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17.주일예배<마28:16-20.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
이 세상 잠시 왔다가 떠날 때 대단한 것을 갖고 가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 빈손으로 갈 때 성도는 두 가지를 이미 거저 받았습니다. 하나는 죽을 자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영생의 구원이요, 다른 하나는 나보다는 나은 다음 세대를 남기는 것입니다. 후대가운데 가장 귀한 존재, 바로 본문이 말하는 영적후손인 제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후손이건 영적제자이건 그들이 우릴 보장하진 못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다만 명령을 성실히 수행한다면 사람들의 평가와 전혀 상관없이 우릴 보신 주님이 우릴 영원히 보장하십니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 여러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본문은 주님이 세상에서 육신을 입고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하신 유언과도 같은 명령입니다. 주님의 명령 중 가장 높은(至上) 명령으로서 최고인 것은 신약의 새 계명인 “서로 사랑하라”는 내용이 가장 깊고 선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이 명령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누구를 사랑한다면 본문의 말씀을 따라 그 영혼이 반드시 구원받도록 해야 합니다.
한절씩 읽으며 주님의 최상의 명령이 오늘 우리 모두의 기쁨이 되기 바랍니다. 18절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주님은 죄에 사로잡혀 영혼이 죽어있는 인류를 위해 죽음과 싸워 이기셔야 했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육신으로 오실 때 이미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셨으나 십자가에서 참혹한 고통과 죽음을 통과하는 일은 육체가 당하는 고통 중 가장 큰 고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부활하심으로 죽음이 주님 앞에 아무 위협이나 권세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부활을 선포하기 위해서 주님은 반드시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부활주님이 몸으로 나타난 사건은 죄로 죽을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으로 소망을 삼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세상에는 진리라는 것도 흔하고 성자성현들도 흔한데 인류역사 이래 죽은 후 다시 살아나 인류의 죄를 갚아주신 존재는 예수님 한분뿐입니다. 오늘 본문의 결론은 설교제목 그대로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는 것입니다. 눈여겨 볼 일은 주께서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고 세례를 주고 가르쳐 지켜 행하게 하라고 하시기 전에 먼저 자신의 권세를 제자들에게 제시하십니다. 제자들은 이 권세를 곧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임재로 받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명령을 전하고 실행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권세를 입어야 하고 또 능숙해야 합니다. 제자들에게 전격적으로 위임한 주님의 권세는 주님을 대신해 이 땅에 복음을 선포할 우리에게는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으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7-18절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신뢰하여 생명의 구주로 믿어 들였다면 우리에겐 이미 악한 영을 내쫓고 새 방언인 하늘의 복음을 말할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이 있습니다. 진실로 악한 어떠한 일을 당해도 우린 쓰러지지 않습니다. 믿기 바랍니다. 병든 자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낫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믿고 손을 얹어도 아무 일이 안 일어납니다. 우리들의 믿음에 문제가 있었던가요?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때와 방법이 아니라 주님의 때와 주님의 방법이라는 이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 째 본문에서 말한 믿는 자에게 나타나는 표적은 주님이 꼭 필요하다고 여길 때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둘째는 우리가 원하는 방법이 아니라 주님의 방법으로 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고 손을 얹은 것은 우리들이 할 일이고 주님이 원하는 치료는 믿음으로 낫는다는 확신이 분명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즉 우리가 병 고침을 위해 기도할 때 얹은 손 위에 치유의 능력이 나타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원하실 때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에게 확신과 함께 능력이 위로부터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성도들은 이미 권세와 능력의 주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들을 주셨다고 믿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주님이 원하실 때 그 은사와 권세를 사용하신다는 것이 우리들의 희망사항과는 약간 다를 수 있습니다. 19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그렇습니다. 권세를 주고 능력을 주신 주님의 목적은 모든 민족을 제자삼고 성삼위 거룩하신 이름으로 세례를 주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2.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성삼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십니다.
본문 19절에는 제자 된 성도들이 들어야 할 주님의 분부 둘이 있습니다.
1)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 이 말씀을 들으면 본서 10:5-6절에서 주님이 제자 열둘을 파송하면서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모든 족속을 제자삼기 전에 먼저 주변의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주변에 전도한번 못하고 선교를 꿈꾼다면 등잔 밑이 어두워 쉽게 얻을 것을 먼데서 구해오는 것이 됩니다. 복음은 멀던 가깝던 어깨를 부딪치게 되는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입을 열어 전파돼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민족이란 인종이나 국가나 사상이나 이념과 종교에 무관하게 모든 인류가 다 전도대상자들이란 것입니다. 아울러 본문에서 결코 지나쳐서는 안 되는 한마디가 있는데 바로 서두에 “가서”라는 말입니다. 와서 듣고 믿어 구원받은 사람들은 어느 정도 성장한 뒤 반드시 일어나 발을 떼어야 합니다. 바울은 앉아서 오는 이들을 대상으로 전했으나 우리는 가서 전해야 합니다. 전한 뒤 그들을 제자삼아 예수를 닮은 나, 나를 닮은 또 다른 제자를 양산해내는 것입니다. 모든 족속이 여호와를 창조주로 섬기면서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따를 때까지 우리는 복음 들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가고 싶은 데가 있어야 합니다. 복음과 구령의 열정으로 가슴이 설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축원합니다.
2)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십니다. 세례는 구원의 상징적인 예식이며 그 본질은 성결, 즉 거룩함으로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세례는 동시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해 교회의 한 가족이 되는 성도인증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례와 성찬식 둘은 주님이 친히 본을 보이시고 명령하신 교회의 중요한 예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례와 성찬식을 통해 많은 영적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행사 모두 하나님이 하시지만 특별히 세례는 본문말씀처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합니다. 주님이 명령하신 세례까지가 전도라는 것은 우리가 이미 잘 아는 일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제자삼고 세례를 주는 일을 따로 떼어놓지 않고 연결해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제자삼고 세례를 베풀면 계속해서 해야 할 일이 또 있습니다. 본문 20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3. 주님의 말씀을 잘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십니다.
모든 족속을 제자삼은 뒤 세례를 행했다면 더욱 그들의 성장을 위하여 가르쳐야 합니다. 가르친 것은 가르친 자가 먼저 본을 보여서 지킬 수 있도록 솔선수범의 조교라야 바른 믿음의 교사입니다. 조교는 주님이 하신 말씀을 가장 먼저 바르게 행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바른 시범보이기에 실패합니다. 그럼에도 칭찬받는 제자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배운 대로 하다가 안 되면 정직하게 자신의 부족을 하나님 앞에 그리고 교회 앞에 즉시 인정해야 합니다. 즉 “부족의 대안은 정직”입니다. 정직 외에 부족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실패와 실수에도 여전히 주의 일에 힘쓰고 시도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세상의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4.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인간이 태어나 가장 큰 복은 우리를 존재하게 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하는 동행, 임마누엘의 복입니다. 임마누엘 이상의 복은 결코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을 믿고 아멘입니다. 부족한 자와 겸손한 자를 찾으시는 주님이십니다. 부족해서 모르고 지은 죄와 나약해서 알고도 지은 죄를 다 보고 아신 자비로운 하나님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니 이제는 더 이상 죄의 노예가 아닙니다. 사망에 눌려 두려워하는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 분부하신 것을 땅 끝까지 가서 전파하고 선포하여 복음을 듣지 못해 지옥을 향하는 많은 가여운 영혼들을 구해내야 합니다.
사랑하는 신앙동지여러분. 와서 구원받고 배우고 양육 받았으면 언젠가는 가서 가르치는 것이 제자들의 길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대일제자양육 성경공부가 바로 그런 원리의 적용입니다. 배운 뒤에 또 다른 지체를 향하여 찾아가 가르치는 것입니다. 가서 제자삼고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은 한번 더 배우는 제자도입니다. 이 제자의 길을 바르게 가르치고 행하는 자마다 주님이 영원히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말씀 듣고 들은 말씀대로 지켜 행하기를 사모할 때 우리와 우리자손만대에 이르도록 임마누엘지저스, 주님이 함께 하시는 복이 그치지 않을 줄 우리가 믿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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