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03. 주일예배<벧후3:3-7. 불심판으로 오실 예수님 재림>
[10.28. 물려받은 마음에 안 드는 DNA와 가난 그리고 부모에 대한 절망감 등 환경과 무던히 다투던 어린 날은 많이 힘들었다. 나이가 들면서 그 동안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계획하심이 세밀하고 끝이 없는 사랑이라는 것을 꾸준히 알아가면서 “세월 갈수록 의지할 분은 오직 예수”라는 찬송이 절로 나온다.
이후 내 설교는 몇 개의 주제를 잡게 됐다.
“더 이상 환경이 아니라 내가 문제다. 나 하나 바뀌면 세상이 바뀌고 가정과 교회가 살아난다.”
“주변과 환경에 속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자신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날이 점점 차가워집니다. 몸이 추우면 마음도 움츠려 듭니다. 겨울에 하는 말은 “없는 사람 살기는 그래도 여름이 좋아” 여름에는 뭐라고 합니까? “겨울엔 옷이라고 껴입으면 되는데”
숨 막히는 찜통더위나 뼈를 파고드는 추위나 힘든 건 같습니다.
화사한 봄이 코앞에 와있어도, 생명의 예수님이 바로 앞에 계셔도 내 맘을 열지 않으면 아무 상관 없게 됩니다. 반갑게 맞아들이지 않으면 다 소용없습니다. 오늘 우리 이 예배가운데 여러분 마음 문이 활짝 열린 채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말씀을 기쁨과 감동으로 받아들이시기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여러분. 믿음 안에서 우리가 만나 거룩한 성전에서 함께 예배한다는 것이 참 귀한 복인 줄 압니다. 예배하는 중에 저와 여러분의 몸 안으로 하나님의 생명력이 들어오길 바랍니다. 그리고 관계 속에 살림살이가운데 하나님의 선하신 풍요가 넘치시기 축원합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신에 의하여 사람들을 감동시키셔서 친히 쓰신 것을 믿습니다.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하게 하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성경의 말씀은 우리가 믿건 안 믿건 상관없이 여전히 동서고금 이래 유일한 진리이며 이 예언의 말씀은 일점도 착오 없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인간의 역사지만 그 안에 눈에는 뵈지 않으나 도도히 흐르는 구원의 계획과 그 시간표, 그 역사가 잠시도 쉬지 않고 진행되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의 역사와 과학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세계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들은 거의 이스라엘과 그를 둘러싼 열강들의 관계 속에 획을 긋고 있습니다. 과학의 끝은 무엇입니까? 과학의 끝은 더 이상을 묻지 말라는 겁니다. 꽃이 어떻게 피고 인간이 어찌 태어나 살아가는가를 전문용어와 화학부호로 정리한 것이 과학이라면 누가 그 생명과 꽃을 왜 생기게 하는가를 사색하다가 윤리와 인성과 교훈에 머물 때 그게 철학이고 더 나아가 근본적인 답을 하늘로부터 받아 밝히는 게 신학입니다. 인간의 지식과 지능이 마지막 다다르는 결론은 언제나 모르는 게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입니다. 과학과 철학을 넘어 신학의 차원에서 우리를 사색하게 하시고 만나주시는 주님을 찬미합니다. 그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은 참으로 귀한 진리의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진리시고 생명이시고 노래이신 복음 그리스도, 우린 그의 신부들,
보석은 흙속에 묻혀있어도 언제나 그 빛을 잃지 않습니다. 진실은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세상 많은 논쟁이 다 사라져도 진리말씀 하나님의 성경은 지금까지 조금도 변함없이 시공을 초월해 세상의 마지막 소망으로 남아있습니다. 이 성경이 오늘 설교본문을 통하여 세상 끝 날을 자세히 밝힙니다.
본문3절은 “먼저 이것을 알지니”라고 시작합니다. 말세의 정보는 어떤 정보보다 먼저 알아야 합니다. 말세에 대한 확고한 믿음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세상에는 삶에 직간접적으로 필요한 많은 정보와 지혜가 얽혀 있습니다. 그러나 정녕 먼저 알고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 인생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고 지금은 어디에 서 있냐는 것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알게 되면 인생이 바뀌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적어도 그것이 정확한 정보라면 말입니다.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조롱하여 말하되 예수 재림이 어디 있냐? 지금까지 “곧 말세가 온다는 얘기는 이제 귀에 박히도록 들었다”는 겁니다. 오늘 듣는 내용, 이천년 전에도 이미 꼭 같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이런 말을 합니까? 기독교를 조롱하는 자들이 자기정욕에 취하여 하는 말이라는 것인데 이런 자들은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고 있어서 말씀을 깨닫지 못합니다.
조롱한다함은 속이고 비웃으며 놀린다는 것인데 하나님 없는 사람들이 경망된 말의 전형입니다.
당시에 거짓교사들이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이라고 성경은 지적합니다.
사람이 어머니로부터 태어나 다시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새로운 생명 곧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에 연합돼 두 번째 태어난 후 그 사람의 주된 목적은 하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따라 가며 그분을 찬송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하여 세속을 금하고 경건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속해 장차 심판대에 오를 사람은 그 삶의 주된 목표가 자신의 정욕을 채우는 일이며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과는 반대의 길을 가게 됩니다. 목표가 다른 사람끼리의 교제는 늘 한계에 부딪치게 됩니다. 겉으로 화목한 듯 해도 늘 갈등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한 온 가족이 예수의 영으로 하나 되는 그 일은 분명히 이뤄질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한 삶의 목표가 그 가정의 가훈이 되기 바랍니다. 가족 중 자신의 정욕을 추구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기 바랍니다. 자기정욕의 만족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상에 무슨 종말이며 무슨 심판이 있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너무나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의 예언은 하나도 어김없이 다 이뤄졌고 이뤄지고 있습니다.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자기정욕을 따라 행하며 한다는 소리란 미래에 뭔 변란이 있겠냐며 하나님을 떠나 쾌락을 따라가며 교회를 놀린다는 겁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경고는 물론 과학조차 모르는 무지에 쌓여 지혜가 가려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잘 사용하고 있는 기름은 땅 깊은 곳에서 끌어내어 정제, 사용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깊은 바다 속에서 나옵니다. 이는 엄청난 양의 동식물이 죽어 썩은 찌기가 오래 묵어 삭혀진 것입니다. 히말라야 산 높은 곳에서 해산물의 오래전 사체가 계속 발견됩니다. 바닷 속 유전과 높은 산의 해산물흔적은 지구가 한번 크게 뒤집혔다는 증거입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산을 다 쓸어모아 바다에 평평하게 메우면 물의 높이가 자그마치 600여 미터나 된다고 합니다. 얼마 전 신문에 보니 노아의 방주 그 파편이 터어키 북부 아라랏 산자락에서 발견됐습니다. 식자우환이며 무식이 용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엄위하게 행하실 말세의 불심판과 천국지옥을 믿지 않고 조롱하여 그런 게 어디 있냐며 농담하듯 대꾸하는 자들은 그저 한평생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사람들입니다. 당시 베드로는 거짓교사들의 교회를 허무는 가르침을 경계시키느라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거짓교사들은 가능하면 말세를 피해서 가르치고자 합니다. 바르게 살기보다는 편한 대로 살고자하는 사람들은 뭐든지 깊이 생각하려하지 않습니다. 짧은 인생에 골치 아픈걸 뭐 그리 알고 믿으려하는가? 그냥 먹고 마시고 흔들고 재미나게 살자는 합니다. 막가파의 특징은 용감하다는 것인데 막가다보면 막다른 골목이 나오지요. 그러면 길이 안보여 쩔쩔매다가 옥상에서 용감하게 뜁니다. 한겨울에 한강물에 뛰어듭니다. 지하철에도 뛰어듭니다. 아무래도 사람보다 철이 더 단단할 겁니다. 자살은 생명주신 하나님께 가장 큰 반역입니다. 혹 하나님을 위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현장에서 기꺼이 목숨을 드린다면 그 순교의 상급은 영원한 나라 하늘에서 받습니다.
5절입니다.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오래전 존재했던 모든 것들과 땅이 물에서 비롯돼 생긴 것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뤄진 것을 일부러 외면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정욕이 목적인 사람들의 한결같은 생각은 하나님이 안계시다는 것이고 일부러 그렇게 우긴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신뢰하려면 버려야 할 너무나 많은 것들이 그를 그렇게 만듭니다. 6절과 7절을 봅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절에는 ”이제 하늘과 땅은 노아 때와 같은 심판권의 말씀으로 이번엔 분명히 불로 태워버리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한번은 물심판. 이젠 불심판, 피할 수 없는 인류의 길입니다. 노아의 물심판 때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서 애 낳고 태평하게 살았습니다.
10절에선 그날이 도적같이 온다고 했고 12절에 그날을 간절히 사모하라고 합니다. 또 14절엔 그날에 주님 앞에 흠 없이 평강한 가운데 주님만나기를 구하라고 합니다. 며칠일지 몇 백 년일지 모르는 그날을 우리는 준비해야 합니다. 놀랍고 무서운 불의 심판은 반드시 들이닥칠 것입니다. 늘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장 중차대한 일로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그분의 말씀이 삶의 이정표가 돼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되살피고 마칠까합니다.
1. 세상은 반드시 한번 크게 요동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물로 한번 심판하신 하나님이 이젠 불사름으로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사실을 굳게 믿고 그때 임할 재림예수님과 잘 사귀어 살면서 그분을 늘 사모해야 합니다.
2. 불심판 뒤에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이 있습니다. 불신의 세상 사람들에게는 가공할 진노의 날이지만 믿는 성도들에겐 기다려지는 소망의 날입니다. 오직 주님 기뻐하시는 경건을 힘써 지켜가며 부족해도 용서하시고 맞아주시는 하나님만 바라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억납니까?
영원히 살 것처럼 내일을 꿈꾸고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라.- 제임스 딘 -
오늘은 어제 죽어간 그 사람이 그렇게 살고 싶어 하던 내일이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재림이 있을 것이고 그날은 너무 경이로운 기쁨의 날일 것입니다. 우리 생전에 주님이 오실지 아니면 땅속에 잠들어 있는 동안에 주님 오실지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그 분이 다시 오신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의 재림은 너무 황홀하고 웅장하고 화려해서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시편보며 기도합니다. <누가 감히 주님의 진노와 그 크신 능력을 알며 그 능력대로 두려워하겠습니까? 우리에게 우리의 짧은 날을 헤아릴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반드시 오실 주님 손에 있는 불심판권으로 악한 세상 심판하시는 날에 곱게 신부단장한 성도들 부활하여 다시는 눈물없는 주님나라에 영원히 살펴 찬송할 그 소망을 민감하게 하옵시고 그 절감하는 힘으로 남은 세월 잘 이겨가게 하옵소서. marana'tha 주예수시여, 우리가 잠시 이 세상 살 때에 육체라는 이 짐이 참 무겁습니다. 세상이 우릴 위로하지 못할 때 아버지여, 우리의 찬송이 되시고 채우심이 되시니 오직 주님 바라며 이기게 하옵소서. 마라나타 주예수시여, 속히 오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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