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2. 주일예배설교<출3:13-22. 스스로 계신 하나님의 언약>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미국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어려서 부모님 여의고 어머님이 물려준 성경책이 유산의 전부였는데 어머니는 유언으로 “이 책을 읽어라 이 안에 네 승리의 길이 있다.” 260독을 한 성경은 1]하나님은 누구신가? 2)사람은 무엇인가? 3)사람의 본분과 할 일이 무엇인가의 내용으로 채워져 있음을 링컨은 깨달았다. 같은 사건과 책을 어떻게 읽고 깨닫는가? 인생을 만든다.]
웨스트민스터 소 요리문답 제1문에는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롬11:36, 고전10?31, 시73:24-28, 요17:22-24절을 참고로 정하고 있다.”
짐승을 비롯한 모든 동물은 본능적 감각으로 종족을 번식하고 자신의 존재를 지켜가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이 특별히 창조하셔서 생각하면서 살되 영적인 존재라 존재의 근원을 생각하고 연구합니다. 물론 몸은 동물과 같은 생명체의 원리를 따라가지만 삶은 영혼으로 인해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을 영위하며 안 보이는 어떤 절대자에 관련된 고민을 하고 탐색한다는 놀라운 특성이 있습니다. 모든 존재에 대한 질문인데, 참으로 궁금한 게 세상의 모든 것이 언제부터 어떻게 누구의 손으로 시작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의 주인공은 또 누가 시작하도록 했냐는 것입니다.
이 물음은 만물의 근본을 궁금해 하는 인간들에겐 늘 있어왔고 또 끊임없이 올라오는 의문입니다. 여기에 과연 누가 바른 답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1.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만물을 지으시고 만물의 근원을 아시는 본래 스스로 계신 단 한분 하나님만이 그 답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라 우리가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인생과 만유의 근원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첫 시작이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창세기는 “태초”라는 말로 정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만드신 분이 친히 하신 말씀이라 우리는 갈등 없이 신뢰할 수 있습니다.
여기 어떠한 수식어나 설명이 사실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냥 그분이 태초에 먼저 스스로 존재하셨습니다. 초등학생이 초등학생답게 질문합니다. 그럼 하나님은 누가 만들었나요? 이 질문은 분자핵구조를 다시 쪼개어 물질의 더 작은 구조는 없냐고 묻는 것과 결국 같은 것인데 여기 답은 없습니다. 존재의 한계이고 또 인간의 한계이고 지식의 한계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질문합니다.(13절) 이스라엘백성들이 너를 보내신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하면 뭐라고 말합니까? 14절을 함께 읽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눈에 뵈는 모든 피조세계의 만유는 말 그대로 창조주 하나님이 만드신 것들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있다함은 만든 자가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이전에 누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전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최초의 시작이시며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스스로 존재하셔서 모든 시작의 첫 시작이 되셨습니다.
2.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출3:6절에서 하나님은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고 자신을 소개하십니다. 그리고 이어 13절과 15절, 16절에서도 꼭 같이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외에도 이와 같은 말씀은 여러 곳에서 발견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자신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로 늘 소개하십니까? 스스로 선포하신 언약을 일깨우려는 것입니다. 오래 전 창12장 이후에 말씀하신 약속들을 기억하고 계신 하나님은 그 약속의 확실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자자손손 대대로 함께 하심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1) 아브라함에게 하신 최초의 약속을 살펴봅니다.
① 큰 민족을 이루겠고(창12:2) ② 열국의 아비가 되어(창17:5) ③ 심히 번성케 하며 ④ 열국의 왕들이 네 후대를 따라 일어나며(창17:6) ⑤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⑥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창17:7) ⑦가나안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창17:8)
2) 이삭에게 주신 약속을 살펴봅니다.
흉년을 피해 그랄 땅 블레셋왕 아비멜렉에 이르렀을 때 애급에 내려가지 말라는 말씀과 함께 하나님께서는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모든 것, 곧 너와 동행하며 복을 주고 모든 땅을 주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는 것이고 그 이유를 “네 아비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기 때문”이라고(창26:1-5) 말씀하셨습니다. 또 창 26:24절에서도 밤에 나타나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3) 야곱에게 하신 약속중 하나만 살펴봅니다.
야곱이 팟죽사건으로 형을 피해 하란 땅의 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할 때 하늘 사다리 꿈에서 하나님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가득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창28:13-14)”고 약속하셨습니다.<참고:창35:9-15>
그렇습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꾸준히 언약을 확약하는 가운데 주신 말씀을 일깨우기 위하여 자신을 소개할 때 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다른 말로 약속의 하나님을 뜻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지금 우리가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 이스라엘백성임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가기 원합니다. 롬4장을 봅니다. 16절, 18절, 21절-24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21절에서 24절 말씀의 내용은 “굳센 믿음으로 약속을 믿는 믿음을 의로 여기셨는데 이는 아브라함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우리도 위한 것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아멘.
우리가 이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하여 영적인 이스라엘이 됐습니다. 그리고 이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으로 우리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이 세상과 오는 저 세상의 복을 언약으로 받게 된 것입니다. 다만 그것은 믿는 자의 몫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3. 구해주시고 채우시는 풍요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시며 사랑이시며 히브리인의 하나님 여호와이십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구하시려 모세를 부르시고 동행하시며 그 구원을 위하여 모든 것을 아끼지 않으십니다. 풍요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을 풍족하게 채우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21-22절을 읽습니다.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지라. 너희가 나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여인들은 모두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거류하는 여인에게 은 패물과 금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의 자녀를 꾸미라 너희는 애급 사람들의 물품을 취하리라.”
기근으로 인하여 아내와 함께 애급으로 내려간 아브람이 아내를 누이라고 했을 때 아브람을 바로에게서 구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창12:16) 그때도 구하시되 풍부한 재물과 함께 구해 주셨습니다. 이삭도 아브라함과 꼭 같이 아내를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누이라 속여 위태해진 것을 하나님이 구하신 뒤 그 땅에서 거부가 됩니다.(창26:6-13)
하나님이 우리를 구하실 때 모든 필요를 다 채우십니다. 구하신 뒤 구원받은 자가 넉넉하게 살며 하나님을 기쁨 중 섬길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채우시는 분이 우리의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잠시 고린도전서(15:17-19) 말씀 하나 짚고 갑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라.”
바울사도가 전하는 이 말씀은 다른 말로 “성도가 약속을 믿고 바라는 것이 이 세상에서의 행복뿐이라면 우리가 세상 사람보다 더 불쌍하겠으나 우리에겐 부활의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땅에서 받는 복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되 거기서 나아가 부활의 소망을 강조합니다.
사랑하는 비전가족 여러분. 예수님의 이름을 붙들고 하나님을 믿은 뒤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믿음의 법칙입니다. 이 법칙가운데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기 바랍니다. 다름 아닌 먼저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기쁨을 먼저 구한다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납니다.
스스로 계신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시기 위하여 먼저 찾아주시고 구원하신 뒤 모든 필요를 넉넉히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과 늘 가까이 사귀시고 그분의 기쁨으로 먼저 채워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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