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7. 주일설교<마12:6-8.안식일의 주인, 그리스도>
[10.23. 사마귀벌레 속에서 다 자란 연가시는 반드시 물로 가야 기 때문에 다 자라면 사마귀벌레의 신경을 자극해 사마귀벌레는 영문도 모르고 물을 향해 달려가 물속에 몸을 담근다. 그 순간 연가시는 사마귀벌레의 몸에서 빠져나와 번식활동을 하게 된다. 몸에 연가시라는 기생충이 있는 줄도 모르고 상당량의 영양분을 뺏기고도 끝내 기생충이 유인하는 물에 빠지고 지쳐 죽기도 하는 곤충처럼 우리 안에도 연가시가 있다. 잘못된 생각, 습관, 가치관과 욕구 등 수많은 기생충을 마음에 담고 그것이 마치 자신인양 속으며 평생을 살아가며 열정과 시간을 빼앗긴다. 우리들의 내면에 가득한 연가시가 이끄는 대로 발길을 옮겨 결국 참된 소망은 죽고 연가시가 원하는 흉한 모습으로 살다가 결국 연가시가 유인하는 사망의 늪으로 끌려간다. 인간내면의 연가시는 하나님의 영, 그 말씀의 권세 외에는 어떤 것으로도 뽑아내지 못한다. 복음이라는 연가시구충제는 특효임에도 이미 신경이 마취돼 도리어 연가시찬가를 부르며 서서히 연가시가 원하는 대로 살다가 연가시가 이끄는 곳에서 죽는다. 곳곳에서 신음하는 세상, 답은 오직 하나, 복음 예수그리스도시다.]
사람은 누구나 편안하게 살고 싶습니다. 쉬고 싶습니다. 안식이란 말은 편안히 쉰다는 뜻입니다.
창2:3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창조의 일을 다 하신 후 마지막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셔서 거룩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거룩한 것은 복되지 않은 게 없다는 뜻도 포함됩니다. 또 사58:13-14에서는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않으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않으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고 함으로 안식일을 존귀하게 여기는 것은 곧 그날을 거룩하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안식일이 신약의 주일로 바뀌게 된 것은 그리스도께서 주일아침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그날을 기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주일은 엄밀한 의미에서 안식의 개념보다는 부활을 기뻐하는 축일의 개념에서 정리돼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안식의 개념이든 축제의 개념이든 주일은 거룩한 날이라는 것입니다. 유흥과 오락으로 거룩한 시간을 탕진할 수 없는 하나님의 날입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구별돼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거룩한 주일은 세상의 일을 하다가 모든 손과 마음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통, 교제하는 시간과 날을 말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하여 세상의 일을 쉬게 한 것이 오늘 날 휴일이 되었습니다. 세상에서는 휴일이요, 교회는 예배를 위해 거룩한 주일로 모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와 성도의 교제와 성례가 이뤄집니다.
본문은 밀밭사이를 제자들과 함께 가고 있던 주님이 하신 말씀이십니다. 시장하여 밀 이삭을 잘라먹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을 이유로 항의하자 안식일의 주인이 자신이심을 밝히며 율법에 묶여있는 자들을 충고한 대목입니다. 그러면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진정 바라시는 오늘 날의 주일은 우리에게 어떠한 것이어야 하나?
1. 거룩한 날입니다.
성도들이 한 주간 일하고 안식을 취하기 위하여 세상의 모든 것을 중단합니다. 그 이유는 방금 들은 것처럼 단순히 휴식을 취하는 게 아니라 거룩한 날에 거룩한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하여 모든 것을 손과 마음에서 내려놓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테면 예배를 위하여 모든 일손을 잠시 멈추는 것입니다. 휴식은 제사를 위한 것이라는데 진정한 의미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일하다가 자신도 알게 모르게 지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막힌 관계를 주일예배에서 그리스도의 보혈로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믿음의 거룩한 옷을 입게 됩니다. 따라서 주일은 입도, 눈도, 손과 발도, 마음도 거룩해야만 합니다. 예배만 얼른 해치우듯 드리고 세상친구들 따라서 간다면 그것은 온전한 성수주일이 아닙니다. 또 주일예배 드리고 집에 돌아가 가족과 다투거나 눈을 흘긴다면 그 또한 온전한 성수주일이 못됩니다. 우리는 주일 입술에 성령의 재갈을 채워야 합니다. 함부로 속된 언어를 입에 담지 말아야 합니다. 거룩한 주님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눈과 손과 발과 마음이 모두 세속의 사슬에 묶이지 않고 주께 묶여 거룩해야 합니다. 봐선 안 될 것을 보고 가서는 안 될 곳을 가고 해서는 안 될 일을 하여 마음이 땅에 떨어진 것을 어떻게 거룩하다고 하겠습니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여러분 바로 옆에 계셔서 주일 하루만큼은 온전히 당신과 함께 지내기를 원하고 계시다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우리교회 변함없는 생활표어를 다시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여기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교회” 비전성도들은 항상 “지금 여기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는 주일을 보내시기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복된 날입니다.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주일은 하나님이 복되게 하셔서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거룩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복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복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은 절대하신 창조의 주권과 만유의 모든 주권을 갖고 계시고 복음으로 활동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끝없는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만물 안에 복이 넘치기를 원하십니다. 福을 간단히 정리한다면 누가 봐도 좋은 것, 만족한 것, 기쁜 것입니다. 복된 주일에 우리가 예배를 통해 우리에게 있는 복되지 못한 것들이 다 복되게 바뀔 줄 믿습니다. 복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 예배를 드리는 중에 모두 변화받아 새로운 하나님의 복으로 변화 받을 것입니다. 주일예배를 통해 받는 복에는 어떠한 것이 있습니까?
1)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복입니다. 불순종과 불신의 죄로 인해 깨어진 관계가 회복됩니다. 하나님과 친밀해지면 성령이 주시는 마음의 평강이 옵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보다 훨씬 더 중차대한 마음의 기쁨이 찾아듭니다. 어떤 사건이나 환경으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구원의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합니다.(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여호와는 내 힘이시라. 합3:18)이것은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복, 불이 태우지 못하고 물에 떠내려가지 않는 복입니다.
마음이 치유되면 몸도 치유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예배 중에 마음과 육신의 병이 고쳐집니다.
2) 사람들과 화목하게 되는 복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면 기뻐하시는 성령께서 마음을 주장하셔서 이웃과 화목합니다. 진정한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고 관계에 있다는 말씀 수차례 들어도 감동입니다. 내가 네 앞에서 얼마나 소유했느냐는 내가 너에게 어떤 의미인가보다 중요하지 못합니다.
3) 진리 안에 세워지는 복입니다. 삶이 온전해진다는 것은 진리 안에 바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진리의 영이 예배 중 설교를 통해 임하시면 삶의 전반적인 자세가 서서히 잡혀갑니다. 그렇게 삶의 자세가 온전해지기 시작하면 모든 인생의 문제들이 하나하나 제자리를 찾아 갑니다.
3. 기쁜 날입니다.
무엇보다 주일은 기쁜 날입니다. 이 날만이라도 기쁜 찬송이 땅과 하늘에 울려 퍼져야 합니다.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평강과 기쁨이 넘치는 날입니다. 예배를 통해 상처가 낫고 아픔이 떠나며 구원의 기쁜 소식이 회중을 어루만져 행복하게 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감사와 기쁨이 넘쳐나면 아멘소리와 찬양의 울림이 멀리멀리 퍼져 나가야 합니다. 한 주간의 억눌림과 쓰라림이 예배를 통해 말끔히 사라지고 새 힘을 얻는 것입니다.
4. 영원히 지켜져야 하는 날입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것은 성도로 부름 받은 우리들의 영원한 특권이며 기쁨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 땅에서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 끊임없이 이어지는 우리의 존재의미이기고 합니다. 인간의 생각 중 가장 어리석은 것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이며 가장 지혜로운 것은 하나님을 믿고 바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 필수적인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그치지 않는 교제 그 교제는 주일성수라는 것으로 비로소 한 주간을 정리합니다. 엿새를 내가 썼다면 하루는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성수주일입니다. 그 안식하는 날의 주인이 하나님이십니다. 록펠러는 98세 평생 한 번도 주일을 범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모든 인생의 성패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느냐는 앞으로 저와 여러분의 삶에서 충분하게 확인될 것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믿고 따라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많은 것들로 항상 풍족하게 살기를 원하고 계신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 기뻐하시는 성공적 삶을 살기 위해서 그 첫 번으로 요구되는 것이 주일성수임을 오늘 우리가 들었습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설교말씀이 실질적인 복음이 되는 것은 이제 듣고 교회 문을 나서는 우리 각자의 몫으로 남겨집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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