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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9.05.19. 주일예배<창9:8-17.(13.15.16) 무지개언약과 불심판>

by 설렘심목 2019. 5. 19.

2019.05.19. 주일예배<9:8-17.(13.15.16) 무지개언약과 불심판>

[2019.05.18.목요. 보이는 삼라만상가운데 그리고 자신의 삶 속에서 예수 외 더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자, 찾지 않기로 결정한 자, 그런 사람으로 자신의 정체를 정한 자, 복이 넘칠지어다.]

 

홍수, 큰 물심판에서 살아남은 노아와 그 가족이 경험한 구사일생의 감동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죄로 인해 죽어있던 자 가운데서 특별히 선택받아 골고다 십자가의 물과 피로 구원받은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라는 방주로 살아남은 九死一生의 감동이 노아가정과 다를 게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감동으로 인해 스스로 기뻐 전도하고 봉사하고 그렇게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언제나 하나님과의 관계는 인생의 기초를 이루는 중요한 주제이고 여기서 모든 것이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남은 생애를 살피려면 이 점 즉 감동을 살피면 간명하게 설계할 수 있고 또 보입니다. 나에게 구원받은 자의 감동이 얼마나 뜨거운가? 매순간마다 그 감격이 힘의 근본이 되는가? 그리고 모든 성경의 약속이 먼저 나 한사람에게 분명히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가?

늘 자문해야 할 중요한 자아점검의 기준이 되길 바랍니다.

 

다음은 가장 관심 가는 언약의 내용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침범치 않을 것이며(11) 물은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않으리라(15)고 하셨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앞으로 인류는 결코 물로 멸망하거나 심판받지 않을 것입니다. 물이 아니라 불입니다.(벧후3:5-10)

 

물과 불은 인간의 삶에 가장 절실한 것입니다. 물은 모든 생명의 근원입니다. 사람의 몸은 70%이상이 물로 되어있습니다. 그렇게 물은 모든 생명들의 가장 소중한 필요재입니다. 이 물로 하나님은 타락한 인생들을 징계하셨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언약을 통해 다시는 홍수로 생명들을 침범치 않을 것이며 물은 혈기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물은 더 이상 세상을 심판하는 도구가 되지 않습니다. 물은 물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 복음이 그리스도의 배에서 나오는 생수로까지 비유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물로 심판은 하시지 않는다고 심판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이제 불의 심판이 남았습니다.

불도 물처럼 우리 삶에 절실한 것입니다. 불이 없으면 곤란한 일들이 많습니다. 불이 없는 겨울은 죽음입니다. 또 물이 없는 여름 뙤약볕도 죽음입니다. 생명을 보존하는 물과 따스함, 그러나 그 절실한 것이 지나치면 화마와 물난리로 피할 수 없는 무서운 징계가 됩니다.

 

우리에게 시험이 오고 절망으로 인생의 터널을 맞게 되는 것은 대부분 이렇듯 절실한 것이 지나쳐서 넘칠 때 벌어지는 현상들, 즉 끝이 없는 욕구충족으로 인한 재앙입니다. 따라서 무엇이든지 지나쳐서 넘치면 시험거리요, 불행입니다. 욕심이 지나치면 죄를 잉태하고 죄의 삯은 사망(야고보서1:15)이라고 성경은 지적합니다.

진정한 믿음과 믿음인격은 절제로부터 시작합니다. 여기서도 한번 우리 돌아보길 원합니다.

내게 절실한 것들이 내 믿음과 인격으로 적절하게 통제되고 있는가?

이제 물과 불에 이어 언약의 증거, 무지개(13.16)를 봅니다. 세상에서 보통 무지개라는 말은 아름다운 꿈을 의미하고 다분히 환상적인 시어로 자리잡은 예쁜 단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보다 실체적이며 보다 엄격한 현상에 대해 예언적 의미를 갖습니다. 무지개에 대해 일러드렸듯이 무지개에 직접 들어가 본 어린 날 추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멀리 친구들이 손짓으로 표했으나 무지개가 사라졌습니다. 분명 그 자리인데 거기 서보니 습도가 너무 높아 몸이 끈적거려 상쾌함이 사라지고 기분이 칙칙했습니다. 무지개는 멀리서 보는 것이지 막상 그 안에 들어가면 매력이 없다는 것을 배운 겁니다. 인간은 나면서부터 무지개를 따라 열심히 달립니다. 그러나 막상 그 안에 들어가면 그렇게 환상은 부서지고 아직 가보지 못한 다른 무지개를 바라봅니다. 꺾기 전엔 아름답던 장미가 꺾고 보니 가시투성이로 보이는 우리 마음의 무지개환상, 이젠 좀 좋아질 거야. 계속 속고 갑니다.

 

무지개(rainbow는 비와 사람 사이에 하늘을 향해 시위를 먹인 활입니다. 이 활의 시위를 놓으면 누가 다칩니까? 하나님이 다치시며 그래서 하나님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지게 돼 있습니다. 언약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상처는 모두 하나님의 몫이 되는데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치명적 상처는 불신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하나님이 결코 용납지 못하는 괴로움은 인간의 불신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은 모두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는 이유에서 비롯되고 있으며 그것이 안 지켜져서 인간을 징계하실 때에도 그것은 여전히 하나님의 또 다른 사랑의 표현인 것을 우리는 압니다. 이제는 무지개 뒤에 있는 불의 심판을 함께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는 물로 생명들을 심판하지 않으시겠지만 대신 불로 심판(벧후3:10.12)하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무지개를 볼 때마다 장차 올 불심판을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불심판 때에 평강의 왕 예수님과 함께 심판보좌에 앉을 일로 기뻐하고 있습니까?

중요한 하나는 불심판을 단순히 핵전쟁이나 하늘의 불벼락으로 제한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환경에서 진리를 마무리하지 않습니다. 진리는 끝내 우리의 내면에서 풀리고 삭혀 적용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심판이 구약의 심판이라면 불심판은 신약시대의 마지막 심판입니다. 물심판으로 의로운 노아와 가족 여덟을 구했으나 불심판은 거룩하신 주님 이름으로 누구든지 믿고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우린 이미 받은 구원으로 복된 노래 마음껏 부르며 그날 완성될 구원을 예비하는 천국신부들입니다.

오래전 깨이지 않은 미개야만인들을 물에 빠뜨려 죄를 청산하신 그때나 선악과를 주야로 먹는 문명시대 지금이나 인간의 죄성, 육체는 전혀 달라지지 않습니다. 달라진 건 약아빠진 인생들마다 죄를 그럴싸한 사이키델릭 조명 뒤로 숨겨놨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는 그렇게 휘황찬란한 산데리아 불빛으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어린 양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덮어야 가려진다는 것을 아는 이는 드뭅니다. 극소수의 그들이 모여 교회를 이루고 예배로 하나님과 교제해 세상이 유지됩니다.

 

밉던 곱던 세상이라는 배경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삶의 무대입니다. 이 무대에서 불심판을 교회가 바로 알아 주의 뜻대로 행한다면 상당부분 우리가 가는 길은 시온의 곧은길이 될 줄 믿습니다. 그렇게 불심판을 우리의 심령 안으로 끌어와야 합니다. 널리 알려진 요3:18절에서는 심판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않는 것이요,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 이름을 믿지 않으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어둔 세상을 더 사랑해 빛이신 주님을 멀리하고 살아가는 그 자체가 이미 심판의 진행인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불심판은 이미 깨달은 성도들에게 허락된 마지막심판의 예방주사처럼 크고 작은 순간마다의 작은 훈련과 경건의 연습으로 우리에게 늘 행해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혈기, 화딱지라는 것은 그 본질이 불입니다. 너도 데이고 나도 데여서 고통이 되는 혈기는 사실 열정의 어린 초기단계입니다. 그거 없이는 아무 일도 못합니다. “나 화나니까 축구 되게 잘하지?” 기억납니까? 우리는 분노로 일하고 감동으로 변합니다. 어디로 가든 가긴 갑니다. 이제 그 화가 개인별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작은 불심판인 것을 인정하면 아멘입니다. 그 불로 얼마나 많은 일을 했고 또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고받았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그 불심판의 연습으로 경건을 완성해 가고 계십니다.

불 주사를 잘 맞아야 합니다. 여러분, 혈기있는 이가 정도 많고 일도 잘합니다. 혈기 치솟는 불심판 꾸준히 잘 넘기면 그날 대심판 불이 떨어질 때 우리는 놀라지 않고 주님 손을 꼭 붙잡고 세상 끝날을 주재하는 주님과 함께 보좌에 앉아 그것을 볼 것입니다.

 

이제 물심판을 살핍니다. 물심판은 이미 구약에서뿐 아니라 신약시대의 우리에게도 끝났습니다. 어디서 끝났습니까? 골고다에서 끝이 났습니다. “진실로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에게 하신 주님 말씀입니다.

물과 피로 깨끗해진 인간의 죄는 골고다에서 깨끗하게 청산됐습니다. 물과 피가 죄악 된 땅을 덮어 어둠의 땅이 빛을 담아 생명을 움돋게 하는 새 땅으로 바뀌었습니다.

새 하늘 새 땅들아. 춤을 추며 찬양해”  함께 노래할 시간이 다가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비전식구들은 순결한 신앙고백 곧 예수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생명이요, 구원의 방주시며 찬송의 대상인 것을 굳게 믿고 66권 성경의 모든 말씀과 약속이 개인의 것임을 고백하며 이미 심판에서 영원한 생명의 천국으로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우주적 불심판은 어느 날 갑자기 도둑처럼 예고 없이 닥칠 것입니다. 마지막 분노, 화의 날입니다.

계시록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 “, , 화로다. 화가 있도다.” 진노의 잔입니다.

 

그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성경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기간은 우리가 작은 땅 우리 몸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불, 혈기와의 전투에서 반드시 승소판결을 모두 받기 원합니다. 힘겨워도 반드시 우리는 성장하여 승소율을 놀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경건을 연습하라고 합니다. 경건은 구원처럼 단번에 이루지 못합니다. 연습하는 겁니다.

경건한 주의 백성들은 결코 큰 심판의 날이 두렵지 않습니다. 이미 충분히 연습했기 때문입니다.

 

최선을 다해 주님 찬양하며 말씀에 순종함으로 천국을 예비하기에 합당한 것들로 채워가십시다. 남은 날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심판과 구원하심을 한손에 쥐신 예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해 우리는 시간과 중심과 물질 중 어느 하나도 아낌없이 주님께 드려 오직 주의 기쁨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