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8. 주일예배<히6:13-20.맹세하신 하나님>
[참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 나를 파쇄하고 삭제된 거기 부활예수를 모시는 이른 회개로 출발.
하나님을 만나 감동하고 그 분을 알아갈수록 우리는 그간의 분노와 불평, 원망의 방향이 서서히 바뀌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나를 제외한 하나님 그리고 환경과 주변사람으로부터 서서히 자신에게 그 모든 원인이 있었음을 깨닫는 것은 영혼을 깨우시고 지각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고 밖에 할 수 없다. 평생을 통해 예수께서 나를 찾아주신 것보다 더 큰 복이 있을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다음 절은 예수님 오신 목적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라고 밝힙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독생자를 내어 주시기까지 사랑한 세상은 어떤 세상을 말합니까? 의롭고 복된 세상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을 외면하고 죄에 빠져 타락해 멸망의 길로 치닫는 악한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수천 번을 맞아죽어도 그 죄가 남는 악한 인간세상, 그런데도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어 대신 죽어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린 납득되지 않는 고난과 불행 앞에서도 그 극진하신 하나님을 여전히 높이며 예배함으로 감사와 찬미를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이래서 그럼에도 불구한 하나님의 사랑 앞에 우린 그럼에도 불구한 찬미와 감사를 결코 멈출 수 없다는 신앙고백을 오래 전에 우리교회가 함께 하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세상을 죄에서 구하시고 복을 주시려는 계획 속엔 언제나 시대마다 의로운 믿음의 사람들을 이스라엘과 교회 가운데 세우는 일을 먼저 하셨고 지금도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에 대한 말씀이 소개됩니다. 핵심구절은 17절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정하신 그 뜻이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다 확실하게 하시기 위해 맹세로 보증을 하셨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비전인 여러분. 사람이 맹세해도 때로는 그 맹세로 인해 명예를 걸고 생명을 던집니다. 하물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맹세야 오죽하겠습니까? 누구에게 무엇을 증명하기 위한 맹세입니까?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분명히 지켜지고야 만다는 사실을 맹세로 확약하신 겁니다. 그 맹세된 약속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받았습니다. 이제 본문의 주요주제를 살피며 약속은 무엇이며 맹세란 무엇이며 또 증거란 무엇인가? 주님주시는 언약의 말씀으로 우리함께 힘을 얻고 믿음의 결단을 새롭게 하는 귀한 시간되기 바랍니다.
첫 주제는 맹세하신 하나님입니다.
사전에서 盟誓란 하나님, 또는 신성하다고 여겨지는 어떤 절대적인 존재를 가리켜 그 말과 동기에 거짓이 없음과 약속이행의 의지를 엄숙히 증언하는 일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사전에서는 장래를 걸고 다짐하는 약속이라고 돼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 맹세가 지켜지지 않으면 모든 게 무너져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누구의 장래를 책임질 수 있습니까? 남의 장래는커녕 바로 코앞에 자기일도 책임지지 못하는 게 인생입니다. 그래서 마5:37에선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 고 합니다.
본문 17절에서 하나님이 맹세로 약속을 보증하셨는데 약속을 맹세로 보증하실 만큼 그 약속은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차대한 것입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우리가 관심할 것이 약속의 내용보다 약속을 맹세로 보증하신 하나님의 실존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맹세란 자신의 장래를 걸고 다짐하는 약속인데 얼마나 인생들을 사랑하시면 하나님의 모든 명예와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셨는가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3절을 보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스스로를 가리켜 맹세”하셨다고 합니다. 따라서 약속에 관한 한 하나님을 능가하는 존재가 없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따라올 자가 하늘에도 세상에도 없습니다. 그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믿음의 모든 이에게 아직도 유효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4절입니다.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둘째 주제는 오래 참은 아브라함입니다.
약속의 본질과 그 가치는 지켜지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 곧 의로운 믿음의 사람들에게 “복주고 복주며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는 언약이 종종 완성되질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불신을 갖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약속이 안 지켜지는 원인이 하나님 쪽에 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선 이미 당신의 약속에 맹세까지 하심으로 그 약속을 보증하셨습니다.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인생이 불행한 것은 오직 그 책임이 사람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불신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그 불신의 원인은 자기시간표와 자기계획구도에 맞추는 등 기준이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기준에 자신의 모든 기준을 맞춘다면 분명 인생은 달라질 것입니다.
맹세까지 하신 하나님의 선한 약속들은 시공을 초월해 지금도 선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오래 기다리지 못해 약속의 기업 안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아브라함은 어떻게 믿음의 조상이 됐고 아버지 데라의 대를 이은 그 가난한 살림살이가 훗날 사병 318명을 거느리는 거부가 됐습니까? 오래 참아, 받을 약속의 기업을 다 받았다고 히브리서가 밝힙니다. 아브라함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은 것처럼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한 구원의 언약들이 오래 참음으로 이루어지도록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고전 13장에 나오는 사랑은 “오래참고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도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로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약속을 잘 믿고 잘 참아, 주실 기업들을 넉넉히 받아 누리고 나누는 사람들 다 되시는 주의 역사 그 첫날이 오늘이기 바랍니다.
여기서 잠시 기업을 살피고 갑니다. 기업 중 최고의 기업은 하나님이신 것은 물론인데 그 최고의 기업이 어디서 증거돼야 합니까? 내 안에서 세워지는 하나님의 집이고 다음은 그렇게 잘 지은 집에서 더 나은 믿음으로 대를 잇는 후손과 믿음의 후진들입니다. 너희는 땅을 차지하고 땅을 다스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은 이 땅에서 해야 할 성도의 의무와 복을 동시에 일러주고 계십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기업이고 하나님이 우리의 기업이란 말은 그 기업으로 존재하고 그 기업이 보람이고 기쁨이고 존재의미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육신이 고스란히 주신 하나님께 바쳐지는 복의 시작이 우리의 믿음과 그 결단으로부터 시작됨을 잊지 않기 축복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육체 곧 하나님의 전, 몸으로 부딪치며 복된 기업의 증거,
셋째 주제는,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본문 14절에서 나타난 약속의 내용은 복과 번성입니다. 복되고 번성하는 것이야말로 누구나 원합니다. 오늘날 복되며 번성하는 역사는 오직 믿음으로 주님을 만나고 동행함으로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우리는 말씀과 삶을 통하여 알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전체를 통해 나타나는 공통적 주제는 우리와 늘 함께하는 대제사장 예수그리스도십니다. 이 그리스도께서는 눈에 보이는 약속의 드러나심이 됐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시는 마지막 증거였습니다. 어떠한 율법도, 어떠한 약속도, 어떠한 예언도 그 마지막 보증과 증거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짊어지신 골고다언덕의 십자가에서 확실하게 해석되고 마무리돼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위해 맹세까지 하심으로 확정하신 약속은 다름이 아니라 복주고 복주며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기업들은 오래 참음으로 받는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약속과 기업은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다는 사실입니다. 즉 복음을 즐겨듣고 행하는 믿음의 실천이 이뤄지면 거기서 하나님의 맹세는 반드시 열매가 돼 우리의 눈에 선명하게 보일 것입니다.
주님 이름으로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주실 약속의 기업이 잘 참고 견디며 기다리는 가운데 드러나길 바랍니다. 그리고 과연 복되고 복되며 번성하고 번성하여 많은 이들에게 나눠주는 풍성하고 아름다운 삶으로 믿음의 승리를 이루시길 기대합니다. 아멘.
기도합니다.
잠시면 끝나는 육신의 생애 그 이전에 증거 돼야하는 하나님의 기업, 그 기업을 복되고 복되며 번성하며 번성하기를 원하셔서 오늘도 말씀가운데 우릴 찾으신 주님, 아버지여, 우리의 기준을 파하게 하시고 주님의 기준에 맞출 때 먼저 시간표를 바꿔 성실한 가운데ㅐ 잘 기다리게 하시고 더 많은 시간을 아버지께 드리며 더 깊은 중심을 바쳐서 오직 주님나라 위하여 살다가 부름받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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