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07. 주일설교<민9:1-5.유월절, 그날을 기억하라.>
유월절이라는 말은 6월에 있는 절기가 아니라 건너 뛰어넘어간다는 뜻의 pass over라는 말로서 생략하고 다음으로 넘긴다는 뜻입니다. 유월절은 출12장에 자세히 밝히고 있는데 출애굽 당시 모세와 이스라엘백성의 출타를 완강히 거부하던 바로와 애급에 있는 모든 생명의 초태생과 장자를 죽이던 날이 배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가난하고 나약한 언약백성들, 애급이라는 인큐베이터로 요셉을 통해 들어갑니다. 애급은 인큐베이터요, 이스라엘은 미숙아인 것입니다. 세월이 지나자 하나님의 언약대로 이스라엘의 수는 애급이 두려워할 정도로 커졌습니다. 총리로 있던 요셉도 죽고 수가 많아지자 정책을 바꿔 이방인 이스라엘을 노예신분으로 전락시키고 혹독하게 부려 그 고통이 심하게 되고 그들은 하나님께 간절히 호소하게 됩니다. 그러자 모세를 통해 애급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내라고 하십니다. 출애굽사건입니다. 그러나 막대한 노동력이었던 이스라엘노예들을 쉽게 놔줄 리 없는 바로 왕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열 번의 기적을 보이면서 출애굽을 성사시킵니다.
오늘 듣는 하나님의 말씀은 유월절, 그날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과 관련된 열 재앙 중 가장 큰 재앙인 마지막 장자의 죽음은 바로왕의 외아들도 포함됩니다. 이 열 번째 재앙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의 장자를 보호하시려고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발라 모든 장자의 죽음에서 제외되도록 배려하십니다. 이것이 유월절의 사건입니다. 모든 장자를 죽이던 여호와의 사자가 이 문설주에 바른 양의 피를 보면 죽이지 않고 건너뜀으로 언약백성의 장자들을 보호하신 것입니다.
사망의 저주가 건너뛰어 너희 장자들을 구하신 하나님과 그 날을 기념하라, 다른 말로 너희 모든 장자들은 애급을 나오던 그날 다 죽어야 했던 자들임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말씀을 따라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
1. 종 되었던 날들을 기억하라.
430년간 종살이를 하며 가슴에 한이 맺힌 백성들, 그런데 한편 타성에 젖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월이 지나자 차츰 과거의 역경과 궁핍했던 시절을 잊고 교만해져 음란해지기 시작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편안해지면 속히 과거를 잊고 더 편하고 기름진 삶을 원합니다. 오히려 힘들면 긴장하고 과거의 결단들을 떠올립니다. 교만해진 이스라엘의 실패할 미래를 하나님은 보셨습니다. 그래서 유월절을 정하여 기념하라는 것이고 거기에 주요한 교훈이 담겨있는데 그건 두고두고 기억해야할 만큼 귀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신6:12절을 제가 봅니다. 출13:3절을 봅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애급에서 곧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온 그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너희를 그 곳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출13:3절, 20:2절, 신5:6절, 6:12절, 13:5절 등 많은 곳에서 꼭 같은 말씀이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을 “애급에서 종 되었던 너희를 인도하신 나 여호와.”라는 표현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과 저와 여러분의 지금모습이 아니라 본래 애급의 종 되었던 집에서 노예로 비천한 삶으로 연명하던 모습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거기서 너희를 구원해 낸 나 여호와라는 사실도 함께 일깨워 주십니다.
저와 여러분. 뭘 기억합니까? 죄와 사망에 사로잡혀있던 과거와 거기서 구해주신 하나님, 그리고 죄의 종이었던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열등감과 수치심과 좌절과 분노에 사로잡혀 무기력했고 죄의식으로 울며 숨던 아픈 상처의 날들이었습니다. 그런 날들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겁니다.
2. 자유자가 된 날을 기억하라.
출애굽의 마지막 재앙인 장자의 죽음으로 드디어 이스라엘민족들은 애급의 노예로부터 자유의 몸이 됩니다. 출15:20-21절,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가로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 미리암의 노래, 그 시작입니다.
출12:29-39절까지는 열째 재앙이 지나며 모든 장자의 죽음으로 눈물바다가 된 애급현장이 나옵니다. 모든 장자들이 죽자, 외아들을 잃은 바로 왕, “너희 말대로 소도 양도 다 몰고 가고 날 위해 축복하라.”고 합니다. 무서운 힘을 보았고 아들을 잃고는 꼼짝없이 백기를 든 것입니다.
출35-36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급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여호와께서 애급사람으로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의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급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430년간 노예생활에서 하나님의 인도와 간섭으로 전격적인 이스라엘의 민족해방이 열리는 순간입니다. 그렇게도 놔주지 않다가 하나님의 권세 앞에 꼼짝 못하고 보내주는데 은금패물과 의복을 주면서까지 어서 속히 여길 떠나라는 겁니다.(밀린 노임정산)
이어서 39절에는 이스라엘민족이 애급에서 너무 급히 쫓겨나는 바람에 미처 발효되지 못한 떡을 가져나왔고 먹을 양식도 준비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더러운 세력에 잡혀서 믿음없이 헤매며 방황하고 세월 탕진할 때 우리 주님은 우리를 다 보셨고 당신의 품으로 불러주셨습니다. 그날을 기억합니까?
그날은 미처 떡을 준비하지도 못한 날이었습니다. 그날은 신발 끈을 묶고 허리에 끈을 묶은 채 찬밥을 서서 먹었습니다. 손에는 모세의 지팡이 같은 빛바랜 약도하나 없이 해방됐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사태입니다. 백성과 모세는 너무나 놀라 황당해 할 여유조차 없이 길을 떠났습니다. 묶임에서 풀려나는 길, 이방신의 풍습에서 여호와의 품으로 방향을 바로잡아 길을 떠납니다. 애급이 주는 대로 먹고 시키는 대로 하던 발길이 하나님이 공급하는 것을 먹고 순종하는 길로 떠납니다. 자유자가 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예수님만나 세상의 슬픈 사슬에서 자유하며 감격하던 날들은 언제였습니까? 그때 먹은 초심은 무엇이었습니까? 기억해 되돌려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신분상승을 상상해봅니다. VIP, 붉은 카펫을 밟고 귀빈석에 앉은 사람. 누구나 친절하게 맞아주는 VIP, 이렇게 살거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며 서러운 눈물도 감추던 자를 VIP로 신분상승을 단번에 이루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노래이십니다.
우리교회 올 2월 둘째주 설교시작에 인도의 카스트제도와 관련된 메시지가 있던 게 기억납니다.
[일곱 개의 사회악(1. 원칙없는 정치 2. 노동없는 부 3. 양심없는 쾌락 4. 인격없는 교육 5. 도덕없는 상업 6. 인간성없는 과학 7. 희생없는 종교)을 말한 마하 아트마, 위대하고 큰 영혼이란 이름의 마하트마 간디는 카스트제도 4개의 계층(브라만,크샤트리아.바이샤.수드라)에서 최하위 불가촉천민을 하르쟌이라고 불렀음. 히브리인이 인도에 갔다면 하르쟌. 하르쟌을 최상위 카스트 브라만으로 올려주신 주 찬양. 소중한 존재가 끝내 곱지만은 못해도 브라만이 된 하르쟌처럼 어떤 모습으로 왔느냐보다 더 중요한 건 어떤 모습으로 가는가의 문제, 즉 어떤 부모에게 태어났냐보다 어떤 부모로 떠나는가의 문제. 예수를 유산으로 물려주는 최고의 부모가 됩시다.]
수드라(파리아 / 달리트)출신 청년이 한국에 일하러 왔다가 국내여성과 결혼해 한국국적을 얻고 아파트까지 장만해 예쁜 아기를 낳아 가정을 이룬 사례가 있어 한 때 화제가 됐습니다. 과거 침받이와 발자국 지우기 빗자루를 달고 다니던 카스트에서 한국 사람으로 극적 신분상승이 된 겁니다.
잠시 고향 인도에 가서 그가 받은 대접은 상상을 넘은 호화판이었습니다.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3. 장차 순종으로 받을 새 날을 기억하라.
신4:40절을 읽습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없이 오래 살리라.”신7:9-16절까지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순종할 때 받을 백성들의 복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받을 복된 새날은 12절에서 “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이라는 단서를 붙여 시작되고 있습니다.
예배하는 여러분. 우리가 더욱 순종하면 우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 외에도 순종 그 자체가 얼마나 기쁨인지 경험할 것입니다. 우린 언젠가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갑니다. 거긴 눈물 없고 거긴 아쉬움 없고 거긴 기도도 없습니다. 거긴 찬송만 있습니다. 기쁨만 있습니다.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손안에 없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선 언제나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귀한 백성들이 힘들게 살며 믿지 않는 곳에 가서 손 벌리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넉넉해져서 예수이름으로 베푸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지켜 행하면” 말씀에 순종하면 주실 많은 것들을 성경 곳곳에서 증거합니다.
예배하는 여러분. 종 되었던 날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거기서 잊혀져가는 겸손을 다시 붙잡기 바랍니다. 말씀으로 자유로워지던 날, 그날의 초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거기서 주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하여 여러분의 영이 강건해지기 원합니다. 끝으로 순종으로 장차 속히 다가올 새날들을 준비하는 복된 여러분이 되시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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