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12.주일예배. 히<6:13-20. 반드시 복주며 번성하게 하리라.>
[얼마 전 프롤로그 메시지는 복의 정체가 무엇인가에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좋은 말씀은 거듭 들어 귀에 박히고 가슴에 새겨지게 해서 입을 열면 술술 나오게 하시기 바랍니다. 복의 개념정리에서 그 순서를 꿰고 있어야 하고 다음 참복의 기본도 잘 설명해야 합니다. 지극히 단순한 그 한마디는 복이 복인 줄 아는 게 참복의 출발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복되다 내가 복이다 선포하면 그게 복의 출발이라는 뜻입니다. 성령의 활동을 아는 하나는 이겁니다. 찬송 가사나 성경구절을 대할 때 “이건 딱 내 이야기야.” 감동이 넘치면 성령의 활동입니다.]
모든 거래에는 보증인이 있어야 안심하고 진행되는데 언제나 보증인은 보증 받는 사람보다 높고 커야 합니다. 안현진 아기가 엄마를 보증하지 못합니다.
16절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확정이니라.” 예컨대 회사가 직원을, 정부가 국민을, 학교가 학생을 그리고 부모가 자녀를 보증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더 높고 큰 존재가 없어서 스스로 자신을 가리켜 맹세로 보증한다고 본문은 밝힙니다. 13절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되”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들은 이가 지켜 행할 때 그대로 복이 되는 권세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더 이상의 보증자가 필요 없습니다. 곧 그대로 생명의 법이며 동시에 마지막 보장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뤄지는 약속이며 하나님은 영원, 신실하십니다. 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약속의 갖가지 복이 임할 곳은 약속의 대상주체인 하나님 택하신 백성들에게와 그 가운데에서 말씀 따라 순종하여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입니다. 복 주신다는 약속은 누구에게 해당됩니까? 본문14절입니다.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1. 오래 참는 이에게 약속의 복을 더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은 인류가 지금까지 들어온 모든 좋은 소식 중에 가장 복된 최고의 소식입니다. 그런데 복된 소식을 듣는 것과 복을 받는 것과는 다릅니다. 누구든지 귀로 복음을 들을 수는 있습니다. 들은 것이 복이 되려면 금방 뭐라고 했나요? 들은 그대로 행하는 그게 복인데 본문은 그렇게 행하는 중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오래 참아 자녀의 약속을 받은 것은 약속하신 하나님을 확실하게 믿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백세에 태가 마른 아내 사라에게서 아들을 얻었고 그 귀한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에 명령에 즉각 순종해 믿음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오래 참아 견딜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드디어 아브라함은 마침내 거부가 됩니다. 거부가 된 아브라함은 우리가 하나님을 반듯하게 잘 믿음으로 하늘의 영생구원은 물론이요, 땅에서도 복된 승리가 보장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마침내 거부”라는 말에서 “거부”보다 “마침내”라는 말에 방점을 찍기 바랍니다. 마침내란 “이런 꼴 저런 꼴 다 보고 그럼에도 오직 주님만 의지하여 잘 참아 결국”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모두 잘 참고 기다려 아브라함가문의 믿음과 기쁨과 승리가 저와 여러분, 가문과 생업에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17절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않음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2. 영원불변하는 하나님의 약속은 믿는 자의 기업(基業)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enterprise, 기업은 이윤창출을 목표로 하여 만들어진 생산단체나 그 활동을 말하지만 성경의 기업은 대대로 물려가는 그 가문에 기초적인 산업으로 자손과 토지를 말합니다. 이는 노력해서 얻은 것과는 다른 하나님의 선물로서 주로 분깃, 유업, 상속이란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표준새번역에는 17절 앞이 “하나님의 약속을 상속받을 사람들에게”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기업 안에는 한 사람의 생애가 갖는 의미와 목적과 과정과 품격이 들어가 있습니다. 기업은 인생의 중요한 과정인 동시에 자기구현의 대표적인 수단이기도 합니다. 본문은 성도의 기업이 하나님의 불변영원한 약속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약속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언약의 성취, 율법의 마침표, 예수그리스도 우리 주님이십니다. 주님 안에서 이어지는 후손과 열어주시는 활동영역인 밟을 땅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드러난 약속, 예수그리스도는 가장 확실한 우리의 기업이십니다.
오늘 설교제목, 본문 14절인 “너를 반드시 복주며 번성케 하리라.”입니다. 복과 번성, 이는 인간이 육체로 사는 동안 사모할만한 최고의 주제입니다. 이 복과 번성이 오래 참아 받은 아브라함을 예로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복과 번성은 18절에서 두 가지 불변사실을 근거로 우리에게 위안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18절을 함께 읽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3. 우리가 받은 기업은 하나님의 맹세와 약속으로 된 소망입니다.
13절에서 더 큰 자가 없어서 스스로를 가리켜 맹세하신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고 하신 그 약속은 믿음으로 의를 이루어 영적인 이스라엘들이 된 택자들, 우리를 향한 것입니다.
이렇듯 믿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 맹세로 된 것이니 더 이상 불안에 떨거나 두려워 낙심할 것이 없는 성도의 인생은, 피난처인 예수그리스도로 인해 든든한 인생입니다.
18절을 다시 읽은 뒤에 제가 풀어 읽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불변하는 사실로 인해 장차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제 17-18절을 제 주석으로 다시 전합니다. “하나님은 약속, 즉 복과 번성에 대한 약속을 상속으로 대대에 이어받을 우리에게 그 뜻이 영원불변임을 확실하게 보장하시려고 그 일에 스스로를 가리켜 맹세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맹세는 하나님께서 도저히 변할 수 없는 두 가지, 즉 약속과 맹세라는 사실에 의해 죄를 피해 주 예수를 찾은 우리에게 더없는 위안을 받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이제 왜 하나님이 맹세까지 하셨는지를 우리는 알게 됩니다. 이는 참으로 감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릴 사랑하시되 외아들의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으신 우리 하나님께서 이제는 그 아들을 믿는 모든 자에게 복에 복을, 번성에 번성을 약속하셨는데 맹세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고 받아야 할 수많은 복과 번성은 우리가 거부할 수 없고 피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약속이요, 하나님의 기쁨인 것입니다. 본문 19-20절입니다.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
4. 하나님이 맹세한 약속의 소망은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흔들리지 않습니다.
19절에 말씀한 구원에 관한 소망으로 인해 우리의 영혼이 닻을 내린 것처럼 튼튼하다면 우리들의 영혼은 항상 지성소 휘장 안에 출입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휘장 안에 들어서는 출입자격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열어주신 특권입니다. 20절을 다시 봅니다.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
성도여러분. 험한 바다와 같은 세상 살아갈 때에 우리의 영혼을 크고 작은 죄악의 파도가 항상 위협하고 삼키려 합니다. 그때도 휘장 안에 들어가는 믿음이 견고한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의 영혼이 깊은 바닥에 닻을 내린 것 같이 오직 약속의 말씀에 확실하게 뿌리를 내리고 붙잡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영혼의 닻을 내린 사람은 요동하는 세상물결에 쉽게 침몰하거나 흔들리지 않습니다. 혹 흔들려도 떠내려가지 않습니다. 떠내려간다 해도 다시 머문 그 자리는 주님 정하신 더 나은 계획을 시작하실 것이니 찬미의 노래를 부르기 바랍니다. 그 이유를 20절에서는 우리 주님께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셨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가림막 휘장 안, 지성소는 대제사장이 1년에 한번 속죄제로 희생의 피를 갖고 들어가는 곳으로 거긴 하나님임재의 상징인 언약궤가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희생의 피는 언약궤 위 시은좌 위에 부어집니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면서 그 피값으로 백성들의 죄가 용서될 때 대제사장이 혹시 자신의 죄를 청산되지 못한 채 들어가면 여기서 죽임을 당해 발목에 줄이 묶여 시체로 끌려 나오는 수치를 당합니다.
본문 19-20절 말씀은 이러한 두렵고 엄숙한 장소, 지성소에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입은 것은 주님께서 몸을 찢어 만민의 죄를 대신 갚으신 뒤에 그 이름을 믿는 모든 자에게 허락된 은혜 중 은혜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하고 영접하는 모든 자에게는 엎드릴 때 시공에 관계없이 보혜사 성령께서 만나주시고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요약합니다.
하나님이 우릴 구원하시고 또 양육하시며 인도하시는 천국의 길은 불변하는 우리의 소망입니다. 이 소망은 하나님의 맹세로 된 약속으로 더 이상의 보증이 필요없는, 우리의 구원과 더불어 복과 번성을 선포합니다. 그것은 곧 자손과 땅으로 대변되는 기업으로 증거될 것이며 이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 앞서 휘장을 찢고 들어가신 주 예수그리스도로 인해 더욱 확고한 가운데 마치 영혼의 닻을 말씀 속에 깊이 드리우고 있는 방주처럼 요동치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맹세와 보증이 이제는 우리들의 믿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맹세까지 하신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불변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항상 믿음과 정성이 부족한 우리에게 있습니다.
맹세로 약속된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영혼의 닻을 내려 든든한 영생의 방주가 되기 원합니다. 오래 참는 이에게 그리고 휘장 안으로 들어가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이에게 1) 갈등없이 순종함으로 2) 조건없이 믿어드림으로 3) 예배승리와 헌신의 결단으로 4) 희생과 섬김으로 5) 주신 기업을 지킨다는 각오로 승리하게 하실 주님을 찬송합니다.
말씀을 절대신뢰해 생명으로 받아 주님주시는 맹세의 언약으로 반드시 복에 복을 더하여 받고 번성에 번성을 이룰 줄 믿는 성도는 종의 기도에 큰 소리로 아멘하시면 다 여러분의 것이 되는 것 믿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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