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1. 주일설교 <사43:8-13. 나는 여호와, 구원의 하나님이라.>
[생선비린내 가득한 부둣가에 비가 내린다. 빛바랜 사진첩에 선연한 그 눈매. 비오는 가로등.
부두노동자와 시인이 보는 현장은 3D와 흑백의 차이, 이 차이에서 문학은 문화와 문명을 창의적으로 발전시켜 과학은 산업혁명을 일으켜 오늘에 이름. 문학은 덮는 것, 최초의 덮음은 가죽 옷]
많은 민족가운데 하나님께 택함 받았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입니다. 그러나 영광은 반드시 그 값을 치러야 입니다. 값을 치른 것만이 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보이지 않는 영적 삶의 본보기가 되어 여러 험난한 훈련을 거치게 됩니다. 실패와 영광을 거듭하며 차츰 하나님의 백성으로 키우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저와 여러분과 우리 후손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거기 모든 배경을 풍요롭게 하신 뒤 아담과 하와를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 마귀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은 인간은 하나님과 멀어지고 죄에 오염됐습니다. 죄인과는 마주하지 않는 하나님께 제물을 잡아 제사를 드렸으나 타락한 인간은 모든 땅과 짐승과 함께 물로 심판받아 그 가운데 한사람 의로운 노아와 그 가정이 방주에 올라 인류의 대를 이어갑니다.
노아는 셈과 함과 야벳을 낳고 장자 셈은 아르박삿, 셀라, 에벨, 벨렉, 르우, 스룩, 나홀, 데라, 아브라함, 이삭, 야곱, 유다로 이어집니다. 유다는 다시 며느리 다말을 통하여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고 베레스는 헤스론, 람, 암미나답, 나손, 살몬으로 대를 이어갔습니다. 여기서 살몬이 라합과 결혼하여 장차 룻의 남편이 되는 보아스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보아스가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고 오벳이 다윗의 아비 이새를 낳은 것입니다. 아브라함~다윗:14대, 다윗~바벨론유배:14대, ~예수:14대.
창5장:아담의 계보. 11대. 셈의 족보:11:10~28. 아브라함까지 9대.
라합은 아시다시피 여호수아가 모세에게 지도권을 받은 뒤 여리고성을 치기 위해 정탐꾼 둘을 여리고성에 보내는데 이때 이들의 소식을 듣고 두 정탐꾼을 숨겨 살림으로 생명을 구한 기생입니다. 이 기생 라합이 전멸 당하는 여리고성에서 살아남아 살몬과 결혼하여 룻의 남편인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고 오벳은 다윗의 아비인 이새를 낳았습니다.
이제 다윗부터는 대충 느낌이 올 것입니다. 다윗은 솔로몬을 낳고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습니다. 그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됐을 때에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집니다. 그래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뉘어 분열왕국이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은 남유다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에 거쳐 기원전 7세기경에 하나님께 쓰임 받은 선지자 이사야가 안타깝게 외치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본문의 내용을 셋으로 구분해 보면 첫 째, 당초에 무지해서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는 이스라엘백성이며 다음, 그 동안 누가 너희를 바벨론으로부터 구했으며 앞으로도 누가 구할 것인가? 과연 장래 일을 아는 자가 있으면 말하라는 것입니다. 셋 째, 나 외에 네 앞에 어떠한 신도 없고 오직 나 여호와만 너의 구원주요, 하나님이시니 내 손에서 너희를 빼앗아 갈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뿐 아니라 구약의 모든 역사서가 이 셋의 주제를 담고 있으니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외침은 매우 간절하고 안타까움이 가득합니다. 그토록 애절하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1. 말씀하시고 보여주셔서 증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태초에 말씀으로 계셨고 세상을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어떠한 외형적 모습 안에 갇혀있지 않으시고 사랑과 뜻과 권세와 능력의 말씀으로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개인의 주변과 나라와 민족의 역사와 세계 역사 속에서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말씀에는 귀에 들리는 말씀, 설교와 성경말씀이 있고 때로는 환경과 정황으로 하시는 말씀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인생이 함정을 피해 살아날 수 있는 생명의 각종 비밀코드들이 곳곳에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가 열리면 입이 열려 기도문이 열리고 하나님과 통합니다. 부모말씀에 순종하고 대화가 되면 친밀해져서 서로 말과 뜻이 통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다음, 하나님은 늘 자신을 열어서 보여주십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여전히 노래하는데 우리가 알지 못해 하나님을 못 봅니다. 산천초목과 사계절이 지나가며 하나님을 증거하며 우리 몸이 밤낮으로 쉬지 않고 놀라운 하나님의 창조솜씨를 말하고 있습니다.
8절에 눈이 있어도 소경이요,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인 백성을 이끌어 내라고 합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것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교제가 끊긴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보고 그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까?
2. 진리의 영이 오시면 소경이 눈을 뜨고 듣지 못하던 자가 듣게 됩니다.
진리의 영이신 하나님의 영은 보혜사 성령은 또 다른 말로 예수의 영입니다.
진리의 영은 죄로 청맹과니가 된 사람들의 눈을 열어 하나님을 보게 합니다. 우리 죄 값을 대신 갚으신 분이 예수그리스도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대속보혈로만 우리의 눈은 열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죄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눈이 닫혀 있어서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진리의 영, 성령으로 거듭난 자라야 비로소 하나님의 시선을 따라가며 함께 바라보며 기뻐합니다. 자신의 지나온 인생에서 어김없이 하나님의 하신 일들을 발견하며 감사하는 눈은 거듭난 자의 것입니다. 성령의 눈은 그렇게 마땅히 바라 볼 것을 바라보고 하나님과 함께 기뻐하며 보아서는 안 될 것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즐거워하지 않게 됩니다.
다음, 성령이 오셔서 영으로 거듭난 자는 드디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게 됩니다.
귀가 열리는 것입니다. 귀가 열리면 입이 열려 말을 하게 되는데 이게 기도가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먼저 엎드려서 고요히 주의 임재를 기다리는 것으로 시작돼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의 마무리 역시 고요하게 입을 다물고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기도를 보면 일방통고에 가까운 독백을 하고 기도했다고들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기회를 드리지 않습니다. 기도는 주고받는 대화여야 합니다. 모노로그에서 다이얼로그로, 즉 독백기도에서 주고받는 대화의 기도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축도 후에 그리하시기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말씀하자면 성령으로 거듭나면 하나님 음성에 귀가 열리고 귀가 열리면 입이 열려서 기도가 열리게 되는데 결국 눈이 열려 자신의 인생을 거시적 안목으로 제대로 보게 됩니다. 아울러 지나온 삶에서 하나님의 발자취를 보며 감사합니다. 무엇이 먼저인지 나중인지 확실하게 보게 됩니다. 소중한 것과 통과시킬 사소한 것들을 보고 구별하면 대범해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진리의 영을 초청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임재를 간절히 구하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그렇게 거듭난 성도들은 어떠한 삶을 살게 됩니까?
3. 이스라엘의 삶은 여호와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밝히 증거합니다.
성령으로 거듭 남을 체험한 사람들은 확실한 영적 이스라엘의 신분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삶은 본문 12절에서 밝히기를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 성도의 삶이란 그렇게 자신이 받은 새로운 영적 삶을 선물로 주신 그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매우 어렵지만 예수님을 삶으로 하는 증거가 가장 설득력이 있습니다. 매우 무거운 주문이지만 성도는 특별히 뭘 해서가 아니라 그냥 저와 여러분이 살아가는 모습 자체가 그리스도의 증거이길 소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제가 여러분에게 드릴 수 있는 가장 복된 말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만나세요. 자주 만나시되 인격적으로 만나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분의 인격, 곧 성령의 임재를 자주 경험하세요. 그분이 주시는 시각과 소견으로 보고, 성령이 열어주시는 귀로 듣고, 그 입으로 말하고, 그렇게 행동하시기 바랍니다.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날 것입니다. 전인격적으로 거듭나는 기쁨 속에 저와 여러분 큰 감동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감동하는 찬송과 말씀으로 그리스도를 전하는 가운데 기도로 승리하는 인생, 기뻐하는 삶, 증거자의 삶을 사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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