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09. 주일예배<사41:9-10. 하나님이 잡고계신 교회들>
[만물의 이치를 꿰뚫어 봤던 징기스칸의 장수. 야율초재 명언. 하나의 이익을 얻는 것이 하나의 해를 제거함만 못하고, 하나의 일을 만드는 것이 하나의 일을 없애는 것만 못하다.
스티브잡스는, 자신이 설립한 애플사에서 쫓겨났다가 애플이 망해갈 즈음 다시 복귀.
그가 복귀하자마자 시작한 일은 새로운 제품을 추가하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제품을 제거하는 일. 수 십 개에 달하던 애플 제품을 단 4가지 상품 [전문가용, 일반인용, 최고사양, 적정사양]으로 압축. 불필요한 기능을 하나하나 제거한 결과 다 망해가던 애플은 시가총액 세계 1위 기업으로 성장.
보약을 먹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몸에 해로운 음식을 삼가는 것.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하려 하기 전,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말아야 .
행복을 원한다면 욕망을 채우기보다 욕심을 버리는 것이 우선.]
강대국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하던 유다는 이사야선지자의 예언과 충고를 따라 강대국대신 여호와 하나님께 전적으로 기도하면서 의지하고 매달렸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나라와 인생이 그러하듯 하나님은 안보이고 당장 눈앞에는 엄청난 현실적공포가 다가오니 그것들을 제쳐두고 하나님께 엎드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그런 믿음이 없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은 책망과 위로가 교차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지난주처럼 패역한 백성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가운데 누릴 여러 가지 회복된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격려한 메시지입니다. 우리교회 주님이 새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세우신 우리교회 지금 여기 소수의 개척동지들을 통해 그 비전을 어찌 열어갈 것인가? 이 말씀 우리 모두에게 큰 힘이 되길 바랍니다. 본문 9절을 함께 읽습니다.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1.교회의 기초를 하나님께서 붙드십니다.
땅 끝 곧, 구원과는 먼 거기에서 땅 모퉁이 즉, 존재감 없던 자를 택해 붙드셨는데 결코 미워서 버린 게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한번 부르셔서 택한 자를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시편기자는 시27:10절에서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절망가운데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사람이 아닙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은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행4:12)”고 했습니다. 수렁에 빠진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를 누가 구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인생을 창조하신 후 가장 먼저 세운 것이 아담하와를 통한 가정이라는 기관이었고 인간과 하나님 다음으로 관계가 형성된 것이 부부라는 관계였습니다. 이후 가정과 하나님사이, 사람과 하나님사이가 파괴되자 무너진 관계회복을 제사라는 과정을 주셔서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전6:19절에서 밝히듯 우리 개인이나 가정이나 예수님의 몸된 교회는 하나님의 소유요, 하나님의 전, 곧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전인 성도, 가정, 교회는 하나님의 법아래 놓여 있을 때 비로서 평화와 형통이 있다고 지난 주에 들었습니다. 불행이란 하나님의 법과 통치를 떠나 사람의 욕심을 따라 갈 때 시작된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주의 법이 완전하심이여. 주의 법을 내가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 주께서 아시나이다.”시편에서는 하나님의 통치를 사모하여 그 완전하신 주권과 이름을 높여 찬양하기를 반복합니다. 10절 앞부분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2. 하나님께 붙잡힌 자는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인생은 평생 어딘가에 그리고 누군가에게 잡혀서 살아가게 됩니다. 자녀에게 배필에게 가족에게 가진 자에게 잡혀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담긴 인간은 특히 사랑의 관계와 생존에 필요한 물질과 여러 가지 환경에 붙잡히게 되며 그것들을 벗어나선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즉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2:8절의 이 말씀은 살아 있는 자를 생령으로 표현하여 인간의 생명이 영혼에 달려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에덴의 범죄이후 인간에게 남겨진 육성과 죄성이 인간의 자유를 빼앗아갔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난 인간에겐 하나님 외에 모든 것에게 묶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진정한 의미의 자유는 사라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환경과 자신과 주변으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얻으려면 하나님께 붙잡혀야 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 하나님께 붙잡히면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과 영생에 의해 세상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데 이 자유는 육체 안에 갇힌 세상 사람들은 맛볼 수 없는 신령한 기쁨입니다.
구원받아 영혼이 되살아나면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보게 됩니다. 그 나라를 본 사람은 이 땅에 대한 해석과 관점이 전혀 달라지는 변화를 받게 되는데 이는 믿음이 어찌하여 능력인가를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왜 믿음이 능력인가? 깊은 신앙인일수록 땅의 썩어질 것과 신령하고 영원한 하늘의 것을 분명히 가를 수 있는 분별력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 분별력은 그 나라에 대한 확신가운데 분명한 목표를 갖게 될 것이고 하늘에 대한 확신은 땅에 것에 흔들리거나 갈등하지 않게 합니다.
두려움이 왜 생기는 것일까? 두려움은 이것이 끝이라는 절망감이 새로운 출구를 찾지 못할 때 일어나는 생존욕구의 몸부림입니다. 성도에게 두려움이 끝내 평강과 노래로 바뀔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지금 여기 나와 함께 하신다는 굳건한 믿음 때문입니다. 임마누엘의 이 믿음은 영생의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고 그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죽음은 또 다른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란 확신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벼랑 끝에서 느끼는 절망감이 교회와 성도에게는 새날의 시작임으로 근심할지라도 절망하며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돈으로 살 수 없는 값진 삶의 밑거름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입니다. 다음은 그 교제중 얻어지는 낮아짐과 철저한 회개로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은 당신의 교회를 반드시 단단하게 하시고 풍성하게 하신다는 믿음이 기도하는 중에 단단히 세워지기 바랍니다.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해 버리지 않았다.”고 하신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끝내 버리지 않으셨고 그 한없는 인자하심으로 불쌍히 여기셔서 당신이 하셨다는 증거를 계속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끊이지 않고 복된 증거를 보여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이제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고 곁에 함께 하신다시니 무엇을 망설이고 두려워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생명처럼 아끼시고 사랑하시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아햐 합니다. 요일4:18절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고 사랑한다면 세상과 사람에 대한 두려움은 예수를 향한 그 사랑과 신뢰만큼 없어질 줄 믿습니다. 세상환경이 두려울 때 하나님을 가까이 사귀어 그 손에 잡히기 바랍니다. 그 손에 잡힌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가 됩니다.
10절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3. 하나님이 붙드신 교회는 반드시 굳세게 하시고 도와주십니다.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고 하신 주님이 우리가정과 개인의 진로를 놀라운 손으로 열어주십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당신이 친히 개입하셨다는 증거 앞에 어떤 다른 핑계를 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을 극진히 사랑하신다는 분명한 증거들입니다. 모든 진로를 통해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 피할 수 없는 증거들은 우리가 앞으로 어찌 살아가야할지를 우리에게 웅변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경제 한파와 부동산침체 앞에 붕괴돼가는 가정경제와 개인의 삶, 새 생명으로 살려주실 주님께 모든 성도와 가정들이 힘을 모아 남은 생애 주님위해 살겠노라 결단하기 소원합니다. 죽었던 자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뒤에는 살려주신 이를 위해 생명을 바침이 마땅할 것입니다.
4. 교회가 굳세게 일어서면 가정들이 회복될 것입니다.
교회의 회생과 부흥은 가정의 회생과 부흥을 보장하게 된다는 말씀은 단순한 위로가 아닙니다. 주님이 이미 계획하시고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믿고 따르면 이뤄지는 하나님의 일들입니다. 하반기 남은 올 한해 우리 모두 교회를 위해 살겠단 마음으로 모든 가정들이 새로워지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 홀로 하시지 않고 저와 여러분의 손을 잡고 하십니다. “참으로 내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우리를 붙들고 일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믿음의 분량만큼 우리는 신앙의 활동분량을 넓혀가야 합니다. 활발한 그 신앙 활동 가운데 교회와 가정이 일어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개척의 공신이 되는 특혜를 우리들에게 주셨습니다. 아무나 받지 못하는 이 사명 주실 때 능력과 형통도 주실 줄 믿습니다. 아울러 우리들의 헌신과 결단이 요구되는 때입니다. 구원의 감격을 결단으로 더욱 다지면서 주님께 시간과 열정을 바칩시다. 고통 끝에 선한 것으로 열어주시는 주님이 친히 길이 되셔서 모든 것 찬송되게 하십니다. 교회는 물론이요, 오늘 말씀받고 하나님 앞에 몸을 드리기로 헌신하는 저와 여러분의 가정과 자손들을 축복합니다. 결단케 하시고 이루게 하시는 주를 찬송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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