받은 비록 부족한 존재지만 거룩하다 일컬음을 받았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 죽음의 권세를 깨뜨려 부순 후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와 산자의 모든 소망이 되셨습니다.
우리 인생에 가장 큰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십자가 구원을 본문은 무엇이라고 설명합니까?
1. 고난으로 온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인생의 고난은 모두 하나님을 떠나면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욕심의 노예가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시기하여 질투의 노예가 돼 서로 미워합니다. 하나님을 떠남으로 왜 사는지 목적을 잃고 방황하며 삶을 탕진합니다. 모두 하나님을 떠나면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소망하는 이와 하나님을 등진 자는 삶의 목적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어떤 이는 아예 왜 사는지조차 모르고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죄의 뿌리는 하나님을 떠난 것이고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아는 것(잠9:10)입니다.
십자가로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는 어쩔 수 없이 죄의 대가를 치르는 과정을 필수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죄로 얼룩진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죄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교제가 불가능한 인간에게 죄값을 어떤 방법으로 치르게 하실 것인가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선결되어야 할 문제였습니다. 많은 죄인들을 위하여 특단의 조치가 하늘에선 계획됐습니다. 그것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래 전 선지자들을 통해 긴 세월 꾸준하게 예언됐던(사7:14) 일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귀 열린 자들은 이미 밝히 알고 있던 일이었습니다. 여러 차례 예고된 대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는 그러므로 마땅히 죄인들을 대신해 죄값을 지불하시는 고난으로 죄인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이제 저주받은 죄인의 모습은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온전해졌습니다.
2. 사망으로 사망을 이기셨습니다.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자유를 주셨는데 그 자유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합니다.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최고의 마지막 자유는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그 최고의 자유를 주시기 위하여 먼저 죽음을 맛보시고 분명한 승리를 증거하셔야 했던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당하신 십자가사건은 그만큼 끔찍하고 무서운 대가를 요구했습니다.
3시간이라는 기나긴 고통 속에서 서서히 질식해가는 죽음을 우리는 상상이나 할 수 있습니까? 더욱이 보통 사람으로서는 쉽게 질 수 없는 십자가를 미리 알고 계셨다는 것은 더욱 괴로운 일입니다.
인류에게 마지막 유일한 소망으로 오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대속죽음으로 많은 죄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 그 큰 소망하나로 위대한 희생을 끝내 감당하셨습니다. 무서운 질고, 그 통증은 무서운 결단과 작정과 거기 따른 순종이었습니다. 악한 영들이 죽음이라는 마지막카드를 제시했을 때 기꺼이 받으시고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사망권세를 이기셨습니다.
더 이상 공격할 게 없는 사탄은 드디어 머리를 짓밟히고 죽은 영이 되어 아직은 꿈틀거리는 몸뚱이로 죽은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영이 혼미하면 이 마귀의 꿈틀거림에 놀라 사탄의 엉터리 거짓 고발에 놀라지 않기 바랍니다. “넌 죄인이야, 죽어야 해. 거 봐, 넌 아무리 회개해도 안 돼, 네가 받은 구원은 허상이야.” 아무 근거가 없는 고발 앞에 말씀에 의지해 나사렛예수의 복음으로 악한 생각을 주는 마귀를 꾸짖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으리라.”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사셔서 하늘로 오르신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 믿음으로 우리도 죽음을 이길 권세를 받은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육신을 벗는 날 다시 사는 영생의 영광은, 썩지 않을 몸으로 다시 일으키실 주님에게 우리의 온 생애와 영혼을 의탁할 때 이미 시작된 일입니다.
가슴에 새길 말입니다. “주께 우리의 모든 것 온전히 믿고 맡길 때 우리의 영생은 이미 시작됐다.”
따라서 사망을 이기신 주님의 자녀들이 사소한 일에 묶여 꼼짝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단순히 믿음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만 육신의 감각을 가졌기에 우리가 순간 놀라고 두려운 것은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누구나 잠시 나타나는 본능적 반응에 속한 일입니다.
믿음으로 이미 시작된 성도의 영생, 불신자의 죽음은 심판의 시작이지만 성도의 죽음은 그래서 새로운 세계의 시작을 뜻합니다. 이것은 대단한 소식, 복된 소식, 복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관한 모든 소식은 다 복음입니다. 그래서 우린 예수님을 복음 그 자체라고 선포하기에 주저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고단한 일들과 저주스러운 기억들이 이 천국복음에 모두 묻혀 사라지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비전성도여러분.
하나님께 충성할 때 세상은 매우 작아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불충하고 믿음이 떨어지면 하나님이 안보이고 세상이 너무 버겁게 다가옵니다.
우리들 삶의 크고 작은 모든 문제들은 모두 믿음의 문제들인 것에 동의하셨을 줄 압니다.
3. 시험을 이기게 하시려고 먼저 시험을 당하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전쟁에서 부하들을 아끼고 용감한 소대장은 언제나 “나를 따르라”고 하지만 무능하고 비겁한 소대장은 “돌격 앞으로”라고 소리칩니다. 우리 주님은 생명을 내놓으심으로 앞장서시고 죽음과 맞서 이기신 후 뭐라 하셨습니까?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우리가 아무리 큰 시험을 당해도 십자가에 비하면 입을 닫게 됩니다.
우리 선하신 목자 우리 좋으신 주님께서는 돌격 앞으로가 아니라 나를 따르라며 먼저 죽음의 시험을 통과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에게 담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시험에서 이길 근거를 이미 십자가의 부활로 확실하게 마련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시험에서 이길 능력과 권세는 허세나 허상이 아니라 실세실상입니다. 잊지 않아야 할 것은 우리 안에 이길 힘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주님 함께 하시면 믿음 주셔서 믿음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안한 신앙으로는 시험을 이기기 어려워도 주님을 제대로 믿는 성도라면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확실한 신분증, 예수의 피로 아로새긴 생명의 아이디카드를 손에 쥐고도 패스워드를 잊어서 주님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많은 이들을 보는 일입니다. 주님만나는 암호는 무엇입니까?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단순한 이 한마디에 얼마나 많은 것이 함축적으로 허락되어 있습니까? 지극히 단순하게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먼저 철저하게 믿으면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계십니까? 우리 교회표어입니다. “지금 여기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교회”에 날마다 함께 하시고 여러분의 가정에도 그와 같이 그 시간 거기 함께 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예배하는 복된 여러분.
자신의 몸을 바쳐서 구원한 주의 자녀들, 저와 여러분은 주님의 분신들입니다. 얼마나 놀랍고 귀한 우리의 신분인지 또 주님의 끝없는 사랑인지 말로 다 할 수 없는 주님의 죄인사랑입니다. 우리 죄인들을 신부라고 부르시고 자녀라고 부르시는 주님께서 오늘 본문에서는 형제라고 불러주십니다. 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친근함과 겸손함이 묻어 있는 말씀이십니다.
요약합니다.
겸손하고 온유하신 주님께선 우리에게 사망조차 이길 길을 먼저 죽고 다시 사셔서 열어 놓았습니다. 고난을 이길 힘을 주시기 위하여 먼저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시험은 이기는 싸움이라고 하시며 친히 시험을 당하시고 이기셨습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 주님은 우리의 좋으신 대장되십니다. 오직 예수만 의지하여 늘 승리하는 여러분이시기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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