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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9.11.10. 주일설교 <행28:17-31.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장로사위도 보아야 하리라.

by 설렘심목 2019. 11. 10.

2019.11.10. 주일설교 <28:17-31.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나님은 바울을 로마에 보낼 계획을 말씀하시고 가이사 앞에 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하나님의 관점과 예수님의 십장으로 살아가는 것을 최대의 영광과 기쁨으로 알고 사는 사람입니다. 바울의 간절한 소망 중 하나가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로마는 당시 최고문명의 모든 것을 품고 있었습니다. 정치, 군사, 경제, 문화, 예술, 스포츠, 학문이 빛을 보려면 반드시 로마를 거쳐야 했습니다. 정확하게 보자면 로마전도는 바울의 소망이기 전에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는 것입니다. “거기 다녀온 후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19--:21)->네가 예루살렘에서 내 일을 증거한 것처럼 로마에서도(23:11)->바울아. 두려마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겠고(27:24)”

하나님의 계획이 내 꿈이 되고 내 꿈이 하나님의 계획이 된다면 더 이상 최고의 인생은 없습니다.

참사랑이란 함께 바라보고 함께 분노하고 함께 아파하며 함께 기뻐 함께 노래하는 것입니다.

 

시대마다 복음은 하나님의 언약을 증거합니다. 가나안정복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곳에 들어가 증거됐고 바울이 로마에 들어감으로 로마복음화가 완성됐으며 이어 퓨리탄의 희생으로 미국이 봉헌됨으로 우리에게도 찾아 온 복음, 이제 대한민국에 뿌리를 내린 복음은 마지막 세계정복을 남겨놨습니다.

시대의 복음운동은 큰 증거 전 항상 거대한 파도타기로 교회가 혹독한 멀미를 했던 역사가 있습니다. 430년의 이집트 종살이와 40년 사막여행, 예루살렘파괴와 유라굴로 광풍, 숱한 고초는 언약의 완성 직전에 항상 나타나는 전조증상이었습니다.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바울아 두려워 마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내 일을 증거한 것처럼 가이사 앞에도 증거해야 하리라.”

여기서 가이사총독과 로마는 언젠가 꼭 이뤄야 할 그러나 아직도 다하지 못한 우리의 사명이고 그것은 우리가 엄두도 내지 못하는 놀라운 주님 계획입니다. 그것을 마음에 그리며 설레는 가운데 말씀 듣기 원합니다.

 

드디어 바울이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군사들의 철저한 경호를 받으며 바울의 로마입성이 성공한 것입니다. 도망칠까 지키는 게 아니라 그를 노리는 자들에게 테러를 당할까봐 죄수경호를 한 겁니다. 특별경호를 받으며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환경은 손에 쇠사슬이 묶여 있습니다. 쇠사슬이라고 하는 로마의 법이 도리어 바울사도를 안전하게 보호해주고 있습니다.

 

17절에서 20절은 바울이 자기변론입니다. 17절엔 바울이 당한 고소 건에 결정권을 가진 힘 있는 관리들 앞에서 드디어 바울이 자율변론의 기회를 통해 선교의 기회를 얻는 장면의 시작입니다. 바울은 먼저 민족과 조상의 모든 율법과 관습이나 가르침에 전혀 어긋남이 없는 자신을 당당하게 소개합니다. 그런 자신이 여기까지 온 것은 로마당국이 석방하려 했으나 유대인들의 고소 때문이라는 것을 지적합니다.

21, 22절에서는 유력한 유대교 지도층 인사들이 바울의 말을 듣고는 우리가 유대에서 당신에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누가 와서 당신에 대해 나쁘게 말한 일도 없고 또 우리도 당신을 어디에 나쁘게 보고하거나 말한 적이 없으니 당신은 당신의 신앙과 소견을 소상히 말하면 우리가 들을 것이오.” 그런데 한편에선 당신의 주장에 반대하는 자들도 있다고는 들었다는 것입니다.

 

매우 험난할 것으로 예상했던 로마 선교가 생각보다 의젓한 지도자들을 만나 자신의 입장과 복음에 대해 편하게 말문을 열게 됩니다. 바울이 전도하던 현장 곳곳에서 부딪치던 것과는 달리 로마에서는 바울에 대핸 매우 호의적이었고 별다른 나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다만 바울이 전하는 예수그리스도의 죽고 다시 살아나심과 승천, 그리고 그분이 율법과 유전에 이르던 바로 그 메시아였다는 소식이 듣는 많은 사람들에게 반대를 받았다는 것 정도입니다. 사실 그 말은 맞는 말이었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예수님소식 외에 바울은 반대 받을 아무 이유가 없었습니다. 로마에서는 유대인들의 유전이나 율법과 종교에 대해 그렇게 예민하지 않았고 다만 바울이 그렇게 꼭 처벌받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오히려 그렇게 큰 돌풍을 일으킨 새로운 종파라면 한번 들어보자는 겁니다.

 

23절을 보니 바울은 미결수로서 법의 보호가운데 복음전도사역에 황금기를 맞게 됩니다. 쇠사슬이 보호막이 되듯이 바울의 가택연금 2년간은 또 다른 하나님의 보호와 복음운동이었습니다. 아무도 그를 해치거나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로마경호대가 늘 그 집을 지켜줍니다. 이러한 완벽보호 장치 가운데 바울은 복음을 전합니다. 피곤하게 여기저기 헤매며 다니지 않아도 들어야 할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옵니다. 최적의 환경으로 가정목회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설교하는데 찾아오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습니다. 그리고 밖은 로마경호부대가 잘 지켜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험한 시대상황에서 이렇게 완전한 교회가 또 어디 있습니까? 참 빈틈없는 우리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바울은 종일 마음 놓고 설교하고 밖은 로마군대가 철통같이 보호하며 사람들은 북적댑니다.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자기네끼리 서로 다른 믿음으로 바울의 강론을 놓고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와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로 강론했지만 듣는 이들 중엔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사야서말씀으로 그들을 꾸짖기도 합니다. 부흥하는 교회의 전형입니다. 언제나 교회에는 말씀을 깨닫지 못해 믿지 못하고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란 그렇게 갑론을박, 조금씩 성숙해가게 됩니다. 바울의 설교가 로마인들의 서로 다른 반응이 다소 다투는 것은, 복음전파라는 것이 그렇게 일사천리로 순조롭게 잘 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말해주는 좋은 예입니다.

 

26절 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 변한 뒤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을 볼 때 마음이 많이 답답했습니다. 바울이 이사야선지자의 말을 그대로 인용해 뭐라고 합니까? 듣고도, 보고도 도무지 모르고 설득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설교자의 스트레스입니다. 분명 실질적 사실을 꾸준히 말해도 조금도 변화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강대상의 선포 앞에 늘 겸손히 아멘으로 귀 기울여 그대로 순종하시면 그게 복입니다.

 

3031절에는 법정출두 없는 궐석재판기간 2년 바울에게 공식적으로 허락된 전도요, 제자양육기간에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을 바울이 반갑게 맞이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죄수신분으로 찾아오는 이를 반갑게 맞아 그렇게 소원하던 로마전도를 마음껏 한다는 것은 인간이 계획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의 환경이 사람들 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우리의 헌신이 있다면 복음의 능력과 권세로 언제 어디든 힘차게 노래하는 인생이 될 줄 믿습니다.

 

헌신이란 자신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린 것을 말합니다. 헌신을 결단한 사람에게는 먼저 자신을 드릴만한 믿음을 채우십니다. 하나님께 관한 한 하나도 아낌없는 마음을 주십니다. 결코 인색하지 않도록 넉넉하게 베풀어 주십니다. 잘 살고 평화롭게 사는 길은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삶입니다.

무엇을 드린다고 했습니까? 먼저 시간입니다. 다음 정성과 마음입니다. 그리고 상처진 마음과 쓰라린 과거입니다. 끝으로 정성이 감사와 함께 드리는 헌물입니다.

마음이 가면 물질이 갑니다. 물질 가는 곳에 마음이 갑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중심을 요구하십니다.

 

헌신자의 복 둘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할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 마음은 자연스럽게 교회를 사랑하게 됩니다. 교회에 있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우리가 교회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받는다는 것은 어떠한 행복보다도 큰 행복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려면 먼저 가정과 주변이 화목해야 합니다. 자녀들이 반듯하게 가야 합니다. 맘대로 못하는 게 자녀입니다. 그리고 뭣보다 건강해야 합니다. 건강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예수님이 못 고치냐며 조롱합니다. 교회를 잘 섬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행복입니다. 난 여러분이 이 말씀 들을 때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가정에 크신 선물을 주실 줄 압니다. 교회 잘 섬기라고 주시는 선물입니다.

자신을 드린 헌신자에게 주시는 복 셋째,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에게는 기뻐할 일과 감사할 일을 계속 공급하십니다. 그래서 믿는 자에겐 감사와 찬송 외에 사실 할 말이 없습니다. 불평과 원망과 시기, 탐심, 탐심이 주는 불만과 그것으로 인한 절망은 사탄이 주는 것임을 명심 또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하나님과 교회를 위하여 전 생애를 바친 바울사도를 보며 우리는 우리가 내려야 할 몇 가지 결단을 정리함으로 맥 빠진 삶이 안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 주님 앞에서 어떻게 살기 원합니까? 기도하시면 주의 영이 새로운 마음 주시고 결단 이룰 힘도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약속을 붙들고 나아갈 때 비록 약하고 넘어지고 힘들더라도 입술로 죄를 짓지 않기 바랍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오면 그 내용이 아직 생각에 머무를 때 꾸짖어 입으로 나오지 않고 꺼져버리게 해야 합니다. 입으로 나오면 그건 완성된 생각이 돼 자신과 이웃을 괴롭히는 힘이 됩니다. 오직 하나님이 이루실 놀라운 영광의 날들을 바라보며 기뻐하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진정 겸손으로 낮아진 품격 있는 믿음의 사람라면 여러분은 반드시 낮은 자를 들어 귀한 일을 맡기신 주님을 감사하며 찬송하게 됩니다. 기도합니다.

주께서 이토록 사랑하시는 우린 많은 이들을 도우며 주변의 위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바울사도처럼 영생과 구원과 평화를 나눠주는 전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