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22. 주일예배 (행 1:1-11[봉독:3]>. 눈으로 본 부활과 복음의 능력)
[우리나라 꽃(國花) 무궁화(無窮花)는 단어 그대로 끝이 없이 피는 꽃이다. 그런데 무궁화의 학명이 학명은 Hibiscus syriacus이며 영문으로는 rose of sharon으로 종합해 보면 히브리에서 온 시리아의 꽃, 샤론의 장미인데 샤론은 본래 샬롬으로 평화를 말하고 샤론의 꽃은 메시아 예수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있다. 이 무궁화가 우리나라의 꽃이고 애국가에 “하나님이 보우(保佑)하사 우리나라 만세”가 고백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미국 다음으로 그 신앙색채를 간과하지 못할 일이다. 세월 갈수록 사람의 본분은 하나님을 명령을 지키며 주를 경외하는 것(전12:13)이고 하나님을 경외함이 지혜(욥28:28)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는 말씀이 구구절절 와 닿는다.
세상 살아오며 부족하고 어수룩해 서럽게 당한 아픔과 열등감과 못난 DNA에 함몰된 자존감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다시 피어나는 샤론의 아름다운 꽃들이 되어야 한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데오빌로라는 총독수준의 귀족 권세자에게 보내는 장문의 전도서로 본문은 승천직전에 주님께서 제자들과 나눈 이야기와 승천하시는 현장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註)theo filos :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벨릭스로 추정되며 정황상 애칭.]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은 40일 간을 활동하신 뒤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 제자들에게 분부하시기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그것은 성령이라고 밝히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관심은 아직도 이스라엘의 가시적인 독립이었습니다. 로마의 속국으로부터의 정치적, 경제적 해방이었습니다. 성령의 세례를 받지 못한 제자들의 메시아는 다분히 정치적인 왕이었습니다. 땅의 질문 앞에 하늘의 답이 주어지는 광경입니다. 보통 성도들의 질문과 소원도 이렇게 보이는 것에 묶여 있지만 주님의 답은 언제나 우리 생애 전체에 거쳐 답을 주시고 또 영원한 세계를 보게 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질문의 답을 손에 쥐고 계신 주님은,
1.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사신 주님은 죽음과 무관한 하나님이십니다.
복음은 지극히 분명하며 단순합니다. 예수님께서 예정하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미 예언한대로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속죄제물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몸을 입고 참사랑의 본을 십자가에 높이 들려 증거하시기 전까지 가시적 부활신앙은 쉽지 않았습니다. 죽으면 지옥을 면하고 좋은 곳에 간다는 정도의 소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십자가에서 많은 이들이 보는데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눈에 보이게 증거된 부활, 이 부활의 사실이 시공이 아무리 멀어도 달라지진 않습니다. 이 분명하고도 놀라운 사실, 오늘 우리가 더욱 절감하고 이후 민감한 영이 되길 기대합니다.
주님은 그렇게 예언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예언 그대로 하늘에 올라가셨고 이제 오늘 본문의 말씀대로 보혜사로 지금 우리와 함께 살고 계십니다.
2. 보혜사로 우리 안에 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육신 안에 갇혀 계시지 않으시고 보혜사로 시공을 초월하신 분이십니다.
온 인류의 구원이 그분의 사역이었으므로 육신을 입고는 불가능한 일을 성령의 능력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동시다발적으로 시간과 공간에 방해받지 않으시고 어디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앞에 즉시 찾아와 주님 저와 여러분 인생의 참의미요, 보람이고 기쁨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임재는 복음전도로 이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1:8>
1) 성령충만의 특징은 전도폭발입니다.
성령의 임재로 인하여 제자들은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의 권세와 기쁨은 그것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되는 것을 말씀하신 겁니다.
2) 성령충만의 특징은 인격의 변화입니다.
성령의 임재는 과거의 단절로 시작하여 전혀 다른 인격체로 거듭나게 합니다. 죄의 씻김 곧 회개의 역사와 더불어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변화 받은 신앙 인격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어두웠던 인생이 긍정적사고로 인해 환해지는 빛의 삶을 살게 됩니다.
3) 성령충만의 특징은 관계의 변화입니다.
인격의 변화는 관계의 변화를 빚어내고 관계의 변화는 형편까지 바뀌게 합니다. 궁핍한 삶이 변하여 풍요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그 풍요가 나눔을 위한 것을 알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관계는 어디서 출발합니까? 무엇을 기반으로 시작된 것인가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피붙이와 가족이 있고 하나님이 교훈으로 주신 교사들이 있습니다. 눈에 안 보여도 성경에서 종종 만나는 감동적인 교사들, 다니엘. 에스더, 룻, 모세, 바울사도, 요셉, 다윗 등등 충분합니다. 성경 외에도 역사에 회자되는 귀한 어른들이 참 많습니다. 신사임당, 절개의 춘향이, 효녀심청, 계백장군, 강감찬, 이순신, 세종대왕 등, 수도 없이 충분합니다. 그리고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친구가 있습니다.
우리 내면에 귀한 교훈적 관계로 넘쳐나길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비행기타고 현해탄을 건너는 욘사마 오빠부대는 그 영의 세계가 멈춰 팔롤로처럼[註 - palolo : 남태평양 천국의 섬 사모아. 반컵 4만5천원. 참치 3만5천원 비린내 없는. 굴맛. 캐로틴이 쇠고기의 1,350배. 기타 고영양, 고단백. 식감과 맛은 태평양의 캐비어. 실갯지렁이와 팔롤로=도라지와 산삼] 가여운 사람들입니다. 예수로 죽고 이젠 교훈과 말씀으로 우리가운데 다시 살아있는 영적거장들의 발자취와 그리고 민족을 위해 몸 바친 구국의 위인들이 우리의 관계를 가득 메우기 축복합니다. <내 몸은 거룩한 곳이야, 쓰레기봉투에 더러운 걸 집어넣듯 술을 넣을 순 없어, -살인자가 사람을 죽인 후 현장에서 친구가 권하는 술을 사양하며 하는 말은 충격이었다. 이후 나는 내 몸에 함부로 들어가는 음식과 특히 생각과 지식을 관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경아. 난지도, 교수님은 먹는 걸 지적했지만 내 보기엔 지식과 보는 것 듣는 것 다 가려야 해.>
3. 올라가실 때의 모습으로 다시 오실 하나님의 활동, 예수님이십니다.
주변에 참으로 신뢰할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그는 어떠한 사람입니까?
신뢰할만한 사람은 처음과 끝이 같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말과 행동이 늘 한결같은 사람입니다.
다시 오실 하나님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① 처음과 끝이 동일하신 분입니다. 주님의 생애는 오직 죄인을 구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을 위해 처음과 끝을 같은 자세로 가셨습니다. 악한 인생들의 삶으로 친히 찾아주시기 위해 승천하셨고 그 때 구름에 쌓여 올라가신 것처럼 다시 오실 때에도 구름에 쌓여 권능의 영광 중에 임하십니다.
② 말씀과 그 삶이 한결같이 동일하신 분입니다. 주님은 당신이 선포한 것을 먼저 지키시는 분이었습니다. 주님의 큰 계명과 교훈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인데 서로 사랑하기를 마치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하라는 당부입니다. 주님은 당신이 먼저 행하신 후 우리에게 권고하셨습니다. 죽음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되 진정한 섬김과 희생과 봉사의 정신 곧 십자가의 도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주를 위해 죽기로 각오하면 살 것이요, 잃으면 얻을 것이고 애통하는 자, 하나님의 나라를 볼 것이라. 처절한 십자가로 인간을 사랑해 본 분만이 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신앙동지여러분.
우리는 전하고 가르친 대로 그리고 배운 대로 다하진 못합니다. 그래서 부족의 유일한 대안은 정직이라고 우린 배워 이젠 외웠습니다. 낱낱이 다 아뢰면 다 받아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 할렐루야
인간은 모두 부족해도 주님은 완전하십니다. 우리의 기쁨과 소망은 여기에 있습니다. 완전하시고 능력이시며 인자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실 때 우리는 완전한 구원의 도구들이 될 수 있습니다. 땅 끝까지 전하라고 하신 복음은 그렇게 땅 끝까지 전해지는 특성과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믿고 아멘입니다. 물론 그 일은 우릴 사용하시는 주님 손에서 이뤄진다는 것도 믿습니다. 복음이 어느 한 곳에서 머물러 있다면 그 복음은 생명을 잃은 복음이며 더 이상 복음일 수 없습니다. 복음은 생명력이 있어서 끊임없이 퍼져나가야 합니다. 주님의 구원사역에 부족한 우리를 사용하신다는 주님의 말씀은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우리의 삶은 복음을 잘 전달하고 누리며 나누는 삶이 될 때 가장 아름답게 빛이 납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복음가운데서 주님의 형상과 인격과 사역을 이어가는 선한 믿음의 삶을 살기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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