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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9.10.06.주일예배<말4:2.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by 설렘심목 2019. 10. 7.

2019.10.06.주일예배<4:2.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자기직장에 만족하는 이는 많지 않다. 불편한 사람을 만나야 하고 하기 싫은 일을 마지못해 해야 하는 직장인, 헤어지고 싶지만 아이들 가여워서 그냥 견뎌야 하는 부부들, 모두 외양간에 갇혀 여물만 기다리는 송아지와 같다. 얼마나 많은 인생이 외양간에 갇힌 가축처럼 사는가? 인생이 반드시 죽는다는 예언을 태어나는 순간 받은 것처럼 우리는 모두 어딘가 외양간에 갇히게 된다. 죄악과 사망의 음침한 외양간에서 영생의 외양간, 환한 생명의 빛과 길로 옮기신 내 아버지 하나님, 그 역력한 활동, 예수그리스도는 내 삶의 출발이요. 과정이며 결론이시다. 아멘.]

 

본문에서 말라기 선지자는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뛸 것이라.”고 합니다. 본문의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약 2460년 전 포로에서 돌아와 자리를 잡은 이스라엘백성들이 귀환 후 70년이 지난 때입니다. 백성들은 학개 선지자에게 하신 언약이 속히 이뤄지지 않자, 하나님을 불신하기 시작합니다. 율례를 등한시하고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등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했을 때 말라기를 통해 주신 말씀입니다.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기뻐 뛰려면 어떤 일이 전제됩니까? 본문 2절 앞입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말라기 선지자가 말한 공의로운 해, 치료하는 광선은 무엇입니까?

1. 예수그리스도는 공의로운 태양입니다.

 

사전적의미의 의()는 옳고 공평하고 선한 것 등 좋은 것을 말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의는 모두 의로우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전폭적인 신뢰로 인해 생긴 모든 것들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본래 땅위엔 의인이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롬3:10절에서 시편(53:3.14:1-3)을 인용해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의인이 없는 세상에서 의로우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의가 되는 것은 그 믿음을 높이 평가하시는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의는 어디까지나 의롭다고 불러주는 稱義이지 본질적인 의는 아닙니다. , 의란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그 결과를 통틀어 말합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믿음이 식어가는 백성들에게 장차 일어날 소망인 의로운 해, 태양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 의로운 해는 극렬한 풀무불 심판권을 가지셨다고 본문 직전 1절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의로운 해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뜨거운 풀무불의 심판이 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높이는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치료하는 광선이 되어 비출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의로운 해는 공평한 해이며 의로운 해는 풍성한 사랑을 비추는 따스한 해입니다. 그리고 의로운 해는 모든 이에게 새 생명을 공급하는 에너지, 능력의 빛입니다. 이 의로운 해는 그러나 등을 돌리고 있는 사람에겐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만 보일 뿐 아무 의미가 없게 됩니다. 등 따듯하여 편하게 살면서도 등 뒤의 태양을 한 번도 바라보지 않고 그에 대한 감사조차 까맣게 잊고 사는 불신세상에서 우리가 이 큰 복을 받아 예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의로운 해가 떠올랐습니다. 이제 그 해를 등지고 아픔뿐인 자기그림자를 보는 게 아니라 그 빛 예수를 바라보고 의지하며 소망을 두는 이마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먼저 치유하는 광선을 비춘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의로운 해를 바라보고 그 빛을 받아서 어두움이 물러가면 어떤 현상이 일어난다고 했습니까?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2. 예수그리스도는 치료하는 광선입니다.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한다고 한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은 이미 초대교회 이후 지금까지 행해지고 있어서 결코 감춰진 일이 아니라 누구든지 아는 일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주님 공생애 3년간 3대 사역은 가르치고 전하고 고치신 일입니다. 주님은 치료하시는 구세주십니다. 주님의 사역 중에 고치셨다는 것은 뭘 뜻할까? 그것은 우리네 인생이 죄로 인하여 심성이 비뚤어져서 하나님을 피하고 죄인의 신분으로 태어나 모두 이유 없이 몹쓸 병에 묶여서 치료의 손길을 간절히 원하는 환자와도 같은 존재임을 말합니다. 즉 치료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 라파"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께서 이 땅에 육신의 옷을 입고 인간으로 오신 이유도 인간의 질고를 대신 그 몸에 짊어지기 위해서였습니다. 모든 죄악과 질고와 허물과 눈물을 십자가에서 짊어지고 혹독한 고통 속에서 그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다시는 토굴 같은 어두운 밤의 삶이 아니라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대낮 같이 밝은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공의로운 태양 우리 주님 예수께서 하시는 치유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습니까?

 

1) 먼저 마음의 병을 고치십니다. 잘못된 가치관과 생각과 습관조차 고치십니다. 엉뚱한 현대의 망조 들린 사상과 식견에서 깨닫게 하십니다. 귀신들린 정신병을 고쳐주십니다. 자라면서 잘못 보고 듣고 형성된 인격체를 총체적으로 고쳐 가십니다. 뭐든지 자신의 명예를 앞세우고 자신의 이름이 앞서는 자기우상, 무덤까지 가져갈 은밀한 수치, 범죄의 비밀과 그로 인한 양심의 통증, 열등감과 우월감, 기억하고 싶지 않은 많은 일들, 도저히 끊어내지 못하는 악습으로 나도 내가 싫은 자학감, 비교해서 처절하게 느끼는 박탈감, 수많은 마음의 병을 우리 주님이 깨끗하게 치료하시되 그 상처의 흔적이 도리어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데 귀하게 사용되도록 변화시켜 주시는 것을 이제 우리가 믿습니다.

2) 육체의 질병을 고치십니다. 잘못 학습된 생활양식으로 얻어진 모든 육신의 병을 고쳐주십니다. 이유를 전혀 알 수 없는 천형과도 같은 불치병도 고쳐주시는 주님이십니다. 믿은 그대로 될지어다.

3) 잘못된 관계를 고치십니다. 인생은 소유여하로 행불행이 결정되지는 않습니다. 그야말로 있고 없고는 좀 편리하고 불편한 정도의 차이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행불행은 관계에 있습니다. 한번 잘못 만난 관계가 평생을 가슴치며 살게 합니다. 이 관계에 의로운 태양이 떠올라서 새롭게 하시는 역사를 베풀어주십니다. 그리하여 정녕 복되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게 하십니다.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만나선 안 될 사람을 못 만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와 우리들 자녀에게 넘치기를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래 전 가정훈련학교 수료식에서 부부들의 공통된 고백을 기억합니다. "저는 이 훈련 끝에 제 아내가(남편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바뀔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바뀌어야 할 사람은 저 자신이었습니다. 이제 성령이 도우셔서 부족하고 악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한없이 가여운 제 아내(남편)에게 다시한 번 이 자리를 빌려 미안하단 말을 전합니다."

 

끝으로 주시는 선물이 있는데 마음이 새롭게 되고 육신이 고쳐지고 관계가 거듭나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그건 복이 눈에 뵈는 물질세계의 새로움입니다. 가난한 살림이 달라집니다. "내가 약할 때 강함 주고 가난할 때 우리를 부요케 하신 나의 주, 감사" 이 노래는 매우 당연하고 보편적인 신앙의 결과를 고백하는 성도들의 애송시입니다. 아직 젊어 힘겨울 때 이 노래를 자주 부르셔서 노래처럼 마지막엔 살림살이가 풍성해지기 바랍니다. 버는 것도 도와주시지만 엉뚱하게 나가는 것 막아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이 말씀 듣는 가운데 주의 영이 여러분 안에 임하십니다. 믿기 바랍니다.

아멘대로 될지어다. 그러면 과연 누구에게 이 의로운 태양은 떠오른다고 성경은 선포합니까?

 

3.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떠오르는 의로운 태양입니다.

 

말씀드렸듯이 밤이 어둡다고 태양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등을 돌려서 안보일 뿐입니다. 태양은 변함없이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이는 은혜의 비가 여전히 내리는데 믿음의 그릇을 엎어놓아 한 방울도 얻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서러움의 밤과 고통의 밤과 안타깝고 부끄러운 밤을 물리치고 밝은 태양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믿음의 그릇을 반듯하게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솟아오르는 태양을 향해 마음 문을 열고 얼굴을 들어야 합니다. “문들아 머리 들어라 들릴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도록. 영광의 왕 들어가신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할렐루야.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일까?

1) 하루 24시간 삶 중에 늘 그분을 모시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모신다고 했습니까? 존귀히 높여드려서 그 앞에 떨리는 마음으로 서 있는 것이 경외입니다. 경외의 한 방법으로 늘 그분을 삶속에 모시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말로 한다면 언제 무슨 일이든지 "지금 주님 여기 계시다."는 것을 의식하는 삶을 말합니다. "지금 이일을 주님 어떻게 보십니까?"라며 질문하는 생각습관이 몸이 배어 있는 생활입니다. 이러한 근본 하나님중심사상을 가진 사람이 갖는 특성적인 헌신은 자신을 송두리째 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2) 전적인 헌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헌신이란 몸을 드린다는 뜻입니다. 몸은 삶의 동체입니다. 삶의 중요한 몇 가지를 살핍니다. 먼저 시간입니다. 우리는 시간이란 레일 위를 벗어날 수 없는 생명들입니다. 시간은 곧 생명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더 많은 시간, 더 중요한 시간을 드려서 주의 기쁨이 되고자 하는 것이 주를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의로운 태양을 떠올리셔서 마귀의 어둠권세를 물리쳐 빛된 영광을 보게 하신다고 본문은 증거합니다.

시간 다음으로는 중심을 드립니다. 금방 말씀드렸듯이 모든 생각을 드리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물질마져 하나님의 것인 줄 알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3) 예배에 헌신된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설교된 모든 헌신은 예배라는 마지막 주님과의 교제와 화목을 통하여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예배는 헌신이 화목의 축제로 바뀌는 시간입니다. 그 화목으로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의 치료가 되시고 온전케 된 우리가 하나님과 교통하며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아침에 잠에서 깰 때 내 안에 함께 하시는 예수님부터 기억하시라고 했습니다. 저녁 자리에 들 때에도 종일 지켜주신 주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평소의 마음이 예배에서 설교듣고 찬양하듯 늘 말씀으로 힘을 내며 주님이 함께 계시다는 믿음으로 새로운 마음이 되어 즐거워지기 바랍니다.

예배는 성도의 특권이고 특혜이자 거룩한 의무입니다. 죄와 사망에서 거저 구원받고 예배를 선물로 받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것이 본문의 말씀처럼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뛰는 기쁨"이 있음을 믿기 바랍니다.

 

4. 구원받아 치유 받은 인생은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기뻐 뜁니다.

 

외양간을 나온 송아지는 갇혀 있는 동안에 묶인 모든 것이 풀리는 기쁨으로 이리 뛰고 저리 뜁니다. 자유입니다. 자유란 우리말로 하면 엿장수 마음대로입니다. 가위질을 어떤 식으로 어떻게 몇 번 치든 엿장수의 절대권한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송아지가 어느 쪽으로 몇 바퀴를 뛰던지 돌든지 송아지 마음입니다. 주 예수께 치유의 광선을 받아 깨끗함을 받은 영혼과 육체마다 송아지처럼 자유롭게 뛰는 기쁨이 넘칩니다.

이제 말씀을 따라 믿으시는 대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를 기쁨으로 사모하시고 환영하시기 바랍니다.

갇혔던 외양간을 뛰쳐나와 그렇게도 원했던 자유, freedom을 마음껏 외치기 바랍니다. 서러웠던 날을 뒤로 하고 억눌렸던 꿈과 환상을 현실로 쟁취하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앞길을 환히 비추시는 햇살이 되어 밝고 따사로운 길이 돼 주실 것입니다.

예배하는 모든 무리들에게 예수그리스도, 의로운 해가 밝게 떠오름으로 어떠한 어두움의 역사도 다 사라질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